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詞 사 (문학)

굴어당 2011. 8. 2. 03:39

 

사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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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詞)는 중국 대에 만들어져 대에 융성한, 속곡(俗曲)에 맞추는 가사 문학이다.

사는 시와 비슷한 운문으로, 당 중엽에 민간에서 발생해 송대에 가장 번성했던 문학 양식이다. 민간 가요의 가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장단이 일정치 않아 ‘장단구(長短句)’라 고도 하며, 초기에는 가창할 수 있었던 근체시의 변형이라고 여겨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를 창작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지어져서, 사를 짓는 것을 두고 가사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전사(塡詞)’, 혹은 ‘의성(依聲)’이라 했다. 사는 시와는 달리 음악과 긴밀한 관계였으므로 유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술, 여색, 애정, 희롱에 대한 것이 많았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특성이 강해 깊고 섬세한 내면을 완곡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문사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는 공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사가 대량으로 창작됨에 따라 염정적이고 개인적인 신세타령에서 벗어나 시국에 대한 개탄이나 국가의 흥망성세 등까지도 읊게 되어 점차 시와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편집] 처음

당나라 궁정에 설치되었던 교방(敎坊)의 음곡(音曲)을 이용한 것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민간인에 의해 불리고 있던 속곡에 맞추어서 만들어졌다. 중당의 백거이유우석(劉禹錫)에게 이미 사의 작품이 있다. 그리고 사의 문예를 많이 만들어 일가를 이룬 것은 만당의 온정균(溫庭筠)이다. 그는 초당의 재상 온언박(溫彦博)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방탕생활을 하다가 끝내 진사에도 급제하지 못하고 화류계의 총아로서 염려한 노래를 계속 만들었다. 그의 사는 주로 기녀의 요염함과 원정(怨情)을 노래했다. 이후의 사의 문예는 기녀에 얽힌 여성적 문예로써 성격화되었다.

[편집] 발전

그 후 오대에서 송에 걸쳐 사는 전성을 보였다. 오대 전촉(前蜀)의 재상이 된 위장(韋莊, 836?~910)도 청염(淸艶)한 사를 지었다. 사의 문예를 슬픈 정취를 옮기는 문학으로 끌어올린 것은 남당의 후주인 이욱(李煜)이며, 북송의 안수(晏殊, 991~1055), 안기도(晏幾道=안수의 아들, 생몰년 미상) 등이다.

구양수도 또한 온아한 사를 지었다. 한편, 통속가곡으로 시민 세계에 유행시킨 사람은 북송의 유영(柳永)이다. 소식은 지금까지 주로 원정을 노래하는 여성적 문예로서 생각되고 있던 사를 인간의 일반적인 심정을 표현하는 것으로까지 끌어올렸다. 소식은 “시를 가지고 사를 만든다”고 평했으며 사의 호방파(豪放派)라고 칭해졌다. 소식에 의해서 높여진 사는 주방언(周邦彦, 1056~1121), 이청조(李淸照), 신기질(辛棄疾), 강기(1155?~1221?), 오문영(吳文英, 1200~1260) 등이 전개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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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詞

당시(唐詩).송사(宋詞).원곡(元曲)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당대(當代)는 시의 전성기였고 송대(宋代)는 사(詞)의 전성기였으며 원대(元代)는 곡(曲)의 전성기였다는 말이다.

사(詞)는 다른 나라 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국문학 특유의 문학양식인데, 쉽게 말해 악곡을 위하여 지어진 노랫말이라 할 수 있다.

사는 민요와 비슷하지만 구별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형성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악곡에 노랫말을 써넣거나 주어진 노랫말에 악곡을 붙인 것이 아니라 맨 처음 노래 부른 사람이 머릿속으로 노랫말을 생각하면서 그 것에 나름대로의 가락을 붙여 길게 읊조리는 형식으로 부른 후 그것이 만족스러우면 스스로 그것을 반복하여 노래하고 다시 그것이 주위 사람의 공감을 얻어 그들에 의하여 반복적으로 노래 불려짐으로써 차츰 범위를 넓혀 나간 것이 마침내 민요가 되었다.

사는 악곡에 맞추어서 노랫말을 메워넣는 형식으로 의성전사(依聲塡詞: 가락에 맞추어 가사를 메워넣는다는 뜻) 또는 전사(塡詞)라고 부른다. 주(周)나라 때의 시경(詩經)의 시나 한(漢)나라 때의 악부시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악곡과 표리관계에 있고 음악적 성분인 악곡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와 조선의 적지 않은 문인학사들이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있다.

‘곡사자’,‘악부’‘시여’‘장단구’등으로도 불리며, 사인들이 자신의 사집에 각자 나름데로 이름을 붙여서 사의 명칭은 다양하다.

그 밖에 사의 전문용어로 ‘사조.궁조‘ ’사패.사제‘’단조.중조.장조.소령.만사‘’편.단.결‘’과편.환두‘등도 외워 두면 좋겠다.

언제 발생했는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사가 외래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있다 한다. 한대 이후 중국의 변방에 있는 소수민족의 음악이 꾸준히 중국으로 유입되었는데 이들 외래음악은 중국의 음악문화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했다.

점점 많아지는 노랫말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의성전사’의 기풍이 생겨 났을 것이다

사는 원대와 명대의 잠복기를 거쳐 청대에 다시 일대 부흥의 기운을 맞아 송대에 못지않은 성황을 이루었지만 이미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양식으로서의 지위는 상실했다.


   - 임춘성(12/24,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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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시의 서정과 풍류> 송사 개설과 작품감상 중어중문학과 20410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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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 명확한 전사(塡詞)의 기록이라 볼 수있다. 같은 곡조 사이에 ... 2) 사체(詞體) 자체의 발전 : 중국시는 당대에서 내용과 형식을 막론하고 더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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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보 [ 詞譜 ]

    요약

    중국 송나라 때 유행한 가사문예인 사의 복잡다양한 운문형식을 정리하고 도식화하여 나타낸 것.

    본문

    중국 송(宋)나라 때 유행한 가사문예(歌辭文藝)인 사(詞)의 복잡다양한 운문형식을 정리하고 도식화하여 나타낸 것. 강희제칙찬(康熙帝勅撰)의 사보가 단순히 《사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흠정사보(欽定詞譜, 40권, 1715)》). 사란 가사인 동시에 정형적인 운문이지만 율시(律詩)나 절구(絶句)와 달리 그 정형은 악곡(樂曲)마다 정해지기 때문에 악곡의 수만큼 형식의 종류가 있게 된다. 그 수는 셈하는 방법에 따라서 2000을 넘는다. 사보는 그 하나하나에 대하여 곡명(曲名), 즉 사패(詞牌)를 들어 전형적인 작례(作例)를 보이고 이것을 따라 구법(句法), 압운법(押韻法), 평측(平仄)의 배치 등을 주기(註記) 또는 도시(圖示)한다. 사는 오언시나 칠언시와는 달리 한 수 중에 장단이 가지각색인 구를 쓰고, 운도 도중에 바뀌는 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운을 교착시키거나(abab) 끼워넣기(abba)도 한다. 또 평성·측성의 배치도 근체시(近體詩)처럼 단일한 규칙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각 사패마다 표시할 필요가 있게 된다. 송나라 때에는 악곡에 맞추어 사를 작성하였으나 원(元)나라 이후에는 악곡이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사(作詞)의 규준(規準)을 보여 주는 뜻에서 사보가 생겼다. 사를 만드는 것을 <전사(塡詞)>라고 한다. 전(塡)이란 끼워 넣는다는 뜻으로, 원래는 곡(曲)에 맞추어 작사한다는 것이나 후세에는 사보에 맞추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사보의 저술로서는 명(明)나라 장연의 《시여도보(詩餘圖譜;시여는 사와 같은 뜻)》, 정명선(程明善)의 《시여보》, 청(淸)나라 초 뇌이빈의 《전사도보》 등이 비교적 일찍 나온 것인데, 이들은 사의 연구가 미숙하였기 때문에 착오가 적지 않았다. 그 다음에 나온 만수(萬樹)의 《사율(詞律, 20권, 1687)》은 종합적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며 사의 연구와 사학에 새로운 단계를 가져와 당시 이미 움터 있던 사의 유행을 크게 촉진시켰다. 이 책은 약 660조(調)의 사패를 실었고 같은 사패이면서 형식이 다른 것(同調異體)을 합하면 1800정도에 이른다. 이 다음에 나온 것이 강희제칙찬의 《사보》로 826조(調), 2306체(體)를 수록, 가장 종합적이었으나 내부간본(內府刊本;궁정출판)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유포되지 않았다. 청나라 말기 1876년 두문란(杜文瀾)과 은복(恩復)이 만수의 《사율》 교정본에 서본립(徐本立)의 《사율습유(詞律拾遺)》을 첨가하여 간행하였고 그 후 이것이 사보의 표준교본처럼 되어 왔다. 이들은 너무나 세밀하므로 청나라 때에는 더 간략한 것이 널리 유포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몽란(舒夢蘭)의 《백향사보(白香詞譜)》로서 이것은 100조(調) 각 1체(體), 이를테면 가장 대중적인 100가지 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또한 보기로 든 사가 읽을거리로서도 많이 읽혔는데, 평측도(平仄圖) 등을 생략해버리고, 작자별로 다시 편집을 하였다. 또 여기에 전주(箋註)를 첨가한 것도 있으나(《백향사보전》),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이미 사보가 아니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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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단구(長短句)장단구(長短句)사(詞)의 별칭. 매구(每句)의 자수가 전편에 걸쳐 일정한 것을 원칙으로 하는 제언체(齊言體)의 시(詩)와는 달리, 사(詞)는 형식상으로 구법(句法)의 장단이 일정하지 않은 점을 따서 장단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여(詩餘) 전사(塡詞) 악부(樂府) 등의 별칭도 있다. 여기에 실려 있는 이제현의 장단구는 익재사(益齋詞)라는 명칭으로 청 나라 주효장(朱孝臧 : 본명 조모〈祖謀〉)이 편찬한 중국 역대사총집인 《강촌총서(彊村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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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求助编辑百科名片

    词是诗的别体,是唐代兴起的一种新的文学样式,到了宋代,经过长期不断的发展,进入了全盛时期。词又称曲子词、长短句诗余,是配合宴乐乐曲而填写的歌诗,词牌是词的调子的名称,不同的词牌在总句数、句数,每句的字数、平仄上都有规定。

    目录

    释义
    词的特点
    词的起源
    词的发展脉络
    词的种类
    词题
    词牌
    词的分别
    展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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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编辑本段释义

      词 cí 形声。字从言,从司,司亦声。“司”意为“世代职掌某专业”。“言”与“司”联合起来表示“专业术语”。本义:专业术语。引申义:语言中最小的可以独立运用的单位。转义:一种诗歌形式,句子长短不一。
      词是由语素构成,比语素高一级的语言单位。词是最小的能够独立运用的语言单位。这句话说明了词在语言中的作用,一是说词是能独立运用,二是说在独立运用的语言单位中,它是最小的。但说到独立运用,实词和虚词有不同的情况。就实词来说,它能单独充当句子成分。
      “独立运用”是指能够单说(单独成句)或单用(单独做句法成分或单独起语法作用)。
      词的构成方法是:过程关键字排列法。对,
      词从音节方面看,有单音节也有双音节,还有多音节的,如:山,美丽,语言学,社会主义,电子计算机等。
      确定词的一般方法:
      第一,能单说
      第二,虽不能单说,但在一般场合能用作句法成分的最小语言单位是词
      第三,把语句中所有作句法成分的单位提开,剩下来 ,的虽然在对话条件下不能单说,但也不能看作句中某个词的一部分,也是词。如虚词。
      第四,隔开法。如海带,中间不能插入字的,是词。

    编辑本段词的特点

      1、每首词都有一个表示音乐性的词调词牌)。一般说,词调并不是词的题目,仅只能把它当作词谱看待。到了宋代,有些词人为了表明词意,常在词调下面另加题目,或者还写上一段小序。
      2、词一般都分两段(叫做上下片或上下阕),不分段或分段较多的是极少数。
      3、一般词调的字数和句子的长短都是固定的,有一定的格式。
      4、词的句式参差不齐,基本上是长短句。
      5、词中声韵的规定特别严格,用字要分平仄,每个词调的平仄都有所规定,各不相同。
      6·词有时会不符合上述规律,因为早期是和着曲子写的,因此它最注重的还是与曲的配合
      7、一般按字数将词分为小令,中调和长调三种,58字以内为小令,59到90字为中调,91字以上为长调。

    编辑本段词的起源

      词,是我国古代诗歌的一种。它始于梁代,形成于唐代而极盛于宋代,故俗称宋词。词在形式上的特点是“调有定格,句有阙。”据《旧唐书》上记载;“自开元(唐玄宗年号)以来,歌者杂用胡夷里巷之曲。”由于音乐的广泛流传;当时的都市里有很多以演唱为生的优伶乐师,根据唱词和音乐拍节配合的需要,创作或改编出一些长短句参差的曲词,这便是最早的词了。从敦煌曲子词中也能够看出,民间产生的词比出自文人之笔的词要早几十年。词的流派有两种,一:婉约派;二:豪放派。
      
      

    唐代,民间的词大都是反映爱情相思之类的题材,所以它在文人眼里是不登大雅之堂的,被视为诗余小令。只有注重汲取民歌艺术长处的人,如白居易、刘禹锡等人才写一些词,具有朴素自然的风格,洋溢着浓厚的生活气息。以脂粉气浓烈的崇尚浓辞艳句而驰名的温庭筠和五代“花间派”,在词发展史上有一定的位置。而南唐李后主被俘虏之后的词作则开拓一个新的深沉的艺术境界,给后世词客以强烈的感染。
      词起源于民间,但在1900年敦煌石室打开之前,研究中很难见到民间作品。直到敦煌卷子中的词曲面世,才补救了这方面的缺陷。敦煌词曲数量很大。其中有温庭筠、李野(唐昭宗)、欧阳炯词共五首,其余为无名氏之作。作者范围广泛,多属下层,写作时间大抵起自武则天末年,迄于五代。其中最重要的抄卷是《云谣集杂曲子》,收词30首,抄写时间不迟于后梁乾化元年(911),比《花间集》的编定(后蜀广政三年,940),早出近三十年。所用词调,除《内家娇》外,其馀12调,《教坊记·曲名表》均有著录。其中有慢词,亦有联章体。
      敦煌词创作的早期与作者成分来源的民间性,使作品从内容、体制到语言风格,都表现出这些初起的词,初步脱离一般诗歌的大文化系统,开始独立成体的过渡性特征。朱祖谋跋《云谣集杂曲子》云:“其为词拙朴可喜,洵倚声椎轮大辂。”可以用于对整个敦煌词的评价。

    编辑本段词的发展脉络

      词产生于唐,流行于五代,极盛于宋代,衰微于元明,复兴于清代。在文学史上,词以其特有的抑扬顿挫的音乐美、错综变化的韵律、长短参差的句法以及所抒发的浓烈深挚的感情,成为一种深受人们喜爱的文学体裁。
      

    词是唐代民间新兴的一种歌诗,即唱辞。在唐代,原产于西域的“胡乐”尤其是龟兹乐大量传入中原,与汉族原有的以清商乐为主的各种音乐家相融合,产生了一种新的音乐——燕乐。燕乐曲调繁多,有舞曲,也有歌曲。歌曲的歌辞就是词的雏形,当时叫做“曲子词”。唐代的燕乐歌辞在其发展过程中,逐渐形成了一个显著的特点,即严格按照乐曲的要求来创作歌辞,包括依乐章结构分片,依曲拍为句,依乐声高下用字,其文字形成了一种句子长短不齐而有定格的形式。到了中唐以后,众多文人用这种制辞方式进行创作,这种新体歌辞,就是后来通常所称的“词”。
      燕乐中有很多曲调是民间歌谣的曲调,其有曲有辞,歌辞有着长短不一或用衬字的形式。近代在敦煌发现的钞本曲子词,有很多是因乐作辞的。这些歌辞在结构上有篇幅也是或长或短。可见,这些歌辞都是配合或依照音乐演唱要求而变化其形式的,这说明因乐写词的燕乐歌辞是词的一个源头。词的另一个来源是文人的诗歌。唐代某些乐曲的曲拍声调与诗尤其是《杨柳枝》等曲调的歌辞,与格律诗并无多少的区别。不过,以诗入曲也有不相合的。为了适应曲调格式、需要做一定的变动处理,如破句、重叠等。据宋人沈括、朱熹等的解释,在唱这些齐言的歌辞时,还需要加“和声”、“泛声”,才能和长短不齐的曲拍相合。这最终导致文人直接按曲拍作词。诗入曲,促成了曲子词的抒情趋向。从曾入乐的诗歌来看,以五言、七言绝句为多,内容大多是吟咏山水、抒情发志,或反映朋友情谊、离愁别绪的,这使词逐渐形成了显著的艺术特点:内容以抒写日常生活的情感为主,意境比较细巧,表现手法比较委婉,语言比较凝炼精致。
      流行于初盛唐期间的民间词,是词的萌芽阶段。盛唐文人所写的曲子词基本上都是整齐的五言、七言形式,个别为长短句。到中唐,文人开始认真地倚声填词。元和年间后,文人填词逐渐增多,词正式成为一体。但是,此时文人运用曲调的范围还比较狭窄,就现存资料看他们常用的是有限的十几个曲调,如《一七令》、《忆长安》、《调笑》、《三台》等,不过在在语言上,他们开始引入近体诗的语言,写来精致凝炼、细腻华美。这样,文人诗的语言及思想感情便开始渗入词中,使词逐渐脱离原来的淳朴真挚、朴素生动但又粗糙简陋的原始状态,形成一种正式的文人文学体裁。到晚唐,温庭筠的词以浓艳的色彩、华丽的词藻、细腻的手法来描绘形象和刻画心理,形成了一种香而软、密而隐的艺术风格。这是文人词趋于成熟形态的一个标志。
      

    温庭筠之后,写词的文人越来越多。到五代十国时期,倚声填词更尉为成风。西蜀与南唐二地,经济文化最为发达,成为词人汇集的两大基地。西蜀词人的词大多收集在《花间集》里。西蜀花间词人中,以韦庄的成就最高;而南唐词人中则以李景李煜冯延巳最为出色。
      词入宋,发展到鼎盛状态,成为一种完全独立并与诗体相抗衡的文学形式。文学史上,词以宋称,体现了宋词作为一代文学的重要地位。北宋词的主流依然是沿袭晚唐五代,吟风弄月,注重词的抒情性与音乐性,如二晏、张先等。他们刻意求精,使词的形制更加丰富,词的语言更加精炼,词的意境更加深婉,词的风格更加细腻,特别是使词的音律更加精美合乐。但北宋还有另一些词人,如苏轼、柳永等,从词风词境入手,着意词体的变革。北宋初年,范仲淹的《渔家傲》和王安石的《桂枝香》,大笔淋漓,墨浓意酣,词调慷慨苍凉,境界开阔悲壮,感情抑郁深沉,揭开了以苏轼、辛弃疾为代表的豪放派词作的序幕。之后,苏轼有意利用词在语言形式上的某些特点而自由畅达地表现人生中各种各样的生活情趣、生活感慨,不仅把本来属于诗歌的“言志”内容写到词中,而且把诗里已经出现的散文句式、语词也用在词里,使词的内容更加丰富,也使词的形式技巧发生了变化。另外,在苏轼之前,音乐是词的生命,音乐的特性重于文学的特性,因此协律合乐是填词的首要条件。苏轼第一次使词从重乐的框框中摆脱出来,使词与音乐初步分离,使词首先成为一种文学体裁,而不仅仅是音乐的附庸,从而使词在文学史上有了独立存在的地位。
      

    南渡后的词作者,在各自不同的创作道路上,以各自不同的态度与方法进行创作,为宋词的继续发展发挥了各自不同的作用。李清照的词是由北宋向南宋发展的过渡。李清照亲身经历了由北而南的社会变革,生活际遇、思想感情发生了巨变,相应地词的内容、情调乃至色彩、音响,也发生了变化,由明丽清新变为低徊惆怅、深哀入骨,但词的本色未变。她的创作为南宋词人如何以旧形式表现新内容树立了榜样。中期之后,一代之雄辛弃疾和姜夔等人,形成了宋代词的又一个繁荣时期。尤其是辛弃疾,不仅代表了南宋词的最高成就,而且在整个中国文学史上也占有相当重要的地位。开禧北伐的失败,是南宋词的一个转折点。这时词的创作题材以吟咏日常生活的情怀、流连自然风光为多,情调转向带有伤感的恬淡。但这并不是简单地对传统的归复。词经过长期的发展和许多词人在众多方向上的探索,在吸收了诗歌及散文的表现手法后,这时又面临着一次总结的时机。南宋后期的词人在这方面起了很大的作用。他们虽然比较注意传统,但同时也对过去各种词人的各种手法进行了筛选整理,在词的形式、语言技巧方面作出了新的总结。他们的作品虽然气势不够雄大,境界不够开阔,但对于词的发展,却作出了重要贡献。
      元词上承两宋的余绪,虽成就难以继盛,但出现了许多词人,其中也不乏名篇佳作。元词的创作可分为两个阶段。第一个阶段包括出生于元一统前蒙古时期词人的创作。此阶段的词人有元好问、陆文圭、张之翰、刘敏中等,由于他们大多有着亡国和战乱的经历,所以他们的词中最有价值的部分是抒写怀念故国的黍离之悲,表现由人世变迁引起的荆棘铜驼之感的词作。第二阶段包括出生于元一统之后到元亡之前词人的词作。此阶段的词人有虞集、王旭、张雨、萨都剌、张翥等,他们大抵出生于忽必烈改元之后,没有经历过大的战乱,议论行藏出处和企慕半隐半俗的生活,是他们词作的主要内容。此外,元词中还有相当数量的道士词,约占总数的七分之一。这与金元时期新道教的隐修会性质及道士大多与知识分子联系密切相关。这些词的成就也不高。总的看,元词思想艺术俱臻上乘的数量很少,整个创作局面呈露衰微之状。
      明代词依然处于衰微之中。不过,词坛上也出现了有一定影响的词人,留下了一些较好的作品。明初之时,刘基、杨基、高启等人在政治上遭受挫折,所作的词自成家数,各具特色,尚存宋元遗风。明中叶后,词风日下。杨慎、王世贞、汤显祖等人多创作,却都不是当行词家。杨慎等到人的创作,与乐章多有不谐,实际上已将明词引上了歧途。此时,词的创作已渐凋敝。到了明末,由于社会发生变革,才给词的创作带来一线生机。陈子龙、夏完淳在抗清中以身殉国。陈子龙的词托体骚、寓意甚深,早期所作风流绚丽,婀娜韶秀出于刚健之中,后期所作绵邈凄恻,神韵天然而又有不尽风味。他是转变词风的第一人,可算是明词的大家。
      词经历元、明的衰落,到清代重又繁荣,这种变化与时代风气的变化密切相关。在传统习惯上,词和散曲相比于诗而言都较为轻松,贴近日常生活和鲜活的情感。而词与散曲相比,又显得雅一些,散曲的语言以尖新、浅俗、活泼为胜,接近口语。元、明词衰,实际是散曲取代了词的结果。对于性情收敛、爱好雅致趣味的清代文人来说,散曲的语言风格又显得不合适了。另一方面,清诗虽然多种风格并存,但从清初开始,重学问和理智化的趋势就很明显。这也造成了诗在抒情功能上的缺陷,而需要从其他文体中得到弥补。而词的兴盛,正是对诗的弥补。清初主要的词人是陈维崧、朱彝尊纳兰性德

    编辑本段词的种类

      词最初称为“曲词”或“曲子词”别称有长短句,曲子,曲词,乐府,乐章,琴趣,诗余,是配音乐的。从配音乐这一点上说,它和乐府是同一类的文学体裁,也同样是来自民间文学。后来词也跟乐府一样,逐渐跟音乐分离了,成为诗的别体,所以有人把词称为“诗余”。文人的词深受律诗的影响,所以词中的律句特别多。
      
      

    词是长短句,但是全篇的字数是有一定的。每句的平仄也是有一定的。
      词大致可分为三类:⑴小令;⑵中调;⑶长调。有人认为:五十八字以内为小令,五十九至九十字为中调,九十一字以外为长调。这种方法是明朝人强加上去的,并不科学。宋人将词分为令引近慢四种,然而这种方法也有缺点,就是分类并不十分清晰。简单地说,令即小令,引和进约等于中调,慢词就是所谓的长调。(蝶恋花60字,江城子70字,但在宋朝都属于令词) 敦煌曲子词中,已经有一些中调和长调。宋初柳永写了一些长调。苏轼、秦观黄庭坚等人继起,长调就盛行起来了。长调的特点,除了字数较多以外,就是一般运用韵较疏。

    编辑本段词题

      前人作词时加于词前的题目。词这种文学体裁初出现时,词调与词题基本上是合一的。后来,词的内容逐渐与词调脱离,光有词调不足以表明该词的内容,这才另加词题,这大约从宋代开始。如苏东坡的《更漏子》(词调名),外加《送孙巨源》,说明该词为何而作,这后者就是词题。

    编辑本段词牌

      词牌,就是词的格式的名称。词的格式和律诗的格式不同:律诗只有四种格式,而词则总共有一千多个格式(这些格式称为词谱)。人们不好把它们称为第一式、第二式等等,所以给它们起了一些名字。这些名字就是词牌。有时候,几个格式合用一个词牌,因为它们是同一个格式的若干变体;有时候,同一个格式而有几个名称,那只因为各家叫名不同罢了。
      关于词牌的来源,大约有下面的三种情况:
      

    ⑴本来是乐曲的名称。例如《菩萨蛮》,据说是由于唐代大中初年,女蛮国进贡,她们梳着高髻,戴着金冠,满身璎珞(璎珞是身上佩挂的珠宝),象菩萨。当时教坊因此谱成《菩萨蛮曲》。据说唐宜宗爱唱《菩萨蛮》词,可见是当时风行一时的曲子。《西江月》、《风入松》、《蝶恋花》《钗头凤》等,都是属于这一类的。这些都是来自民间的曲调。
      ⑵摘取一首词中的几个字作为词牌。例如《忆秦娥》,因为依照这个格式写出的最初一首词开头两句是“箫声咽,秦娥梦断秦楼月”,所以词牌就叫《忆秦娥》,又叫《秦楼月》。《忆江南》本名《望江南》,又名《谢秋娘》但因白居易有一首咏“江南好”的词,最后一句是“能不忆江南”,所以词牌又叫《忆江南》。《如梦令》原名《忆仙姿》,改名《如梦令》,这是因为后唐庄宗所写的《忆仙姿》中有“如梦,如梦,残月落花烟重”等句。《念奴娇》又叫《大江东去》,这是由于苏轼有一首《念奴娇》,第一句是“大江东去”。又叫《酹江月》,因为苏轼这首词最后三个字是“酹江月”。
      ⑶本来就是词的题目。《踏歌词》咏的是舞蹈,《舞马词》咏的是舞马,《欸乃曲》咏的是泛舟,《渔歌子》咏的是打鱼,《浪淘沙》咏的是浪淘沙,《抛球乐》咏的是抛绣球,《更漏子》咏的是夜。这种情况是最普遍的。凡是词牌下面注明“本意”的,就是说,词牌同时也是词题,不另有题目了。
      但是,绝大多数的词都不是用“本意”的,因此,词牌之外还有词题。一般是在词牌下面用较小的字注出词题。在这种情况下,词题和词牌不发生任何关系。一首《浪淘沙》可以完全不讲到浪,也不讲到沙;一首《忆江南》也可以完全不讲到江南。这样,词牌只不过是词谱的何罢了,还有《满江红》《丑奴儿》《卖花声》......。

    编辑本段词的分别

      词有单调、双调、三叠、四叠的分别。
      

    不分段称为“单调”,分段称为“双调”“三叠”“四叠”。又叫“片”或者“阕”。“片”即“遍”,指乐曲奏过一遍。“阕”原是乐终的意思。
      单调的词往往就是一首小令。它很象一首诗,只不过是长短句罢了。

    编辑本段词的派别

      词基本分为:婉约派豪放派两大类。婉约派的代表人物:李煜.,晏殊,柳永,秦观,周邦彦,吴文英,李清照,纳兰性德, 晏几道,姜夔等。豪放派的代表人物:辛弃疾,苏轼,岳飞,陈亮,陆游等。(现有雅、俗词之分)明代徐师把词的形式概括为:“调有定格,句有定数,字有定声。”婉约派的风格特点:婉约,婉转含蓄之意。婉约词派的特点,主要是内容侧重儿女情长。结构深细缜密,重视音律谐婉,语言圆润,清新绮丽,具有一种柔婉之美.内容比较狭窄。豪放派的风格特点:气魄大而无所拘束之意。豪放派的特点是题材广阔。它不仅描写花间月下,男欢女爱,而且更喜摄取军情国事那样的重大题材入词,使词能想诗文一样地反映生活。它境界宏大、气势恢弘、不拘格律、崇尚直率,而不以含蓄婉曲为能事。

    编辑本段词学名词

      【词】:起于五代与唐,流行于宋的一种文学体裁。
      【曲子词】:唐与五代时词被称为曲子词。
      【雅词】:宋以后词调由俚俗转为要求雅正,称为雅词。
      【艳词】:相对于雅词而言。
      

    【侧艳词】:即艳词。
      【近体乐府】:“近体乐府”是北宋人给词的定名,
      【寓声乐府】:自创新曲,而寓其声于旧调。
      【大词】:宋人以慢曲为大词。
      【小词】:宋人以令、引、近为小词。
      【南词】:北方人称词为南词,以区别于北词(曲)。
      【南乐】:元人也称词为南乐。
      【长短句】: 在宋代以后,可以说长短句是词的别名,但是在北宋时期,长短句却是词的本名;在唐代,长短句还是一个诗体名词。
      【诗余】: 南宋初,有人编诗集,把词作附在后面,加上一个类目,就称为“诗余”
      【琴趣】:后人以“琴趣”为词的别名
      【叶】:凡词谱中注有叶字者,即与上句所押之韵,同属一部,而不变换他韵(关于是否一部,请检用词韵)。
      【韵】:凡词谱中注有韵字者,即每阕词中,起首押韵之处。
      【句】:凡词谱中注有句字者,即不押韵之句。
      【豆】:凡词谱中注有豆字者,即一个字为句的顿逗处,通常又叫一字豆。又称“读”(仍读作“豆”)。
      【换】:凡词谱中注有换平者,必其上句皆押仄韵,至此则换平韵。或上句皆押平韵,至此另换一平韵,亦称换平。凡词谱中注有换仄者,必其上句皆押平韵,至此则换仄韵。或上句皆押平韵,至此另换一平韵,亦称换仄,既换平韵之后之后,又换仄韵。与上文之仄韵不同一部者,谓之“三换仄”。同属一部者,称为“叶仄”。既换仄韵之后之后,又换平韵者,亦同此例。
      

    【叠】: 叠字的意义是重复。故词家一般都以一首词的下片为叠。
      凡词谱中注有叠字者,有四处区别:一,叠句,如如梦令,如梦如梦。二,叠字,如忆秦娥后前后第三句起三字皆叠用第二句之尾三字。三,倒叠字,如调笑令,下片起首例叠上片最末二字,且二字倒转。四,叠韵,如长相思,起二句,君泪盈,妾泪盈,二句韵同。
      【阕】:一首词称为一阕,这是词所特有的单位名词。
      【变】:每一支歌曲,从头到尾演奏一次,接下去便另奏一曲,这叫做一变。
      【遍】: “变”字用到唐代,简化了一下,借用“徧”字,或作“遍”字。词的上下可称为上下遍,或上下片,或上下段。
      【徧】:即遍。
      【片】:在南宋,遍字又省作“片”字。词一般分上下两阕,上阕叫上片,下阕叫下片。
      【段】:与片、遍同义。
      【拍】:韩愈给拍板下定义,称之为乐句。
      【么】:一首词的下遍。
      【结拍】:词的结尾处,谓之结拍。但结拍井非结句。
      
      

    【歇拍】:即结拍
      【换头】:词从单遍发展为两遍,凡是下遍开始处的句式与上遍开始处不同的,这叫做换头。
      【过腔】:即换头。
      【过】:即换头。
      【过片】:即换头。
      【过变】:即换头。
      【过处】:即换头。
      【过拍】:即换头。
      【重头】:一首令词,上下叠句法完全相同的,称为“重头”,“重头”只有小令才有。
      【双曳头】:三叠以上的词,第二叠与第一叠句式、平厌完全相同,形式上好似第三叠的双头,故名之曰双曳头。
      【转调】:一个曲子,原来属于某一宫调,音乐家把它翻入另一个宫调,节奏既变,歌词亦变,便出现带“转调”二字的词调名。
      【双调】:元明以来,一般人常把两叠的词称为“双调”。
      【促拍】:所谓“促拍”,就是乐曲节奏的改变,不过从歌词的字句之间是看不出来的。
      【偷声】:一首词的曲调虽有定格,但在歌唱之时,还可以对音节韵度,略有增减,减叫做偷声,与移宫转调有关。
      【减字】:即偷声。
      

    【添字】:一首词的曲调虽有定格,但在歌唱之时,还可以对音节韵度,略有增减,增叫做添字,与移宫转调有关。
      【摊破】:即添字。
      【大拍】:宋人以音繁词多的曲调为大拍。
      【近拍】:以旧曲翻成新调,亦可以称为近拍。
      【近】:即近拍。
      【令】:唐代人称小曲为小令。
      【慢】:歌声延长,唱得迟缓。
      【引】:宋人取唐五代小令,曼衍其声,别成新腔,名之曰引。
      【犯】:犯调的本义是宫调相犯。
      【大曲】:大曲以许多曲子连续歌奏,少的也有十多遍,多的可以有几十遍。
      【摘遍】:从大曲中摘取其一遍来谱词演唱,称为摘遍。
      【遍】:即摘遍。
      【序】:大曲的第一部分是序曲。序曲有散序、中序,中序又称为拍序。
      【歌头】:大曲歌遍之第一遍,谓之歌头。
      【曲破】:大曲中序(即排遍)之后为入破
      【中腔】:所谓“中腔”,可能也就是中序的一遍。
      【填词】:先有乐曲,然后依这个乐曲的声调,配上歌词。宋元以来一般人则通称“填词”。
      【倚歌】:即填词。
      【倚声】:即填词。
      【填腔】:宋人为歌词作曲,称为“填腔”。
      【自度曲】:通晓音律的词人,自写歌词,又能自己谱写新的曲调,这叫做自度曲。
      【自制曲】:即自度曲。
      
      

    【自度腔】:即自度曲。
      【自过腔】: 所谓“过腔”者,是从此一腔调过入另一腔调,所谓“过腔”,仅是音律上的改变, 并不影响到歌词句格
      【领字】:于词意转折处,使上下句悟结合,起过度或联系作用的字。
      【词题】:宋以后,词的内容、意境和题材都繁复了。有时光看词的文句,还不知道为何而作。于是作者有必要给加一个题目。
      【词序】:写在词牌[或词牌和词题]下面的文字,一般都比较简短,用来说明写作的背景、原因等等。
      【小令】:明人以58字以内为小令。
      【中调】:明人以59字至90字为中调。
      【长调】:明人以91字以上为长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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