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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파나마운하 항구 '접수'… 美의 자존심 '점령'

굴어당 2010. 6. 22. 09:37

[중국, 중남미를 사로잡다] [2] '美 텃밭' 파나마속의 차이나
美 1위는 이제 물동량뿐 항구이용량 中이 압도적
콜론 자유무역지대는 '라틴의 홍콩' 불리기도

지난 5월 20일, 오전 11시 파나마 시티의 운하지구(Zona Canal). '복수릉(福壽陵)'이란 한자가 선명했다. 언덕 꼭대기에서 파나마 운하를 내려다보는 곳에 세워진 축구장 5개만한 중국인 전용 공동묘지로 좌청룡, 우백호의 풍수지리에 맞춰 파나마 최고의 명당을 찾아 지난 2003년 문을 열었다.

우기(雨期)에 접어들어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도 잘 정돈된 잔디는 방문자의 발이 진흙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중국계 3세 산드라 리(李·22)씨는 "바로 아래쪽은 미국인 공동묘지"라고 말했다.

운하지구는 1999년까지는 미국인들만 출입할 수 있는 파나마 속의 미국이었다. 리씨는 "옛 중국인 공동묘지는 시내 빈민촌의 한 귀퉁이를 사용했었다"며 "묘지를 새로 만들면서 대부분 이곳으로 이장(移葬)을 했다"고 말했다.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중국인들은 미국인들의 머리 위에 보란 듯이 자신들의 쉴 곳을 마련한 것이다.

파나마 운하 내려다 보는 중국공원… 중국공원에서 내려다본 태평양연안의 파나마운하. 중국이 파나마운하 공사를 위해 노동자를 파견하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중국인 이민자는 파나마 인구의 10%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조의준 특파원 joyjune@chosun.com
◆한때는 미국 힘의 상징이었으나…=파나마 운하는 초강대국 미국 힘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이 세계 최대의 공업국으로 등장하면서 동부와 서부의 물류를 잇기 위해 대륙의 허리를 자르는 운하 건설이 필연적이었다. 당시 미국은 영국의 반대에도 파나마를 콜롬비아에서 강제로 독립시킨 뒤 1914년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82km의 운하를 팠다. 이를 통해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무려 1만2600km의 항해거리를 줄였다.

운하지구를 만들어 미국인들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도 사실상 '미국 영토'란 자신감 때문이었다. 군사적으로는 미군기지가 있고 경제적으로는 물류기지가 있는 파나마는 미국의 중남미진출 교두보였다.

그러나 1999년 12월 31일 운하가 파나마 정부에 귀속된 뒤 단 10년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파나마 항구의 최대 고객은 중국으로 변했고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 항구 모두 중국 업체가 운영한다. 파나마 운하를 뚫기 위해 데려온 중국 노동자들은 이제 파나마 경제의 주도권을 두고 유대인과 경쟁하고 있다. 미국이 아직 1위를 하는 것은 파나마 운하의 물동량뿐이다. 그것도 미국 동부와 서부를 잇는 사실상의 '내륙 물류'다.

파나마는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대만과 수교하고 있고 돈도 미국 달러화를 쓴다. 그러나 대통령은 중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를 언급하고 경제부처 장관은 중국에서 자식 교육을 시키고 있다. 심지어 지난 2007년에는 중국어를 의무교육 하자는 법안이 파나마 국회에 제출돼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중국, 파나마의 관문을 장악하다=20일 파나마 운하의 태평양 쪽 항구인 발보아항. 이곳의 운영자는 중국(홍콩)계 허치슨 왐포아다. 일렬로 늘어선 크레인들에 세계 1위 항만장비업체인 상하이 진화(上海進華, ZPMC)의 마크가 선명했다. 안내를 한 로레나 곤살레스씨는 "옛날에 설치한 크레인은 한국의 현대 것도 있지만 최근엔 거의 ZPMC 크레인을 쓴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미국의 지배가 끝난 뒤 실시된 태평양과 대서양 쪽 항구 입찰에서 허치슨 왐포아가 두 곳 모두의 운영권을 따내자,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중국 공산당이 우리 앞마당을 먹었다"며 강력히 반발했었다. 때문에 허치슨 왐포아 측은 사진을 찍고 간략한 설명을 해주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곤살레스씨는 "이곳에 들어오는 컨테이너들의 약 60%가 중국, 홍콩, 대만 등에서 들어오는 것"이라며 "옷, 전자제품 등을 실은 컨테이너들이 이곳에서 하역된 뒤 기차에 실려 대서양 쪽으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하역장 뒤편에는 빈 컨테이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대서양에서 온 빈 컨테이너를 태평양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쌓아놓았다"고 말했다.

중국은 공산품, 미국은 농산품 수출=21일 오전 8시30분, 파나마 항만청(AMP) 호르헤 바라캇 부청장은 "최근 6개월간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며 "갑자기 미국이 중국에 농산물을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6개월간 1000만 t의 콩과, 밀 등 농산물이 중국으로 수출된 것이다. 바라캇 부청장은 "지난해까지는 미국이 중국에 농산물을 거의 수출하지 않았고 컨테이너도 대부분 비어서 돌아왔다"며 "일부 컨테이너에 농산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비수기인 올 1~6월에 항구가 붐비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항구를 운영할 때는 미국 배에게 우선권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동등하다"며 "중국이 미국에 비해 세 배 이상 더 항구를 이용하는데 누가 더 중요하겠냐"고 반문했다.

고부가가치 상품이 주로 이동하는 항공은 어떨까. 파나마는 지리적으로 북미와 남미대륙의 중앙에 있어 항공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스위스계 물류업체인 '파날피나(Panalpina)'의 안나 아폰테 파나마 지사장은 "아직 항공물류는 미국이 중국보다 10%포인트 정도 더 많다"면서도 "그런데 품목으로 보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다양한 상품이 홍콩, 상하이 등을 통해 오는데 반해, 미국의 물품은 주로 '자동차 부품'이다. 그는 "미국에서 예전에 남미에 팔았던 자동차들의 부품을 교체해줘야 하는 시기가 됐기 때문"이라며 "최근엔 일본이나 한국차가 많이 팔려 앞으로도 계속 미국의 항공물류가 늘어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자유무역지대 콜론, '라틴' 홍콩 되나=이날 오후 3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딴 '콜론(Colon)' 자유무역지대. 실제로 콜럼버스가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레오폴도 벤데데티 콜론관리청장은 "미국 상품 판매회사라…글쎄 뭐가 있죠?"라며 "'아메리칸 스탠더드'라고 변기 만드는 회사 정도가 이곳에 있는 대표적인 회사 같은데…"라고 했다.

콜론 자유무역지대는 카리브해의 작은 홍콩이다. 자유무역지대의 규모는 전 세계에서 홍콩 다음으로 크고 약 2800개 기업들이 진출해 중남미와 미국으로 물건을 보낸다.

벤데데티 청장은 "이곳은 유대인과 아랍인, 중국인 등이 주로 잡고 있는데 지금 대부분 중국에 가 있다"며 "4~6월에 중국에서 물건을 해와야 크리스마스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산 물건들이 자유무역 지대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아직 파나마 운하에선 미국의 영향력이 여전했다. 미국 동부와 서부를 잇기 위해 미국 해상 물동량의 약 70%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파나마 운하청의 로돌포 사본지 부청장은 "아직도 파나마 운하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미국"이라며 "중국과는 아직 큰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콜론에서 물류업을 하는 중국계 2세 바오 에성씨는 "미국 배가 운하로 많이 다니고 있지만 그 속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상품이 중국과 아시아에서 온 것"이라며 "이것이 운하청이 외면하고 있는 진실"이라고 말했다.

 

공항 검색때 동양인들 차별

파나마에서의 급격한 세력판도 변화는 현지인들로 하여금 '중국 공포증'을 갖게 만들었다. 콜론자유무역지대에서 중국제 신발을 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에 수출하는 중국인 황위징씨는 "최근 콜론의 중국 상인회장이 공항에서 비자가 가짜라며 억류돼 4일째 공항에 잡혀 있다"며 "이곳에 공장까지 세우고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기업가가 왜 가짜 비자를 만들어 오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최근 중국 기업인들이 콜론을 떠나려 한다"며 "지금은 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파나마에선 어딜 가나 중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 파나마 철도와 운하 건설 노동자로부터 시작된 중국인들이 혼혈까지 합하면 적게는 5%에서 많게는 10%에 이를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들은 이미 동네 구멍가게부터 대형 병원까지 장악했고 원래 파나마 상권을 주름잡던 유대인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고층빌딩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 과거 유대인의 전유물이었던 파나마 부동산 시장에 최근 중국인이‘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파나마시티=조의준 특파원 joyjune@chosun.com

파나마에서 가장 큰 사설 병원인 '아메리카 클리닉'의 알레한드로 리(55·중국계 2세) 원장은 "파나마 시내에 가장 알짜 땅을 2억 달러에 중국계가 샀다"며 "부동산 쪽에도 중국인들이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엔 공항에서 인종차별 수준의 검색이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달 19일 기자가 파나마 공항에 내리자 세관원들은 동양인들만 따로 뽑아 줄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여권을 입국심사대에 냈지만 따로 데려가 중국인들과 함께 줄을 세운 뒤 "한국은 정말 (파나마 입국할 때) 비자가 필요 없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

기자는 한참을 서 있다가 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 확인돼 나왔지만 다른 중국인들은 기약 없이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코트라(KOTRA)의 송동규 파나마센터장은 "이곳 상류층을 만나보면 중국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상당히 크다"며 "이런 것들이 공항에서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