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왼쪽 위에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왕양(汪洋) 광둥성 당서기, 허궈창(賀國强)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 최근 세 사람은 차기 전인대에서 약진하기 위해 전면적인 권력 투쟁에 나섰다.ⓒ 대기원 |
| 9월 중공 권력층에 큰 변화
오는 9월 중순, 중국공산당 17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7기 4중전회)가 열린다. 18차 전국대표회의(18차 전대)가 머지 않았다. 나는 이번 17기 전회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고, 18차 전대에서는 중국의 미래를 결정할 정치판 개편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최근 중난하이(中南海·베이징 소재, 중공 권력의 심장부) 고위층에 권력 암투가 벌써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 왕양(汪洋) 광둥성 당서기, 허궈창(賀國强)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서열 8위)이다. 이들은 모두 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매스컴을 동원해 청렴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현재로서는 태자당(중공 원로 2세)인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가 앞서가는 모양새다. 이들은 차기 전인대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보시라이, 왕양) 혹은 약진(허궈창)을 노리고 있다.
충칭시 주요 공안관계자 모조리 체포돼
지난 9일 전국 사법기관장 회의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한 충칭시 사법국장 원창(文强. 54) 폭력조직과 결탁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체포 작전은 보시라이가 충칭시 공안국장 왕리쥔(王立軍)에게 지시를 내려 이뤄졌다. 원창의 체포 소식은 곧바로 전국에 알려졌고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창의 혐의는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공안 부국장 출신인 원창 외에도 충칭시 산하 21개 공안국의 6개 공안국장도 체포됐다.
또 충칭시 인민대표와 정협 상무위원을 역임한 기업가 리창(黎强)을 체포했고, 천밍량(陳明亮),궁강모(龔剛模) 등 폭력조직을 이끌고 있는 지역 부호를 잡아 들였다. 이 소식은 곧바로 언론을 통해 전해졌고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사회과학원 신문연구원 출신인 보시라이는 당시 구축한 조직을 통해 언론과 인터넷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세하고 있다.
8월 10일 오후 3시 42분, 한 인터넷 토론 사이트에 필명 진스이(金世遺)가 성한 ‘보시라이는 암흑가의 저승사자’라는 글이 올라왔다. 주요 내용은 보시라이의 소탕 작전에 대찬 찬사다. 오후 4시 44분에는 ‘천애해각’이라는 필명으로 왕양을 강도 높게 비판한 ‘왕양이여 너를 위해 양탄자를 까는 사람을 마땅히 조심하라’는 글이 발표됐다. 심혈을 기울여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두 편의 문장이 어떻게 1시간 간격으로 발표된 것일까? 언론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보도를 내도록 조종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
보시라이의 숙청이 낯설지 않은 이유
옛 사람들은 온고지신을 말했다. 나는 보시라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기자로서 9년 전 다롄(大連, 당시 보시라이는 다롄시장)에서 발생한 일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시라이가 최근 충칭에서 한 일련의 행동은 옛 수법을 다시 쓴 것에 불과하다. 2000년 말, 정적이었던 성 위원회 서기 원스전(聞世震), 전 다롄시 서기 위쉐샹(於學祥), 및 부시장 가오쯔(高姿)를 제거하기 위해 똑같은 행동을 했다.
당시 보시라이는 법적 근거 없이 다롄시 법원 부원장 류샤오빈(劉曉濱)을 체포했다. 이유는 류 부원장을 체포함으로써 공산당 내의 정적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류샤오빈은 가오쯔(高姿) 전 부시장의 비서로 공산주의 청년단 다롄시 서기를 지낸 인물이다. 보시라이는 후진타오의 안방인 공산주의 청년단과는 적대적인 관계다. 아니나다를까 류 부원장 체포 이후 가오쯔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고, 동시에 다롄시 외무주임 장부닝(張步寧), 보시라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던 나, 그리고 나를 변호했던 천더후이(陳德惠) 변호사, 다롄 천천어항의 장융샹(張永祥) 4형제, 그밖에 다롄 가신국제호텔 사장 한샤오광(韓曉光) 등 10여 명이 줄줄이 체포됐다.
당시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보시라이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정부의 무리한 찬조비 요구를 거절했던 경력이 있다. 혹은 보시라이의 지원 세력과 마찰을 빚었거나 사업상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다. 공산당 일당 독재는 다롄시와 같은 작은 도시에서도 그대로 적용됐고 보시라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봉건 군왕’으로 군림했다.
보시라이의 전횡 앞에 원스전(聞世震)이 이끄는 성위원회만 부단히 저항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다롄시장을 그만두자 류샤오빈 등은 결국 판결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훗날 보시라이가 랴오닝성을 떠난 뒤 류샤오빈은 부국장 직을 회복했고 교통국 부국장으로 전보되었으며, 천변호사 역시 무죄를 선고 받았고, 장부닝과 한샤오광은 아직도 심리 중에 있다.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가 드러난 것으로 처음부터 모함을 당한 것이다. 이들은 공산당 내 권력 투쟁의 희생자다.
이후 보시라이는 다롄시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오히려 승승장구해 성장, 상무부장, 중공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다. 2007년 충칭으로 밀려난 이후에도 여전히 반성의 기미가 없으며, 다롄시에서 했던 악행을 교묘히 답습해 다시 한번 체포의 악순환에 들어갔다. 충칭시를 붉은 공포로 물들이고 있다.
왜 갑자기 폭력 조직 소탕일까?
지난해 7월 10일부터 9월 30일까지 불과 80일 동안 충칭시에서 폭력 조직 관련 기소만 3만 2천 771건에 달했다. 결과 9천 521명이 체포되고 92개 조직이 와해됐다. 충칭시 내 교도소에는 폭력배들로 넘쳐났다.
상술한 필명 진스이(金世遺)가 작성한 글에서 사실 천기누설을 했다. 글에는 리창이 충칭시 인민대회 대표로 정치 경제적으로 강력한 배후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 충칭의 폭력 조직이 오늘날까지 발전하여 ‘억만장자’가 되고 ‘인민대회 대표’까지 성장한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이것을 폭로한 보시라이의 진짜 목적은 배후의 인물인 허궈창(賀國強)과 왕양(汪洋)을 노출시키려는 것이다. 또 최고위층에 포진된 보시라이의 정적을 겨눈 것이다.
8월 9일 체포된 충칭시 사법국장 원창의 약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1992년 9월 쓰촨성(四川省) 충칭시 공안부국장으로 임명됐고, 2000년 1월 청국장급으로 승진했으며, 2003년에는 공안국 당부서기로, 2008년 7월에는 사법국장에 임명됐다. 사람들은 허궈창과 왕양을 같이 놓고 앞뒤로 충칭에서의 근무 경력을 비교한다. 그들의 질긴 인연과 경제적인 밀착은 부인할 수 없는데, 단지 후원(胡溫,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이 이 사건을 조사하려는 결심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원창은 십여 년을 공안국장으로 일했는데 보시라이의 밀정이 2년 동안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부패 정도를 의심할 여지는 없다. 허궈창과 왕양이 만약 부패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기적이다. 리밍(黎明), 천밍량(陳明亮), 궁강모(龔剛模)도 역시 같다.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체의 사장으로서 관리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 사업할 수는 없다. 그래서 큰 돈을 만지지 못한 담당 관리가 별로 없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의 비호세력이 허궈창과 왕양일 가능성이 매우 많다. 이 한 점을 보고 보시라이는 전쟁을 한 것이고 여론을 조성하고 중공 18기 전인대가 소집되기 전에 먼저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2007년 보시라이가 정치국위원으로 죽어 지낼 때도 원래는 충칭으로 가려는 생각이 없었다. 다롄의 정치 선배들에게도 ‘충친은 너무 덥다, 찜통 같다. 나는 다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후원(胡溫)이 그를 부총리에서 배척한 뒤 왕양 일파가 충칭파로부터 광둥성 당권을 빼앗았다. 그리고 보시라이를 찜통같은 충칭으로 보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원한에 사무친 보시라이의 보복은 예견됐던 일이다. 동시에 부패를 척결하는 청렴한 관료 이미지를 구축해 충칭시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마치 닭을 죽여 원숭이를 길들이 듯, 다른 당원과 관리들까지 순종하게 하는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보시라이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최근 몇 년간 보시라이가 다롄시로부터 랴오닝성에 이르기까지 도입했다 실패한 정책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추진했던 기소, 각국 언론의 보시라이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장쩌민의 심복인 보시라이는 파룬궁 탄압을 주도했고, 각국으로부터 집단학살죄 혐의로 고소된 상태다)는 최고위층이 보시라이를 좌천시키게 한 결정적인 이유다.
훗날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지목된 리커창이 랴오닝성에 파견돼 둥하이보(冬海波) 등 보시라이와 밀접한 부패 인사들을 소탕한 점, 허궈창 등이 후진타오의 지지를 업고 보시라이의 범행을 파헤친 점, 보시라이는 이에 대해 명백하게 알고 있다.
예전에 보시라이는 중공 원로인 아버지 보이보(薄一波)의 후광을 업고, 평지풍파를 일으켜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2007년 중공 8대 원로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보이보가 사망하면서 상황 이 변했다.
궁극적 목표는 왕양·허궈창 약점 잡기
보시라이의 다음 행보는 다음과 같이 예상할 수 있다. 원창 등 이미 체포한 부패 관리들에게 사형 가능성을 넌지시 비추며 협박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관료들의 부패 사실을 추가로 자백하는 것 밖에 없다고 알려줘, 이를 통해 입수한 증거로 추가로 체포에 나설 것이다. 보시라이가 만약 이런 방법을 통해 허궈창과 왕양의 약점을 더욱 많이 잡게 될 경우 보시라이가 완승을 거둘 수 있다. 그리고 후원(胡溫)에게도 건네 줄 정보가 생기게 될 것이고, 다음 전인대에서 권토중래를 노릴 수 있다.
상술한 진스이는 문장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충칭 암흑세력이 놀랄만한 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보시라이의 손에 잡혔다. 어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시라이가 어떤 생각으로 소탕 작전을 펼쳤든 체포된 일당은 탐관오리와 폭력배다. 이로써 사회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나는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지적할 뿐이다. 사람들에게 보시라이의 진면목을 똑똑히 알게 해서, 정치 체제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긴박감을 가지게 하고 싶다.
나는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에게 권한다.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지방 관료들을 맞바꿔 보라. 서로의 부패를 밝힐 기회를 줘서, 현재의 충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방적이고 임시변통적인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토론토에서 장웨이핑
*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