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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 박사 묘비에 새겨진 글

굴어당 2012. 3. 11. 08:29

대한민국 연구자의 5가지 덕목은...
故 최형섭 박사 묘비에 새겨진 글...후배들 "본받으리라"
 ⓒ2005 HelloDD.com
이미 지난해의 얘기다.

나이가 막 팔십대 중반이 된 어느 한 과학자가 완연한 봄 기운을 보낸 어느 날 한 장의 종이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후배들을 생각하며 글귀를 적어 내려갔다.

'연구자의 덕목.'

한국 과학계의 큰 별 故 최형섭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자신의 묘비에 '대한민국 연구자의 덕목'을 남기고 떠났다.

묘비에 새겨진 연구자의 덕목들은 고인이 한평생 닦아온 생활습관이기도 하다.

지난 27일 추도 1주년을 맞아 고인이 묻힌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을 찾은 후배 과학자들은 묘비에 새겨진 연구자의 덕목을 읽어내려가면서, 입을 악물고 마음 속 깊은 감동을 느껴 눈가에 이슬이 맺힐 뻔했다.

오늘날 한국의 과학자들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인의 5가지 덕목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정부출연연구소를 세우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초대소장, 과학기술처 장관 등을 역임하며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기초를 닦은 고인이 설파해 온 연구자의 덕목을 소개한다.

◇ "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69년 KIST 첫 유치과학자였던 채영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묘비에 새겨진 연구자의 덕목은 고인이 항상 후배들에게 주장한 것들"이라며 "특히 고인은 후배 과학자에게 한 점 보탬없는 정직성과 겸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조영화 대덕연구단지 기관장협의회장은 최후의 순간에도 과학자의 순수함과 정직성을 중시 여기는 고인의 면모를 높이 평가했다.

황해웅 전 한국기계연구원장도 모범적인 과학자들은 자연 순수 그 자체라며 연구자가 큰 과학 업적을 이루기 위해선 정직함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2005 HelloDD.com

◇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큰 부(富)를 누렸을 기회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인은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행동 자체가 호화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식사를 비롯한 모든 생활습관이 소박했다.

고인이 테니스를 칠 때 심판을 종종 봐왔던 국일현 한국원자력연구소 단장은 "고인은 겉치레에 무관심한 소탈한 분이셨다"면서 "대신 고인은 한 번 계획을 세우면 꺽일 줄 모르는 강한 집착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채영복 회장은 "과학자가 부귀영화를 누리면 진리탐구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인은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故 최형섭 박사는 과학 불모지였던 한국에 근대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데 오로지 몰두했다.

김유승 KIST 원장은 고인을 기리는 추도사에서 "'과학기술자들은 끊임없는 창의와 밤잠 안자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기셨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고인은 평소 후배들한테 연구자들은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계 한 원로과학자는 "연구하는 사람이 직위에 올라가면 연구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라며 "직위를 통해 인생을 과시용으로 살지 말고, 연구자는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5 HelloDD.com

◇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70년대 유치과학자였던 홍창선 열린우리당 의원(전 KAIST 총장)은 "당시 과학계 빅 보스였던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처럼 리더십이 강했지만 자만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면에서 모두 동조하고 있다"며 "겸손한 연구자는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고 신념을 고수한다"고 말했다.

72년부터 과학기술부 공무원으로서 고인을 보필했던 이승구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은 "최 박사님은 연구의 생명은 자율성이라는 원칙아래 유치과학자를 통해 정부출연연구소 뿐만 아니라 한국 과학계를 일으킨 인물"이라며 "과학계의 정신적 지주인 그를 후배 과학도들은 그의 업적을 길이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과기부 일선에서 정책홍보관리실을 맡고 있는 박영일 실장은 "고인은 철저한 연구를 위해 연구자들한테 상당히 엄격했던 분이라고 들었다"면서 "한국 과학계 발전의 시금석이 된 고인을 과학계가 지속적으로 존경해나가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열린 추도식에는 유족대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최재철 박사를 비롯해 채영복 회장, 김시중 전 과학기술부 장관, 김유승 KIST 원장, 박원희 전 KIST원장, 조영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이승구 이사장, 박영일 실장, 윤여경 KIST 동문회장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김유승 KIST 원장의 추도사.

한국 과학기술계의 거목이셨던 최형섭 박사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가신지 어언 1년이 되었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 근대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신 개척자로서 후배 과학도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모범이 되어주셨는데, 참으로 허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최 박사님의 과학기술 입국 구현을 위한 넘치는 열정, 과감한 추진력, 불타는 애국심, 그리고 특유의 승부사 기질 등 평소의 면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연구에 관한 한 호랑이로 불릴 정도로 집념이 강하셨고, 연구실 천정이 날아갈 정도로 불호령을 치기도 하셨지만, 마음속 깊이깊이 연구자들을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또 완벽주의자라 할 만큼 치밀한 분이셨지만 자기 과시욕이나 겉치레에는 무관심한 소탈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멋쟁이 외교관이요, 자신있고 권위있는 공학자이셨습니다.

박사님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미친 크나큰 영향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KIST를 창설하시어 처음으로 과학기술자가 국가와 사회에서 최고로 대접받는 지위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또, 세계 수준에 오른 해외 유수 과학기술 엘리트들을 유치하여,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R&D를 추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

최 박사님께서는 확고한 비전과 리더십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남다른 카리스마와 전문지식으로 KIST를 세계적인 연구소로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셨습니다.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많은 출연연구소를 설립하셨고, 대덕 연구단지를 만드시고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여 개도국 한국을 기술 선진 한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마련하셨습니다. 박사님은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라 과학행정가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위치에서 국가 과학기술 발전의 기틀을 다지셨습니다.

학자로서도 최 박사님은 계면현상과 부선이론, 습식야금 등 금속공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부유선광이론은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 박사님은 과학기술정책 이론가로서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발전모형을 제시하였고,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박사님께서는 늘 연구소의 생명은 자율성에 있으며, 연구 성과를 올리려면 과학기술자를 우대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과학기술자들은 부귀영화와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끊임없는 창의와 밤잠 안자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기셨던 분이십니다.

평생을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신 최형섭 박사님!

우리 후학들은 박사님께 너무나 많은 빚을 졌습니다. 이 같은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길은, 박사님께서 일궈낸 과학한국이,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후배 과학기술자들이 부단히 새로운 지식을 쌓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 나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박사님,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KIST 원장 김유승.


<대덕넷 김요셉 기자> joesmy@HelloDD.com      트위터 : @ssebiU

2005년 0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