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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종교, 敎勢 확장보다 사회기여 생각할 때,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두산중공업 회장

굴어당 2013. 7. 26. 07:48

[朝鮮칼럼 The Column] 우리 종교, 敎勢 확장보다 사회기여 생각할 때

  •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두산중공업 회장

     

    다양한 종교 共存하는 한국… 유난히 '저승' 강조, 독선도 심해
    길거리 선교는 한국만의 풍경, 가족끼리도 종교 갈등할 정도
    외국인 200만명 多문화 시대… 종교가 무엇을 할 지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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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두산중공업 회장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두산중공업 회장
    일본 규슈 섬의 서북쪽 끝자락에 히라도(平戶)라는 도시가 있다. 위치상의 유리함 덕분에 히라도는 수백년 전부터 중요한 항구였다. 막부의 쇄국정책으로 쇠퇴했다가 메이지유신 이후 외국에 문을 조금 열어주자, 이미 상권을 쥐고 있던 네덜란드와 영국이 상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곳이다. 또 히라도는 일본에 최초로 상륙한 예수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3년 가까이 선교를 했던 곳이다.

    항구가 보이는 언덕에는 하비에르 신부를 기리는 기념 성당이 있고, 그 아래에는 고묘지(光明寺), 즈이운지(瑞雲寺)라는 불교 사찰이 이어져 있다. 항구로 내려오는 길에서 바라보면 성당의 첨탑 아래 일본 전통 양식으로 건축한 사찰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을 보게 된다. 기독교 신자가 전 인구의 1%도 안 되는 일본에서 두 종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귀하다 보니 이를 관광 상품화해서 '사찰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이 고유명사가 되었는데, 이것이 히라도를 알리는 관광 상품 1호다.

    우리는 어떤가. 한 집 건너 교회이고 서너 집 건너면 사찰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상가에는 층마다 다른 종교가 둥지를 튼 곳도 있다. 아버지는 문중 모임이나 시제에 부지런히 출석하는 전통적 유학자이고, 어머니는 철마다 절을 찾아 열심히 불공을 드리는 불자, 딸은 항상 천주께 감사를 드리는 천주교 신자, 아들은 찬양대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개신교 신자, 이쯤 되면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편안하게 공존해야 하는데,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남의 종교에 대한 배타적 성향이 차츰 문제를 심각하게 이끌고 갈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외국인 200만명의 시대에 다양한 다문화 가정과 함께 살다 보니 단군의 자손인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렵게 됐다. 단일 문화, 단일 언어가 분명한데도 이같이 종교가 복잡한 나라도 흔치 않으며, 있어도 대부분 신문에 자주 오르는 이른바 '분쟁 지역'이다. 이스라엘이 대표적이고 지금은 갈라져서 조용하지만 옛 유고 연방의 발칸 제국이 그랬다. 중세를 피로 물들인 전쟁, 30년전쟁, 장미전쟁 모두 종교전쟁이다. 이 중에는 현대판 인종 청소라고 불리는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른 나라도 있다. 아직도 불안한 중동, 발칸 반도의 살육전도 종교 때문에 촉발된 전쟁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의 90%가 종교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도 국가나 공동체는 물론이고 가정에까지 다양한 종교가 만연하니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아들딸의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가 같은 종교면 문제가 없겠지만, 사랑이 깊어진 뒤 종교 갈등이 생길 때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는 TV 드라마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학가에서도 가끔 이슈가 될 때는 학생들 간의 날 선 공방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고 휴전이 된 뒤 60년이 넘도록 이산가족의 한을 풀지 못하고 있는데, 가능성이야 낮지만 여기에 종교적인 분쟁마저 겪는다면 끔찍한 일이다.

    종교의 역할이 이승에서 서로 사랑하고 도와서 더 나은 삶을 살다가 저승에서 행복을 누린다는 믿음을 키워가자는 것이며, 이 믿음이 죽음을 더 편한 마음으로 맞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난히 저승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종교관 때문인지 자기 종교가 천국을 더 잘 보장해준다는 독선이 판을 친다. 자기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을 구원하겠다고 남의 일에 참견하니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지구촌 어디를 가도 길거리에는 행상, 걸인, 거리의 악사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뭔지 아느냐는 외국인의 비아냥거림을 몇 년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카드사 간 경쟁이 치열하던 때에 길거리에서 카드를 발급한 적이 있었고, 또 즉시 개통이라며 가판대에서 휴대전화를 판매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부동산 현장의 떴다방만 남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이 이른바 길거리 선교다.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대고 선교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인 듯하다.

    무엇이든 시작만 하면 과열이 될 정도의 화끈한 민족성 때문에 종교 문제도 우려되는데, 다음 세대를 생각해서라도 종교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종교 단체들이 주장하는 종교별 인구를 합하면 우리나라 총인구보다 많다는 이 불가사의한 통계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순히 교세 확장보다는 우리 사회와 국가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서 민감한 문제인 줄 알면서 거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