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느끼곤 합니다. 나라를 떠나봐야 비로소 애국자가 된다는 것이지요. 중국을 여행하면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적지 않지만 랴오닝성의 수도 선양(瀋陽)을 걸으면서 이런 거시적인 자문자답을 해볼 만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혈통으로 한민족이라 하고 국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단면에 역사의 시간 축을 길게 늘리고, ‘한반도와 부속도서’보다 더 넓은 지리적 시각으로 보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북방, 유목민, 만주, 동아시아 등등의 어휘가 나타나게 됩니다. 제 짧은 소견에, 중국에는 중국사(中國史)가 없습니다. 장성으로 벽을 치고 이민족을 오랑캐라고 폄훼하며 안으로만 웅크리던 ‘소중국(小中國)’과, 북방 초원과 삼림에서 발흥해서 대륙을 휘달리며 일찌감치 세계사를 써왔던 ‘동아시아 북방제국’이 교대해온 것이지요.
북방제국의 거대한 흐름을 느끼다
진한(秦漢)과 전면전을 벌였던 유목제국의 선두주자 흉노족, 전면전을 탈피해서 호한(胡漢)을 정치적으로 묶고 혈연과 문화로 융합해서 일궈낸 북위(北魏)와 수당(隋唐)제국의 주인공 선비족, 송나라를 누르면서 최초의 정복왕조로 군림했던 요(遼)나라의 거란족, 세계사에 최초의 세계사를 만들어낸 대몽골제국의 몽골족, 100만의 인구로 1억의 인구와 땅을 지배했던 대청(大淸)제국의 만주족, 이들은 중국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주인공이었고 우리 조상의 사촌쯤이었습니다. 그 반대편에 있었던 중국은 사실상 진한과 남방의 후속왕조들, 그리고 송(宋)과 명(明)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선양에서는 그런 북방제국들의 거대한 흐름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선양의 고궁(故宮)에서 만주족 발흥의 거대한 서사시 대청찬가(大淸讚歌)를 써내려간 기세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선양 북부 외곽으로 가면 천년고성의 유지에 우뚝 남아있는 요빈탑(遼濱塔)을 만날 수 있습니다. 40m가 넘는 탑의 위용에서 거란의 호쾌한 대륙적 기상을 느낄 수 있지요. 어디 오랑캐라는 말을 붙일 여지가 없지요.
농경문화 기질에서 비롯된 것인가, 알게 모르게 우리가 오랑캐라고 폄하하곤 했던 그들이, 북방역사에서 우리가 근접하지도 못했던 거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을 겸허하게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숨겨있는 역사심리학적인 유목민 기질을 잠시 끄집어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지역의 소수 민족을 보면서도 이런 북방제국의 살아있는 흔적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선양에서 인구가 많은 소수 민족은 만주족, 조선족, 후이(回)족, 시보(錫伯)족, 몽골족 등입니다. 만주족은 여진족이 개칭한 민족으로, 만주는 그들의 언어로 현명하다는 뜻입니다. 몽골족도 많은 편입니다. 만주족이 대륙을 지배할 때 청나라 황후는 대부분 몽골여자였는데, 몽골족이 핵심적인 파트너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지요. 칭기즈칸의 후예가 이 지역에 자연스레 남아 있습니다.
두 명이 배부르게 돼지 뼈 뜯고 6000원
- ▲ 장뤄보어. 무 껍질을 벗겨 간장과 식초에 절인 음식이다.
조선족은 바로 우리의 동포들, 주로 식민지 간난고통의 시절에 옮겨간 이민의 후예들입니다. 이미 반세기 가까이 단절되어 살아온 탓에 문화적으로도 다른 요소들이 많아졌고, 국적도 다를 수밖에 없어진, 우리의 귀한 혈족이며 동포들입니다.
시보족(錫伯族)은 우리에게 낯설지요. 이들은 북위와 수당 제국을 건설했던 선비족(鮮卑族) 가운데 북방에 남아 지금까지 그 혈통을 유지하고 있는 선비족의 한 갈래입니다. 시베리아라는 지명은 이 시보란 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울러 거란의 후예인 다워얼족(達斡爾族)도 적은 수이지만 이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대청(大淸) 이후 100년이 지났고 새로운 북방제국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북방제국이 그러했듯이 적은 숫자라도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쳐 강하게 응집한 다음, 넓은 시야를 갖고 개방적 정신과 호쾌한 기질로 주변의 다양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앞으로 나가면 언젠가 어디선가 위대한 북방제국이 다시 발흥할 것이라는 역사심리학적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과연 한국인들은 21세기 초에 이룬 작은 성공을 발판으로 새로운 북방의 기운을 거대한 바람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겨울이라면 차가운 북풍을 맞으면서 여름에는 대륙의 강렬한 햇살을 비껴가면서, 뜨거운 탕에 독한 고량주를 기울이며 음미해 볼 일입니다.
이렇게 대륙의 심장 소리를 느낄 때에는 독한 고량주가 잘 어울리는 북방의 음식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선양에서라면 왕지구터우관(王記骨頭館)을 꼽을 수 있습니다.(주소 鐵西區 滑翔路 36號, 전화 024-2589-6688) 중국의 식당 상호에 기(記)자가 들어있으면 ○○씨라는 말입니다. 이 식당 이름이 왕지(王記)이고, 구터우(骨頭)는 뼈라는 뜻입니다. 이 식당의 대표적 음식은 장구터우(醬骨頭)입니다. 살을 발라내고 남은 돼지뼈를 장에 졸이면서 익혀낸 것입니다. 커다란 그릇에 수북하게 담겨 나오는데, 둘이 넉넉하게 먹을 양으로 32위안(약 6000원)입니다. 뼈 한 접시 가격으로 이 정도면 적당한 것 같습니다. 뼈에 붙어있는 부드러운 살점을 발라가면서 독한 고량주를 한잔 곁들이면 그 호쾌한 기분이 북방의 기운을 되살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아기자기하게 먹는 그런 음식은 아니지요.
이 음식은 유래가 있습니다. 청나라 인종(재위 1796~1820) 시절에 산둥성 원덩(文登)이란 곳에 왕지(王記)라는 꽤 유명한 한의사(郞中)가 있었습니다. 이 왕지가 산속에 들어가 약초를 캐다가 그만 멧돼지에게 공격을 당했지요. 다행히도 한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면했고, 이 사냥꾼이 왕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치료를 해줬습니다. 이 사냥꾼의 어머니는 왕지를 위해 멧돼지 뼈를 삶아낸 탕을 매일 먹여 몸보신을 시켰고 며칠이 지나자 왕지는 회복이 됐습니다.
왕지가 이 노인에게 어떤 신묘한 처방을 했는지 물으니 이 노인은 웃으면서 사냥꾼들이 멧돼지 뼈에 몇 가지 한약재를 넣고 끓여낸 것이라 하더랍니다. 왕지는 오랜 의술 경험으로 볼 때 이게 곧 훌륭한 음식 처방이란 걸 알아차렸지요. 왕지는 집으로 돌아와 그 노인이 언급한 약재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해서 자신만의 장구터우 조리법을 만들어냈답니다. 이후 왕지는 이것을 병자들에게 먹게 했고 많은 효험을 보았답니다.
선양에도 ‘장구터우관’ 분점
- ▲ 정러우피로 불리는 돼지껍데기 요리.
이 보양식이 점점 더 유명해지게 되고 외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아예 이 장구터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구터우관(骨頭館)을 열게 됐고 식당 이름에 왕지(王記)라는 자신의 이름을 넣었답니다.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큰 전란이 닥치자 왕지의 후손인 왕경래(王景來)란 사람이 그 비법을 간직한 채 피란을 갔고 결국 1935년 지린성 창춘(長春)에서 다시 왕지구터우관을 열었습니다. 물론 이 왕지구터우관은 그 맛과 보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당시 만주국의 황제였던 부의(溥儀) 역시 이를 좋아해서 만주국 황실의 요리로도 유명해졌답니다.
창춘에서 계속 영업을 해오던 이 식당은 1999년 선양에 분점을 열었고 현재 선양에서는 화샹(滑翔)과 다둥(大東) 두 곳의 분점만 운영하고 있더군요. 가경 연간에 창업했다고 하니 2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음식이고, 창춘에서 개업한 것으로 보아도 75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선양에서 택시를 타고 이 식당 이름을 말하니 바로 알아듣더군요.
메뉴상에는 몇 가지 종류로 나뉘어 있습니다만, 크게 봐서 방구(棒骨), 지구(脊骨) 등 뼈의 종류에 따라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음식의 종류로 보면 장구터우로 포괄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맛은? 돼지뼈를 장에 넉넉하게 담아 졸인 것 그대로입니다. 돼지고기 고유의 맛에 장의 향기가 잘 어우러집니다. 뼈에 붙은 살이 부드럽게 뜯기는 느낌도 좋지요.
정러우피(蒸肉皮)라고 하는 돼지껍데기 요리도 맛볼 만합니다. 서울에서 먹던 껍데기 구이와는 다르지만 그 부드러운 맛이 훌륭합니다. 감자를 으깬 것으로 만든 투더우니(土豆泥)도 이 식당의 대표적인 음식의 하나로 꼽을 만하고 무의 껍질을 대패질하듯 얇고 길게 벗겨 간장과 식초에 절인 장뤄보어(醬蘿卜)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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