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daum.net·k2gim·

한유 평전, 노장시 지음 | 연암서가 2013년 07월 05일 출간

굴어당 2015. 6. 18. 21:59

 

 

한유 평전

                

노장시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07월 05일 출간

한 시대를 풍미한 한유의 삶과 문학을 살핀다!

『한유 평전』은 고문운동을 통해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한유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책이다. 한유는 성당 시대에 태어나 중당 시대에 살았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문인이다. 특히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중국 산문사를 대표하는 문장가이다. 이 책은 한 시대를 풍미한 한유의 삶과 문학적 성취를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였고, 한유 개인의 전기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많은 일화와 당대의 사회 관습ㆍ제도ㆍ정치풍토 등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저자소개

저자 : 노장시

저자 노장시(魯長時)는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영남대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라벌대학 중국어통역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영남대 중국언어문화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중국문화통론』, 『중국문화의 이해와 탐방』, 『구양수 산문의 분석적 연구』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신역 구양수 산문선』, 『당송팔대가문초-소순』, 『퇴계시』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제1장│ 한유 가문의 내력과 집안사람들
1. 한유 가문의 내력
2. 한유 집안사람들
1) 아버지와 어머니
2) 한유의 형제들

│제2장│ 장안에서의 수험 생활
1. 관리의 꿈을 안고 상경(上京)
2. 세 번의 진사시험 낙방과 급제
3. 세 번의 이부시험 낙방과 귀향

│제3장│ 절도사의 막료 생활
1. 변주(변州)에서의 막료 생활
2. 서주(徐州)에서의 막료 생활

│제4장│ 관리 임용과 첫 유배
1. 상경하여 다시 수험 생활
2. 사문박사(四門博士)로 임용
3. 감찰어사(監察御史)
4. 양산(陽山)으로의 첫 유배
5. 강릉법조참군(江陵法曹參軍)으로 사면

│제5장│ 장안과 낙양을 왕래하며
1. 장안과 낙양에서의 국자박사
2. 낙양의 하남현령(河南縣令)
3. 장안의 국자박사로 강등
4. 「학문 증진에 대한 해명(進學解)」
5. 사관수찬(史館修撰)

│제6장│ 회서의 난과 성공
1. 회서(淮西)의 난에 공을 세우고
2. 「회서평정 기념비(平淮西碑)」

│제7장│ 시련의 조주 팔천 리
1. 「불골을 논하는 표(論佛骨表)」
2.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유배
3. 원주자사(袁州刺史)로 이동

│제8장│ 화려한 부활과 만년
1. 사면되어 다시 장안으로
2. 국자감 총장
3. 병권과 인사권을 쥐고
4. 수도를 총괄하는 경조윤
5. 만년(晩年)

│제9장│ 한유의 문학적 성취
1. 고문운동과 유학부흥
2. 한유의 시

한유 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고문운동을 통해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한유의 삶과 문학

고문운동을 통해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한유의 삶과 문학


한유는 성당(盛唐)시대에 태어나 중당(中唐)시대를 살았던 정치가요 사상가이기도 하지만 문인으로서 이름이 더 높다. 특히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중국 산문사를 대표하는 문장가이다. 한유는 유학을 숭상하고 유가의 도통(道統) 계승자로 자칭하며, 불교와 도교를 강력히 배척하였다. 그는 유가의 인정(仁政)을 제창하여 당 왕조의 통일과 강력한 중앙정부 체제의 유지를 희망하였고, 인재를 억누르는 문벌정치를 반대하며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문학과 관련하여 한유는 복고를 주장하면서 당시에 널리 사용되던 변려문(騈儷文)을 반대하여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새로운 산문운동, 즉 고문운동을 이끌어 중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하였다. 고문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한유 주위에 모여들었던 맹교(孟郊)ㆍ장적(張籍)ㆍ이고(李고)ㆍ노동(盧仝)·이하(李賀)ㆍ가도(賈島)와 같은 많은 친구와 문인(門人)들이 문학 집단을 형성하여 당시의 문학 동향에 크게 영향을 끼친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주장을 문장을 통해 용감하게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한유의 삶과 문학적 성취를 객관적인 사료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였고, 한유 개인에 관한 전기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많은 일화와 당대(唐代)의 사회관습·제도ㆍ문풍ㆍ정치풍토 등을 자세히 기술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한유는 누구인가?

한유(韓愈, 768~824)는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문인이자 사상가이다.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맹현(孟縣) 사람이다. 자는 퇴지(退之)이며, 한씨(韓氏)의 본관 가운데 ‘창려(昌黎)’가 가장 이름이 있어 스스로 한창려(韓昌黎)라 하였으므로 창려 선생(昌黎先生)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3세에 부모를 여의고 형수의 손에서 자랐으며, 어려운 환경에서 학문에 정진하여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학문을 두루 익혔다. 25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절도사의 막료생활을 거쳐 35세가 되어서야 중앙관직으로 진출하여,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시작으로 국자박사(國子博士)ㆍ중서사인(中書舍人)ㆍ병부시랑(兵符侍郞)ㆍ경조윤(京兆尹)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으며, 57세로 생을 마쳤다. 조정에서 예부상서(禮部尙書)의 관작과 함께 문(文)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여 한문공(韓文公)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상적으로는 도가와 불가를 배척하고 유가의 정통성을 적극 옹호하였으며, 문장에 있어서는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변려문을 반대하여 고문운동을 주도하면서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시는 300여 수가 남아 있는데 독특한 표현을 추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사위이자 문인인 이한(李漢)이 한유가 죽은 뒤 그의 시문을 모아 『창려선생집』을 간행하였으며, 지금 그의 저서로는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 40권과 『외집(外集)』 10권, 『유문(遺文)』 1권 등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