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교육원 최연소 입학 유주함·유수일 형제
고전번역교육원 최연소 입학 유주함·유수일 형제
번역교육원생 중 이들만 10대… 나란히 1·2등 차지하며 입학해
중·고교 안 가고 집서 한문 공부 "AI시대, 고전의 지혜 필요할 것"
"스마트폰보다 古典이 짱 재밌어요"
지난 1월 입학시험 답안지를 살펴본 한국고전번역원(원장 신승운)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의 채점관들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서(四書)의 일부를 번역하는 시험 문제에 지원자 두 사람의 해석이 단연 뛰어났던 것이다. 이들은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10대 소년 형제였다.
1등을 차지한 유주함(19)군과 2등 수일(17)군은 이달부터 7년 과정의 고전번역교육원에 입학해 한문으로 쓰인 우리 고전을 번역하는 전문 인력으로 양성된다. 최연소 입학생인 이 형제는 평균 연령 33.7세에 60대도 있는 50명의 동기생과 함께 '훈련'을 받는다.
"'논어' '맹자'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형제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부모와 함께 '홈스쿨'을 했다. 아버지 유상종(54)씨는 "공교육은 국·영·수 '찍기' 공부 위주라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성경의 '사랑'이 동양 고전의 '인(仁)'과 통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공부해 가며 자식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3남 주일(16)군과 4남 주열(15)군도 차례로 이 '동양고전 홈스쿨'에 합류했다.
입학생 평균 연령 33.7세인 고전번역교육원에 1·2등으로 합격한 유주함(오른쪽)·유수일 형제는 “고전의 지혜를 세상에 전하는 데 한몫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입학생 평균 연령 33.7세인 고전번역교육원에 1·2등으로 합격한 유주함(오른쪽)·유수일 형제는 “고전의 지혜를 세상에 전하는 데 한몫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장련성 객원기자
'그렇게 키워도 되느냐'는 주변 걱정이 많았지만 아이들은 곧잘 적응했다. 아버지가 직접 만든 '소학' 교재에서부터 시작해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을 차근차근 공부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 고전을 읽고 근처 운동장에 가서 온 가족이 축구를 하며 몸을 풀었다. "학교요? 아휴, 적성에 안 맞아요!"(수일) "사람이 너무 많아 번잡하고 수학 공부도 어려울 것 같고요…."(주함)
형제는 그 대신 고전의 지혜와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어머니 박성숙(50)씨는 "놀기 좋아하던 아이들이 공부에 취미를 붙이고 반듯해지는 걸 보고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이 형제에겐 흔한 스마트폰도 없다. "휴대전화보다 한문 공부가 훨씬 재미있는걸요."(주함) "그건 그냥 시간 때우는 기계 같아요."(수일)
고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무엇인지 묻자 형 주함군은 '맹자' 고자 하편의 '사람은 모두 요·순 임금이 될 수 있다(人皆可以爲堯舜)'를 들었다. '도대체 요순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러느냐'는 질문에 "도(道)를 직접 실천해서 천하를 화평하게 한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효자가 없고,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마땅히 할 일을 할 수 있었던 때가 바로 요순시대라고 생각해요." 동생 수일군은 '주역' 건괘의 '자강불식(自强不息·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고 노력함)'을 들었다. "멋있잖아요! 앞으로 그렇게 살려고요."
형제가 고전번역교육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가져온 충격이 계기가 됐다. 21세기에는 앞으로 상상할 수 없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텐데, 그럴수록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깊이 살피는 동양고전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저희가 옛 책들을 좀 더 정확하게 해석해서 내놓으면 사람들에게 그 지혜를 더 잘 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이제 경기 화성의 자택에서 서울 은평구 고전번역교육원까지 매일 왕복 4시간 동안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녀야 한다.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뭐, 별걱정 없어요. 갈 때는 예습하고 올 때는 복습하면 딱 맞지 않겠어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2/20170302001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