김신묵의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조선의 서원 답사기 (6) '屛山書院(병산서원)
김신묵의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조선의 서원 답사기 (6) '屛山書院(병산서원)
ㅇ 屛山書院(병산서원) 사적 제260호
내문답의 서원 답사기는 최초의 서원 '소수서원'에서 시작하였고, 퇴계의 '도산서원'을 첫머리에 올렸다.
이어 퇴계의 양대제자 김성일과 류성룡간 400년 屛虎 是非(병호시비)로 결국 빈집이 되어버린 虎溪書院(호계서원)을 답사하였다.
이번에는 屛虎 是非(병호시비)의 한 축인 屛(병), 즉 屛山書院(병산서원)이다.
屛山書院(병산서원)은 西厓(서애) 柳成龍(류성룡 : 1542~1607)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낙동강이 花山(화산 : 꽃뫼)을 S자로 감돌아 흐르는 안동 하회에 하회마을과는 반대쪽에 있다.
원래 풍산현에 풍산 류씨 교육기관이 豊岳書堂(풍악서당)이 있었는데 1572년에 서애 류성룡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겨 지었다.
임진왜란때 兵禍(병화)로 불에 탔으나 류성룡 死後, 1614년 그의 제자 정경세등이 스승의 업적과 학덕을 기려 사당 尊德祀(존덕사)를 짓고 서애 류성룡을 모시고 향사를 올리니 서원이 되었다.
1629년에는 서애의 셋째아들 수암 류진을 배향하였으며, 그후 1863년(철종 14)에 屛山書院(병산서원) 사액을 받았다.
1868년 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철폐시에도 폐철되지 않은 곳이며 (답사기 1편, 槪要(개요)편 참조), 소수서원, 도산서원, 도동서원,옥산서원과 함께 5대서원에 손꼽히는 곳이다.
서원의 명성을 논할때에 흔히 서원철폐에도 살아남은 47곳이라거나, 위에 예를 든 5대 서원을 손꼽기도 한다.
또는 최근 세계유산에 등록하기 위하여 잠정목록에 올린 9곳, 즉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등을 9대서원으로 꼽기도 하는데 현존하는 673개 서원중에서 가장 보존 관리가 잘 되었고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빼어난 곳이라는데 병산서원은 어느 경우에도 빠지지 않는 곳이다.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1543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1868년이니 병산서원이 세워진 1610년은 조선에 서원문화가 꽃피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1700년을 넘어가면 서원의 濫設(남설)에 따른 폐해가 만연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서원철폐령에 이르게 된것이니 병산서원이 세워질때는 서원제도가 자리잡고 순기능으로 꽃피울때 쯤인것이다.
따라서 병산서원의 배치나 구성은 매우 표준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일컬어 말하기를 미술적인 측면이나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하회를 방문했으나 시간이 부족할때는 하회마을 보다는 병산서원을 보고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유홍준 전문화재청장 같은 이는 하회입구에서부터 왼쪽으로 낙동강을 따라 10리길을 걸어 들어가야 병산서원의 참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서 차를 타고 서원앞까지 바로 들어가는 인생들을 불쌍(?)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병산서원의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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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 정면에 본 전경.... 정문과 만대루가 앞에 보인다>
<병산서원 정문... 솟을대문 형태의 외삼문 復禮門(복례문)이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정원공간이 있고 계단을 오르면 정면 7칸의 거대한 누각 晩對樓(만대루)가 나온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만대루는 200명을 수용하고도 남을만큼 넓다. 최근 보호목적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다.>
<커다란 나무를 깎아 만든 만대루 계단.>
<만대루 누각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면 강당인 立敎堂(입교당)이다. 누각 아래로 고개 숙임으로써 몸과 마음을 한번 더 다잡아 추스리고 올라오라는 의미인데 배움으로 들어가는 入敎가 아니라 가름침을 세우는 立敎이다.>
<입교당 가운데는 3칸의 마루이며 좌우로 온돌방을 들였는데 왼쪽은 2칸을 꽉채워 조금 더 큰 敬義齋(경의재)로 평교사 유사들이 기거하였으며 오른쪽방은 앞에 마루를 깔아 조금 작은 단칸방 明誠齋(명성재)로 원장이 기거하던 곳이다.>
<강당 입교당 마루에 걸터 앉아서 바라본 풍경... 바로 앞 만대루 너머로 앞산 屛山이 보인다. 누각 아래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강당 앞마당에는 동재와 서재가 서루 마주보며 서있다... 각각 가운데 마루를 두고 좌우로 1칸, 2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강당 뒤편으로는 약간 오른쪽으로 비켜 가파른 계단위로 사당인 尊德祀(존덕사)가 있다. 단청이 칠해져 있고 태극무늬가 그려진 내삼문은 늘 닫혀있다. 기둥 초석에 팔괘그림이 특이하다.>
<존덕사 왼편으로는 각종 서책과 목판을 보관하는 藏板閣(장판각)이다.>
<존덕사 오른편으로는 향사때 제수를 마련하거나 관련집기등을 보관하는 典祀廳(전사청)이다.>
<전사청 아랫쪽, 서원의 담밖에 있는 집은 서원 관리인 살림집인 庫直舍(고직사)....>
<고직사 아래로는 초가 이엉이 올려진 낯선 구조물(?)이 보인다.... 일명 머슴뒷간이라고 부르는 야외화장실이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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