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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55) 한안국(韓安國), 갈등 조정능력 뛰어난 보수주의자[현재창]ㅣ2011.06.10
- 대학생,서민은 안중에 없다. 양자의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양보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현명한 대안을 내놓을 사람은 없는 것인가.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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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54) 소진(蘇秦), 여섯 나라 하나로 묶은 '세치 혀'…전국시대 판도를 바꾸다[현재창]ㅣ2011.06.03
- 진나라에 대항하면서 15년 동안 진나라 군대를 함곡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으니 역사를 뒤바꾸는 자는 의외로 단 한 명의 인재가 아닌가?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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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53) 조비(曹丕), 문학적 소양 풍부했던 魏王[현재창]ㅣ2011.05.27
- 있고 공평한 마음 씀씀이를 갖고 있었다면 현명한 제왕이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제왕을 꿈꾸는 자라면 반드시 새겨 두어야 할 말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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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52) 석륵(石勒), 도광양회 능숙한 책략의 귀재[현재창]ㅣ2011.05.20
- 철저히 도광양회(韜光養晦 ·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기르는 강단)와 허허실실(虛虛實實)을 적절히 활용한 책략의 귀재였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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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51) 강희제(康熙帝), 100만 만주族의 중국 통치 기틀 다진 61년[현재창]ㅣ2011.05.13
- 文治ㆍ소통의 리더십 빛나 만주족은 100만명에 불과하다. 청조는 이들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됐다. 만주인 황제들이 중국 문화유산을 보호하면서 특유의 무인 기질로 강력한 지도자상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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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50) 주원장(朱元璋), 황제가 된 거지[현재창]ㅣ2011.05.06
- 중화제국 회복했지만 공포와 불신만 남겼다 중국의 난징에 가면 웅장한 무덤이 있다. 유달리 의심이 많아 자신의 무덤이 있는 장소를 알리지 말라고 유언했다는 주원장의 것이다. 그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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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48) 여태후(呂太后), 전횡 일삼은 '유방의 妻'…漢나라 기틀을 잡은 건 사실 그녀[현재창]ㅣ2011.04.29
- 혜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사마천은 이런 점을 찬사했다. 여태후가 제왕들의 영역인 '본기'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한 이유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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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48) 자산(子産) "불처럼 이글거리만 해선 안돼"[현재창]ㅣ2011.04.22
-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물의 덕성을 본받으려 한 자산처럼 스스로를 낮추며 백성을 하늘같이 여기는 참 정치인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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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47) 장건(張騫), 목숨 내걸고 13년간 서역 탐방[현재창]ㅣ2011.04.15
- 지식이 중국으로 들어왔고 동서간 교역도 늘어나게 됐다. 장건은 이후 장군 다음가는 무관인 교위(校尉)에 임명돼 대장군 위청을 따라 흉노 정벌에 나섰다. 사막에서 물과 풀이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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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고전 인물열전] (46) 양제(煬帝)‥제국의 기틀 다진 제왕인가[현재창]ㅣ2011.04.08
- 거대한 중국의 대동맥이었다. 그러나 운하건설에는 값비싼 고통의 대가가 동반되었다. 15~55세의 장정 550만 명이 동원되었고 관리하는 감독만 해도 5만 명이나 됐다. 정해진 일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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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고전 인물열전] (45) 노중련(魯仲連)…'100만 대군' 돌려세운 두둑한 배짱[현재창]ㅣ2011.04.01
- 항의방문 건도 그렇다. 적당히 얼버무리며 들끓는 민심을 잠재우려 하는 듯한 외교적 수사는 전 국민의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 뿐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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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44) 양귀비, 현종·안록산과 '양다리 사랑놀음'…唐을 파산시킨 그 치명적 유혹[현재창]ㅣ2011.03.25
- null 당나라 시절 중국 독자뿐만 아니라 신라인,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감동을 주는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정치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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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43) 급암(汲黯), 황제라도 正道 벗어나면 면전서 직언…목숨 건 원칙주의자[현재창]ㅣ2011.03.18
- 모시는 최고 경영자가 욕망에 사로잡혀 있거나 겉으로 위선을 일삼을 때 이처럼 과감한 직언의 카드를 들이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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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42) 유경(劉敬), 유방의 천도계획을 막은 현실주의자…포로에서 제후가 되다[현재창]ㅣ2011.03.11
- 다시 한번 깨닫고 앞서 갔던 사신들의 목을 모두 베어버렸다. 유경에게는 식읍 2000호를 내려 관내후(關內侯)로 삼고 건신후(建信侯)라 불렀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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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41) 굴원(屈原), "타협은 없다"…타인과의 부조화로 쫓겨난 엘리트주의자[현재창]ㅣ2011.03.04
- 쉽게 물들지 못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엘리트주의의 한계가 거기에 있으니 어찌하랴.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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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40) 난포(欒布), 목숨 구해준 친구 위해 절대군주 앞에서도 할 말 다해[현재창]ㅣ2011.02.25
- 열사의 용기'라고 극찬했다. 삶의 정도를 지키며,불의에 굴하지 않고,소신을 밝힌 난포의 기백.세상이 어수선할수록 더욱 돋보이는 덕목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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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고전 인물열전] (39) 사마천(司馬遷), 궁형의 치욕 견디며 '史記' 완성[현재창]ㅣ2011.02.18
- 시작해 중국 전역을 두루 다녔으며 돌아온 후에는 낭중(郎中)에 올랐다. 이후 무제를 따라 순행하면서 온 나라를 주유했다. 어디를 가든지 고적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현장 감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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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38) 예양(豫讓),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은 의인…원수마저 감동시켰다[현재창]ㅣ2011.02.11
-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고 했던 그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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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37) 기자(箕子), 은나라 주왕에 간언하다 노예로[현재창]ㅣ2011.02.05
- 충신들은 설 자리를 잃고 간신들만 설쳐대며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도 위기에 직면했다. 이 같은 역사의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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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 인물열전] (36) 조괄(趙括), 병법 이론만 빠삭했던 장수…탁상공론의 최후는 45만 대군 몰살[현재창]ㅣ2011.01.28
- 지고 수십만명이 진나라에 항복했다. 진나라는 이들을 모두 땅에 묻어 죽였다. 조나라가 이 싸움을 전후로 잃은 군사는 45만명이나 됐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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