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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줄줄 외고 박지원·정약용 강의.파란 눈의 동양학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굴어당 2011. 10. 15. 19:57

“인문학 실종된 한국 술 마시듯 책 읽으세요!”

고사성어 줄줄 외고 박지원·정약용 강의
파란 눈의 동양학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질문 하나 해보자.
   
   제시문: 중국어·일본어·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한문 도사인 벽안의 서양인이 있다면?
   

 

 

 

질문 하나 해보자.
   
   제시문: 중국어·일본어·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한문 도사인 벽안의 서양인이 있다면?
   
   이 질문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국적을 불문하고 “언빌리버블(Unbelievable·믿을 수 없다)!”일 것이다.
   
   강도를 더 높여보자.
   
   질문: 예일대 학사와 도쿄대 석사, 하버드대 박사 출신으로 국립대만대와 서울대에서도 공부하고 영어·중국어·일본어·한국어로 논문을 쓰고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영어로 번역하고 해설까지 다는 사람이 있다면?
   
   반응: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교수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한국인 아내를 둔 그는 장인이 지어준 이만열(李漫烈)이라는 한국 이름을 명함에 한자로 파서 가지고 다닌다. 그는 동서고금과 문·이과를 넘나드는 박람강기(博覽强記)형의 세계적 석학이다. 그가 쓴 영문 책들은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등 세계적 명문대에서 교재로 채택되고 있다. 그는 지난 1학기에 과학기술정책을 강의했고 이번 학기에는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을 영어와 한국어로 강의하고 있다. 그가 경희대가 ‘인문학의 부활’을 목표로 야심차게 개설한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융복합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교수는 최근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부제가 ‘하버드 박사의 한국 표류기’인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에세이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성찰이 돋보인다. 지난 10월 5일 서울시청 부근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할아버지가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인 유대인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뉴욕에서 태어나 유럽의 고전음악을 전공했고 어머니는 룩셈부르크 태생으로 프랑스어 교사였다. 아버지는 뉴욕 태생으로 16세 때 하버드의 입학 허가서를 받았지만 포기하고 예일대 영문과로 갔다. 대학을 졸업한 후 파리로 떠나 전혀 다른 음악 분야로 방향 전환을 해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의 교향악단 이사장으로 있다. 이 교수의 이모는 룩셈부르크 첫 여성 대법관을 지냈을 정도로 외가도 명문이다.
   
   
    “내 뿌리는 아시아”
   
   아시아와의 인연은 뿌리가 깊다. 어머니의 첫 결혼 상대가 인도에서 차 농장을 경영하는 영국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 남자와 결혼해 5년 정도 인도에서 살았다. 이 교수는 “어릴 때 인도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혼 후 이 교수의 부친과 결혼해 이 교수를 낳았다. 그러나 이 교수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고 이 일은 독립심을 키워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해 로웰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전교 학생의 70%가 아시아계였다. 미국 속의 아시아 학교라 할 만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아시아인과의 만남이 백인과의 만남보다 더 편하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부터 아시아 전문가를 지망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집안은 서양의 지적 전통에 충실했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예일대 진학 후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려고 마음먹고 프랑스 비교문학을 수강했다. “당시 유럽 문학만이 지식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회의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문학 강의 시간표가 눈에 들어왔고 곧장 담당교수 연구실로 달려가 중국 고전문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동아시아 입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국과의 인연은 1994년 봄에 한국으로 와서 6개월 동안 서울 신촌의 연세어학당에 다니며 한글을 배운 것으로 시작했다. 그해 가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관악사(서울대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중국과 일본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까닭이 있다. 그는 1996년 초 한국에서 운명의 상대 이승은씨(중앙대 국악과 졸업)를 만나 이듬해 11월 결혼해 한국 이름을 받고 ‘이 서방’이 됐고 아이 둘을 낳았다.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애정을 갖는 나라는 자연히 처가 나라인 한국이 됐다. 결혼 사유가 특이하다. “집사람은 또래 젊은 한국 여성들과 달리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게 좋아 보였어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학식
   
   그는 2004년에 연암 박지원의 단편 한문소설 10편을 영어로 번역했다. 이 결과물은 올해 서울대 출판문화원에서 ‘The Novels of Park Jiwon’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10년 전에는 다산 정약용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영어로 번역했다.
   
   그는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높이 평가한다. “국립대만대와 도쿄대에서 중국의 홍루몽이나 민화소설들을 관심 있게 봤는데 이 소설들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은 작품들이 연암의 소설과 김만중의 ‘구운몽’ 같은 작품입니다.” 그는 “연암이 18세기 조선 사회의 모순을 작가 나름의 유쾌한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 와 닿았다”고 말했다.
   다산에 대한 그의 찬사는 최상급이다. “시대를 읽고 미래를 통찰하는 다산의 혜안과 글들은 그 자체가 바로 하나의 국보입니다. 아이들에게 조선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 봐도 너무 신선합니다.” 그는 “한국에 와서 거듭 안타깝게 느끼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한국 역사 교육에 대한 인식의 부재였다”고 말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학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꿈을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도연명의 도원경이 나오고 그리스신화의 낙원 엘리시온이 나오고 19세기 초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 쓴 ‘립 밴 윙클’이 나온다.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을 읽으면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리고, 파우스트를 보면 저절로 선계에서 한탄하는 성진(구운몽의 주인공)이 오버랩된다.
   
   특히 이 교수의 동양학에 대한 조예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하긴 그만큼 동아시아와 미국·유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영혼의 소유자가 있을까. 그는 한국인들에게 오히려 고사성어를 알려준다. 그는 이번에 낸 책에서 ‘착벽인광(鑿壁引光)’이라는 고사성어를 들려준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광현이란 사람의 이야기다. 광현은 훗날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의 집안이 가난해 밤에 책을 읽으려고 해도 등불을 켤 기름이 없었다. 고민 끝에 이웃집의 벽에 몰래 구멍을 뚫어 거기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독서를 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이만열 교수의 저서들

그는 동서고금의 인문학에 관심이 많지만 고등학교 때는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세상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고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대입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화학클럽’과 ‘천문학클럽’ 활동을 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지난 4년간 과학기술 정책을 주제로 기고를 활발하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인문학이 죽은 학문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준다고 강조한다. 우송대 솔브릿지국제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경영학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그는 진정한 리더십을 이해시키기 위해 중국 문학과 역사 속의 리더십이 현실에 어떻게 대입되는지 연구했다. ‘주원장의 오리’ 고사를 들었다. “주원장은 라이벌 장사성의 부대를 포위하기 위해 몰래 적의 후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좁은 계곡의 한가운데에 산오리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이 오리를 위해 작전을 포기하고 오리가 부화해 어미와 함께 비킬 때까지 여러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미 작전은 적에게 노출돼 주원장은 수세에 몰렸다. 그런데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적의 장수들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투항하는 것이었다. 천하패권을 다투는 전쟁에서 한낱 오리의 생명을 위해 작전을 포기할 정도의 인간적인 장수라면 자기들의 미래를 맡길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듯하다. 그는 “한국은 장점이 많은 나라인데 한국인들이 자신의 좋은 점을 잘 모르고 자신감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애정어린 충고도 서슴지 않는다. 책 제목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처가 나라 한국의 국민에게 던지는 충언(忠言)이다. 속도에만 집착하는 우리네 모습이 투영돼 가슴이 뜨끔했다. “그동안 한국인들이 술 마시듯 책을 읽었다면 한국은 지금쯤 세계 최고의 인문학 국가가 돼 있을지 모릅니다. 내가 요즘의 한국인들에게 바라는 건 인문학을 위한 독서 이전에 선비정신부터 갖추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인이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문화, 경제, 예술, 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세계의 중심 무대로 옮아왔습니다. 이제 한국을 둘러싼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중동과 유럽, 미국까지 한국에 대해 이해하고 그 힘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정책이나 기술을 파고들어 연구하고 있어요.”
   
   한국의 대학교수인 그는 “전체적으로 한국 대학들이 미국보다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다만 계층별 차이는 있는 듯합니다. 미국 대학들의 상위 10%는 한국의 상위 10%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수준이 높아요. 그런 점에서 한국의 상위 10%가 글로벌 시대의 세계를 리드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한번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인문학에 길이 있다
   
   2011년 미국의 구글은 신입 사원을 채용하면서 경영학, 공학 등의 학문 영역을 배제하고 인문학을 공부한 학생들로 전체의 6분의 5를 채웠다. 그는 “미래 사회는 이렇게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보다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20년간 문학, 역사, 예술에 대한 공부가 이 분야와는 무관한 평범한 독자들에게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문학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본질적인 면에서 매우 실용적이고 유용한 학문이기 때문이죠. 인문학 교육이 반드시 지속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은 즉시 돈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급함을 덜어내야 구글이 인문학자들을 통해 성공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국도 그와 같이 될 수 있어요.”
   
   미국 페이스북 본사 사무실 복도에는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Is this a technology company?)’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페이스북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기술을 완성한다고 본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처럼 정보기술(IT)산업의 선두 주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혁신의 비결은 다양한 인문학을 토대로 한 IT 분야의 통합적 연구다.
   
   그는 스스로를 “일반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문화를 즐기는 한국인”이라고 규정한다. “한국의 연예인은 잘 모르지만 한국의 고전이나 다도문화는 여느 한국 사람보다 좋아합니다. 한국의 밥상문화에 익숙하고, 진한 막걸리를 좋아하며, 한국의 문학도 사랑합니다.”
   
   그는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 “된장찌개, 콩나물국, 청국장은 어느 한국인보다 좋아합니다. 하지만 김치의 매운맛에는 아직까지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에 그와 같은 석학이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행운일지 모른다. 구미 쪽에 동아시아 전문가로 라이샤워 교수와 페어뱅크 교수가 있지만 이들은 중국과 일본만 알고 한국은 잘 모르며 한국어도 할 줄 모른다. ‘만행(萬行)’의 저자로 유명한 현각 스님은 그와 예일대·하버드대 동기다. 현각 스님은 추천사에서 “나는 진심으로 임마누엘 같은 교수가 한국에선 더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고유의 정신세계를 잃어가는 한국을 종교가 아닌 인문 교양의 힘으로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만열
   
   1964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출생
   
   1985
   국립대만대 중문과 교환학생
   
   1987
   예일대 중문과 및 전체 우등 졸업
   
   1991
   도쿄대 대학원 졸업(비교문화학 석사)
   
   1995
   서울대 중문과 대학원연구생
   
   1997
   하버드대 겸임교수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겸임교수
   
   1998
   하버드대 대학원 졸업(동아시아언어문명학 박사)
   일리노이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객원교수
   도쿄대 교환교수
   
   2005
   펜실베이니아대 동아시아학센터 객원연구원
   
   2006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겸임교수
   
   2007
   우송대 솔브릿지 국제경영학부 교수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