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에서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에게 약탈당했다가 돌아온 외규장각의궤(外奎章閣儀軌)의 반환행사가 열렸다.
외규장각의궤 190종 297권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145년 만에 돌아오자 이명박 대통령은 “외규장각의궤 반환이 시발점이 되어 우리 역사를 복원하는 데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하루 전인 10일에는 한국과 일본의 도서협정이 발효되면서 식민지시대 일본으로 반출됐던 조선왕실의궤 등 1205권의 도서가 올 12월 10일까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거행된 여러 의식의 과정을 그림과 함께 설명을 소상하게 붙여놓은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의례와 관련한 기록이 있지만 의궤는 혼사나 장례, 잔치, 건축 등 행사기록을 훨씬 더 자세하게 기록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7년 팔만대장경과 함께 조선왕실의궤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다음 달 19일부터 9월 18일까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의궤’라는 제목으로 특별기획전시회가 열린다. 이 전시회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의궤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번역하는 일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고전번역원은 의궤 번역을 계획하고 있다. 한글로 번역해, 돌아온 유산에 숨결을 불어넣어야 진정한 반환이 마무리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서울 구기동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박재영(46), 김기빈(54), 오세옥(53) 연구원을 만났다.
-외규장각의궤 번역이 왜 필요한가.
“(박재영) 의궤가 145년 만에 귀환했다. 하지만 의궤는 한문으로 만들어졌다. 의궤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의궤를 작성한 선인들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김기빈) 괜찮은 박물관에 가봐라. 동양화의 경우 그림에 글이 써진 경우가 많다. 휘갈겨 쓴 한자도 알아볼 수 있게 한자로 옮겨놓고 그 옆에 한글 번역도 달아놓는다. 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작가가 글을 쓴 느낌도 함께 느껴보라는 것이다. 의궤번역 역시 마찬가지다. 번역을 해놓지 않으면 그냥 그림책에 불과하다. 무슨 뜻인지 알아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의궤라는 게 일반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박) 의궤는 국가에서 행하는 모든 행사에 대한 종합기록보고서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행정기관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 준비, 논의과정이 모두 기록돼 있다. 왕실사나 생활풍속사, 사회경제사, 미술사, 음악사 등을 망라한다. 조선시대 역사연구의 기초 사료다. 21세기는 문화콘텐츠 시대라 하는데 바로 1차 자료가 의궤다.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우리 문화콘텐츠가 풍성해진다. 이를 가공해 콘텐츠로 개발해 상품화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한 뒤 수많은 사극이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만 봐도 의궤를 번역한다면 많은 문화콘텐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 시절인 1972년부터 번역이 시작돼 1994년 4월 마무리됐다.)
-지금까지 의궤는 얼마나 번역됐나.
“이번에 돌아온 외규장각의궤를 포함해 국내에 640종 정도 있다. 권수로는 약 700권이다. 그중 1970년대부터 산발적으로 번역해 놓은 게 조금 있다. 37종(42권)인데, 전체의 5%가량 될 것이다. 번역원에서 번역한 것은 5종(8권)이다.”
-그럼 나머지 640여종 의궤를 다 번역해야 하나.
“그럴 인력과 시간도 없다. 돈도 많이 든다. 1권 번역하는 데 대략 8000만원가량 든다. 1년에 연구원 한 명이 많이 해봐야 1권에서 1.5권 정도 번역할 수 있다. 돈을 쏟아 붓는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럴 만한 인력도 없다. 일단 640종 중에서 정말 번역이 필요한 게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니 500종정도 되는 것 같다.”
-올해 그럼 외규장각의궤를 번역하나.
“그건 아니다. 시범적으로 사직(社稷)서의궤를 번역 중이다. (사직서의궤는 1783년 정조의 명으로 사직의 제도와 의식절차, 관련행사 등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버전에 따라 5∼6권으로 돼 있는데 한글로 번역할 경우 400쪽짜리 두 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봄에 출간될 것이다. 예산이 확보되면 2014년 본격적으로 번역이 시작될 것이다.”
-의궤 번역이 왜 그리 안 돼 있나.
“1995년인가 의궤에 대한 번역계획이 세워졌지만 무슨 이유인지 추진이 되지 않았다. 창피한 얘기지만 박병선 선생(역사학자로 외규장각의궤를 처음으로 프랑스국립박물관에서 찾아냈다)이 의궤의 존재를 국내에 알리기 전까지 기초적인 조사도 없었다. 이후 서울대 한영선 명예교수가 1995년 규장각에 있던 의궤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정리한 것이 의궤 조사의 시초나 다름없다. 그러니 번역도 늦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최근에 외규장각의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번역작업도 해보자는 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전에는 예산지원도 없고 필요성을 공감하지도 못했다.”
-외규장각의궤와 일본에 있는 조선왕실의궤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외규장각의궤는 297권이 유일본은 아니다. 대부분은 서울대 규장각과 창경궁 장서각에 같은 버전이 있다. 유일본은 18종(30권)이다. 반면 일본에서 반환할 것으로 알려진 조선왕실의궤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일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궤 자체로는 일본에 있는 것이 학술적 가치는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모두들 소중한 우리 문화재 아닌가. 의궤는 손으로 일일이 쓴 필사본이다. 보통 4∼12권가량 제작한다. 왕이 보는 어람용, 의정부와 같은 행정기관용, 오대산사고로 보내는 용도 등이 있다. 정조 때 일부를 외규장각에 보관한 것이 외규장각의궤다. 1907년 일제가 의궤를 전부 모아 지금의 서울대에 해당하는 경성제국대에 보관했다. 그중 일부는 일본으로 빼돌려졌다. 그게 궁내청에서 보관중인 조선왕실의궤다. 나머지는 창경궁 장서각과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김기빈, 오세옥 연구원은 번역원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고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일하나.
“(김) 한문학이나 국사학,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이 온다. 예전에는 지구과학을 전공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 책 중에 과학서적도 있다. 그런 것을 번역할 때는 아무래도 한문만 잘해서는 안 되고 과학지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
(오세옥) 국문학을 전공하던 나는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배웠다. 1997년 발간된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 번역작업에 참여하면서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번역 중 어려움은 없나.
“(오) 의궤는 기록집합체다. 음악, 미술, 무용 등 전문분야가 많다. 악기와 같은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음악은 참고할 만한 서적이 많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번역을 해서 거기서 참고를 많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김) 사직서의궤 번역과정에서 검증을 하려고 종로에 있는 사직단에 가서 눈으로 위치도 살피고 비교해 보기도 했다.”
고전번역원 건물은 누추하다. 낡은 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겨울에는 난방시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석유난로를 이용한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샌다.
지난해 기준 정규직 직원은 76명. 여기에 계약직 등 비정규직 인원 21명을 더하면 97명이 전체 직원 수다. 그나마 번역작업이 가능한 연구원은 50명 내외다. 2009년 이들의 평균 연봉은 3690만원.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한국산업은행의 지난해 평균연봉이 9150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초라한 액수다.
하지만 이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2014년부터 2039년까지 25년에 걸친 방대한 사업을 계획 중이다. 인건비 251억원에 사업비 385억원, 연인원 500명이 투입되는 작업이다. 박재영 연구원은 “고전번역은 바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도로와 항만을 만들어야 공장 건설이 가능하듯 훌륭한 기록유산을 번역해 한글화해야 이를 바탕으로 학술연구와 일반 국민의 문화수준도 높아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