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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광의 룰', 중국이 바꾼다

굴어당 2013. 10. 16. 09:49

 

한국 '관광의 룰', 중국이 바꾼다

지난주 중국 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한 중소여행사 대표를 만났더니 사업 확장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한국인을 중국으로 보내는 '아웃바운드' 여행업만 해왔는데, 앞으로는 중국인을 국내로 받는 '인바운드' 쪽도 해볼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고 했다. 그는 "10월부터 시행된 중국 '관광법(旅游法)'이 우리 관광산업의 판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어 시장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광법'은 올 4월 제정돼 10월부터 발효됐다. 주요 내용은 여행사가 불합리한 저가(低價)상품으로 고객을 모집하거나 쇼핑 등 별도 항목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것을 금지하고 쇼핑 장소도 지정하지 못하게 한 것 등이다. 중국은 해외 관광객 1억명 시대를 앞두고 여행 질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법은 관광업의 특성상 타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연간 450만명(올해 예상 인원)의 중국인이 찾는 한국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먼저 이 법의 '3무(無) 조항(무쇼핑·무추가비용·무팁)'에 따라 국내 관광업계의 고질병이었던 '저가 패키지 상품'이 자취를 감추었다. 항공료에도 못 미쳤던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올랐다. 또 하루 중 반나절을 차지하던 쇼핑점 순회가 취소돼 시간이 남아돌자 중국인들이 관광지를 꼼꼼히 살펴보게 돼 만족도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이 같은 변화를 보면 중국 관광법이 한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의 선후를 따져보면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중국법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법 내용이 우리 현실에 필요한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스스로 불합리한 관광 산업 구조를 오랫동안 방치한 채 '합리적인 룰(rule)'을 만들어내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싸구려 관광'은 자기만 살겠다며 출혈 경쟁과 쇼핑 강요를 해온 여행사들과 합리적인 시장 질서 확립을 포기한 정부의 '합작품'이다. 일본 여행업계가 제값 받는 상품으로 이익도 얻고 양질의 서비스로 외국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과 달리, 우리 여행업계는 죽어라 경쟁하면서도 제대로 이익도 못 내고 손님에게 불쾌함만 주어 내쫓는 악순환을 거듭해온 것이다.

좋은 법과 제도, 문화는 그것이 어느 나라 것이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면 국가 발전에 득이 된다. 한국식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모델, 한류(韓流)가 그런 결과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우리가 변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중국 법에 의해 변화를 강요당한 경우다. 게다가 중국은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에서 우리보다는 후발 주자다. 중국 관광법이 한국 관광산업의 룰을 결정하게 된 지금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익이 얽혀 있는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결론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 사회를 바꿔 나가는 역량에서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한국이 이 한계를 스스로 넘지 못하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분야에서 '외부의 힘'에 의해 변화를 강요당할 것 같다.

[지해범의 태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