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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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漢僧徒節目

굴어당 2010. 11. 18. 10:07
본인이 지난 주 토요일에 북한산을 갔다가 중흥사 밑 비석거리에서 바위에 새겨진 글을 사진으로 찍어왔는데 해독을 하다 생각하니 누군가 이미 탁본을 떴을 것 같아 인터넷을 서핑하였더니 금석문수집 책이라는 곳에서 아래와 같은 글, 전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 글의 해석은 없었습니다.

본인이 번역하자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고 또 하는 일이 요즈음 부쩍 바빠 손을 쓸 시간이 없어서 생각다가 사문의 본산인 이곳 계시판에 올리면 아마도 장래 번역을 꿈꾸는 이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북한산성등산기행'을 썼는데 이 글을 번역하지 않고 그냥 원문만 실어놓으며 다음에 시간나는대로 번역문을 올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본인 블로그는 하루에 1천명 이상이 들어와 봅니다. 번역문을 여기 올리시든지 어니면 본인이메일로 보내 주시면 보내준 분의 이름을 번역자로 하여 추가하여 올리려고 합니다.

만일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문의해 주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번역을 배우는 일환으로 시험삼아 번역해 보라는 것입니다. 비밀을 요하면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필자 조면희 백


본인의 블로그(Blog) 주소 : 사진도 올려져 있음
http://kr.blog.yahoo.com/cmh1022/8813.html?p=1&pm=l&tc=36&tt=1288478219

이메일(E-Mail) 주소 : cmh1022@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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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요람>의 전문

북한산성(北漢山城)

〈설치 연혁(設置沿革)〉 북한산성은 삼각산(三角山)의 온조(溫祚)의 옛터에 있다. 숙종 37년 신묘(1711년)에 대신 이유(李濡)가 건의하여 산성을 쌓고 행궁(行宮)을 세우고 향곡(餉穀)ㆍ군기를 저장하여, 방위하는 곳을 만들었다. 성의 둘레 7,620보, 성랑(城廊) 121, 장대(將臺) 3, 못[池] 26, 우물 99, 대문 4, 암문(暗門) 10, 창고 7, 큰 절 11, 작은 절 3. 관성소(管城所)를 설치하였다. 성의 향곡은 선혜청에서 책정하여 보낸다. 성첩ㆍ군기는 훈련도감ㆍ금위영ㆍ어영청의 3개 영에서 창고를 설치하고 구역을 나누어서 지키며, 경리청(經理廳)을 설치 향교동(鄕校洞)에 있다 하여 관리하였다. 영종 23년 정묘(1747년)에 북한이 당연히 총융청의 근거지가 되어야 하므로 왕의 특명으로 경리청을 폐지하고, 합쳐서 본청에 붙이게 하고 전적으로 북한을 주관하게 하였다. 교련관 3명을 증설하여 그대로 훈련도감ㆍ금위영ㆍ어영청의 3창고의 감관으로 삼았다. ○ 정종 6년 임인(1782년)에 총융사(摠戎使) 이창운(李昌運)이 감원 대조규[減額大節目]를 작성하여, 경리군관 4명을 감원하고 본청 군관 3명만 남겨 두었다. 〈관제(官制)〉 정종(正宗) 17년 계축에 총융사 이방일(李邦一)이 본청의 재정이 피폐하므로 성첩을 수축하는 일을 삼군문(三軍門)에 환속시키기를 계청하였다. 관성소의 재목대금이 200냥인데 이식을 받아서 해마다 북한의 도로 수선에 보충 사용한다. ○ 청사ㆍ사찰(寺刹)을 수리할 때에는 군량증액조[添餉條]ㆍ월정고시조[月課條]ㆍ또는 공명첩(空名帖)ㆍ보토소(補土所) 등의 돈은 청구하여 사용한다. 별아병천총 관성장(別牙兵千摠管城將) 1명 정종 6년 임인에 관계의 차서에 구애됨이 없이 사람을 선택, 자의 임용하여 전적으로 곡물의 출납을 관리하고, 1주년마다 교체(交遞)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숙종 37년 신묘에 성을 쌓은 뒤에 병사나 수사의 정력을 가진 사람으로 계청 임명하여 처음에는 행궁소 위장(行宮所衛將)이라 하였고, 뒤에는 도별장(都別將)이라 하였으며, 경종 2년 임인(1722년)에는 관성장이라 개칭하였다. 영묘(英廟) 23년 정묘(1747년)에는 경리청을 폐지하여 본청에 합속(合屬)한 뒤에 중군이 정례로 겸임하였고, 40년 갑신에 군제를 고치어 5개 영으로 만들 때[時]에 방어사(防禦使)의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선임[擇差]하여 중부천총(中部千摠)을 겸임하여 항시 본성에 머물게 하였다. 47년 신묘에 총융사 김효대(金孝大)의 계청에 의하여 관성장은 종전대로 중군이 겸임하도록 하였다. 정종 16년 임자(1792년)에 군제를 고치어 3개 영으로 만들 때에 아병천총겸관성장(牙兵千摠兼管城將)으로 명칭을 고쳤다. 파총 1명, 초관 5명, 별파진초관 1명, 수첩총(守堞摠) 2명, 교련관 4명, 기패관 5명, 군기감관 1명, 군관 3명, 부료군관 20명 매월에 궁술을 고시하여 성적을 봐서 유급으로 한다. 그 가운데 산직감관(山直監官) 3명도 들어간다. 문부장(門部將) 3명, 수첩군관 200명 경기의 각읍에 산재한다. 산성의 원역 46명. 서원 5명 고지기 11명, 대청지기 2명, 사령 5명, 군사 12명, 문군사 11명이다. 군제(軍制) 1사(司) 5초, 파하군(把下軍) 30명, 별파군 200명, 아병 5초 경기의 각 읍에 산재. 표하군 109명. 19명은 유급. 〈치영(緇營)〉 승병(僧兵)을 설치하고 치영이라 하였다. 중흥사(重興寺)에 있다. 총섭(摠攝) 1명 본시는 종전부터 거주하는 중으로 임명하였는데 정종 21년 정사(1797년)에 수원유수 조심태(趙心泰)의 계청에 의하여 용주사(龍珠寺)의 중으로 번갈아서 임명하게 하였다. 중군승(中軍僧) 1명, 장교승(將校僧) 47명 유급. 승군 372명 73명은 유급. 태고사(太古寺)는 태고대(太古臺) 아래에 있다. 136칸이다. ○ 경서(經書)ㆍ통사(通史)ㆍ고문(古文)ㆍ당시(唐詩)의 판목을 저장하였다. 중흥사는 등안봉(登岸峰) 아래에 있다. 149칸이다. ○ 치영이 있는 곳이다. 보국사(輔國寺)는 금위영의 창고 아래에 있다. 76칸 진국사(鎭國寺)는 노적봉(露積峰) 아래 중성문(中城門) 안에 있다. 104칸. 부왕사(扶旺寺)는 휴암봉(鵂巖峯) 아래에 있다. 111칸. 국녕사(國寧寺)는 의상봉(義相峯) 아래에 있다. 70칸. 보광사(普光寺)는 대성문(大城門) 아래에 있다. 75칸. 원각사(元覺寺)는 증봉(甑峰) 아래에 있다. 81칸. 용암사(龍巖寺)는 일출봉(日出峰) 아래에 있다. 88칸. 상운사(祥雲寺)는 영취봉(靈鷲峰) 아래에 있다. 89칸. 서암사(西巖寺)는 수구문(水口門) 안에 있다. 민지암(閔漬菴)의 옛 터. ○ 107칸. 이상의 11개 사찰에는 각각 승장 1명, 수승(首僧) 1명, 번승(番僧) 3명을 둔다. 봉성암(奉聖菴)은 귀암봉(龜巖峯) 아래에 있다. 25칸. 원효암(元曉菴)은 원효봉 아래에 있다. 10칸. 문수암(文殊菴)은 문수봉 아래에 있다. 행궁(行宮) 상원봉(上元峯) 아래에 있다. 내정전(內正殿) 28칸, 행각(行閣) 15칸, 수라간(水剌間) 6칸, 변소 3칸, 내문(內門) 3칸, 외정전 28칸, 행각 18칸, 중문(中門) 3칸, 월랑(月廊) 20칸, 외문 4칸, 산정문(山亭門) 1칸. 〈제창(諸倉)〉 관성소는 상창(上倉)에 있다. 대청 18칸, 내아(內面) 12칸, 향미고(餉米庫) 63칸, 군기고 3칸, 집사청(執事廳) 3칸, 군관청(軍官廳) 4칸, 서원청(書員廳) 4칸, 고지기 집[庫直家] 5칸, 월랑 2칸, 각문(各門)이 7. 중창(中倉) 대청 6칸, 향미고 78칸, 고지기 집 5칸, 대문 2칸. 하창(下倉) 대청 6칸, 향미고 34칸, 고지기 집 8칸, 대문 2칸. 별고(別庫) 행궁 옆에 있다. ○ 대청 3칸, 향미고 12칸, 고지기 집 5칸, 대문 2칸. 이상의 상창ㆍ중창ㆍ하창ㆍ별고를 ‘관성 4창(管城四倉)’이라 한다. ○ 별관(別館)이 4개처 산영루(山英樓) 10칸, 사정(射亭) 6칸, 동장대(東將臺) 3칸. 어제비각(御製碑閣) 1칸. ○ 동장대는 숙종 18년 임진에 왕의 특명에 의하여 세웠다. 훈련도감창[訓倉] 대청 18칸, 내아 8칸, 향미고 60칸, 군기고 16칸, 중군소 4칸, 낭청소(郞廳所) 5칸, 서원청 5칸, 구류간(拘留間) 3칸, 행각 11칸. 금위영창[禁倉] 대청 18칸, 내아 6칸, 향미고 54칸, 군기고 13칸, 중군소 5칸, 서원청 4칸, 월랑 8칸. 어영청창[御倉] 대청 18칸, 내아 7칸, 향미고 48칸, 군기고 10칸, 중군소 4칸, 서원청 2칸, 월랑 12칸. ○ 산성 부근의 토지는 구역을 나누어 획정한다. 신둔(新屯)ㆍ청담(淸潭)ㆍ서문하(西門下)ㆍ교현하(橋峴下)는 훈련도감창의 구역이며, 미아리(彌阿里)청수동(靑水洞)ㆍ가오리(加五里)ㆍ우이동(牛耳洞)은 금위영창의 구역이며, 진관리(津寬里)ㆍ소흥동(小興洞)ㆍ여기소(女妓所)ㆍ삼천동(三千洞)은 어영청의 구역이다. 속둔(屬屯) 4개소 : 갑사둔(甲士屯) 양주의 누원(樓院)에 있다. ○ 본시 병조의 목장이었는데 숙종 40년 갑오(1714년)에 본둔이 북한산성과 상호 보장(保障)해야 될 지점이라 하여, 연품하여 북한에 속하게 하고 토지를 개간하는대로 세를 징수하며, 환미(還米)를 두어서 모두 모곡을 받아서 둔속의 경비에 충당하고, 남는 액수는 원환곡(元還穀)에 보태게 하였다. 수유둔(水逾屯) 양주에 있다. 갑사둔에 속한다. ○ 본시 양향청(糧餉廳)의 둔이었는데 경종 원년 신축(1721년)에 경리청당상 민진후(閔鎭厚)가 요청하여 이를 북한에 속하게 하고 환조(還租)를 설치하였다. 금암둔(黔巖屯) 양주 금암에 있다. ○ 숙종 45년 기해(1719년)에 매입 설치하였다. 환조를 설치하고 모두 나누어서 모곡을 거두어 둔속의 경비에 충당한다. 신둔(新屯) 북한산성의 서문 밖에 있다. 금암둔에 속한다. ○ 숙종 46년 경자에 경리청 당상 민진원(閔鎭遠)이 매입 설치하였다. ○ 갑사ㆍ금암 2둔에는 모두 별장이 있다. 금암별장은 영종 37년 신사(1761년)에 고 별장 이성신(李聖臣)의 아들 인량(寅亮)을 영구히 별장에 임명하고 대대로 승전하도록 왕명을 받았다.

 

[주D-001]온조(溫祚)의 옛터 : 백제의 서울을 뜻함. 온조는 백제의 시조.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로 재위 B.C. 18년~A.D. 28년. 처음 위례성(尉禮城 : 광주(廣州))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가 백제로 고쳤으며, 말갈(靺鞨)의 침입이 잦아 타격을 받았다. B.C. 5년 서울을 남한산(南漢山)으로 옮겼음.

[주D-002]이유(李濡) : 1645년(인조 23)~1721년(경종 1). 자는 자우(子雨), 호는 녹천(鹿川), 본관은 전주(全州). 좌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이르렀음.

[주D-003]공명첩(空名帖) : 성명을 적지 아니한 서임서(叙任書).

[주D-004]김효대(金孝大) : 1721년(경종 1)~1781년(정조 5). 자는 여원(汝原), 본관은 경주(慶州). 영조 때 총융사를 지내고, 나중에 형조 판서에까지 이르렀음.

[주D-005]민지암(閔漬菴) : 암자(菴子)의 이름. 민지는 인명(人名). 1248년(고려 고종 35)~1326년(충숙왕 13). 자는 용연(龍涎), 호는 묵헌(黙軒). 정승을 지냄.

[주D-006]수라간(水剌間) : 궐내의 진지를 짓는 곳.

[주D-007]월랑(月廊) : 행랑의 별칭.

[주D-008]민진후(閔鎭厚) : 1659년(효종 10)~1720년(숙종 46). 자는 정순(靜純), 호는 지재(趾齋), 예조판서ㆍ한성부판윤을 거쳐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에 오름.

[주D-009]민진원(閔鎭遠) : 1664년(현종 5)~1736년(영조 12).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 본관은 여흥(驪興). 좌의정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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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바닥에 새겨진 글씨전문 <금석문에서 인용>

*北漢僧徒節目」

北漢山城卽保障重地也寺刹之剏建僧徒之募」

入是豈徒然哉卽由於爲山城守護之意是去」

乙夫何挽近以來僧殘寺敗莫保朝夕此曷故焉」

盖僧徒之不殫燥濕竭力奉公者渠之所望惟」

在於摠攝一窠而每當差代城外僧圖差之弊」

比比有之由是而僧無固志散而之四勢所固然」

今當摠攝瓜遆之時若不申明定式以圖永久」

則其何以慰悅僧徒俾盡守護之責哉況受」

敎定式不啻鄭重則其在遵奉之道豈敢少」

忽茲成節目刻之于石爲去乎依此遵行毋墜成」

憲事」

一 摠攝有闕差代時依今番例初受缿筩更捧」

圈點後以多點施行俾知其公平無私之意是」

齊」

一 今此申明定式之後如有城外僧圖差者城內」

諸僧以受 敎定式及今番節目齊訴營門」

期無毀劃之地是齊」

一 今番定式寔出於爲僧徒支保之意則摠攝」

軆此憧憧之心寺弊則期於矯革奉公則克盡」

恪勤俾有來頭實效之地是齊」

乙卯五月 日寺洞金 等內」

 

 

 

 

 

*北漢僧徒節目」


北漢山城卽保障重地也寺刹之剏建僧徒之募」

入是豈徒然哉卽由於爲山城守護之意是去」

乙夫何挽近以來僧殘寺敗莫保朝夕此曷故焉」

盖僧徒之不殫燥濕竭力奉公者渠之所望惟」

在於摠攝一窠而每當差代城外僧圖差之弊」

比比有之由是而僧無固志散而之四勢所固然」

今當摠攝瓜遆之時若不申明定式以圖永久」

則其何以慰悅僧徒俾盡守護之責哉況受」

敎定式不啻鄭重則其在遵奉之道豈敢少」

忽茲成節目刻之于石爲去乎依此遵行毋墜成」

憲事」

一 摠攝有闕差代時依今番例初受缿筩更捧」

圈點後以多點施行俾知其公平無私之意是」

齊」

一 今此申明定式之後如有城外僧圖差者城內」

諸僧以受 敎定式及今番節目齊訴營門」

期無毀劃之地是齊」

一 今番定式寔出於爲僧徒支保之意則摠攝」

軆此憧憧之心寺弊則期於矯革奉公則克盡」

恪勤俾有來頭實效之地是齊」

乙卯五月 日寺洞金 等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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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운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셔서 후학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2010-11-01
조면희 황재운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여러 글에서 황선생의 문장을 잡할 때마다 後學可畏 라는 말을 실감으로 느꼈는데 오늘 여기 올리신 글을 보니 실로 괄목상대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한군데도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고전이 모두 그렇듯이 글자대로 번역을 해 놓아도 당시 제도의 차이 때문에 이해가 잘 안 가는 게 있지요. 여기 절목 1조에는 缿筩은 채집원문에 缿笛으로 되어 있는데 본인이 그렇게 고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투서라기 보다 비밀투표의 뜻으로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보면 비밀투표에서 총섭 후보자로 가장 많은 이름이 나온 사람을 뽑아 권점으로 표시하여 임금에게 낙점으를 받도록 보낸 것이 아닌가 싶어서 본인 산성기에는 그부분을 그렇게 고쳐 보았습니다.

成憲事의 사는 이두로 문장 끝의 것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等內는 현직을 뜻하니 사동이라는 동내이므로 동 책임자인 현재 僧職일 듯합니다.


다시한번 고맙고요. 우리 고전의 발전 계승에 큰 발자국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損契 趙冕熙 拜
2010-11-01
황재운 요즘 날씨가 꽤 쌀쌀해 졌습니다. 선생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선생님께서 이 게시판에 올리신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마음에 그냥 지나치지 못해 이렇게 만용을 부려 봅니다. 번역의 일은 참으로 어려워서 오역과 부드럽지 못한 부분이 없을 수 없으나, 배움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남에게 보이기를 꺼리겠습니까?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北漢僧徒節目」

北漢山城, 卽保障重地也. 寺刹之剏建僧徒之募入, 是豈徒然哉? 卽由於爲山城守護之意是去乙, 夫何挽近以來, 僧殘寺敗, 莫保朝夕, 此曷故焉? 盖僧徒之不殫燥濕, 竭力奉公者, 渠之所望, 惟在於摠攝一窠, 而每當差代, 城外僧圖差之弊, 比比有之. 由是而僧無固志, 散而之四, 勢所固然. 今當摠攝瓜遆之時, 若不申明定式以圖永久, 則其何以慰悅僧徒, 俾盡守護之責哉? 況受敎定式, 不啻鄭重, 則其在遵奉之道, 豈敢少忽? 茲成節目, 刻之于石爲去乎, 依此遵行, 毋墜成憲事.
一 摠攝有闕差代時, 依今番例, 初受缿筩, 更捧圈點, 後以多點施行, 俾知其公平無私之意是齊 .
一 今此申明定式之後, 如有城外僧圖差者, 城內諸僧, 以受敎定式及今番節目齊訴營門, 期無毀劃之地是齊.
一 今番定式, 寔出於爲僧徒支保之意, 則摠攝軆此憧憧之心, 寺弊則期於矯革, 奉公則克盡恪勤, 俾有來頭實效之地是齊.
乙卯五月日, 寺洞金等內

북한산성은 방어기능이 있는 중요한 곳이다. 사찰을 창건하고 여러 승려들을 모집해 들인 그러한 일들을 어찌 공연히 하였겠는가? 바로 북한산성을 수호하려는 생각에서 비롯하였거늘, 어째서인지 근래 이후로 승려들이 흩어지고 사찰이 폐기되어서 어찌될 지 알 수 없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뭇 승려들이 어떠한 상황도 꺼리지 않고 힘을 다하여 공사(公事)를 받들었던 것은 그들이 오직 총섭(總攝)이라는 한 자리에 오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으나, 매번 갈려 간 자리에 후임자를 뽑을 때마다 산성 밖에 있는 승려들이 그 자리에 임명되기를 꾀하는 폐단이 빈번하였다. 이로 인해 산성 안쪽의 승려들이 굳은 의지를 잃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지금 총섭의 임기가 만료되어 갈리는 때가 되었으니, 정식(定式)을 자세히 밝혀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뭇 승려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여 수호의 책무를 다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수교정식(受敎定式)은 정중할 뿐만이 아니어서, 좇아서 실행하는 도리를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는가? 이에 절목(節目)을 만들어서 바위에 새기니, 이에 의거해서 따라 행하여 소송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나, 앞으로 총섭(總攝)이 갈려서 자리가 비어 후임자를 뽑을 때는 이번의 예(例)에 의거하여 처음에 비밀 문서함[缿筩]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 속의 동그라미표[圈點]가 찍힌 명단을 받들어 보인 후 동그라미표가 많은 이에게 후임 자리를 주어 공평무사한 뜻을 알게 한다.

둘, 지금 이처럼 정식(定式)을 자세히 밝힌 뒤에 만약 산성 밖의 승려로써 임용되기를 꾀하는 자가 있는 경우에는, 산성내의 여러 승려들이 수교정식(受敎定式)과 이번에 정한 절목(節目)을 근거로 삼아 일제히 군문[營門]에 호소하여 훼손되고 무너지는 상황이 없도록 기약한다.

셋, 이번의 정식(定式)은 진실로 여러 승려들을 지지하여 보전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총섭(總攝)은 이렇게 염려하는 마음을 본받아서 사찰이 피폐해지면 고쳐서 바로잡고, 공사(公事)를 받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해 앞으로 실제적인 효과가 있는 상태를 만든다.
1885년 5월. 사동(寺洞) 현직 수령 김 아무개.

용어풀이.
是去乙(~이거늘), 爲去乎(~하니),是齊 (~이다. ~임).

定式 : 일정한 법시.

憲事 : 사헌부의 일.

受敎 : 황제(皇帝)의 명령을 조칙(詔勅)이라고 함에 반하여 제후왕(諸侯王)의 명령을 교(敎)라하며, 교령(敎令)을 받은 관사(官司)에서는 이를 수교라고 함. 임금의 교명-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等內 : 관원(官員)의 재임기간(在任期間). 그 벼슬을 살고 있는 동안. 등(等).-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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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승도절목
                  번역 : 고전번역원 황재운.

북한산성은 방어기능이 있는 중요한 곳이다. 사찰을 창건하고 여러 승려들을 모집해 들인 그러한 일들을 아무 까닭 없이 하였겠는가? 바로 북한산성을 수호하려는 생각에서 비롯하였거늘, 어째서인지 근래 이후로 승려들이 흩어지고 사찰이 폐기되어서 어찌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까닭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뭇 승려들이 어떠한 상황도 꺼리지 않고 힘을 다하여 나라일[公事]을 받들었던 것은 그들이 오직 승려군대의 총 책임자인 총섭(總攝)이라는 한 자리에 올라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번 교체하게 되어 후임자를 뽑을 때마다 산성 밖에 있는 승려들이 그 자리에 임명되기를 꾀하는 폐단이 비번이 있었다. 이러한 원인으로 산성 안의 승려들이 고착하여 살겠다는 의지를 잃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게 되었으니 형세로 보아 당연한 결과이었다.

 

지금 총섭의 임기가 만료되어 교체되는 때를 당하매, 정해진 법[定式]을 자세히 밝혀서 영구히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뭇 승려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여 수호의 책무를 다하게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왕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법[受敎定式]은 더할 수 없이 정중히 지켜야 할 것이므로 법에 따라 실행하는 도리를 어찌 감히 소홀히 해서 되겠는가?

 

여기에 그 법의 세세한 조목[節目]을 만들어서 바위에 새기니, 이에 의거해서 이루어진 법[成憲]이 무너지지 않도록 할 것임.

 

1조, 총섭(總攝)이 자리가 비어 후임자를 뽑을 때는 이번의 예(例)에 의거하여 처음에 *비밀 투표함[缿筩]에서 명단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 명단에 동그라미표인 권점(圈點)을 표시하여 그 권점이 많은 자를 왕에게 보내어 낙점을 받도록 시행함으로써 공평무사한 뜻을 알리게 할 것.

 

2조, 지금 이처럼 정식(定式)을 자세히 밝힌 뒤에도 만약 산성 밖의 승려로써 임용되기를 꾀하는 자가 있는 경우에는, 산성내의 여러 승려들이 수교정식(受敎定式)과 이번에 정한 절목(節目)을 근거로 삼아 일제히 해당 군문[營門]에 호소하여 훼손되고 무너지는 상황이 없도록 기약할 것.

 

3조, 이번의 정식(定式)은 진실로 여러 승려들을 유지 보전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총섭(總攝)은 이렇게 염려하는 마음을 본받아서 사찰이 피폐해지면 고쳐서 바로잡고, 공사(公事)를 받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해 앞으로 실제적인 효과가 있는 상태를 만들 것.

 

1885년(고종22년) 5월. 사동(寺洞) 승군현직(僧軍?인 現職) 김 아무개.

 

*용어풀이.

 

1.是去乙(~이거늘), 爲去乎(~하니),是齊 (~이다. ~임).

 

2.定式 : 일정한 법시.

 

3.受敎 : 황제(皇帝)의 명령을 조칙(詔勅)이라고 함에 반하여 제후왕(諸侯王)의 명령을 교(敎)라하며, 교령(敎令)을 받은 관사(官司)에서는 이를 수교라고 함. 임금의 교명-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4.等內 : 관원(官員)의 재임기간(在任期間). 그 벼슬을 살고 있는 동안. 등(等).-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절목 1조는 본인이 당시 제도를 추측하여 임의로 약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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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질문에 대한 답변 (3) 새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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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운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셔서 후학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2010-11-01
    조면희 황재운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여러 글에서 황선생의 문장을 잡할 때마다 後學可畏 라는 말을 실감으로 느꼈는데 오늘 여기 올리신 글을 보니 실로 괄목상대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한군데도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고전이 모두 그렇듯이 글자대로 번역을 해 놓아도 당시 제도의 차이 때문에 이해가 잘 안 가는 게 있지요. 여기 절목 1조에는 缿筩은 채집원문에 缿笛으로 되어 있는데 본인이 그렇게 고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투서라기 보다 비밀투표의 뜻으로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보면 비밀투표에서 총섭 후보자로 가장 많은 이름이 나온 사람을 뽑아 권점으로 표시하여 임금에게 낙점으를 받도록 보낸 것이 아닌가 싶어서 본인 산성기에는 그부분을 그렇게 고쳐 보았습니다.

    成憲事의 사는 이두로 문장 끝의 것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等內는 현직을 뜻하니 사동이라는 동내이므로 동 책임자인 현재 僧職일 듯합니다.


    다시한번 고맙고요. 우리 고전의 발전 계승에 큰 발자국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損契 趙冕熙 拜
    2010-11-01
    황재운 요즘 날씨가 꽤 쌀쌀해 졌습니다. 선생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선생님께서 이 게시판에 올리신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마음에 그냥 지나치지 못해 이렇게 만용을 부려 봅니다. 번역의 일은 참으로 어려워서 오역과 부드럽지 못한 부분이 없을 수 없으나, 배움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남에게 보이기를 꺼리겠습니까?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北漢僧徒節目」

    北漢山城, 卽保障重地也. 寺刹之剏建僧徒之募入, 是豈徒然哉? 卽由於爲山城守護之意是去乙, 夫何挽近以來, 僧殘寺敗, 莫保朝夕, 此曷故焉? 盖僧徒之不殫燥濕, 竭力奉公者, 渠之所望, 惟在於摠攝一窠, 而每當差代, 城外僧圖差之弊, 比比有之. 由是而僧無固志, 散而之四, 勢所固然. 今當摠攝瓜遆之時, 若不申明定式以圖永久, 則其何以慰悅僧徒, 俾盡守護之責哉? 況受敎定式, 不啻鄭重, 則其在遵奉之道, 豈敢少忽? 茲成節目, 刻之于石爲去乎, 依此遵行, 毋墜成憲事.
    一 摠攝有闕差代時, 依今番例, 初受缿筩, 更捧圈點, 後以多點施行, 俾知其公平無私之意是齊 .
    一 今此申明定式之後, 如有城外僧圖差者, 城內諸僧, 以受敎定式及今番節目齊訴營門, 期無毀劃之地是齊.
    一 今番定式, 寔出於爲僧徒支保之意, 則摠攝軆此憧憧之心, 寺弊則期於矯革, 奉公則克盡恪勤, 俾有來頭實效之地是齊.
    乙卯五月日, 寺洞金等內

    북한산성은 방어기능이 있는 중요한 곳이다. 사찰을 창건하고 여러 승려들을 모집해 들인 그러한 일들을 어찌 공연히 하였겠는가? 바로 북한산성을 수호하려는 생각에서 비롯하였거늘, 어째서인지 근래 이후로 승려들이 흩어지고 사찰이 폐기되어서 어찌될 지 알 수 없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뭇 승려들이 어떠한 상황도 꺼리지 않고 힘을 다하여 공사(公事)를 받들었던 것은 그들이 오직 총섭(總攝)이라는 한 자리에 오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으나, 매번 갈려 간 자리에 후임자를 뽑을 때마다 산성 밖에 있는 승려들이 그 자리에 임명되기를 꾀하는 폐단이 빈번하였다. 이로 인해 산성 안쪽의 승려들이 굳은 의지를 잃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지금 총섭의 임기가 만료되어 갈리는 때가 되었으니, 정식(定式)을 자세히 밝혀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뭇 승려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여 수호의 책무를 다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수교정식(受敎定式)은 정중할 뿐만이 아니어서, 좇아서 실행하는 도리를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는가? 이에 절목(節目)을 만들어서 바위에 새기니, 이에 의거해서 따라 행하여 소송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나, 앞으로 총섭(總攝)이 갈려서 자리가 비어 후임자를 뽑을 때는 이번의 예(例)에 의거하여 처음에 비밀 문서함[缿筩]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 속의 동그라미표[圈點]가 찍힌 명단을 받들어 보인 후 동그라미표가 많은 이에게 후임 자리를 주어 공평무사한 뜻을 알게 한다.

    둘, 지금 이처럼 정식(定式)을 자세히 밝힌 뒤에 만약 산성 밖의 승려로써 임용되기를 꾀하는 자가 있는 경우에는, 산성내의 여러 승려들이 수교정식(受敎定式)과 이번에 정한 절목(節目)을 근거로 삼아 일제히 군문[營門]에 호소하여 훼손되고 무너지는 상황이 없도록 기약한다.

    셋, 이번의 정식(定式)은 진실로 여러 승려들을 지지하여 보전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총섭(總攝)은 이렇게 염려하는 마음을 본받아서 사찰이 피폐해지면 고쳐서 바로잡고, 공사(公事)를 받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해 앞으로 실제적인 효과가 있는 상태를 만든다.
    1885년 5월. 사동(寺洞) 현직 수령 김 아무개.

    용어풀이.
    是去乙(~이거늘), 爲去乎(~하니),是齊 (~이다. ~임).

    定式 : 일정한 법시.

    憲事 : 사헌부의 일.

    受敎 : 황제(皇帝)의 명령을 조칙(詔勅)이라고 함에 반하여 제후왕(諸侯王)의 명령을 교(敎)라하며, 교령(敎令)을 받은 관사(官司)에서는 이를 수교라고 함. 임금의 교명-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等內 : 관원(官員)의 재임기간(在任期間). 그 벼슬을 살고 있는 동안. 등(等).-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 *북한산승도절목
                      교감:청계 조면희.  번역 : 고전번역원 황재운.

    북한산성은 방어기능이 있는 중요한 곳이다. 사찰을 창건하고 여러 승려들을 모집해 들인 그러한 일들을 아무 까닭 없이 하였겠는가? 바로 북한산성을 수호하려는 생각에서 비롯하였거늘, 어째서인지 근래 이후로 승려들이 흩어지고 사찰이 폐기되어서 어찌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까닭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뭇 승려들이 어떠한 상황도 꺼리지 않고 힘을 다하여 나라일[公事]을 받들었던 것은 그들이 오직 승려군대의 총 책임자인 총섭(總攝)이라는 한 자리에 올라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번 교체하게 되어 후임자를 뽑을 때마다 산성 밖에 있는 승려들이 그 자리에 임명되기를 꾀하는 폐단이 비번이 있었다. 이러한 원인으로 산성 안의 승려들이 고착하여 살겠다는 의지를 잃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게 되었으니 형세로 보아 당연한 결과이었다.

     

    지금 총섭의 임기가 만료되어 교체되는 때를 당하매, 정해진 법[定式]을 자세히 밝혀서 영구히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뭇 승려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여 수호의 책무를 다하게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왕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법[受敎定式]은 더할 수 없이 정중히 지켜야 할 것이므로 법에 따라 실행하는 도리를 어찌 감히 소홀히 해서 되겠는가?

     

    여기에 그 법의 세세한 조목[節目]을 만들어서 바위에 새기니, 이에 의거해서 이루어진 법[成憲]이 무너지지 않도록 할 것임.

     

    1조, 총섭(總攝)이 자리가 비어 후임자를 뽑을 때는 이번의 예(例)에 의거하여 처음에 *비밀 투표함[缿筩]에서 명단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 명단에 동그라미표인 권점(圈點)을 표시하여 그 권점이 많은 자를 왕에게 보내어 낙점을 받도록 시행함으로써 공평무사한 뜻을 알리게 할 것.

     

    2조, 지금 이처럼 정식(定式)을 자세히 밝힌 뒤에도 만약 산성 밖의 승려로써 임용되기를 꾀하는 자가 있는 경우에는, 산성내의 여러 승려들이 수교정식(受敎定式)과 이번에 정한 절목(節目)을 근거로 삼아 일제히 해당 군문[營門]에 호소하여 훼손되고 무너지는 상황이 없도록 기약할 것.

     

    3조, 이번의 정식(定式)은 진실로 여러 승려들을 유지 보전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총섭(總攝)은 이렇게 염려하는 마음을 본받아서 사찰이 피폐해지면 고쳐서 바로잡고, 공사(公事)를 받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해 앞으로 실제적인 효과가 있는 상태를 만들 것.

     

    1885년(고종22년) 5월. 사동(寺洞) 승군현직(僧軍?인 現職) 김 아무개.

     

    *용어풀이.

     

    1.是去乙(~이거늘), 爲去乎(~하니),是齊 (~이다. ~임).

     

    2.定式 : 일정한 법시.

     

    3.受敎 : 황제(皇帝)의 명령을 조칙(詔勅)이라고 함에 반하여 제후왕(諸侯王)의 명령을 교(敎)라하며, 교령(敎令)을 받은 관사(官司)에서는 이를 수교라고 함. 임금의 교명-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4.等內 : 관원(官員)의 재임기간(在任期間). 그 벼슬을 살고 있는 동안. 등(等).-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절목 1조는 본인이 당시 제도를 추측하여 임의로 약간 고쳤습니다.

     

     
  • ■ 북한승도절목비문(北漢僧徒節目)

    선정비가 있는 바위면에는 선정비와 더불어 북한승도절목(北漢僧徒節目)이라는 319자의 명문이

    가로 225cm, 세로 110cm의 화강암벽에 새겨져 있다.

    북한산도절목은 19세기 중엽, 산성내의 대사찰들이 피폐하여 승도가 흩어짐에 따라 책임자인

    승군대장인 팔도도총섭의 임명시 발생하는 각종 폐단을 없애고 산성수호에 완벽을 기할 것을 촉구하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