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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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정신과 정본 의식

굴어당 2010. 8. 13. 15:08
옛 문집들은 대부분 체재가 서로 비슷하다. 서문 뒤에 시를 싣고, 문은 그 다음에 싣는다. 시를 수록할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시체별로 수록하는 경우가 보통이고, 창작 연대순으로 수록하기도 한다. 산문의 경우에도 서발이나 편지글이 앞쪽에 놓이고, 제문이나 행장은 뒤편에 실린다.
문집의 목차를 한번 훑어보면 글쓴이의 성격이 대번에 드러난다. 생애를 시기에 따른 단위별로 묶어 중간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고, 매 작품 아래 그 작품이 지어진 날짜를 적어놓은 예도 없지 않다. 평생 자신이 쓴 원고를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히 챙겨 두고, 아예 살았을 때 자신의 문집을 완벽한 상태로 편집을 마쳐두는 경우도 있었다.

옛 선인들의 기록에 대한 집착은 때로 병적으로 보일 정도다. 편지를 써도 꼭 한 벌을 따로 베껴 두었다. 우암 송시열의 문집에는 거의 6000통에 가까운 편지가 남아 있다. 따져 보면 하루에 두 세 통 씩은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바쁜 와중에, 그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쓴 편지의 부본을 반드시 한 벌씩 남겨 두었다. 이제 그 편지를 읽으면 우암의 일상과 교유범위, 당대 정치권의 주요 동향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 학문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 견해까지 빠짐없이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해서 개인의 편지가 시대를 증언하는 역사의 사료가 된다. 요즘 누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 편지를 복사해 두는 사람이 있을까?

남에게서 받은 편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이덕무가 세상을 뜨자 이서구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수십통의 편지를 하나 하나 펴서 배접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이덕무의 집으로 보냈다. 그냥 없어질 수도 있었던 편지들이 이렇게 해서 문집에 수록될 수 있었다. 친구와 나눈 사연이 소중하고 고마워서 그는 자투리 종이에 써 보낸 짧은 사연까지 버리지 않고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친구가 보내온 아버지의 친필 편지를 읽다가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권벽은 임진왜란 당시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그 처참한 피난살이 도중에도 자신의 시고를 담은 상자만은 늘 지고 다녔다. 보다 못한 부인이 도망 다니며 죽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그놈의 시 상자는 어디다 쓰려고 들고 다니느냐고 바가지를 긁어도 기어코 지니고 갔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창황한 가운데도 날자별로 무려 128수의 시를 남겨, 시로 쓴 피난 일기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도성을 빠져나간 서울 피난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 이 시편들을 보면 눈에 보일 듯이 떠오른다. 그는 결국 이듬해 한양으로 돌아와 세상을 떴다.

글쓴이가 아무리 꼼꼼하게 원고를 수습해 두었다 해도 모두 출판의 기회를 가질 수는 없었다. 자식이나 후손 중에 고을살이를 나가거나 지방관으로 부임하게 되면, 그제서야 제 월급을 쪼개고 관아에 소속된 기능공들을 시켜 선대의 문집을 출판했다. 힘이 벅차면 좋은 작품만 엄선해서 일부만 판목에 새겼다. 남은 원고는 훗날을 기약해야만 했다. 뒤에 다시 여력이 생기면 그 나머지를 모아 속집을 엮었고, 다시 별집을 엮었다. 새로 시문이 수습되면 다시 외집을 추가했다. 집안에 필사본으로 근근히 전해지다가 그나마 전란을 만나 오유로 돌아간 경우가 더 많았다.

작품을 발표한 다음에도 끊임 없이 고쳤다. 문집에 전해지는 시와 시화나 시선집에 실려 전하는 시 사이에 글자의 출입이 적지 않은 것은 이런 부단한 개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정본을 만들려는 의식이 죽을 때까지 이미 발표한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게 했다. 연암의 산문도 처음 발표한 글과 나중에 개고한 글이 함께 전해지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자료들은 창작 상의 내밀한 고심의 흔적까지 가늠해 볼 수 있어 읽는 이에게 생각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최근 조지훈의 ‘지훈육필시집’이 간행되었다. 이미 시집이 간행된 뒤에도 선생은 시기별로 나누어 자신의 시를 한 수 한 수 육필로 다시 정리해 두었던 모양이다. 그 중에는 단어를 고치거나 행갈이를 바꾼 것도 보이고, 한 연을 지우거나 가필한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의 시집에서 어떤 단어들이 어떻게 교체되었는지 행 구분에 어떤 미묘한 변화가 생겼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요컨대 그는 자신의 시를 다시 한번 육필로 정리하면서 정본 시전집을 남기려 했던 것이 아닐까? 최인훈이 광장을 여러 번 고쳐 쓴 것이라든지, 전집을 간행하면서 이청준 선생이 오래 전 작품을 꺼내 놓고 옛 문장을 하나 하나 고통스럽게 고쳐 쓰는 것을 곁에서 지켜 보면서도 작가의 자기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정본 의식을 만나게 된다. 훌륭한 작가만이 자기 작품을 아낀다. 자기가 아끼지 않는데 어떤 독자가 그 작품을 아끼겠는가?


정민 / 한양대 국문과 교수
2001/06/22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