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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 번역에 있어서의 허실(虛實) 양홍렬(본회 국역위원)

굴어당 2010. 10. 21. 18:31

한시(漢詩) 번역에 있어서의 허실(虛實)

 양홍렬
(본회 국역위원)

 

  고전국역(古典國譯)이 난제(難題)임은 재언(再言)이 필요 없는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작자(作者)와 역자(譯者)는 그 처한 시대가 다르고 사회가 같지 않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관 또한 동일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작자가 의도(意圖)한 바를 완전무결하게 재연(再演)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표의(表意)와 표음(表音)의 어쩔 수 없는 문자적 한계(文字的限界)까지 있음에랴.

  그러나 선인들에게서 물려받은 보고(寶庫)를 자물쇠로 채워 둔 채 인생의 빈궁(貧窮)만을 되씹고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과감히 이를 열어 그 진가를 오늘에 되살리도록 시도(試圖)하는 것도 후생(後生)들에게 부하된 숙명적 과제일 것이다.

  그런데 요(要)는 어느 것을 고르느냐도 문제이지만 어떻게 적응시키느냐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문(文)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대상이 시(詩)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시란 다 아는 바와 같이 일반 산문과는 달리 일정한 형(型) 속에서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표출해야 하기 때문에 다분히 축약적(縮約的)이고 제한적(制限的)이며 때로는 거의 무한(無限)한 언외(言外)의 함축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시는 자(字)의 고저(高低), 운율(韻律)의 조화, 대구의 형성 등 복잡한 과정까지 거쳐 만들어진 작품이므로,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역시 그 과정을 되풀이하여 거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문제는 서정시(抒情詩)이거나 서사시(敍事詩)이거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지만, 서정시일 경우는 여기에다 더 작자의 감정이 깔려 있어 그 시를 읊는 장소와 계절, 시간과 주위의 여건까지도 면밀히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필자는 대단히 주제넘는 일이지만 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다음과 같은 기준을 두어 본다. 즉 일정한 제하(題下)의 시 한 수를 개괄적(槪括的)으로 음미(吟味)한 다음 주(主)와 객(客), 허와 실, 사실과 우화, 현실과 가상, 순리와 역설 등을 들어 어느 것이 어디에 해당하는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시제(時制)를 맞추어 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기준으로 그 실례를 생각나는 대로 들어보기로 한다.

  주(主)와 객(客)의 예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문집 권4 탐진어가(耽津漁歌)10장 중 제8장 끝구인 "澹菜憎如蓮子小 治帆東向鬱陵行" 이 시구(詩句)는 당시 강진(康津)의 어장황폐상(漁場荒廢狀)을 그린 것인데, 이를 "가꾼 채소 밉게 자라 연꽃만큼 작아졌네 돛 달아라 동쪽으로 울릉도나 가자꾸나" -기존 역시(譯詩)를 그대로 전초(轉抄)한 것임- 해버리면 시인의 주의(主意)가 얼른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울릉도에 뱃놀이 간다는 풍류 기운이 감돈다. 이는 홍합〔澹菜〕을 채소로 만든 오역(誤譯)에서 비롯된 것인데, 결국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번역이 되고 만 것이다. 이를 "홍합이 연밥 같이 작은게 싫어서 돛 달고 동으로 울릉도에 간다네" 한다면 피폐된 어장을 묘사하는 이 시의 본의가 좀더 부각되지 않겠는가.

  허(虛)와 실(實)의 예

  시에 따라서는 정형(定型)의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하여 허자(虛字)를 쓰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3∼4 혹은 4∼5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 어느 자인가 꼭 없으면 좋을 부득이한 경우에는 번역에서 허자는 생략(略)하더라도 무방하다. 예컨대, '秋菊春蘭各有時'의 경우, 아래에 계절 감각을 나타내는, '시(時)'라는 실자(實字)가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봄·가을'은 생략하고 그냥 "국화와 난초는 제각기 때가 있지" 하더라도 작자의 의사에 크게 반(反)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寫實)과 우화(寓話)의 예

  다산 정약용의 시문집 권4의 <해랑행(海狼行)>은 솔피〔海狼〕와 고래를 등장시켜 당시에 발호(跋扈)하던 권신세족(權臣世族)을 매도한 시이다. 여기에서 솔피와 고래라는 우화(寓話)를 쓴 예로, "長鯨一吸魚千石 長鯨一過魚無跡 狼不逢魚恨長鯨 擬殺長鯨發謨策"하여, 고래가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잡아먹기 때문에 고래가 한 번 지나가면 고기가 흔적이 없으므로 솔피들이 고래를 죽이기로 모사를 하면서, 일군(一群)은 어떻게, 일군은 또 어떻게 하는 식으로 도합 육개군(六個群)을 나열하였다. 그러나 본 시(詩)의 핵심은 "汝輩血戰胡至此 本意不過爭飮食"에 있다. 따라서 솔피들의 치밀한 모책을 수식하는 여러 군의 활동상보다는 이러한 핵심 시구에다 더 큰 비중을 두어, 당시 발호 권신들의 아귀다툼하던 추태를 되도록 명확하게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現實)과 가상(假想)의 예

  역시 다산시문집 권3의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20수 중의 1수에, "淸소巖壑寂無聲 山鬼安棲獸不驚 挑取石頭如屋大 斷厓千尺연팽괭" 이 절구는, 밤이 깊어 귀신도 짐승들도 다 잠든 적적한 산골짝에서 집채만큼 큰 바위를 천 길 낭떠러지로 꽝하고 내던진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하는 가상의 시이다. 그런데 이를 가령,

  "맑은 밤 산골짜기 소리 없어 적막한데, 산귀신도 잠이 들고 새짐승 기척 없네. 집채 만한 큰 바위를 번쩍 들어 딩굴리니, 천길 낭떠러지 우뢰같이 울리누나." -기존 역시를 그대로 전 초한 것임- 했다면 조어(造語)의 생숙(生熟)은 불문하고라도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작자의 꾸지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일인데, 가령 '그랬으리' 또는 '그러하리'를 통틀어 '그리하였네' 식의 현재형으로 표현한다면 이 역시 적잖은 오해가 아닐 수 없다. 그 밖에도 문제를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이상의 예는 오히려 빙산일각(氷山一角)일는지 모르지만, 우선 필자의 견식이 한계가 있어 그 문제들은 이만 줄이기로 한다. 다음으로 문제가 표음(表音)·표의(表意)의 문자적 차이에서 오는 한계성이다. 다산문집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을 다시 예로 든다면 '快'의 풀이가, 유쾌하다, 상쾌하다, 통쾌하다, 장쾌하다, 또는 시원하다, 심지어 '쾌재·쾌재로다' 등등 얼마든지 그 상황과 의미에 따라 좀더 적절한 표현을 쓸 수도 있겠으나 표의문자에 있어서는 그렇게까지 골고루 쓸 글자가 없는 제약도 있거니와 한편 그 글자 하나면 보는 이에 따라 적당하게 달리 해석할 수도 있기에 그리 쓴 것이 관례(慣例)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글자라 하여 천편일률(千篇一律)로 같은 해석만을 되풀이한다면 이 역시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가령, "跨月蒸淋積穢氣 四肢無力度朝훈 新秋碧落澄寥廓 端軸都無一點雲 不亦快哉" 이 시는 한 달 넘게 지루한 무더위 장마 속에서 사지에 힘이 다 빠졌는데, 어느 사이 해맑은 가을 하늘이 되어 천지간이 구름 한점 없이 맑게 된다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므로 '통쾌' '장쾌' 보다는 '그 얼마나 시원할까' 또는 '유쾌하리' 등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奕棋曾不解영輸 局外傍觀坐似愚 好把一條如意鐵 획然揮掃作虛無 不亦快哉" 이 경우는 바둑을 전혀 모르는 방관자가 멍청하게 앉아 있노라면 자연 심통이 생겨 바둑판이라도 걷어차버리고 싶은 심경을 묘사한 것이므로 무엇인가 실력 행사를 하여 자기 직성이 풀렸을 경우라면 이는 '유쾌' '상쾌' 등이 아닌 차라리 '통쾌' 아니면 '후련할까' 등이 더 맞는 표현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이 "不亦快哉"만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예가 20수나 되므로 같은 시에서도 그 내용에 따라 천편일률이 아닌 각기 적절한 말들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면을 줄이기 위해 이상 두 수만을 예로 들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부언하고 싶은 것은, 시 한 편을 이해하는 데에 각기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고 노력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난해한 시를 많은 시간과 정신을 써가며 찾고 캐고 했다가 기대했던 바와 같이 주옥이 나타나면 그 이상의 희열이 없겠으나, 작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혹 벽자(僻字) 투성이에 그야말로 길굴오아(佶屈오牙)하여 무슨 대단한 내용이라도 들어있나보다 하고 진땀을 빼가며 각종 사전을 뒤지고 참고에 도움이 되겠다싶은 고서(古書)들을 들추고 하여 어렵사리 윤곽(輪廓)을 잡아놓고 보면, 사실 이렇다 할 알맹이가 없어 사람을 허탈(虛脫)에 빠지게 하고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는 경우도 혹 있다. 또 작자 중에는 고사인용(故事引用)에 있어 그 원형(原型)을 훼손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참고가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단장취의식(斷章取義式)이나, 심지어는 원형을 아예 호도(糊塗)하고 마치 작자자신이 새로 만든 어휘(語彙)처럼 쓴 예도 없지 않은 듯하다. 이럴 때면 분명 심증(心證)은 가나 후인으로서 망작(妄作)은 할 수 없고, 참으로 본인에게 다시 묻고 싶어 구천가작(九泉可作)의 방법은 없을까 하고 허상에 빠지는 수도 없잖은 것이다.

  이렇듯 시 한편을 이해하는 데는 그만큼 많은 과정을 거치고 그러고도 이상과 같은 벽(壁)과 함정이 있어 붓을 잡는 순간부터 벌써 전전긍긍(戰戰兢兢)하게 된다. 이는 물론 일차적으로 작자와 시대가 다르고, 경지(境地)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 자체가 그만큼 무한대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그를 관조하는 눈에 따라 다르고, 의미 부여도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감히 번역에 종사하는 후진들로서는 있는 열성과 슬기를 다해 선인들이 남긴 값진 작품에 오류를 최소한 줄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 것은 물론이나, 이를 지켜 보는 주위에서도 편달책선(鞭撻責善)과 함께 여러 가지 열악조건들을 개선하는 데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글에서 주로 다산시(茶山詩)를 언급한 것은 필자가 현재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번역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