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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과 문화의 고장 악양루에 올라 동정호를 한눈에. 후난성 웨양

굴어당 2011. 8. 20. 17:22

웨양(岳陽)은 후난성 북부에 있는 후난성 제2의 도시로서, 동정호(둥팅호·洞庭湖)로 인해 생겨났고 동정호와 함께 25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동정호가 제공하는 풍부한 수산물을 바탕으로 후난 음식의 한줄기를 이루고 있는 지방이기도 합니다.
   
   동정호는 후난성 남부에서부터 흘러오는 샹수이(湘水), 쯔수이(資水), 완수이(沅水), 리수이(澧水)가 차례대로 만나면서 만들어진 엄청나게 넓은 내수면입니다. 동정호는 넓이가 2820㎢라 하니, 서울의 4.5배, 여의도의 330배가 넘습니다. 이렇게 합쳐진 물이 동정호 동북쪽의 웨양 부근에서 창장(長江)과 합류해서 동으로 흘러가게 되지요.
   
   이렇게 넓은 동정호의 다양한 수산물과 천혜의 조건 속에서 생산되는 미곡으로 인해 웨양은 예로부터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고 불렸습니다. 동정호 남북으로 자리잡은 넓은 평원지대는 연 강수량이 1300㎜가 넘어 쌀 생산의 최적지입니다. 웨양 여행의 중심이 동정호이고, 웨양 여행 하면 동정호를 바라보는 악양루(岳陽樓)가 제일 먼저 손에 꼽히는 이유입니다.
   
   
   오나라 노숙이 수군을 지휘하던 곳
   
   악양루는, 최초에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노숙이 이곳 동정호에서 수군을 지휘하고 열병했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열군루(閱軍樓)라 불렸습니다. 당나라 이전까지는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습니다. 이 지역의 전란이 잦아든 당나라 시대부터는 동정호를 조망하고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거나 연회를 여는 등의 문화 명소가 되었습니다. “천하제일의 동정호, 천하제일의 악양루(洞庭天下水,岳陽天下樓)”란 말이 바로 이런 것들을 압축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악양루에서 동정호를 바라보면서 읊은 시문을 한두 개 찾아보는 것도 악양루에서 즐길 수 있는 인문기행이 되겠지요. 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은 이곳에서 자신의 일생을 마쳤고, 두보는 병으로 쇠잔해진 몸을 이끌고 악양루에 올라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시를 남기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양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이백·한유·백거이·맹호연·육유·구양순 등 저명한 시인들 역시 많은 시부(詩賦)를 악양루에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송대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가 제일 유명한데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거워 할 것이니(先天下之憂而憂 后天下之樂而樂)”라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한 구절과, “먼 산을 머금고 긴 강을 삼켜, 넓고 넓어 막힘이 없어 물가에 끝이 없다(銜遠山 呑長江 浩浩蕩蕩 橫无際涯)”고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구절이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곤 합니다.
   
   악양루는 후베이성 우한(湖北武漢)의 황학루(黃鶴樓), 장시성 난창(江西南昌)의 등왕각(滕王閣)과 함께 강남 3대 명루로 꼽혀왔습니다. 세 곳 모두 강의 풍광이 뛰어납니다. 현재의 악양루는 1984년 중수한 것으로 청조 말기에 지어졌던 것을 원형으로 하여 복원했습니다. 네 귀퉁이가 높이 쳐들린 비첨(飛䄡)이라고 하는 처마가 멋들어집니다. 악양루 경내에는 당·송·원·명·청(唐·宋·元·明·淸) 다섯 왕조 당시의 악양루를 청동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 시대 건축의 차이를 약간은 느껴볼 수도 있습니다.
   
   
   청석판 골목길 따라 시간여행
   

▲ (좌) 샤오난팡 차오바위위관의 차오바위 요리. 동정호에서 나는 민물생선을 매운 양념에 조린 요리다. (우) 샤오난팡 차오바위위관의 두부 요리


   이 악양루를 구경하려면 동정호 호숫가의 바링광장(巴陵廣場)에서 동정호 호숫가를 따라 만들어진 옛 상가인 볜허제(汴河街)를 따라 500여m를 걸어가야 합니다. 이 볜허제는 가운데의 골목길, 호수를 보면서 걷는 길, 반대편의 길까지, 세 갈래 길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길가의 가옥들도 고풍스럽고 청석판을 깔아 놓은 골목길도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가운데 골목길에는 직경 1.9m 정도의 800여년이나 된 자미수(紫薇樹)를 볼 수도 있고, 곳곳의 빈 공간에서는 아마추어들이 자유롭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전통음악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악양루를 감상하고 시간을 되돌아 나오는 볜허제에서, 동정호가 제공해주는 풍부한 민물고기로 만든 맛있는 생선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민물생선 요리 전문식당을 위관(魚館)이라고 하는데, 위관이란 간판을 여러 개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현지에서 평판이 좋은 곳을 하나 추천하자면 볜허제의 샤오난팡 차오바위위관(小南方俏巴魚魚館)입니다.(주소 볜허제 8호, 문의 0730-829-6999)
   
   이 식당은 동정호에서 나는 차오바위(俏巴魚)로 요리를 하는데 식당 이름도 생선 이름을 따서 차오바위위관이라고 지었네요. 요리는 생선 차오바위를 소금에 절였다가 살짝 말려서 고추와 생강·산초 등 매운 양념을 풍성하게 넣고 뭉근한 불에 국물이 자작할 정도로 조려낸 것입니다. 절인 생선을 쓰기 때문에 짠맛이 깊고도 은은합니다.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쿠과(苦瓜)를 계란과 함께 볶은 쿠과차오지단(苦瓜炒鷄蛋)은 함께 곁들여서 맛볼 만합니다. 쿠과의 모양은 오이와 비슷하고 맛은 씀바귀를 닮았지요. 쿠과를 잘 씹어보면 입안에서 쓴맛이 싹 돕니다. 여름에 먹으면 더위를 물리치고 피로를 풀어주며 피부를 촉촉하게 해 줍니다. 계란의 부드러움은 쿠과에서 나오는 경쾌한 쓴맛과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쓴맛은 후난 음식의 특색 가운데 하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빈민촌에 둘러싸인 당나라 고탑
   

▲ (좌) 가오펑쉬안스푸의 고기고추볶음 (우) 샤오난팡 차오바위위관의 입구


   식사를 하고 나오면 바링광장에서 웨양 시민들의 일상의 휴식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해가 지면 이른 저녁을 마친 시민들이 유모차를 끌고 가족과 함께, 또는 연인이나 친구들과 느릿한 걸음으로 동정호의 석양을 감상하곤 합니다. 이 광장의 호숫가 쪽에서 출발하는 동정호 유람선을 탈 수도 있습니다.
   
   바링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둥팅난루(洞庭南路)가 있는데, 이 길은 남쪽으로 걸어갈수록 점점 더 허름해지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 약 800m 정도를 가면 우측에 우뚝 솟은 고탑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당나라 시대 자씨탑(慈氏塔)입니다. 너무 낡아서 탑신의 벽돌이 가끔씩 떨어지기도 하고, 탑을 포위한 듯 탑신 1m 거리까지 가난에 찌든 벽돌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유적지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서민의 힘겨운 일상생활이 고탑을 완전히 둘러싸버린 꼴입니다. 입장료를 내야만 볼 수 있었던 다른 유적과 달리 빈민촌에 겹겹이 둘러싸인 옛 탑을 보는 느낌이 아주 묘합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번성했던 과거와 빈곤한 오늘이 묘하게 교차하는 것을 느껴볼 수 있으니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층 건물이 전부 식당인 가오펑쉬안스푸
   
   웨양에서 좀 고급스러운 식당을 찾는다면 바링중루(巴陵中路)에 있는 가오펑쉬안스푸(高朋軒食府)를 권할 수 있습니다. 이 식당은 웨양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라서 택시기사에게 이름만 말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문의 0730-825-7777)
   
   3층으로 된 단독 건물이 전부 식당입니다. 1층은 홀이고 2, 3층은 방들로 되어 있습니다. 메뉴는 세련되지만 음식 사진이 없는 탓에 약간 불편합니다. 종업원들이 아주 친절해서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고기보다 고추가 많이 들어간 볶음 요리가 좋습니다. 또한 앞에서 후난성 음식으로 소개해온 것들을 주문하면 훌륭한 만찬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식당에서의 만찬이라면 복어탕(河豚滋補湯)이나 톈마둔라오거(天麻燉老䧻)라고 하는 탕을 꼭 맛보시기 바랍니다. 1인분의 작은 그릇이 각각 38위안, 28위안이니 비싼 축에 속하지만 그 값을 충분히 합니다. 천마를 넣고 비둘기 고기로 끓여낸 톈마둔라오거는 맛이 담담한 가운데 입안에서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끔 탕에 감동을 할 때가 있는데,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조용한 감동의 물결이 온몸으로 퍼진다고나 할까요. 중국에서는 비둘기도 엄연이 요리의 재료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맛보시길.
   
   
   매운맛의 고장 후난성을 떠나
   

▲ (좌) 가오펑쉬안스푸의 탕요리 (우) 후난성 백주


   화제가 많은 매운맛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후난성에서 네 편에 걸쳐 매운맛을 즐겨봤으니 이제 다음 지방으로 떠날 때가 됐습니다. 후난성을 떠나면서 매운맛에서 비약하여 역사를 음미해볼 수 있는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겠습니다. 중국어 초급이나 중급 수준의 음식과 관련된 단원에서, 둥라시쏸난톈베이셴(東辣西酸南甜北咸)이란 구절을 배우게 됩니다.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고,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다는 말입니다. 중국 각 지방의 음식 특징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중국에서 매운맛은 서남부의 후난성과 쓰촨성이 대표적인데 왜 동쪽이 맵다고 했을까요?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여기서의 동쪽은 후난이나 쓰촨이 아니라 산둥지역을 말하는데 파와 마늘과 양파를 많이 써서 맵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서 동서남북의 중심은 중원이고, 한족의 조상인 화하족(華夏族)이 살던 허난성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보면 동쪽이 산둥성이고 서쪽이 산시성(山西省) 남부와 산시성(陝西省), 남쪽은 창장 중하류 유역이었습니다.
   
   그러니 후난이나 쓰촨은 동서남북이 아닌, 그 바깥이었습니다. 한족들은 자신들의 세계 바깥에 있는 민족들을 동이서융남만북적(東夷西戎南蠻北狄)이라 하면서 ‘오랑캐’라고 한 것이지요. 후난도 고대에는 삼묘(三苗)에 속하는 남만(南蠻)이었고 ‘원래의 중국’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중국은 왜 후난과 쓰촨뿐 아니라 신장과 티베트와 동북만주까지 포함하고 있을까요. 왜 우리는 동쪽 오랑캐란 소리를 들었고, 심지어 몇몇 사람은 스스로 동쪽의 오랑캐라고 자처하기까지 했을까요. ‘원래의 중국’은 어디까지였고 ‘원래의 우리’는 어디였을까요. ‘오늘의 중국’은 ‘원래의 중국’이 아니고, ‘오늘의 한국’은 ‘원래의 한국’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중국의 처지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음식을 주제로 중국 각지를 여행하지만, 한번쯤은 이런 동아시아의 역사 담론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이제 이 중국 음식 기행은 후난성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장시성(江西省)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