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큰 산맥들 높이 뻗어오르다 |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경남 진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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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경남의 중심인 진주시는 명문 진주고등학교를 주 무대로 한 인재의 산실로서 자부심이 강하다. LG그룹의 모태가 되는 ‘락희화학’과 ‘금성사’를 창업한 구씨와 허씨 가문을 필두로 수많은 기업인과 정·관계 거물들, 그 밖에 법조계, 언론계, 문화·예술·체육계 등 다방면에 걸쳐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나왔다. 서부 경남권이라 하면 대체적으로 거창, 산청, 함양, 하동과 진주를 일컫는다. 대구와 인접한 거창에서는 합천 사람들처럼 대구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그 밖의 지역에서 대처로 나간다 하면 대개는 진주와 부산 쪽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서부 경남 지역은 진주시의 세력권에 포함되는 배후지로서 진주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는 진주시가 부산 대도시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지리적·경제적 거리에 위치한 것과 과거부터 형성되어온 경남 서부 지역의 문화적 전통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부 경남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물론 예술·교육 등 현재의 생활권도 진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특히 교육 도시로서 진주의 면모는, 도농 복합 형태의 진주시에서 도시 지역 인구의 40%를 학생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 당연히 도시 규모에 비해 교육기관이 많다. 일반 대학 3개, 교육대학 1개, 전문대학 2개, 고등학교 23개 등 모두 1백60개의 학교가 있다.
구씨와 허씨 가문의 운명적 만남 진주는 역사적으로 경남의 가운데 자리 잡은 고을이었고, 낙동강을 기준으로 좌와 우로 갈리는 경상우도의 중심지였다. 고려 성종 2년(983년)에 전국 12목(牧)의 하나인 진주목이 설치되었고, 1896년(조선 고종 33년)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관찰사가 상주하는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로서 경남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1925년 4월1일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했고, 1995년 1월1일 진주시와 진양군이 통합했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선대 회장은 1907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에서 출생했다. 그가 다닌 지수초등학교는 삼성그룹 설립자 이병철 회장과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 회장이 동문 수학한 학교이다. 집이 의령이었던 이회장과 함안의 조회장이 집에서 가까운 이 학교를 다닌 것이다. 구회장과 이회장은 같은 반에서 공부했고 구씨의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이씨의 차녀 이숙희씨가 혼인을 맺어 사돈지간이다. 구회장은 이웃 마을 조회장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으며, 오늘날의 삼성그룹은 조회장과 이회장의 동업으로 시작되었다. 구인회 회장 밑으로는 넷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다섯째 구평회 E1명예회장, 최근 작고한 여섯째 구두회 회장이 있다. 선친인 구인회 창업 회장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구자경 명예회장은 70세가 되던 1995년 1월 장남 구본무 LG 회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본무 회장의 동생들이 구본릉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이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장관과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6선 의원이었다. 구태회 회장은 구인회 창업주보다 열여섯 살 아래이며 아들로 구자홍 LS 회장, 구자엽 LS산전 회장,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철 한성 회장을 두고 있다. 승내리의 대성은 능성(綾城) 구씨와 김해 허씨이다. 두 집안은 오래전부터 통혼이 이루어져 핏줄로 얽힌 사이가 되었다. 구인회씨의 사업에 허씨들이 합류하게 된 것은 허준구씨(전 GS건설 명예회장)의 LG화학 입사에서 비롯되었다. 허씨가 영업이사로 들어가며 시작된 두 집안의 동업은 화목과 협동을 통해 오늘날의 명성을 일궈내는 토대가 되었다. “경영은 구씨 집안이 알아서 잘 할 테니 허씨 집안은 돕는 일에 충실한다”라는 것이 허씨 일가의 모토였다고 한다. 허준구 회장에게는 허창수 GS 회장(33대 전경련 회장), 허진수 GS칼텍스 사장, 허명수 GS건설 사장, 허태수 GS홈쇼핑 사장 등의 아들이 있다. 허준구 회장의 가형인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 세 아들을 두었다. 허광수 회장의 부인인 김영자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딸이다. 김영자씨의 동생인 김영명씨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의 부인이므로 허회장과 정회장은 동서지간이 된다. 허광수 회장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사돈 관계를 맺기도 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과 소설가 윤후명씨가 허정구 회장의 사위이다. 이들 간에는 이처럼 혈연과 혼맥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2005년 1월27일 LG와 GS가 법적으로 분리됨에 따라 창업 1세대에 이어 2세대인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 현재의 구본무 LG 회장과 허창수 GS 회장에 이르기까지 57년간 3대에 걸쳐 유지되어온 구·허 양가 간 화합 신뢰의 동업 관계는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현재 이 회사 군(群)은 구인회-구자경-구본무로 이어지는 LG그룹, 고 구철회씨의 세 아들이 경영하고 있는 LIG그룹, 구태회·평회·두회 세 형제의 아들들이 경영을 맡고 있는 LS그룹, 허씨 가의 형제들이 맡은 GS그룹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각 그룹 기업체들 간에는 전과 다름없이 화합과 동업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성공적 동업 비결을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합리적 원칙에 바탕을 둔 ‘인화(人和)’ △유교적 가풍의 엄격한 위계질서 △역할 분담 △오너 일가라도 철저한 능력 검증을 거쳐 기용하는 인사 원칙이 그것이다. 이천시 마장면에 있는 LG의 수련원 이름이 인화원이다. 구본무 회장 취임 당시 구자경 회장의 제의에 따라 허준구·구태회·구평회·허신구·구두회 회장 등 창업 세대가 일제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지역 출신으로는 구씨와 허씨 집안 말고도 쟁쟁한 기업인이 상당수 있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하동에서 진주고로 유학했다. 서울대 상대를 나온 손회장의 고교-대학 직계 후배인 김수필 SKC 고문을 비롯해 많은 진주고 출신이 SK그룹에 뿌리를 내렸다.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창업한 흥아타이어에서 한 우물을 판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학습지 배달 사업을 고안해내 대박을 터뜨린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경운기를 최초로 선보이고 국내 제일의 농기계 생산업체로 키운 김상수 대동공업 회장이 모두 진주 사람이다. 그 밖에 전문 경영인으로 성장해 CEO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진주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최구식(진주 갑)·김재경(진주 을) 의원이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산청에서 태어난 최의원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진주에서 다녀 진주가 고향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 기자를 하다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보좌역을 거쳐 국회의장 공보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17대 국회에 진출했는데 임기 막바지에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재선에 성공했다. 탈당 당시 이방호 공천심사위원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내놓은 기자회견문 내용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당선 직후 한나라당으로 복귀한 그는 박희태 대표 특보단장을 지내고 국토해양위원회 당 간사와 당 홍보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출마했다가 낙선한 최진덕 전 경남도의원, 권철현 전 산청군수, 김대영 변호사, 윤용근 경남도의원,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등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 경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최준철 지역위원장, 강주열 전 진주시의원 등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김재경 의원도 재선이다. 진주에서 태어나서 진주고-경상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7년간 검사 생활을 지낸 후 변호사 개업을 했다. 경상대 총동문회 부회장 겸 진주시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 18대 총선에서는 58.7%의 비교적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법제사법위원회와 윤리특별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장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지식경제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과 한나라당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강갑중 전 경남도의원·김영섭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김영태 진주한일병원장(이상 한나라당), 김조원 경남과학기술대 총장·이만근 당 지역위원장(이상 민주당) 등이 금배지의 꿈을 키우고 있다. 또한 농민운동가 출신이자 18대 총선에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했던 강병기씨가 최근 경남 정무부지사를 사직하고 발걸음을 빨리하고 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무소속)의 입김이 센 경남에서 ‘김지사의 사람들’이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관계에는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유복환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하성 기획재정부 관세정책관, 강기중 대구지방경찰청장이 있다. 최근 대통령실 경호처장으로 발탁된 어청수 전 경찰청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첫 경호실장을 맡았던 김세옥씨에 이은 두 번째 경찰 출신 경호 책임자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과학기술처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과학기술 향상에 큰 업적을 남긴 최형섭 박사(작고)도 진주 출신이다. 진주고는 전통적으로 육사 진학이 활발한 고등학교 중 하나이다. 백석주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유재열 전 3군사령관, 안병호 전 수방사령관, 정화언 전 육군훈련소장, 이상의 전 합참의장이 동문이며, 이갑진 전 해병대 사령관은 진주고와 해사를 졸업했다. 법조인 중에는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이정우 전 법무부장관, 청빈의 상징으로 여겨진 조무제 전 대법관(현 동아대 법대 석좌교수), 황산성 변호사가 있다. 진주고는 한때 사법시험 합격자를 많이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1909년 10월15일 창간한 한국 최초의 지방 신문인 진주의 경남일보는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라는 사설로 필화를 당한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선생이 초대 주필을 맡았다. 국권 피탈에 통분해 음독 순국한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절명시(絶命詩)>를 실어 정간을 당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다 수차례 폐간당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때 문을 닫았다가 1989년 11월25일 신경남일보로 개명해 복간되었고, 2000년에 경남일보로 제호를 복원했다. 진주 출신 언론계 인사로는 다방면에 걸친 재주로 전경련 상근부회장, 서강대 총장 등을 역임한 손병두 KBS 이사장이 있다. 그의 다채로운 경력은 서너 페이지가 넘는 이력서에 나타난다. 김영일 한국ABC(발행부수공사)협회 회장은 연합통신 편집국장-대표이사 사장, 국민일보 사장-회장을 지냈으며, 하순봉 경남일보 회장은 MBC 정치부장, 4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씨름 선수 출신의 방송인으로 최근에 갑작스레 잠정 은퇴를 선언해 이목을 끈 강호동씨와 조광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 역시 이 지역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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