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만인보’ 24년만에 완간
총 30권… 5600명 다양한 삶 노래한 연작시

시인 고은(77)의 ‘만인보’가 30권으로 완간됐다. 1986년 봄 1, 2, 3권이 나온 지 24년 만이다.
시로 쓴 인물사전으로 통하는 만인보는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시다. 시인이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난 특정 인물들을 실명으로 다루고 있다.
작품 수는 4001편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민족의 다양한 인물을 아우른다. 조연급 정도만 포함해도 등장인물이 5600여명에 이른다.
고은(사진)은 시를 통해 자신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 사료ㆍ자료속에 남아있는 역사적 인물들과 이름없는 필부등 수많은 이간 군상을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낸다.
고씨는 1980년 내란음모와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만인보를 구상했다. 27~30권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다수 수록됐다.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봉하 낙화암’ 등도 담겼다.
앞서 출간한 만인보 1~3권(1986)과 4~6권(1988) 그리고 7~9권(1989)은 시인이 어린 시절 만난 가난하지만 정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10~12권(1996)과 13~15권(1997)은 주로 1970년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결을 포착했다. 16~20권(2004)은 식민지 시대와 6·25 동란에 휩쓸린 이들의 삶을 살폈으며 21~23권(2006)은 1960년 4·19 혁명기를 살아낸 인간 군상을 펼쳤다.
24~26권(2007)은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와 고승들의 면면을 다뤘다.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고씨는 18세에 출가, 수도생활 도중 주변 시인들의 천거로 1958년 ‘현대시’ 등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60년 시집 ‘피안감성’을 시작으로 ‘문의 마을에 가서’, ‘백두산’ 등을 냈다.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스웨덴 시카다상 등을 받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하버드 옌칭연구소 특별연구교수 등을 거쳤으며 서울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안팎
시로 쓴 민족 호적부… 해외서도 |
|
미국의 계관시인이자 2008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로버트 하스는 9일 ‘만인보’ 완간에 맞춰 “전 세계에 주는 선물이자 한국 국민의 생명력에 바치는 찬사”라는 내용의 축전을 고은 시인에게 보냈다.
일찌감치 “오늘날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이라고 칭송했던 하스는 “영문판 독자들조차 감동시키고 흥분하게 만드는 만인보는 20세기 모든 인간성과 폭력에 대한 기막힌 초상”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대표 시인 미셸 드기 역시 “놀라운 작품이다. 몇 천개의 삶을 시 속에 새겨 현현시켰다.”고 찬사를 보냈다.
|
|
▲ 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지난 25년의 시간을 더듬으며 ‘만인보’ 30권 완간 소감을 밝히는 고은 시인.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 ●민족·국경 넘어 인류 보편성 획득
만인보는 이미 영어 선집, 스웨덴어 선집, 프랑스어 선집으로 출간됐다. 조만간 러시아어 선집도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중등학교 ‘영원한 고전’ 목록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역사와 인물로 출발한 작품이지만, 민족과 국경의 경계에 갇히지 않은 채 인류 보편성을 획득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1권 때부터 함께해 온 창작과비평사는 30권 완간을 기념해 11권의 양장본으로 시집을 다시 묶었다. 각 권 맨 앞에는 ‘만인만이 만인이 아닙니다. 만물도 만인입니다.’, ‘사람은 가고 시는 온다’, ‘그 누구도 세상의 단역이다. 주역이 아니다.’ 등 제사(題詞) 형식을 띠는 짧은 시 12점이 실렸다. 고은 시인이 직접 붓으로 쓴 글씨들이다.
그는 “1980년 사형이 구형돼 품위있는 최후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광주 얘기를 어렴풋이 전해들었다. 여기에서 살아 나갈 수 있으면, 이걸 써야겠다고 구상했다.”고 꼬박 30년 전 만인보 기획 배경을 밝혔다. 이어 “만인보는 내가 개척한 시적 행위를 넘어서 고전 서사시 위에 있어야 할 서사 체계의 생태적 장르로 정착되길 바란다.”면서 “인간을 넘어서서 ‘만물보’로 나아감으로써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의 상응에 기여하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귀납과 연역, 서사와 서정, 서술과 묘사, 기억과 상상, 문학과 역사, 현실과 허구, 이윽고 시와 시가 아니라는 것(非詩)…, 이런 것들의 합신(合身)이 만인보의 의미일지 모르겠다. 시는 우주 만상의 화합이라고 읽고 있다.”고 덧붙인다. 더이상 형식으로 규정짓거나 굳이 이름을 지으려는 범주 바깥으로 시인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친 숨 내쉬는 사람들 이야기가 대서사시로
만인보 완간의 문학적 의미를 조명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날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창작과비평사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형수는 “만인보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통상적으로 예측 가능한 관념의 범주를 넘어가지 않는다. 근대적 교양에 의한 처방전은 대부분 그를 역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시편들은 모두 개별적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서사적 통합을 구현하고 있다.”면서 “이 독특한 서사 형식은 남다른 미학적 묘책보다 삶의 기본에 충실한 튼튼한 역사의식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만인보’는 온통 사람의 이야기다. 평생에 걸쳐 삶에서도, 문학에서도 사람을 놓지 않았던 노() 시인의 시는 ‘만인보’ 이전에 이미 ‘만인보’였다. 시(詩)를 살아간 것도, 역사를 일궈간 것도, 민족을 꾸려간 것도, 사람이었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그저 사람의 삶을 그대로 써내려 갔을 뿐”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뒤, 거친 숨 내쉬는 5600여개의 생애는 4001편의 시가 되어 세계가 주목하는 민족의 대서사시로 완성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만인보’ 30권 완간 고은 시인 “만인보의 본질은 끝이 없다는 것” //
국민일보 | 입력 2010.04.09 18:15
고은(77) 시인의 연작시편 '만인보(萬人譜)'가 출판사 창비에서 전30권으로 완간됐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구상하기 시작했으니 30년 만에 대장정을 마무리한 것이다. 86년 11월 1∼3권을 한꺼번에 선보인 이래 25년 만이다.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고은 시인은 "25년간 짊어졌던 길마(소의 등에 얹어 물건을 나르는 기구)를 이제야 벗어던진 것 같다. 이제 겨드랑이에서 새 날개가 돋고 있는데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겠다"고 감회를 밝혔다.
시인은 "'만인보' 안에는 각각 다른 시기, 다른 방향의 얼굴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산재해 있지만 그들은 하나의 명제에 갇혀 있지 않다"면서 "세상과의 약속을 나는 이걸로 지켰다"고 말했다.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사를 만들어 온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역작으로 '시로 쓴 인물백과사전' 혹은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로 불린다. 총 작품 수는 4001편이고, 등장 인물은 조연급 정도의 인물만도 5600명에 달한다.
시인은 1권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만인보'는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다. 나의 만남은 전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하잘것 없는 만남 하나에도 거기에는 역사의 불가결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만인보'에는 우리 민족이 겪어 온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6권에는 '머슴 대길이'를 비롯해 '찬밥네' '따옥이' '찐득이' 등 가난 속에서도 넉넉한 웃음을 간직한 채 역사를 만들어간 고향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7∼9권에서는 1950년대 고난의 세월을 살아 온 민초들의 다양한 삶을, 10∼15권에는 함석헌 이소선 장준하 문익환 박정희 이후락 정일권 등 70년대 인물들을 불러냈다.
16∼20권은 식민지시대와 해방공간, 그리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군상들을, 21∼23권에서는 4·19혁명기를 배경으로 '보통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24∼26권은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승(高僧)들의 행적을 다뤘다.
662편이 실린 27∼30권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당시 국가적 폭력에 의해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절명한 사람들의 사연을 다룬 작품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당대의 인물들이나 친일행적을 비판한 시도 실렸다.
대미를 장식하는 시는 '그 석굴 소년'으로, 낙조 속에 태어나 버림받고 핍박받던 아이가 끝없이 읽어야 할 책이 기다리는 석굴로 들어가 영겁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은 지난해 7월 마지막 원고를 탈고한 뒤 기존 출간본까지를 포함한 모든 작품을 처음부터 일일이 점검해 역사적 사실관계와 인명 착오 등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그는 "만인보의 본질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만인보'의 어디에도 끝이라는 말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완간을 했지만) 어느 날 31권을 쓰고 있는 내 혼백을 누군가가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인보가 더 이어질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강박적인 약속은 하지 않겠다. 이승에서의 본능이 작동할 때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진행할지도 모른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는 또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쓰고 싶어도 여건이 안돼 쓰지 못한 인물들이 있다"며 "사람의 삶은 후반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규정지어진다. 나는 내 뒤에 벼랑이 아니라 들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창비는 완간을 기념해 기존에 출간된 1∼26권을 출간 시기별로 합본하고, 신간 27∼30권을 합쳐 11권의 양장본과 부록 1권으로 펴냈다.
또 이날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문학평론가 염무웅 도정일씨, 프랑스 시 전문지 '포에지'의 클로드 무샤르 편집위원, 김수형 작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만인보 완간의 의미와 작품세계 등을 조명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
고은(高銀) 만인보(萬人譜) 중 몇편
최성일
<만인보> 25권 중에서
신라 당나귀왕
삼국유사에는 당나귀 임금 이야기도 있더라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로
쫑긋쫑긋 달려서
그 귀 숨기느라
긴 두건을 써 감추었더라
두건을 지은
두건장이는
임금님 귀 당나귀를 말하지 못하다가
한밤중 대나무숲에 들어가
대나무숲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실컷 말하였더라
그랬더니 그 대나무숲도 못 참았는지
소나무숲에 대고 말하고
소나무숲이
참나무숲에
참나무숲이
뽕나무 울타리에
뽕나무 울타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에 말하였더라
온 나라 사람들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말하였더라
이 당나귀 임금이 바로 경문왕
이 왕은 본디 왕족 성골도 아니오
진골도 아니건만
선왕 헌완왕 앞에 나아가
바른말 세 마디로
임금의 눈에 들어
부마(駙馬)가 되었더라
두 공주 가운데
첫째 박색
둘째 미색인데
첫째 박색공주를 청하니
과연 내 사위로다 갸륵하도다
하여
뒷날 왕위 까지 이어주었다
그런데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비를 내쳐버리고
둘째 미색공주를 냉큼
새 왕비로 맞이하여
두 아들을 낳았더라
첫 왕자가 헌강왕
둘째 왕자가 정강왕
그도 모자랐던지
공주 하나는
진성여왕으로 앉혔으니
아니 그것도 모자랐던지
미색 궁녀 취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 아이를
여왕이 죽이려 하자
멀리 보내어
절간 아이로 살려내니
그가
나중에 애꾸눈 궁예였더라
태봉국 임금
미륵화현
궁예 였더라
* * *
'춘성'
만해 용운께서는
산중 괴각(乖角)이시라
상좌도 딱 하나밖에 두지 않았다
상좌도
산중 괴각이시라
승어사(勝於師)
산중 괴각이시라
춘성 선사
만해 용운이 감옥에 갇혀 계실 때
만해의 조선독립이유서를
몰래 받아내어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에
보내었다
춘성 선사
그는 아예 상좌 하나도 두지 않았다
이불 없이 살았다
하기야
절 뒤안에 항아리 묻어
거기 물 채워
물속에 들어가
머리 내놓고 졸음 쫓는
선정(禪定)이니
기어이 수마(睡魔)를 모조리 내쫓아버렸으니
경찰서에 불려가 신문받을 때
본적 어디냐 하면
우리 아버지 자지 끝이다
고향이 어디냐 하면
우리 어머니 보지 속이다
누군가가
부활을 말하자
뭐 부활
뭐 죽었다 살아?
나는 여태껏
죽었다 살아나는 건
내 자지밖에 보지 못했다
이놈
한밤중에 다 잠들었는데
그는 마당에 나와
돌고
돌며
행선삼매라
신새벽 잠깐만 눈붙이고
다시 새벽 선정에 새치름히 들어간다 무릇 아지 못해라
※ 춘성[春城, 1891~1977]: 속명은 이창림(李昌林). 1891년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서 태어났다. 1901년 13세 때 백담사에서 출가하여 10여년간 만해 한용운을 모시며 수학하였다. 1919년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가 되었고, 1929년 만공의 법을 이어받았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북한산의 망월사를 떠나지 않았다.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써서 욕쟁이스님으로도 통했다. 1977년 불국사에서 나이 87세, 법랍 74세로 입적하였다. 유언에 따라 사리와 재는 서해에 뿌려졌다.
* * *
(20권 중)
대구 르네상스
돌체는 부산으로 피난 갔다
르네상스는 대구로 피난 갔다
낙동강전투
포성이 들려왔다
국방부가 부산으로 옮겨갔다
그런데도
음악실 르네상스는 대구를 떠나지 않았다
바흐로부터 시작해서
바흐로 돌아오고 있었다
베토벤
챠이코프스키 「비창」이 들리고 있었다
미국 신문 일본 신문에
폐허에서 음악이 들린다
전쟁속에서
음악이 살아 있다고 대서특필 기사가 났다
대구 르네상스 뒤
대구하이마트가 문을 열었다
라흐마니노프가 들렸다
부산에서
콧노래 같은 조병화씨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이 나왔다
박거영 시집 『악의 노래』가 나왔다
전봉건은 그 시집들을 변소 휴지로
부산역전 공중변소에 걸어두었다
전봉건은 대구로 와서
「시인과 농부」를 듣고 있었다
* * *
명동 나정구
폐허 명동에는 술 취해 쓰러질 자유가 있다
벽돌조각
벽 시멘트조각 사이
수북한 거웃 억새
거기 마음껏 오줌 갈겨댈 자유가 있다
과거는 화려했고
현재는 거지라고 허세를 부릴 자유가 있다
예술가 옆에 있으면
대번에 예술가가 되는 자유가 있다
신장 1미터 85센티미터의 김환기 화백 옆에 있으면
이조백자 항아리를 그린
현대화가가 되었다
이상의 전처
김환기의 현처 김향안 여사 옆에 있으면
멋진 수필가가 되었다
줄담배 피우는 이명온 여사와 함께 걸어가면
수필가 겸 왕년의 여기자가 될 수 있었다
박인환이 죽었다
목마와 숙녀 버지니아 울프 운운의 건달노래 뒤
의용군에 갔다가
거제도 수용소에서 나온
김수영과 악수하면
전후파 시인이 되고 말았다
폐허 명동에서는 진짜도 가짜도 하나인 자유가 있다
여기저기 술자리에 끼여 있는
술꾼 나정구는
오늘은 시인
내일은 수필가였다
또 모레는 무엇이 되나
술이 들어갈 입만 있으면
주점 포엠이나 은정에 들어가
어느 자리에 끼여들 자유가 있다
아 대한민국 페허 명동에서는
온갖 과장과 허세의 자유가 있다 죽은시대의 주술같은 자유가 있다
* * *
박두진
해야 솟아라
붉은 해야 솟아라
대구시절
해의 시인 박두진
술집에도 간 적 없다
카랑카랑한 목구멍에
고독이 들어 있다
고독의 박자가 들어있다
반복의 박자가 들어있다
아 어찌 우리 이날을 잊으랴
6.25의 노래 노랫말로
몇푼을 받았다
무찌르자 오랑캐 중공 오랑캐로
또 몇푼 받았다
쌀도 없고 돈도 없는 하루를 굶었다
이 궁리
저 궁리 끝
무심코 베개에 눈이 갔다
베개를 갈라
그 안에서 마른 좁쌀 꺼냈다
그 좁쌀 물에 불려
죽을 쑤었다
퀴퀴한 죽이었다
먹고 나니
눈에 정신이 들어왔다
해야 솟아라 붉은 해야 솟아라
2005년 10월 06일
듀나에서 슬쩍해왔습니다.
봉태
나하고 초등학교 일이등 다투었지
부자집 아들이라
옷이 좋았지
항상 단추 다섯 빛났지
도시락에 삶은 달걀 환하게 들어 있었지
흰쌀밥에 보리 뿌려졌지
그러나 누구한테 손톱발톱만치도 뽐낸 적 없지ㅣ
너희 논 옆에 우리 논 하나 있다
너하고 나도
의좋게 지내자고 굳은 떡 주며 말했지
그런 봉태
수복 직후 아버지 죽은 뒤
동네사람에게 끌려가서
할미산 굴 속에서 죽었지
유엔군 흑인 총 맞아 죽었지
그 달밤에
그 캄캄한 굴 속에서 죽었지
봉태야
나는 너 하나 살려낼 수 없었다
네 열일곱 살은 내 열일곱 살이었는데
아베 교장
아베 쓰도무 교장
뚱그런 안경에 고초당초같이 매서운 사람입니다
구두 껍데기 오려낸
슬리퍼 딱딱 소리내어 복도를 걸어오면
각 교실마다 쥐죽어버리는 사람입니다
2학년 때 수신시간에
장차 너희들 뭐가 될래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대일본제국 육군 대장이 되겠습니다
해군대장이 되겠습니다
야마모또 이소로꾸 각하가 되겠습니다
간호부가 되겠습니다
비행기공장 직공이 되어
비행기 만들어
미영귀축을 이기겠습니다 할 때
아베 교장 나더러 대답해보라 했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천황폐하가 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청천벽력이 떨어졌습니다
너는 만세일계 천황폐하를
황공하옵게도 모독했다 네놈은 당장 퇴학이다
이 말에 나는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담임선생이 빌고
아버지가 새 옷 갈아입고 가서 빌고 빌어서
간신히 퇴학은 면한 대신
몇 달 동안 학교 실습지 썩은 보릿단 헤쳐
쓸 만한 보리 가려내는 벌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나는 썩은 냄새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땡볕 아래서나 빗속에서나 나는 거기서
이 세상에서 내가 혼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석 달 벌 마친 뒤 수신시간에
아베 교장은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대일본제국이 이겨
장차 너희들 반도인은 만주와 중국 가서
높고 높은 벼슬 한다고 말했습니다
B-29가 나타났습니다. 그 은빛 4발비행기가 왔습니다
교장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것이 귀축이다 저것이 적이라고 겁도 없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베 교장의 어깨에는 힘이 없었습니다
큰소리가 적어지며 끝내는 혼자의 넋두리였습니다.
그 뒤 8.15가 왔습니다. 그는 울며 떠났습니다.
호박꽃
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규정해왔다
그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왔다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나는 잠들었다
아 내 지난날에 대한 공포여
나는 오늘부터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규정하다니
규정하다니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긴 장마 때문에
호박 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장마 뒤
너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아 삶으로 가득찬 호박꽃이여 아름다움이여
외할머니
소 눈
멀뚱멀뚱한 눈
외할머니 눈
나에게 가장 거룩한 사람은 외할머니이외다
햇풀 뜯다가 말고
서 있는 소
아 그 사람은 끝끝내 나의 외할머니가 아니외다
이 세상 평화외다
죽어서 무덤도 없는
병옥이
두메 촌놈으로 태어나면
대여섯 살에 벌써
노는 놈 없다
산같이 쌓인 일에 아버지 따라 일꾼 되어야 한다
가을 오면
우렁 잡아오라는 어머니 말 듣고
논으로 달려가
드넓은 논바닥
우렁 뒤지는 한나절 좋다 참 좋다
그놈의 일구더기 떠나서 좋다
병옥이
우렁 잘 잡는 병옥이
양잿물 잘못 먹고 죽어버렸다
동네 아이들 병옥이 무덤 아무도 몰랐다
아이들 죽어야 무덤도 없다 제사도 없다 또 낳는다
선제리 아낙네들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더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ㅣ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치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리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 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딸그마니네
갈뫼 딸그마니네집
딸 셋 낳고
덕순이
복순이
길순이 셋 낳고
이번에도 숯덩이만 달린 딸이라
이놈 이름은 딸그마니가 되었구나
딸만 낳는 년 내쫓아야 한다고
산후 조리도 못한 마누라 머리 끄덩이 휘어잡고 나가다가
삭은 울바자 다 쓰러뜨리고 나서야
엉엉엉 우는구나 장관이구나
그러나 딸그마니네 집 고차장맛 하나
어찌 그리 기막히게 단지
남원 순창에서도 고추장 담는 법 배우러 온다지
그 집 앞뜰살뜰 장독대
고추장독 뚜껑에
늦가을 하늘 채우던 고추잠자리
그 중의 두서너 마리 따로 와서 앉아 있네
그 집 고추장은 고추잠자리하고
딸그마니 어머니하고 함께 담는다고
동네 아낙들 물 길러 와서 입맛 다시며 주고받네
그러던 어느 날 뒤안 대밭으로 순철이 어머니 몰래 들어가
그 집 고추장 한 대접 떠가나다
목물하는 그 집 딸 덕순이 육덕에 탄복하여
아이고 순철아 너 동네장가로 덕순이 데려다 살아라
세상에는 그런 년 흐벅진 년 처음 보았구나
재숙이
시암안집 처녀 재숙이
찰찰 넘치는 물동이 이고 가며
먼데 바라보기도 한다
첫가을 백리가 탁 트였구나
내년에는
우리 동네 떠날 재숙이
온통 부푼 재숙이
달 진 뒤의 어둠 같은 재숙이
김신묵
아흔여섯 살 김신묵은
내가 죽으면 박수치며 보내달라 하고 죽었다
장례식날
그의 관이 나갈 때
박수를 쳤다
그 누구도 박수치지 않는 자 없다
산에다 묻어버리고 내려올 때
그의 말이 들렸다
박수치며 내려가라고
그래서 하나둘 박수를 쳤다
동두천 의정부 사이의 길이 양키 없이 빛났다.
* 김신묵여사는 고 문익환 목사의 어머니입니다.
출처 : 굴어당의 漢詩(唐詩.宋詩.漢文)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