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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영幽夢影, 희미한 꿈의 그림자(청) 장조, 주석수 지음/ 정민 옮김.태학사

굴어당 2011. 12. 19. 06:48

(청) 장조, 주석수 지음/ 정민 옮김
태학사,267쪽, 2001년. 정가 6,000원


유몽영幽夢影, 희미한 꿈의 그림자



한 인생을 살아간다 함은 꾸다만 희미한 꿈의 그림자일 뿐이다. 꿈을 잡을 수 있는가? 그림자를 잡을 수 있을까? 그러나 꿈이 있기에 인생이 그윽한 깊이를 지닐 수 있고, 그림자가 있어 삶에 여백이 깃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책 《유몽영幽夢影》과 《유몽속영幽夢續影》은 청나라 초기의 소품가 장조張潮(1650-?)와 청나라 말기의 주석수朱錫綬가 생활 속에서 떠오른 단상들을 하나 둘 모아 적어나간 청언소품집淸言小品集이다.
‘숨어사는 이의 꿈 그림자’ 쯤으로 옮길 수 있을 특이한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꿈꾸듯 흘러가는 인생의 강물 속에서 언뜻언뜻 실체를 알 수 없이 그림자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상념들을 짤막한 잠언 형식으로 기록해 둔 것이다.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생각의 단서들을 붙들어 여기에 글쓴이의 더운 호흡을 불어 넣었다. 그의 붓끝에서는 주변에 널려있는 사물들이 모두 깨어나 소곤소곤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아무 의미없이 그저 놓여 있던 사물들이 구체적인 의미를 띄고서 다가선다. 그래서 생활이 곧 예술이 되고, 삶이 기쁜 향연이 된다.
《유몽영》과 《유몽속영》은 각각 219개와 86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어 분량은 많지 않지만, 거기에 담긴 내용과 풍격은 참으로 정채로운 정금미옥精金美玉과도 같아서 구절구절이 읽는 이의 폐부를 찌르고 마음을 파고드는 감염력을 지니고 있다. 그 주된 내용은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정취를 음미하고 창조하는 기쁨을 노래한 것과, 일상 체험 속에서 만나는 삶의 철리를 기록한 것이 대종을 이룬다. 이밖에 독서와 작문의 방법과 자질구레한 일상의 취미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유몽영》은 한꺼번에 작정하고 지은 책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 두었다가 모아 엮은 것이다. 여러 기록을 통해 볼 때 30세를 전후한 시기에 시작하여 45세 이전에는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인 장조는 당대의 진보적 문인으로 숨어 사는 사람의 몽경夢境에 가탁하여 허환虛幻한 그림자와 같은 인생의 의미를 되물으며 사람들의 정신을 화들짝 깨어나게 한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인생과 자연을 감촉하여, 불평의 마음과 풍자의 정신을 지니고 사회의 추악한 현상을 통렬히 비판하기도 하고, 명분을 상실한 거짓 도학에 대한 혐오감을 굳이 감추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자연에 대한 열정적인 예찬 속에 일상의 생활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충만한 미감과 정취를 담아 내었다. 그 담긴 내용의 초탈한 분위기 뿐 아니라 청신淸新하면서도 명쾌한 풍격이며, 간결하고 깔끔한 문장은 당대 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뜻있는 지식인들의 지속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30년대 《유몽영》을 처음 간행하여 소개했던 장의평章衣萍은 “재자才子의 책이면서 또한 위대한 사상가의 책”이라고 평한바 있고, 주작인周作人은 “이처럼 오래 되었는데도 이같이 새롭다”고 그 참신한 생각과 깊은 여운에 감탄하였다. 이 책에 가장 열광한 사람은 임어당으로, 이 책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영역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생활의 예술》에서 그는 “이런 종류의 격언집은 중국에 매우 많다. 그렇지만 한 권으로 장조가 쓴 이 책과 견줄만한 것은 결코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래 중국에서 이 책은 수십종이 간행되었을만큼 독서 대중의 애호를 받아 《채근담》이상의 인기를 누려 왔다.
지은이 장조張潮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그는 안휘성 흡현歙縣 사람으로, 자는 산래山來, 호는 심재心齋 또는 심재거사心齋居士라 했고 삼재도인三在道人이라고도 했다. 일찍이 한림원공목翰林院孔目을 역임하면서 도서를 정리하고 교정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전사塡詞의 창작에도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였다. 젊어서는 당시 과거시험의 공용문이었던 팔고문八股文을 익혔고, 점차 나이 들어가면서 옛 시문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지도 못했고, 인생길도 그리 순탄하지 만은 않아 고초 속에 스러져 가는 젊은 날의 장하던 뜻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50세 나던 1699년에는 한 사건에 연루되어 죄를 입고 감옥에 들어가는 수치를 맛보기도 했다. 이로부터 세상에 완전히 뜻을 잃고 붓을 꺾어 만년의 사적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일생 동안 그는 여러 지방을 떠돌며 여행하였고, 그 사이에 황주성黃周星․조용曹溶․장죽파張竹坡․우동尤侗․고채顧彩․오기吳綺․오가기吳嘉紀 등 당대 저명한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유몽영》에는 이들을 비롯하여 백여명의 벗들이 남긴 평어가 무려 550여칙이나 수록되어 있어 그 사귐의 폭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 평어들 또한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내용들이 많은데, 이 책에서는 소개하지 않았다. 그는 일생동안 매우 풍부한 저술을 남겼다. 《유몽영》외에 《심재료복집心齋聊復集》․《화영사花影詞》․《필가筆歌》 등의 저술을 남겼고, 이밖에 《소대총서昭代叢書》150권과 《단기총서檀幾叢書》 50권의 방대한 총서를 편집 간행하였다. 명청대의 기문奇文을 모은 유명한 문언단편소설집 《우초신지虞初新志》 20권도 그가 엮었다. 특히 《우초신지》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애호를 입어 김려 등은 《속우초신지》의 편찬을 계획한 일까지 있다.
명말청초의 사상가들은 주자학의 금제禁制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시대 환경에 맞추어 진보적인 의식을 고취하였다. 지식인의 허위를 벗어던지고 동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이지李贄를 비롯하여, 황종희黃宗羲와 고염무顧炎武, 왕부지王夫之 등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나와 활발한 시대 담론을 이끌었다. 당대 상품경제의 발달과 함께 변화한 삶의 환경은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인생의 정취를 향유하려는 주정주의主情主義의 물결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따라 향락을 중시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술과 차를 즐기는 소비 문화가 극성하였고, 한편으로 이민족이 지배하는 세상에 혐오를 느낀 지식인들은 산수 자연 속에 파묻혀 이초기화異草奇花를 기르며 한정閒情을 구가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 분위기는 이 책 《유몽영》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다.
책을 열면 도처에 산수운우山水雲雨와 풍화설월風花雪月, 조수충어鳥獸蟲魚와 향초미인香草美人의 이야기가 나오고, 금기서화琴棋書畵와 원림건축園林建築에 관한 이야기며, 독서교유讀書交遊와 음주상완飮酒賞玩의 내용들이 줄줄이 나온다. 특히나 재자가인才子佳人과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 보이는데, 장조 그 자신은 스스로를 재자才子로 자부했던 듯 하고, 미인에 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그의 내면 취향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한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평범히 지나치기 쉬운 일상 사물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포착해내는 그의 시선은 재치로우면서도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이 있다. 도처에 기취機趣가 넘쳐 흐르는 그의 글은 읽는 이에게 어느새 자신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사상은 유가의 것도 있지만, 불교와 관련된 내용도 뜻밖에 적지가 않다. 도처에 보이는 불교 용어도 그렇고, 비유나 인용을 보면 그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불교를 특별히 신앙한 것 같지는 않고, 유불도 삼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분방한 사고의 궤적을 보여준다.
《유몽영》의 문체는 어록체로 되어 있다. 장조 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이 어록체의 청언문학淸言文學은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을 가지고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도륭屠隆의 《파라관청언婆羅館淸言》과 이정李鼎의 《우담偶談》, 진계유陳繼儒의 《소창자기小窗幽記》와 《암서유사岩棲幽事》, 오종선吳從先의 《소창자기小窗自記》등은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청언소품집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청언문학은 뜨거운 환영을 받아 허균의 《閑情錄》과 신흠의 《象村野言》 등에 이들 글이 수록되고 있다. 《유몽영》은 당연히 이들 청언집의 영향 아래 창작되었다. 《유몽영》은 1권본과 2권본으로 된 두 계통의 판본이 전하는데,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 여기서는 《소대총서昭代叢書》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유몽영》이 워낙에 지식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게 되자, 청나라 후기의 문인 주석수朱錫綏는 이 책을 이어 《유몽속영幽夢續影》 86칙을 펴내 그 여운을 이었다. 장조張潮의 《유몽영》을 모방해서 지은 것으로, 《총서집성초편叢書集成初編》에 실려 있다. 주석수는 자가 소운筱雲 또는 힐균擷筠이고, 호는 엄산초의弇山草衣라 하였다. 강소江蘇 사람으로 도광道光 26년(1846)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고을의 현감을 지냈고 시화에 능했다. 생몰연대는 분명치 않다.
정보는 홍수처럼 넘쳐나고, 삶의 속도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르게 빨라져서, 어떤 새것도 나오는 즉시 낡은 것이 되고 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새것도 전혀 새롭지가 않다보니, 낡은 것은 쳐다 보기도 싫어 한다. 입만 열면 정보의 바다를 말하고 인터넷의 시대를 이야기 하지만 들여다 보면 알맹이가 없다. 공허한 울림 뿐이다. 삶을 직관으로 투시하는 지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얄팍한 상술로 위장된 값싼 정보만이 횡행하고 있다. 《유몽영》과 《유몽속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의 삶의 속도로 보면 참으로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오래된 책에서 난마와도 같이 얽힌 이 숨가쁜 시대를 살아가는 처방을 찾게 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한 아이러니다. 우리는 좀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영혼의 메마른 밭에 맑고 시원한 물줄기를 대어줄 책무가 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면 어떤 정보도 그저 정보일 뿐 내 삶에 개입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메모

그동안 여러 권의 청언소품집을 간행했지만, 가장 애석하게 생각하는 책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삶>이다. 사실 <유몽영>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진 책이 아닌데, 중국이나 대만,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미 수십 종의 번역서가 존재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채근담> 이상으로 많은 독자와 만난 책이기도 하다. 내가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 구한 번역서만도 10종이 넘는다. 이 <유몽영>과 이에 영향을 받아 나온 <유몽속영>을 한 데 묶어 처음으로 완역했다. 그런데 단행본 형태가 아니라 태학산문선 시르즈 중 하나로 나오는 바람에 그냥 묻혀 잊혀졌다. 이점이 늘 애석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단행본 형태로 재출간해 볼 생각을 갖고 있다. 그냥 잊혀지기에는 아까운 내용이 너무 많다. 관련 내용은 청언소품 쪽에 싣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