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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기행 ⑥中華애국주의에 멍드는 내몽골

굴어당 2011. 6. 4. 08:38

중국근현대사기행 ⑥

中華애국주의에 멍드는 내몽골

글 : 공원국 중국전문 역사저술가ㆍ여행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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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 나무 심는 몽골족 노인, “내 고향을 예쁘게 만들려고… 내 고향이니까”
⊙ 오르도스에 거대한 칭기즈칸陵 조성, 교과서에는 ‘우리나라 북부의 위대한 민족인 몽골족이 낳은
    세계적인 영웅’
⊙ 흉노왕에게 시집간 王昭君,‘비련의 여인’에서 ‘漢-몽골족 화합의 상징’으로
‘사라진 문명’이라고 불리는 카라 호토 전경.
  어떤 학자는 역사가 농경(農耕)과 유목(遊牧)의 대결이었다고 과감하게 주장했다. 아시아의 역사서에서 농경과 유목의 대결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를 절망으로 몰아넣고 홀연 사라져 버린 스키타이에서, 중국의 통일 왕조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흉노(匈奴), 초원을 넘어 화북(華北)의 농경지대로 들어간 선비족(鮮卑族) 등의 이름이 차례로 등장한다.
 
  하지만 몽골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 어떤 유목민도 정주(定住)세계의 통일제국들을 완전히 소화하지는 못했다.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이 일으킨 폭풍은 단 한 세기 만에 남러시아 초원을 건너고, 힌두쿠시를 넘고, 장강(長江)을 건너 아시아·유럽·아프리카에 걸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제국을 낳았다. 그러나 제국은 성립과 함께 붕괴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남긴 유산과 함께 몽골이 역사가들의 붓끝에 등장하는 횟수는 사라져 갔다.
 
   하지만 한반도의 압록강을 떠나 흥안령(興安嶺)을 넘기만 하면 닿는 몽골이, 칭기즈칸이라는 판에 박힌 이름으로 박제화되어 버린 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불과 100년 전에도 몽골은 우리와 거의 같은 역사를 걸어왔는데도 말이다. 중국의 예속과 간섭, 일제(日帝)의 침략, 제정(帝政)러시아의 남하, 독립운동과 그 좌절, 그리고 혁명이 20세기 전반기 몽골 땅을 휩쓸었다. 또 마지막으로, 한반도와 아주 흡사한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내외(內外) 몽골의 분단(分斷)이다.
 
  누천년을 끌어 온 농경과 유목의 갈등이 끝나자 마자, 유목민들은 순식간에 제국주의 열강(列强)의 손에 운명을 맡기고 말았다. 기관차 앞에 그들의 말은 무력(無力)했고, 기관총 앞에 그들의 조총(鳥銃)은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 지금의 몽골인민공화국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의 투쟁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이 글은 2011년 5월 전반기 약 2주 동안 북경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내몽골 지역을 종주하면서 느낀 것을 옮긴 것이다. 어렴풋하게나마 몽골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게 썼지만, 이 글은 기본적으로 순수한 여행기다. 지금 우리가 ‘몽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벅차다. 그래서 필자는 몽골이란 세계를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검은 도시 카라 호토(黑城)
 
서북을 향해 난 카라 호토 성벽의 구멍. 칭기즈칸의 공격을 받은 흑장군이 이 구멍으로 탈출했다는 전설이 있다.
  거용관(居庸關)을 지나 내몽골 서쪽 끝의 얼치나기로 들어가기 위해서 자동차로 꼬박 이틀을 달렸다. 5월 내몽골은 아직 새 풀이 돋아나지 않았고, 모래바람이 달리는 차를 뒤덮으며 지나간다. 목적지까지 세 시간 거리를 앞두고 모래바람은 폭풍으로 변한다. 노련한 트럭 기사들은 차를 모두 세워 두고, 무모한 여행객만 앞길을 재촉한다. 처음에는 모래가 뱀처럼 도로 위를 기어 다닌다. 그러나 뱀은 이내 몸뚱이가 커져서 상어로 바뀐다. 모래와 작은 자갈 덩어리들이 자동차의 유리를 긁어대고, 한번씩 누런 모래 덩어리들이 험악한 모습으로 달리는 차를 흔들며 부서진다. 가련한 차는 모래의 바닷속에서 폭풍에 떠밀리며 가까스로 앞으로 나가고 있다(이틀 후 신문에 이 폭풍이 북경을 덮쳐서 올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황사를 안겼다고 한다. 물론 하루나 이틀 후에는 서울까지 닿았을 것이다).
 
  밤에 얼치나기에 도착하니 온몸이 모래 덩어리다. 오늘 우리에게 이 모래는 그저 약간 무섭고 심술궂은 방해꾼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모래가 때로는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모래가 움직이면 사람들도 움직인다.
 
  얼치나기에는 카라 호토라는, 이제는 폐허가 된 거대한 성이 있다. 카라 호토는 몽골어로 ‘검은 성(城)’이라는 뜻이다. 조그마한 시가지를 떠나 물이 말라 죽은 호양목들을 헤치고 약 30분 사막으로 들어가면 야트막한 모래언덕 위에 일순간 숨을 멈추게 하는 옹골찬 흙벽이 서 있다. 정방형의 성벽 귀퉁이에 불탑이 서 있고, 좌우로 모래가 성벽을 덮고 있다. ‘사라진 문명’이라고 불리는 카라 호토다.
 
  현지의 토구트 몽골인들에게는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이 성을 지키는 사람은 흑장군(黑將軍)이라고 했다. 그는 용맹했으며 야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보다 못한 칭기즈칸은 결국 대군을 이끌고 카라 호토로 왔다. 격렬한 전투 끝에 그는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북으로 난 성의 구멍을 통해 달아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