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한시 시와 삶이 하나로 만나다
책소개
『내가 좋아하는 한시』는 서른한 명의 한시 연구자들이 그들이 아끼는 아름다운 한시를 따라 자연과 사람 사이를 산책하고 있다. 한시에 담긴 옛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을 들여다보며 한시를 한 편씩 넘기다 보면 시인이 내미는 삶에 대한 위무와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서언 내가 좋아하는 한시_민병수
1부
걸어도 멈추어도 모두 다 한가로워라_김성기
자연은 말 없는 스승이자 다정한 벗_강석중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다_심경호
산중선미山中禪味_조상현
고려의 이미지즘 시인들_하정승
지리산의 큰 종소리_최석기
1만 2천 봉에서 나를 찾다_이경수
2부
바라보는 마음, 함께하는 마음_김혜숙
청춘도 때로는 시름겹다_안순태
아이가 만드는 정경_김동준
그녀, 사랑을 하다_이규호
날개 꺾인 시인_박수천
세 친구 이야기_어강석
누가 부족타 하랴_김보경
꿈에서라도 만나세_강혜선
아버지처럼 살다_김은정
진심을 숨기는 법_이은주
사람답게 사는 세상_김형술
그대는 가고 나는 남아_백승호
한날 한마을에서 태어난 사랑_성범중
3부
시와 삶이 하나로_여운필
누구나 길을 걷는다_김성언
홀로 걷는 눈길_구본현
부엌의 여덟 가지 채소_이종묵
임금과 신하, 그림과 한시_김남기
달빛이 고와서_최재남
여행으로 되찾은 젊음_조영임
먹으로 기른 대나무_이현일
문자로 그린 자화상_박영민
나비의 위기가 온 우주의 위기다_김홍백
후기
출판사 서평
한시漢詩에 담긴 옛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을 들여다보다
신산한 삶에 지칠 때에도, 막역한 벗과 우정을 나눌 때에도,
사람과 나라를 잃었을 때에도 옛사람들은 시를 썼다.
삶이 곧 시였고 시가 곧 삶이었던 그들의 한시를 한 편씩 넘기다 보면,
시인이 내미는 삶에 대한 위무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한시는 짧고 간결하기에 그만큼 깊고 넓다. 홀로 걷는 눈길에서는 앞선 사람의 발자국이 되고, 낯선 행로에서는 나그네를 위한 이정표가 된다. 무언의 응시로 한 폭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애절한 마음을 담아 부끄러운 고백을 전하기도 한다. 한시만의 고즈넉한 흥취는 우리의 오랜 스승이자 다정한 벗이다.
태학사에서 출간된 《내가 좋아하는 한시》에서 서른한 명의 한시 연구자는 자신들이 아끼고 애송하는 한시를 그에 얽힌 사연 및 감상과 함께 안내한다. 한 편의 시 뒤에 숨은 이야기는 전공자는 물론 한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힌다. 각 지은이들의 글에 사이사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우리 옛 그림들이 자칫 어려워 보일 수 있는 한시 세계로 친근하게 다가서게 한다.
시와 삶이 하나로 만나다
‘시’라는 단어를 들으면 골치 아프다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문학계의 현실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시심詩心은 있다. 다만 그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뿐이다. 어려운 시어詩語, 알 듯 말 듯한 시구詩句에 지친 사람이라면 시와 삶이 하나였던 시대, 생활을 시로 읊은 옛 문인들을 만나보면 좋을 것이다. ?론 일기처럼, 편지처럼 쉽게 쓰인 한시를 읽다 보면 메마른 마음속 시정詩情이 다시금 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자연은 말 없는 스승이자 다정한 벗
조그마한 매화꽃 지고 버들은 춤추며 드리웠는데 小梅零落柳?垂
한가로이 푸른 산기운 밟노라니 걸음은 더디어라. 閑踏靑嵐步步遲
고기잡이 집은 문을 닫았고 사람 소리 적은데 漁店閉門人語少
온 강에 내리는 봄비가 실실이 푸르구나. 一江春雨碧絲絲
진화 [들을 거닐며(野步)]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한시 속에는 늘 자연이 등장한다. 진화의 [들을 거닐며] 역시 일상에서 벗어난 자연을 노래한 시이다. 조선 시대의 문인文人들이 인정한 고려의 시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이 시는 자연 속에서 느끼는 한가로운 흥취를 읊었다. 일상과 인위에서 벗어난 자연, 그 속에서 어우러지는 여유가 우리에게 무한한 희열과 편안함을 선사한다. 이러한 정취는 한시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미학이다. 그래서인지 한시에서는 이처럼 한가로운 정경을 자주 대할 수 있다.(21면) 그러나 한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이 이것만은 아니다.
높은 바위 하늘에 곧추 솟았는데 逈石直生空
잔잔한 호수는 사방으로 통하였네. 平湖四望通
바위 뿌리엔 항상 물결이 치고 巖根恒灑浪
나무 끝엔 늘 바람이 부네. 樹?鎭搖風
물결이 멈추니 도리어 그림자 잠기고 偃流還漬影
노을이 짓쳐드니 돌 머리 붉어지네. 侵霞更上紅
홀로 뭇 봉우리 밖에 우뚝 솟아 獨拔群峰外
외로이 흰 구름 속에 빼어나네. 孤秀白雲中
? 정법사定法師, [외로운 바위를 노래함(詠孤石)]
고구려 때의 승려인 정법사가 자신의 깨끗한 모습을 외로운 바위에 비유한 시이다. 사방이 툭 트여 있는 넓은 호수 가운데에 뿌리를 내리고 선 높은 바위는, 늘 물결에 씻기고 바람을 맞지만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을 정도로 우뚝하게 서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자연물을 대상으로 인간의 기상을 투영하였는데,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시인 자신의 성품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32~35면) 인간이 닮고 싶어 하는 덕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 바위는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인간사에 비해 늘 같은 모습인 자연이 옛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게 한다.
옛사람들은 자연과 동화된 삶을 사는 한편, 자신의 생활 속으로 자연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태도도 보였다. 아래 시는 1380년, 경상도 지역에 창궐하던 왜구의 난을 피해 영주榮州에서 충청도 단양丹陽의 삼봉三峯 아래 옛집으로 돌아온 정도전의 대표작이다. 산속의 집에서 세상 근심을 잊은 채 자연과 벗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은자의 삶을 시 속에서 형용하였다.
삼봉 아래 쓰러져가는 집이 있는데 弊業三峯下
돌아오니 소나무와 계수나무에 가을 들었네. 歸來松桂秋
집안은 가난하여 요양하기 힘들지만 家貧妨養疾
마음은 고요하여 시름 잊을 만하구나. 心靜足忘憂
대숲을 보호하느라 돌려서 길을 내었고 護竹開迂徑
산을 아껴서 다락을 조그맣게 세웠네. 憐山起小樓
이웃 절의 스님이 찾아와 글자를 물으니 隣僧來問字
온종일 그 때문에 잡아둔다네. 盡日爲相留
? 정도전鄭道傳, [산속에서(山中)]
맑은 가을날, 고결한 선비의 상징인 소나무와 계수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삼봉의 옛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제대로 요양할 수 없는 가난한 형편이지만, 마음이 평안하니 모든 시름을 다 잊을 수 있다고 하였다. “대숲을 보호하느라 돌려서 길을 내었고, 산을 아껴서 다락을 조그맣게 세웠네”라 한 데서 정도전의 자연 친화적 삶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자연의 본래 모습을 훼손하지 않기 위하여 인위적인 욕심을 참아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40면) 오늘날, 우리는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다며 산에 있는 멀쩡한 나무를 뽑아다가 집과 건물을 꾸며놓지는 않는가? 생각해볼 대목이다.
바라보는 마음, 함께하는 마음
험한 길을 오르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저물녘 登登涉險政斜暉
작은 집이 산에 기댔는데 물 긷는 길이 가느다랗다. 小店依山汲路微
골짜기의 새는 바람 피해 나무 그늘 찾아가고 谷鳥避風尋?去
시골 아이는 눈을 밟고 나무를 주워 돌아간다. 邨童踏雪拾樵歸
여윈 말은 마판에 엎드려 마른 풀을 씹고 ??伏?啖枯草
지친 종은 솔불을 지펴 찬 옷을 덥힌다. 倦僕燃松?冷衣
밤이 돼도 잠 못 들고 뭇소리 고요한데 夜入不眠??靜
서리 달이 차츰차츰 사립문에 스민다. 漸看霜月透柴扉
? 이이李珥, [조령에서 묵다(宿鳥嶺)]
율곡 이이는 신사임당의 아들이자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예견한 선구자, 조선 성리학의 거두로 유명한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이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우리는 이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뛰어난 학자로서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위 시는, 이이가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사람으로 역사 속에 남을 수 있었는가를 짐작하게 만든다.
이 시에서 저물녘 조령의 객점을 찾아든 화자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보이는 대로 말하듯 음영하고 있다. 별스러운 수사적 기교도 없고, 시인 자신의 느낌이나 사념도 없다. 낮 동안 여윈 말을 타고 길을 걸은 것으로 보이는 화자는 험한 산길을 오르고 오르는 노고 끝에 석양 무렵 작고 소박한 객점에 이르렀다. 낮의 고단은 일단 끝났고, 이제 그는 작은 객점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쉬게 된 곳은 작은 가게이다. ‘작다’는 것은 그 가게 주인의 삶이 고단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산을 의지하고 있고 또 물을 길을 수 있는 가느다란 길과 이어져 있기에 그 가게는 안주安住의 의상意象을 지니고 있다.
삶이 어찌 고달프기만 하거나 평안하기만 할 것인가? 고달픈 노고와 소박한 평안, 삶의 양면을 모두 바라보고 수긍하는 이이의 마음은 지극히 평정하다.(122면) 매사에 중정中正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위인의 삶에 감탄하게 만드는 시이다. 시에 담긴 마음은 이외에도 다양하다. 아래는 김화현감 구용具容에게 편지를 받은 조선 시대 문인 이안눌李安訥의 답장이다.
박한 벼슬살이에 병마저 많아 薄宦兼多病
겨울 다가도록 쓰러진 집에 누웠네. 經冬臥弊廬
누가 알았으랴, 섣달그믐에 誰知除歲日
친구의 편지를 받아 볼 줄이야. 得見故人書
쓸쓸히 바뀌는 절기에 놀라며 寂寞驚時序
은근히 어떻게 지내는지 묻네. 殷勤問起居
내 인생 쇠함이 이미 심하니 此生衰已甚
감히 어떻다고 알리지 못하겠네. 不敢報何如
? 이안눌, [섣달 그믐날, 김화현감 구대수의 편지에 답하다(除日, 答金化縣宰具大受書)]
절친한 벗에게서 따뜻한 안부 편지를 받으니 참으로 반가우나, 한편으로 자신의 처지가 더욱 처량해져 은근히 벗에게 푸념하고 말았다. 요즘 부쩍 노쇠해져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히 말해주지도 못할 지경이라고. 단천군수가 되어 김화를 들른 이안눌은 구용을 그리워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짓기도 하였다.(209면)
치솟은 푸른 산과 콸콸 흐르는 물소리 靑山矗矗水淙淙
여기서 함께 소나무에 기대어 시를 읊었지. 此地?詩共倚松
오늘 나 홀로 옛 다락을 찾아오니 今日獨來尋古院
뜰 가득한 가을풀에는 찬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滿庭秋草語寒?
? 이안눌, [김화현에서 자며 구대수를 그리워하다(宿金化縣, 憶具大受)]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벗을 그리는 마음이 애틋하다. 그런가 하면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은 이미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그 마음을 시로 읊었다. 《번암집樊巖集》에서 채제공은 아내가 죽고 난 뒤 6개월이 지나도록 아내를 그리워하는 시만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후 6개월 동안 채제공은 단 한 편의 시문詩文도 짓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259면)
해진 수건, 부서진 화장합에 저녁 햇살 지는데 敗?殘?日欲?
관 하나 쓸쓸하니 울부짖은들 그 누가 들을까? 一棺冥寂叫何聞
텅 빈 뜰 쌓인 눈엔 사람 발자국 없는데 虛庭積雪無人跡
천 리에서 낭군이 비로소 도착하였소. 千里阿郞始到門
?채제공, [옛집에 도착하다(到舊第)]
아내를 잃은 상심은 한때의 슬픔이 아니었다. 크기와 정도는 작아졌을지 몰라도 슬픔은 점점 더 채제공의 마음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채제공은 죽은 아내를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하였고, 그 아픔을 시로 절절히 풀어냈다.(261~262면) 아픔과 그리움이 얼마나 컸는지, 채제공은 필적을 보며 아내를 떠올리고, 글씨를 잃어버리고 난 후에는 아내가 써내려간 글자를 따라 쓰며 추억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을 [여사서서女四書序] 서문에 기록으로 남겼다. 범인의 도량으로는 짐작하기조차 힘든 사랑이다.
한시는 각각 한 편의 예술 작품이면서 사랑하는 벗과 연인에게 띄우는 편지였다. 옛사람들은 설령 그들이 편지를 받을 수 없는 곳에 있더라도, 마음을 한시로 표현하며 그리움을 달랬다. 이렇듯 한시에는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우정과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문자로 그린 자화상
요즈음 우리 임 몸 편안히 계신지, 近來安否問如何
사창에 달 비치어 저의 한 깊습니다. 月到紗窓妾恨多
꿈속의 혼백에 발자취가 있다면 若使夢魂行有跡
문 앞의 돌길인들 거의 모래 되었으리. 門前石路半成沙
? 이옥봉李玉峯, [몽혼夢魂]
안서岸曙 김억金億도 번역한 적 있는 이옥봉의 [몽혼]이다.[몽혼]의 화자는 꿈속의 넋이 되어 자신을 떠나보낸 남편의 문전을 오간다. 먼저 간 남편을 만날 유일한 방편이 ‘꿈’이기 때문이다. 승지 조원趙瑗의 첩이던 그녀에 대하여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詩話》에서 “나의 누님 난설헌蘭雪軒과 같은 시기에 이옥봉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의 시 역시 청장淸壯하여 유약하고 비속한 티가 없다”고 평하였다. 윤국형尹國馨도 그의 《문소만록聞韶漫錄》에서 “이옥봉은 시를 읊고 생각하는 동안에 손으로 백첩선을 부치면서 때로는 입을 가리기도 하는데, 그 목소리가 맑고 처절해서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았다”고 시인이 풍기는 분위기를 이야기하였다.(157면)
조선 시대에는 여성의 사회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시에서는 이옥봉이나 허난설헌처럼 자기 이름을 남긴 사람이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남성에 의해 기록된 여성 예술가의 작품과 활동 양상은 너무 단편적이어서, 이것만으로는 여성 예술가의 창작 의식, 예술 환경, 활동 양상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379면)
그런데 19세기 여성 작가인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은 그림을 어떻게 공부하였고 그림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였는지, 자신의 회화 창작과 활동에 대한 한시를 남기고 있다. 김부용의 한시는 19세기 여성 화가의 존재가 그 예술 활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간취할 수 있는 일종의 문화사적 자료인 셈이다.
성천의 관기官妓였던 김부용은 1831년 20대 중후반의 나이로 77세인 김이양金履陽(1755~1845)의 소실이 되어 한양에 정착하였다. 관기 시절 간절히 원하던 바대로 김이양의 소실이 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이곳저곳 나들이를 다니며 감회를 시로 읊었다.
비 그친 아름다운 물가에 물색이 새로운데 雨歇芳洲色相新
뛰어난 그림으로도 정신을 전할 수 없어 한스럽네. 恨無工畵可傳神
사공이 취해 잠드니 물결도 함께 고요한데 蒿師醉睡波同靜
시골 노인과 서로 만나 풀밭에 앉았네. 野老相逢草作茵
물새는 절로 기미를 잊었으니 어찌 나그네를 피하겠는가? 鷗自忘機胡避客
제비는 낯익은 듯 매양 사람을 가까이하네. 燕如曾識每親人
복숭아 열매 향기로운 집, 桃花結子香家室
일벽정 안에는 특별한 봄이 있다네. 一碧亭中別有春
? 김부용, [어르신의 시에 화답하고 경산에게 올리다(奉和老爺韻, 呈上瓊山)]
맑게 갠 뒤 펼쳐진 한강의 풍경이 새롭고도 아름답다. 이 신선한 풍경에서 감흥을 느낀 순간, 김부용은 풍경의 정수精髓를 공교한 솜씨로 그려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하지만 그만한 그림 솜씨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전신傳神(초상화)”은 대상의 정수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화가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이때 김부용이 그리고자 한 산수화는, 세속적인 삶에 묶인 채 산수 자연을 이상향으로 동경하는 결핍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관기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소실로서의 여유를 갖게 된 안도와 평화의 결과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3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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