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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警修堂全藁,東人論詩絶句,申緯

굴어당 2014. 1. 30. 11:22

 

책17~18은 北禪院續稿이다. 고금체시 129수, 七言半格詩 76수가 실려 있는데, 1831년 2월부터 1832년 3월까지 지은 시이다. 용경에서 자하산 山樓로 돌아와서 은거할 때 지은 시로 구십구암의 續筆로 삼은 것이다. 이 중 〈東人論詩絶句〉 35수는 우리나라의 시인과 작품을 ‘以詩評詩’의 방법으로 七言絶句를 가지고 비평한 것이다. 그 대상은 崔致遠부터 金尙憲까지 51명이며 自註를 붙여 이해를 돕고 비평의 논거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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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형태서지 | 저 자 | 가계도 | 행 력 | 편찬 및 간행 | 구성과 내용
  형태서지
권수제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판심제 없음
간종 사본(寫本)
간행년 필사년 미상(筆寫年未詳)
권책 불분권(不分卷) 29책
행자 8행 20자
규격 21.3×13.0(cm)
어미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도서번호 4-5735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291
 저자
성명 신위(申緯)
생년 1769년(영조 45)
몰년 1845년(헌종 11)
 한수(漢叟)
 경수당(警修堂), 자하(紫霞)
본관 평산(平山)
특기사항 김조순(金祖淳), 정약용(丁若鏞) 등과 교유
 가계도
 申曘
 僉正
 申大升
 參判
 咸平李氏
 李永祿의 女
 申綮
 
 李義綱의 女
 
 申緯
 
 昌寧曺氏
 曺允亨의 女
 側室
 
 申命準
 縣監
 朴宗和의 女
 
 申命衍
 府使
 南山壽의 女
 
 申命澫
 
 鄭台容의 女
 
 申命斗
 
 尹行心의 女
 
 女
 
 李寅榮
 
 女
 
 朴齊兢
 
 女
 
 林道浩
 
 女
 
 李義簡
 
 女
 
 李堂運
 
 女
 
 具孝元
 

기사전거 : 年譜(金澤榮 撰, 申紫霞詩集), 平山申氏文僖公派譜, 司馬榜目 등에 의함
 행력
왕력서기간지연호연령기사
영조451769기축乾隆3418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나다.
~~~~~~~太學에서 陞補試에 응시하다.
정조81784갑진乾隆4916〈秋柳十絶句〉를 짓다.
정조231799기미嘉慶431文科에 급제하다. 抄啓文臣에 뽑히다.
정조241800경신嘉慶5324월, 金邁淳 등과 講製文臣에 뽑히다.
순조21802임술嘉慶7348월, 翰林會圈에 뽑히다.
순조31803계해嘉慶83512월, 弘文錄에 뽑히다.
순조41804갑자嘉慶93610월, 都堂會圈에 뽑히다.
순조51805을축嘉慶10372월, 貞純王后 喪中에도 講筵을 열도록 옥당 관원들과 연명 차자를 올리다.
순조91809기사嘉慶14411월, 홍문관 수찬으로 홍문록을 행하는 데 참여하다.
순조111811신미嘉慶1643정3품 당상관이 되다. ○ 10월, 건강에 유념하도록 옥당 관원들과 연명 차자를 올리다.
순조121812임신嘉慶17447월, 陳奏兼奏請使의 書狀官으로 燕京에 가다. 阮堂 金正喜의 주선으로 覃溪 翁方綱 父子를 만나다. ○ 귀국하여 병조 참지가 되다.
순조131813계유嘉慶1845谷山 府使가 되다.
순조161816병자嘉慶2148봄, 곡산 부사의 임기를 마치다. ○ 승지와 여러 직임을 역임하다.
순조181818무인嘉慶2350봄, 시를 지어 옹방강을 조문하다. ○ 春川 府使가 되다.
순조191819기묘嘉慶2451가을, 춘천 부사에서 해직되다.
순조211821신사道光1539월, 孝懿王后因山陪從承旨로서 가자되다.
순조221822임오道光254병조 참판이 되다.
순조231823계미道光3559월, 대사간이 되다.
순조251825을유道光55712월, 대사간이 되다.
순조261826병술道光658봄, 옹방강의 제자인 詩人 吳嵩梁과 화답하다.
순조271827정해道光759부인 曺氏의 상을 당하다.
순조281828무자道光8608월, 江華 留守가 되다. ○ 겨울, 孝明世子의 명을 받고 「唐詩絶句」를 選하다.
순조301830경인道光1062봄, 효명세자가 친히 ‘養硯山房’ 네 글자를 써서 하사하고 이어 ‘十八羅漢圖’를 읊게 하다. ○ 7월, 강화 유수를 사직하다. ○ 어릴 때 독서하던 곳이며 선영에서 가까운 始興 紫霞山莊에 屛居하다.
순조311831신묘道光1163장남 申命準이 생원시에 합격하다. ○ 4월, 형조 참판에 제수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리고 나아가지 않다.
순조321832임진道光12644월, 도승지에 제수되었으나 논핵을 받아 나아가지 않다. ○ 문책을 받아 平薪鎭 僉使가 되다.
순조331833계사道光13653월,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으나 바로 체차되다. ○ 겨울, 강화 유수 재직시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경기어사 李是遠의 논박을 받고 平山에 유배되다.
순조341834갑오道光14664월, 유배에서 풀려나다. ○ 가을, 도승지가 되다.
헌종11835을미道光1567가을, 이조 참판, 대사간을 거쳐 병조 참판이 되다.
헌종21836병신道光16685월, 사간원 대사간이 되다.
헌종41838무술道光1870호조 참판이 되다. 왕명을 받고 御屛을 써서 올리다.
헌종51839기해道光1971日本에서 온 永源菴 僧 通銓에게 비문을 지어 주다.
헌종91843계묘道光23753월, 정조 때 抄啓文臣이었던 공으로 嘉義大夫에 가자되다.
헌종101844갑진道光2476헌종이 사람을 보내 문병하고 鹿茸을 하사하다.
헌종111845을사道光2577서울 長興坊 집에서 졸하다. ○ 始興 紫霞山에 장사 지내다.
순종11907정미隆熙12월, 金澤榮이 江蘇 通州의 翰墨林書局에서 「申紫霞詩集」을 연활자로 간행하다.

기사전거 : 年譜(金澤榮 撰, 申紫霞詩集), 朝鮮王朝實錄 등에 의함
 편찬 및 간행
저자는 세종의 묘정에 배향된 申槪를 중시조로 하는 文僖公派의 후손으로 少論에 속하였다. 그는 정조 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抄啓文臣에 선발되었으며, 孝明世子의 각별한 知遇를 받았으나 탄핵을 받고 귀양가기도 하는 등 관직 생활이 순탄한 편은 아니었다. 저자는 詩, 書, 畫 三絶로 유명한데, 시에 있어서는 金澤榮이 조선 제일의 대가라고 평한 것처럼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중국과 일본까지도 알려졌다.
처음에 盛唐의 시를 배웠으나 뒤에 蘇軾을 배우고 나서는 그 이전의 작품을 모두 폐기하고 43세 때인 1811년 이후에 지은 시만을 편차하여 자신의 詩集을 「警修堂集」이라고 하였는데, ‘경수당’은 翁方綱에게 받은 堂號이다. 또한 貊錄1에서 자신의 시집 凡例에 대해 ‘以詩繫地 以地繫年’이라고 하여, 시를 지은 곳과 연대순에 따라 시집을 편차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생전에 「경수당집」을 自編하여 남겼고, 김택영이 지은 年譜의 말미에 “저자가 졸한 뒤에는 아들 申命衍이 문인들과 함께 1811년 이전에 지은 시를 수습하여 「경수당집」에 合附하여 10여 책으로 편차하였는데 文도 몇 책이 되었다.”고 하였다. 아들 신명연이 1811년 이전에 지은 시를 모은 「警修堂集」 4권 2책이 필사본으로 현재 규장각(古3447-46-v.1-2)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詩題가 ‘焚餘錄’으로 되어 있는데 1787년부터 1808년까지 지은 494수의 시가 권1에 127수, 권2에 114수, 권3에 141수, 권4에 112수가 각각 실려 있다. 이 책은 현재 남아 있는 「경수당집」이 모두 1811년부터 1845년까지 지은 시만 실려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편 1811년부터 1845년까지 지은 시만 실려 있는 「경수당집」은 몇 종류가 있다. 우선 본서의 저본으로 채택된 8행 20자의 不分卷 29책으로 편차된 필사본으로 序跋이 없어 편찬 경위와 書寫 경위는 알 수 없으며 권수에 總錄만 실려 있다. 현재 장서각(4-5735)에 소장되어 있다.
異本으로는 권수에 1846년에 쓴 升士 鄭慶朝의 서문이 붙어 있는 필사본 2종이 있다. 모두 겉표지는 「警修堂集」, 권수제는 「警修堂全藁」로 되어 있으나 分冊이 다르게 되어 있고, 書寫한 필체는 동일인이 아니며 板心의 花紋魚尾 등도 다르다. 첫째는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도서번호 〈6932〉본이다. 趙秉儀가 鈔하였으며, 불분권 16책, 10행 20자, 罫印上二葉花紋魚尾로 되어 있다. 둘째는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도서번호 〈古3447-27〉본이다. 누가 鈔했는지는 분명치 않고, 58권 16책, 10행 20자, 罫印上下二葉花紋魚尾로 되어 있다.
이 밖에 저자의 시문을 選集한 2권 1책의 필사본 「警修堂詩選」이 있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찬, 서사 경위는 알 수 없으며, 시에 批點이 찍혀 있고 〈小樂府〉 등이 실려 있다. 현재 규장각(古3428-822)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滄江 金澤榮은 젊어서 서울에 갔다가 저자의 詩藁인 「警修堂集」 10여 책을 보았는데, 이 책이 간행되지 못한 것을 애석히 여겨 徐葆堂(稀叟)에게 한 벌을 빌려 同鄕의 친구 崔準卿에게 등사하여 보관하도록 하였다. 김택영은 이 책을 중국에 망명할 때 가져가서 4분의 1로 刪削하여 6권 2책으로 편찬한 다음 「申紫霞詩集」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뒤에 全錫潤이 上海로 김택영을 찾아와서 「신자하시집」의 간행 의사를 듣고 물질적 후원을 하게 되었다. 이에 김택영은 1907년 3월에 江蘇 通州의 翰墨林書局에서 6권 2책의 鉛活字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이 책에는 장건의 題辭, 김택영의 서문이 실려 있으나 鄭慶朝의 서문은 실려 있지 않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존경각(D3B-661),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105)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孫八洲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警修堂全藁」 16책, 규장각 소장 趙秉儀 필사본 16책, 규장각 소장 「경수당시선」,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申紫霞詩鈔」를 합하여 내용까지 비교, 대조하여 편집과 교정을 한 다음 다시 淨寫하여 「申緯全集」 4책으로 1983년 太學社에서 간행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不分卷 29책의 필사본으로 장서각장본이다.

기사전거 : 序ㆍ年譜(金澤榮 撰, 申紫霞詩集) 등에 의함
 구성과 내용
본집은 不分卷 29冊의 詩集으로, 모두 연대순으로 편차된 시모음집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總錄만 있고 서문이나 발문은 없다.
冊1에는 綸扉錄에 古今體詩 15수, 奏請行卷에 고금체시 89수가 실려 있는데, 윤비록은 1811년 12월부터 1812년 3월까지 지은 시로 測候의 명을 받고 書雲觀에 直宿하며 지은 것이며, 주청행권은 1812년 7월부터 1813년 2월까지 지은 시로 奏請王世子冊封使의 서장관으로 正使 李時秀, 부사 金銑 등과 燕京에 다녀오면서 지은 것인데, 청나라 문인 覃溪 翁方綱, 星原 翁樹崑 부자 등과 수창한 시들이 있다.
책2에는 淸水芙蓉集에 고금체시 69수, 鳴琴采藥之軒存藁에 고금체시 46수, 分甘集에 고금체시 111수가 실려 있는데, 청수부용집은 1813년 3월부터 12월까지 지은 시로 淸水芙蓉閣은 谷山府署 안에 있는 정자의 이름이며, 명금채약지헌존고는 1814년 1월부터 12월까지 지은 시로 鳴琴采藥은 정무를 보는 곳의 이름이며, 분감집은 1815년 1월부터 1816년 4월까지 지은 시로 分甘은 두 아들과 守歲하면서 王羲之의 ‘분감’이란 詩句에서 따온 것이다. 모두 황해도 谷山 府使로 재임할 때 지은 시로서, 谷山의 명승지를 읊은 〈象山四十詠〉 등이 있다.
책3에는 蘇齋拾草에 고금체시 54수, 蘇齋二筆에 고금체시 57수가 실려 있는데, 소재습초는 1816년 5월부터 12월까지, 소재이필은 1817년 1월부터 6월까지 지은 시이다. 蘇米齋, 寶蘇室, 蘇齋는 모두 覃溪老人 翁方綱의 거처인데, 여기에서 이름을 취하여 詩集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책4에는 蘇齋續筆에 고금체시 58수, 戊寅錄에 고금체시 78수가 실려 있는데, 소재속필은 1817년 7월부터 12월까지, 무인록은 1817년 12월부터 1818년 3월까지 지은 시이다. 무인록은 죽은 형 申綮가 태어난 무인년으로 시집의 이름을 삼아 형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이 중 〈代畫十三則〉에서 시 제목을 〈起〉, 〈居〉, 〈坐〉, 〈臥〉, 〈行〉, 〈住〉, 〈眠〉, 〈食〉, 〈拱〉, 〈立〉, 〈跪〉, 〈倚〉, 〈踞〉로 삼은 것은 저자가 창시한 것으로 자신의 起居雜儀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책5~6은 貊錄과 崧緣錄이다. 맥록에는 고금체시 223수, 숭연록에는 고금체시 54수가 실려 있는데, 맥록은 1818년 3월부터 1819년 6월까지 지은 시로 春川 府使로 재직할 때 지은 것이다. 숭연록은 1819년 9월에 지은 시로 都城을 출발하여 開城을 유람하고 돌아온 기행시이다. 이 중 〈後秋柳詩〉는 16세에 지은 〈추류시〉를 이때 얻어서 여기에 10수를 보태어 20수로 지은 것이고, 〈貊風十二章〉은 춘천 부사로 부임한 이듬해에 옛날 南玉이 지은 五言古詩 〈貊風〉을 七言絶句로 바꾸어 노래 부르기 쉬운 農謠로 만들어 농사를 권면하려는 목적에서 지은 것이다.
책7~8은 碧蘆舫藁와 碧蘆舫別藁이다. 벽로방고에는 고금체시 269수, 벽로방별고에는 七言半格詩 50수가 실려 있는데, 벽로방고는 1819년 9월부터 1820년 12월까지 지은 시로 춘천 부사를 그만두고 서울의 長興坊 집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이다. 벽로방별고는 1820년 12월에 지은 시로 〈雜書〉 50수는 신분, 계급, 사치 등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책9~11은 花徑賸墨이다. 고금체시 459수가 실려 있는데, 1821년 1월부터 1824년 9월까지 지은 시이다. ‘화경’은 覃溪 翁方綱이 써 준 ‘彈琴邀月來花徑 得句移雲到竹窓’ 一聯에서 따온 말로 시고의 이름을 삼은 것이며, ‘잉묵’은 落穗라는 뜻으로 詩句를 의미한다.
책12~13은 紅蠶集이다. 고금체시 267수가 실려 있는데, 1824년 9월부터 1826년 12월까지 지은 시이다. ‘홍잠’은 누에가 늙으면 붉은색을 띤다는 말로 揚雄의「太玄經」에서 따온 것인데 老境에 지은 시를 모았다는 뜻이다.
책13의 중반부는 脚氣集이다. 七言半格詩 40수가 실려 있는데, 1826년 12월에 지은 시이다. 저자가 다리가 아파 고생할 때에 소일거리로 청나라 袁枚가 편찬한 「新齊諧」를 읽고 느낀 바를 七言絶句로 지은 것으로 원문을 각 편의 아래에 부기하였다.
책13의 뒷부분~14는 倉鼠存藁이다. 고금체시 107수가 실려 있는데, 1827년 1월부터 10월까지 지은 시이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지은 古今體詩를 모은 것으로, ‘倉鼠’라는 뜻은 병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는데도 여전히 軍銜으로 녹봉을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쥐가 太倉의 곡식을 훔쳐 먹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여 스스로 경계하는 뜻으로 시집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책14의 뒷부분은 詩夢室小草이다. 고금체시 70수가 실려 있는데, 1827년 10월부터 1828년 2월까지 지은 시로 燕京에 사신으로 갔을 때 淸人 錢林이 보여 준 懷人詩에서 ‘詩夢’ 두 자를 취하여 거처의 편액과 시집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책15는 江都錄이다. 고금체시 87수가 실려 있는데, 1828년 9월부터 1830년 4월까지 지은 시로 강화 유수로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책15의 뒷부분~16은 九十九菴吟藁이다. 고금체시 68수가 실려 있는데, 1830년 8월부터 12월까지 지은 시이다. 구십구암음고는 강화 유수를 사직하고 자하산에 은거할 때 지은 시이다. 구십구암은 자하산에 99개의 암자가 있었다가 지금은 23개만 남았다고 하는데, 옛것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시집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책16의 뒷부분은 蓉涇小草이다. 고금체시 59수가 실려 있는데, 1830년 12월부터 1831년 2월까지 지은 시로 용경의 漁村에서 방을 얻어 병 조리를 할 때 지은 시이다.
책17~18은 北禪院續稿이다. 고금체시 129수, 七言半格詩 76수가 실려 있는데, 1831년 2월부터 1832년 3월까지 지은 시이다. 용경에서 자하산 山樓로 돌아와서 은거할 때 지은 시로 구십구암의 續筆로 삼은 것이다. 이 중 〈東人論詩絶句〉 35수는 우리나라의 시인과 작품을 ‘以詩評詩’의 방법으로 七言絶句를 가지고 비평한 것이다. 그 대상은 崔致遠부터 金尙憲까지 51명이며 自註를 붙여 이해를 돕고 비평의 논거를 제시하였다.
책18의 뒷부분~19는 養硯山房藁이다. 고금체시 157수가 실려 있는데, 1832년 3월부터 10월까지 지은 시이다. 양연산방은 孝明世子가 저자에게 하사한 扁額이며 이런 후의를 잊지 않기 위하여 시집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이 중 〈園中秋花十四詠〉은 저자의 정원에 심은 繡毬花, 石竹花, 紅蓼 등 14종에 대해 지은 시이다.
책20은 楙軒集이다. 고금체시 159수가 실려 있는데, 1832년 10월부터 1833년 3월까지 지은 시이다. 저자가 平薪鎭 僉使로 있을 때에 지은 시로 침실 뒤에 木瓜 1그루가 있어 무헌이라고 扁額을 한 것이다.
책21은 北轅集과 和陶詩屋小藁이다. 북원집에는 고금체시 103수, 화도시옥소고에는 고금체시 44수가 실려 있다. 북원집은 1833년 3월부터 11월까지 지은 시로 유배에서 풀려난 뒤에 지은 古近體詩를 통틀어 기록한 것이다. 화도시옥소고는 1833년 11월부터 1834년 5월까지 지은 시로 平山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이다.
책22는 山房紀恩集이다. 고금체시 149수가 실려 있는데, 1834년 5월부터 11월까지 지은 시로 평산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뒤 養硯山房에서 지낼 때 지은 古今體詩이다. 이 중 〈新獲明永樂周定王臨蘭亭小本……〉은 저자가 七言長歌로 짓고 아들 申命準이 자세하게 주석을 단 것이다.
책23~25는 祝聖藁와 北遊小草이다. 축성고에는 고금체시 472수, 북유소초에는 고금체시 34수가 실려 있다. 축성고는 1834년 11월부터 1838년 8월까지 지은 시로 성상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詩句에서 따온 말로 이때는 순조가 승하하고 헌종이 즉위한 시기이다. 북유소초는 1838년 9월부터 1839년 3월까지 지은 시이다. 호조 참판을 사직하고 아들 申命衍이 재직하고 있던 洪原 任所에 가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책26~29는 覆瓿集이다. 고금체시 471수가 실려 있는데, 1839년 3월부터 1845년 7월까지 지은 시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지은 것이다. 부부집은 자신의 시문이 후세에 고이 간직되지 못하고 항아리 뚜껑으로나 쓰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시집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필자 : 김기빈(金圻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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警修堂全藁冊十七 東陽申緯漢叟

北禪院續藁二 辛卯五月
東人論詩 絶句三十五首 a_291_370c

 

 

放眼威儀覩漢官。功高初祖始開山。顧雲一部方輿誌。爭及僧棊白日閑。李奎報白雲小說。崔致遠入唐登第。有破荒之功。故東方學者。皆以爲宗。其詩有昆侖東走五山碧。星宿北流一水黃之句。同年顧雲曰。此句卽一輿地誌。學士朴仁範,參政朴寅亮。亦以詩鳴海內。東方文獻之通中國。自三子始焉。朴參政詩曰。門前客棹洪波急。竹下僧棊291_370d白日閑。頗佳。

其二
虞趙諸公共漸摩。蜀吳萬里壯經過。文章爾雅陶鎔化。功到于今儘覺多。李益齋爲忠宣王器重。從王居上國最久。故得與元四學士遊處。視易聽新。摩厲變化。固已極其正大高明之學。而又奉使川蜀。從王吳會。往返萬餘里。閎博絶特之觀。包括無餘。踈蕩其奇氣。斂而東歸。問學之士。仰之如泰山。去其靡陋。稍返爾雅。皆先生之化也。

其三
長嘯牧翁倚風磴。綠波添淚鄭知常。䧺豪豓逸難相291_371a下。偉丈夫前窈窕娘。余甞謂西京古今題詠。只有二絶唱。牧隱長嘯倚風磴。山靑江自流。鄭知常大同江水何時盡。別淚年年添綠波此二詩而已。我朝遂無繼響者。

其四
眞傳理學冠東邦。節義堂堂百世降。不謂詞章兼卓犖。雨聲板屋早梅窓。鄭圃隱先生。非徒理學節義冠絶一世。文章亦豪放奇雋。梅窓春色早。板屋雨聲多。卽先生一臠也。

其五
桃花關外望天涯。大別山靑春日斜。下筆烟雲金惕291_371b若。能敎牧老嘆才華。許筠惺叟詩話。金惕若九容詩甚淸贍。牧老素稱下筆如雲烟者是已。嘗奉使入京。其咨文。馬五十匹。誤塡以五千。高皇帝命流大理。公詩曰。死生由命奈何天。東望扶桑路渺然。良馬五千何日到。桃花關外草芊芊。過武昌。又有大別山靑日已斜之句。

其六
執手賢王子亟稱。逃荊泰伯讓寧能。天家富貴禪家語。蘿月孤菴塔一層。讓寧大君。初立爲世子。永樂五年。朝京師。文皇帝執手慰諭之。稱曰賢王子。親製七言詩以賜。世宗生有聖德。百姓歸心焉。讓寧心知之。佯狂逃去以讓之。一時擬之泰伯,虞仲。自少能文章。陽若不知書者。雖太宗亦不知。題僧卷。有曰山霞朝作飯。蘿月夜291_371c爲燈。獨有孤菴下。惟存塔一層。雖自命風騷者。未必過之。

其七
紅杏花殘雨一犂。蒼茫獨立詠新詩。歸來又得佳公子。卧看秋窓蟲吐絲。朱溪君深源。燕山時爲任士洪搆誣。與二子並見害。中廟時特贈一品㫌閭。公子非但解理學。亦能綴詩。雨後晩望曰。一犂春雨杏花殘。處處人耕白水間。獨立蒼茫江海上。不勝惆悵望三山。鳴陽正賢孫。以禮律身。而瀟洒出塵。其秋日詩曰。白露園林淨。高風草木衰。覆杯踈竹葉。汲井煑桑枝。落日雁塞塞。秋窓虫吐絲。誰憐貧病客。長咏楚人詞。

其八
291_371d晦齋不屑學操觚。長對靑山一句無。好向先生觀所養。一身還有一唐虞。晦齋有長對靑山不賦詩之句。又曰待得神淸眞氣養。一身還是一唐虞。非操觚家可及。

其九
夢牽白鶴靑松棲。詩好丹山碧水題。摹寫江光橫匹練。空中明月近堪梯。退溪先生求靑松不諧。得除丹山郡。有詩曰。靑松白鶴元無分。碧水丹山儘有緣。練光亭詩。有空中明月近堪梯。

其十
291_372a四佳繁富孰窺藩。閑鴨遊蜂寫景渾。一種淸華廊廟氣。白雲如海滿前村。惺叟詩話。英廟人才輩出。一時文章鉅公甚多。惟徐四佳詩。舂容富麗。如遊蜂飛不定。閑鴨睡相依。大有佳處。金春澤北軒雜志。古語云詩能窮人。然宰相口氣。與寒士絶異。鄭林塘身作太平宰相。時國家於北路戰亡處賜祭。林塘詩曰。聖朝枯骨亦沾恩。香火年年降塞門。祭罷上壇雷雨定。白雲如海滿前村。題甚悽楚而語却富麗。

其十一
新詩嚼徵復含商。宮女琵琶殿角凉。何物書生孫舜孝。一身渾卧御袍香。車天輅五山說林。孫勿齋舜孝有才學。成廟甚重291_372b之。甞引接賜酒。醉甚。上問曰。卿能作詩乎。對曰惟命。上以張良命題呼韻。舜孝應口對曰。奇謀不遂浪沙中。杖釰歸來相沛公。借箸已能成漢業。分茅却自讓齊封。平生智畧傳黃石。末路心期付赤松。堪恨韓彭竟葅醯。功成勇退是英䧺。上大說。命一宮人彈琵琶而歌之。舜孝醉倒不能起。上解監錦帖裏覆之。君臣眷遇之隆。曠絶千古。

其十二
第五橋頭楊柳斜。瑤琴一曲玉人家。緗簾棐几和風日。靑瑣詞臣落墨華。魚叔權稗官雜記。樂籍上林春。以琴擅一時。申三魁贈以詩曰。第五橋頭楊柳斜。晩來風日轉淸和。緗簾十二人如玉。靑瑣詞臣信馬過。春旣老。倩畫師李上佐。寫此詩291_372c爲圖。遍乞縉紳題咏。鄭林塘,金慕齋皆有此詩。

其十三
萬竅風生鐵鳳翔。孤撑宇宙格沈蒼。佛天花雨羅時盖。又見駸駸入盛唐。惺叟詩話。佔齋神勒寺詩。上方鍾動驪龍舞。萬竅風生鐵鳳翔之句。沉欝嚴重。此眞撑宇宙句。五山說林。佔詩稱冠冕。宲非夸翊。每誦其風飄羅代盖。雨蹴佛天花。則未嘗不服其放遠。

其十四
虛白訥齋角奇健。駱峯淸鬯杭芝川。中宣後進開291_372d天是。徐四佳如四傑前。我朝詩。至中廟朝大成。又至宣廟朝大備。李容齋倡始。而朴訥齋,申駱峯,鄭湖陰,朴挹翠幷生一時。足稱千古。盧蘓齋,黃芝川迭相代興。崔白法唐。而李蓀谷闡其流。崔簡易險勁矯健。自門戶。權石洲晩出。而可與容齋肩隨。至如初葉大家。當推徐四佳爲第一。而金佔,成虛白次之。比之於唐。則四佳諸公。其初唐之四傑。而中宣諸名家。其猶盛唐開天諸家。

其十五
膚淺爲詩東俗陋。蘓齋簡易寡同儔。現成腳跡徒遵奉。不復深從裏許求。盧蘓齋在宣廟初。最爲傑然。其沈欝老健。莾宕悲壯。深得老杜格力。人莫能及。崔簡易風格之䧺豪。質致之深厚。亞於蘓齋。而鑱畫矯健或過之。其警絶處聲響栗然。291_373a如出金石。非後人所及也。

其十六
學副眞才一代論。容齋正覺入禪門。海東亦有江西派。老樹春陰挹翠軒。惺叟詩話。我朝詩。當以李容齋爲第一。沉厚和平。淡雅純熟。五言古詩。入杜出陳。高古簡重。南龍翼壺谷詩話。國初以來文體。專尙東坡。而翠軒忽學山谷。儕流皆屈服。余見翠軒詩春陰欲雨烏相語。老樹無情風自哀。最是警策而兼學黃,陳也。

其十七
才擅三唐崔白李。㴑源風調始冲菴。後來深院孤舟291_373b句。突過杏花微雨簾。崔孤편001,白玉峯,李蓀谷。世所稱三唐者。唐調倡自金冲菴詩。江南殘夢晝懨懨。愁逐年芳日日添。鶯燕不來春又暮。落花微雨下重簾。最得意。三唐中蓀谷跨崔越白。其詩有病客孤舟明月在。老僧深院落花多之句。

其十八
江聲忽厲月孤懸。早許湖陰壓卷篇。實踐眞知金柏谷。黃江一夜不成眠。金得臣終南叢志。鄭湖陰有江聲忽厲月孤懸之句。或以月孤懸與江聲厲不相屬疑之。許筠獨曰。此老此詩。當爲壓卷。以筠藻鑑。豈無所深解。余甞宿黃江。夜聞灘聲。開戶視之。落月孤懸。因知湖陰老子寫景鍊句之逼眞也。
291_373c
其十九
詩到鵞溪軟媚求。江村門掩豆花秋。死楊妃卧海棠下。勝似說玄宗白頭。壺谷詩話。李鵞溪詩。過於軟媚。或以死楊妃卧花下爲譏。如白雨滿船歸棹急。數村門掩豆花秋之句。眞是畫中有詩矣。

其二十
石徑筇音宿鳥知。白雲平壑月沉時。淸修苦節無人及。想見詩中絶俗姿。權應仁松溪漫錄。朴思菴宿白雲洞曺氏草堂詩曰。醉睡仙家覺後疑。白雲平壑月沉時。翛然獨出修林外。石徑筇音宿鳥知。人謂宿鳥知先生。五山說林。朴思菴淸修291_373d苦節。人莫能及。

其二十一
白衣妙選稱從事。何異將身到鳳池。樂府至今傳絶唱。松江歌曲石洲詩。天使來時。石洲被選爲白衣從事。宣廟徵稿以入。簡易贈詩曰。聞說至尊徵稿入。全勝身到鳳凰池。鄭松江歌曲有將進酒。調甚悲惋。石洲過公墓有詩曰。空山落木雨蕭蕭。相國風流此寂寥。惆悵一杯難更進。昔年歌曲卽今朝。至今樂府幷歌之。千古絶唱也。

其二十二
齊名陳李有誰知。片羽零金恰小詩。密葉翳花雲漏291_374a日。一江春雨碧絲絲。陳翰林澕。與李文順齊名。陳詩曰。小梅零落柳僛垂。閑踏晴嵐步步遅。漁店閉門人語少。一江春雨碧絲絲。淸警可詠。李詩曰。輕衫小簟卧風欞。夢覺啼鶯三兩聲。密葉翳花春後在。薄雲漏日雨中明。讀之爽然。語見惺叟詩話中也。

其二十三
論定波紋與繡針。爭如自負比高岑。雍門赤壁琴簫響。難道滄洲不賞音。壺谷言李月沙詩。如水紋平舖。申象村詩。如組繡五彩。柏谷問鄭東溟曰。子詩於古可方何人。東溟笑曰。李杜則不敢當。至於高岑輩。或可比肩。車滄洲言權石洲之空山落木雨蕭蕭。李東岳之江頭誰唱美人詞。俱是絶響。權之首句。如雍門琴聲。忽然入耳。使人無不涕零。291_374b李之末句。如赤辟簫音。不絶如縷。猶含無限意思也。

其二十四
萬里長城馬絶塵。揮毫餘氣尙輪囷。名心擬死眞堪笑。自有文星上應人。車五山自言貼紙於萬里長城。使我走馬揮筆。城有時盡而吾詩不窮矣。終南叢志。許筠奉使入京。有一星官言靑邱分野奎星晦彩。文人當死。筠欲自死以當之。及渡鴨江。聞五山死。愕然自失。

其二十五
聖主憐才眷逐臣。文章遭遇際昌辰。富贍敏捷詩291_374c千首。只好憑凌幷世人。車天輅以四館宮。爲擧人代述事覺。杖流北邊。及北兵使辭陛。宣廟敎曰。車天輅雖爲罪謫。予愛其才。可善視之。兵使待之極欵。天輅恠其厚而問之。兵使具以實告。天輅感泣。聖主愛惜人才。吁亦至矣。

其二十六
鄭礥月色荷香句。何似南樓故國鍾。具眼倭中有人否。絳雲無恙碧紗籠。鄭礥芙蓉堂詩曰。荷香月色可淸宵。更有何人倚玉簫。十二曲欄無夢寐。碧城秋思夜迢迢。倭冦至碧城。盡燒詩板。獨留此詩。權草棲松京詩曰。雪月前朝色。寒鍾故國聲。南樓愁獨立。殘郭暮烟生。可與荷花月色句幷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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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二十七
奚論骨力韻優優。城枕寒江地易秋。眞見人家有跨竈。詩난001雙絶李東洲。論詩者謂李芝峯法唐。閑淡溫雅而所乏者氣力。如窓間小雨天難曉。城枕寒江地易秋之句。人未易道。余見東國文章。詩文俱備者李東洲。

其二十八
天心錯莫臨江水。廟筭凄凉對夕暉。休說江郞才欲盡。五峯劘墨一時稀。壺谷詩話。李五峯天才鳴世。晩年有才盡之嘆。如天心錯莫臨江水。廟筭凄凉對夕暉等語。一時儕友輩莫敢望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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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二十九
白首苦吟成進士。微官不及右文時。直將郊島爭寒瘦。一段秋光欲染詩。宣廟朝進士成汝學號雙泉。自少攻詩。年老不得一命。人皆惜之。其警句曰雨意偏侵夢。秋光欲染詩。極佳也。

其三十
閨媛亦忌盛名中。蘭雪人間議異同。紅墮芙蓉三九朶。歸程笑指廣寒宮。蘭雪軒許氏。爲閨媛中第一。中朝人爭購其集。洪慶臣,許皆言蘭雪詩二三篇外。皆他人作。白玉樓上梁文。亦筠所撰云。可笑。鶴山樵談。姊氏平日有夢中詩曰。碧海291_375b侵瑤海。靑鸞倚彩鸞。芙蓉三九朶。紅墮月霜寒。及上昇。享年二十七。恰符三九之數。修短之前。豈可逭乎。

其三十一
王李頹波日漸東。當時摹擬變成風。性情流出於何見。只好千家軌轍同。宣廟朝以後。王,李摹擬之學盛行。人人蹈襲。家家效顰。無復各成一家之言。自此詩道衰矣。

其三十二
暮雲殘雪是何山。驢背詩人兀睡寒。歎息當時壺谷老。竟遺明月漉珠瀾。壺谷詩話。金柏谷湖行絶句。有驢背睡餘開眼見。暮雲殘雪是291_375c何山之句。語韻極佳。而不入於余所撰箕雅中。此所謂倒海漉珠。竟遺明月。豈不嗟惜也。

其三十三
書屋自名億萬齋。前於栢谷有乖厓。空踈自命詩人者。容易那能到得佳。終南叢志。古文章家。靡不以勤而致之。世傳金乖厓閉門讀書。下堂見落葉。始知爲秋。余所魯鈍。所讀倍人。最喜伯夷傳。讀至一億一萬三千筭。遂名小齋曰億萬齋。去庚戌八路大歉。翌年大疫。都下積尸如山。人有戱余者曰。今年死者與君讀書之數。較此孰多。

其三十四
天下幾人學杜甫。家家尸祝最東方。時從批解窺班291_375d得。先數功臣李澤堂。東人之學杜者。不但不得其髓。幷與皮貌而得之者鮮矣。澤堂杜詩批解。或時有搘拄。然有裨於初學則多矣。余亦少日。甞問津於是書耳。

其三十五
淡雲微雨小姑祠。菊秀蘭衰八月時。心折漁洋談藝日。而今華國屬之誰。王漁洋論詩絶句。淡雲微雨小姑祠。菊秀蘭衰八月時。記得朝鮮使臣語。果然東國解聲詩。卽淸陰詩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