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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표절이며 왜 문제가 되는가.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표절론' 저자

굴어당 2017. 7. 13. 21:41

표절, 1차 관문인 학계서 철저히 검증해야 사회적 비용 낭비 막아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표절론' 저자

오늘의 주제: 어디까지가 표절이며 왜 문제가 되는가

표현 다르다고 출처 안 밝히면 안 돼… 표현 같아도 '일반 지식'은 표절 아냐
한 해 논문 10만건… 모두 검증할 순 없어… 학문은 진실이 생명, 논의 더 치열해져야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표절론' 저자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표절론' 저자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표절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표절 시비가 활발해진 것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더 투명해지고 고도의 지식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증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도 공직자의 표절이 종종 문제가 된다. 독일 메르켈 내각의 교육장관과 국방장관이 박사 학위 논문 표절로 낙마했고, 미국 오바마 정부의 조 바이든 부통령은 로스쿨 재학 중에 있었던 표절 사실로 곤욕을 치렀다. 반면 후진국에서는 표절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도 1990년대 이전에는 표절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적이 거의 없다. 과거에 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문제 삼지 않았을 뿐이다.


치열한 학문적 논의 중에 이뤄지는 표절 검증은 지극히 정상적인 학문 과정의 하나다. 진위를 준별하는 표절 논의야말로 학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금의 표절 논란은 학문 외적(外的) 목적으로 시작되거나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우려스럽다. 잦은 표절 논란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데엔 표절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지식과 오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표절은 '해당 분야의 일반 지식이 아닌 타인의 저작물 또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적절한 출처 표시 없이 자기 것인 양 부당하게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남의 저작물에서 빌려 썼더라도 가져온 부분이 '일반 지식'에 해당한다면 표절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에 위치해 있다'는 표현은 일반 지식에 해당한다. 어느 부분이 비슷하다고 할 때 '일반 지식'인지 여부를 가리지 않고 겹치는 글자 수만으로 표절 여부를 기계적으로 따지는 것은 위험하다.

일선 교육 현장이나 심지어 교수들조차 표현만 바꾸면 출처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큰 착각이다.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다른 말로 바꿔 표현함)을 해도 원문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남아 있으면 출처 표시를 해야 표절 논란을 피할 수 있다. 독창적 아이디어도 보호 대상이기 때문이다.


표절의 개념 외



저작권 침해에는 민·형사상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표절은 일반적으로 법적 책임이 따르지 않는 윤리적 영역이다. 그렇다고 가볍게 치부할 것은 아니다. 명예와 평판을 중시하는 교수·연구자·예술가에게 저작권법 위반죄로 벌금을 내는 것과 평생 표절 교수·학자·작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사는 것은 비교조차 의미가 없다. 표현만 바꾸면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표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낮은 윤리 의식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 저작권법은 표현만을 보호하고, 친고죄(親告罪)다. 영리·상습적이지 않은 한 피해자인 저작권자가 용서하면 수사·사법 기관도 문제 삼을 수 없다. 반면 표절은 표절당한 사람의 동의나 용서로도 면책되지 않는다. 저작권 침해의 피해자는 저작권자일 뿐이지만, 표절의 피해자는 표절당한 사람 외에 독자, 동료, 나아가 정직한 글쓰기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학계 전체다.

출처 표시, 즉 인용은 자신의 주장을 독자에게 믿게 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센 권위를 가져오는 과정이다. 학자란 남의 논문의 각주(脚注)에 자기 이름을 올리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흔히 SCI(과학기술 논문 인용 색인), SSCI(사회과학 논문 인용 색인)급 저널에 게재한 횟수로 학자와 대학을 평가하지만, 사실 학자들은 논문 수보다도 이런 저널에 얼마나 많이 인용됐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특정인의 저술에서 중요한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면서도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그에게 돌아가야 할 존경과 평판을 가로채는 행위다.

출처 표시 정도에 관해 영어권 예를 들어 연속되는 '몇 단어'를 기준으로 삼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표절 판정에서 그와 같은 정량적 기준이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우리는 띄어쓰기가 저자의 호흡에 따라 다소 유동적인 언어라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표절 판정에서 일반 지식 여부, 독창성, 출처 표시 누락 여부, 나아가 출처 표시의 적절 수준 등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비전문가들이 표절 검색 소프트웨어나 애플리케이션에 의지해서 판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표절 판정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할 때 해당 전공의 관행은 그 분야 전문가가 잘 알 것이지만 공정성을 보장하려면 외부 인사와 표절 문제 전문가가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국내 2285종 등재지, 등재 후보지에 한 해 실리는 논 문은 10만6000여 건에 이른다. 이 논문 모두에 대해 표절 검증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논문 게재, 임용, 승진 단계에서 상시 검증이 제대로 됐다면 교수·연구자 출신의 고위 공직 임명 단계에서 표절 검증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학문은 진실을 생명으로 한다. 가짜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표절 논의는 더 치열해져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1/20170711034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