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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 詩 三 則 .-退溪⋅石洲⋅茶山의 詩 각 一篇-

굴어당 2010. 8. 15. 14:00

漢 詩 三 則

-退溪⋅石洲⋅茶山의 詩 각 一篇-


과거 우리 조상들이 한자(漢字)로 써서 남긴 시가 한시(漢詩)이다. 한시는 우선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힘 든다. 아직 별로 좋은 번역서들도 나와 있는 것 같지 않다. 또 더러 한시는 그저 그렇고 그러리라고 지레 추단(推斷)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표현에 사용한 문자가 어떤 것이든, 인간과 사회를 생각하고, 삶을 고뇌하고, 진리에 목말라한 구도자(求道者)의 것이라면, 그것은 역시 아릿하고, 감미롭고, 절실하고, 아름다운 법이다. 그러면 다음에서 몇 편의 우리 옛날 한시(漢詩)를 읽어보자.

☆ ☆ ☆

머름 앞 녹총화 當軒綠叢花

창 앞 늙은 홰나무 가지에 門前老槐樹
날 저물자 솔개 한 마리 날아와 앉네 日暮飢鳶蹲
푸른 잎새 간간이 붉은 이팔들 赤葉間翠林
뒤뜰에는 벌써 찬 바람 이네 凉風動西園
성 머리에 차츰 석양빛 걷히고 返照斂城頭
푸섶에 자욱한 풀벌레 울음 悲蟲號草根
깊은 산골에 인적 끊어져 深巷斷人來
사립짝만 외로이 닫혔어라 寥寥獨閉門
머름에 닿은 녹총화에 當軒綠叢花
빨갛게 어리비친 저녁놀 빛 色映丹霞痕
쓸쓸히 날이 저물어 寂寞向晩意
꽃다운 넋만 처량히 맺혔구려 凄凉結芳魂
외로운 사람은 절조를 가다듬는 법 畸人厲孤操
안존한 여인은 옛사랑을 그린다오 靜女守舊恩
간절한 회포가 있는 듯도 하다만 脈脈如有懷
끝끝내 초초하여 말이 없고나 迢迢竟不言
어느덧 서릿발 다가드니 荏苒迫霜露
정갈한 몸을 천지간에 맡길 뿐 幽貞信乾坤
아 당 위에 앉은 이 사람도 感此堂上客
한 해가 저무니 생각이 더욱 많다 歲晏思彌敦

구도자(求道者)의 시의 한 전형이리라. 퇴계 이황(退溪李滉 1501-1570)의 작품이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 도산(陶山)으로 돌아가 성현(聖賢)의 글을 읽고 후학(後學)을 가르치면서, 사람의 삶의 의미와 가치의 탐구, 그리고 그 실천에 일생을 바쳤던 한 구도자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녹총화란 물상(物象)을 빌어서 잔잔하고 고아(古雅)한 필치로 아름답게 형상화했다. 녹총화는《퇴계집(退溪集)》자주(自註)에 사계화(四季花)라고 했다. 사계화는 곧 월계화(月季花)인데, 초여름에 붉은색 또는 담황색의 꽃이 피고, 가을에는 둥근 이과(梨果)가 빨갛게 익어서 관상수(觀賞樹)로 심는 낙엽관목이다.
날도 저물고, 해도 저물고, 당신의 인생도 저물어간다. 서원(西園)에는 벌써 서늘한 가을바람이 인다. 산골이라 인적 끊인 사립문이 조용한데, 오직 머름 앞의 한 떨기 녹총화 열매가 저녁노을을 받아 빨갛게 정열적으로 익었다. 저 쓸쓸히 익어가는 녹총화 열매는 지난 한 해 동안의 곡절 많았던 자기 삶의 마지막 결정(結晶)이리라. 많은 사연이 있을 듯도 하다마는, 끝내 다소곳 말이 없다. 문득 겨울이 다가든다. 이제 저 녹총화는 차가운 겨울 하늘에 알몸을 내맡기고 정갈한 자신의 지조(志操)로 추운 삼동(三冬)을 나야 한다. 퇴계는 지금 당(堂) 앞에 영근 녹총화 열매를 보면서, 실은 당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 ☆ ☆

충주석 - 백낙천을 본떠서 忠州石效白樂天

충주 땅 오석(烏石)은 유리처럼 고와서 忠州美石如琉璃
천 사람이 찍어내어 만 바리로 실어가네 千人劚出萬牛移
어디로 싣고 가느냐 물어봤더니 爲問移石向何處
실어가면 세도가집 신도비가 된다네 去作勢家神道碑
신도비의 비문은 누가 새긴 것인가요 神道之碑誰所銘
필력도 장쾌하고 문장 솜씨도 대단하데요 筆力倔强文法奇

한결같이 빗돌에 쓰인 말 皆言此公
“이 분이 세상에 계실 때엔 在世日
인품과 학문이 워낙 뛰어나서 天姿學業超等夷
충성과 정직으로 임금을 섬기고 事君忠且直
효도와 자애로 가정을 다스렸답니다 居家孝且慈
문 앞에는 뇌물바리가 얼씬도 못했고 門前絶賄賂
곳간에는 한 톨 재물도 없었고 庫裏無財貲
말은 능히 세상의 법도가 되었고 言能爲世法
행동은 족히 사람들의 스승이 되었다오 行足爲人師
벼슬을 하든 물러나 쉬든 한 평생 살아오신 길이 平生進退間
어느 하나 합당하지 않음이 없었답니다 無一不合宜
그래서 이렇게 자랑스럽게 빗돌에 새겨서 所以垂顯刻
길이길이 변하지 않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永永無磷緇

어느 뉘 이 말을 믿든 말든 此言信不信
남들이야 그것을 알든 말든 他人知不知
충줏골 빗돌산은 遂令忠州山上石
날로 깨고 달로 쪼아 인제 바닥이 났구나 日銷月鑠今無遺
돌이 원래 미련하여 입이 없게 망정이지 天生頑物幸無口
돌에게 입이 있었더라면 할 말이 참 많았으리라 使石有口應有辭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족보제도(族譜制度)가 발달한 나라도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가문사(家門史)를 보면 하나같이 명조상(名祖上)의 후예들이다. 행장(行狀)이나 비문(碑文)을 보면 도덕군자(道德君子)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 많은 도덕군자가 다스려온 이 나라 역사를 지금 읽어보면 마음이 그리 개운치가 않다. 왜 그럴까? 사색당쟁사(四色黨爭史)를 보면, 하나같이 자기편은 모두 군자(君子)이고 상대편은 모두 소인(小人)이다. 이러고서야 도무지 무엇이 제대로 될 수 있었겠는가? 도덕군자들만이 사는 나라에 그 가혹했던 토색질은 다 무엇이며, 싸움판은 다 무엇이며, 경술국치(庚戌國恥)는 또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나는 여기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벌써 사백 년 전에, 어쩌면 오늘날의 종교적 도그마나 이념적 편집증(偏執症)과도 같았을 주자학(朱子學) 이데올로기가 온통 세상을 풍미(風靡)하던 시절에, 천재 시인 석주 권필(石洲權韠 1569-1612)이 벌써 이런 시를 썼다니, 그만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나 그 또한 타고난 강골(强骨)의 평생 야인(野人)이었던 것이다. 위정자, 집권세력, 가진 자의 위치에서 이런 발상(發想)이 나올 수는 없었을까? 여(與)와 야(野)의 입지(立地)에 따라 하루아침에 언(言)과 행(行)이 표변(豹變)하는 인간세태의 무상(無常)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읽고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곰곰 되새기게 된다. 정말이지 빗돌이 입이 있었더라면 할 말이 참 많았으리라.

☆ ☆ ☆

애고머니 그걸 자르다니 哀絶陽

갈밭마을 젊은 아낙네 울음소리 처절코나 蘆田少婦哭聲長
관문(官門) 향해 울부짖다가 하늘 보며 통곡하네 哭向縣門號穹蒼
전쟁 나가 못 돌아오는 일이야 있을 법도 하지만 夫征不復尙可有
그걸 자른 남자 이야긴 옛날에도 못 들었어 自古未聞男絶陽

벌써 돌아가신 시아버지와 배냇물도 안 마른 어린 자식을 舅喪已縞兒未澡
황소같은 장정이라고 삼대가 군적(軍籍)에 올랐다네 三代名簽在軍保
이장 놈 호통 치며 소마저 끌어가는데 薄言往愬虎守閽
달려가 하소연해도 버티고만 서있는 저 문지기 里正咆哮牛去皁

칼 갈아 들어가선 피바다가 웬 말이요 磨刀入房血滿席
이 놈 땜에 아이 생겨 이 고생 치른다고 自恨生兒遭窘厄
궁형(宮刑) 당한 환관(宦官)들이야 무슨 죄가 있더냐 蠶室淫刑豈有辜
민(閩) 땅 사람 자식 거세도 기차는 풍습이지 閩囝去勢良亦慽

종자를 퍼치는 건 하늘이 낸 이치이니 生生之理天所予
음양이 부딪치면 아들 딸 낳게 마련 乾道成男坤道女
말, 돼지 불까는 것도 차마 못할 짓인데 騸馬豶豕猶云悲
하물며 사람이리요, 후손도 이어가야지 況乃生民思繼序

한 평생 잘난이는 풍악이나 즐기면서 豪家終歲奏管絃
한 톨 쌀, 한 치 베도 바치는 일 없다네 粒米寸帛無所捐
다 같은 백성들인데 왜 이렇게 다릅니까 均吾赤子何厚薄
시구편만 객창에 앉아서 거듭 읊조리노라 客窓重誦鳲鳩篇

다산 정약용(茶山丁若鏞 1762-1836)의 작품이다. 동서고금의 시사상(詩史上)에 이런 희한(稀罕)한 시(詩)도 있었던가? 다산은 이 시작(詩作)의 동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이것은 가경(嘉慶) 계해년(순조3-1803) 가을에 내가 강진(康津)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그때 갈밭마을에 사는 어떤 백성이 아이를 낳았는데, 3일만에 (그 아이가) 군적(軍籍)에 오르게 되어 이정(里正)이 (軍布 명목으로) 소를 끌어가 버렸다. 그 백성은,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런 곤욕을 치른다’ 하고는 칼을 갈아 가지고 자기 양경(陽莖-남자 생식기)을 잘라버렸다. 아내가, 피가 뚝뚝 듣는 남편의 양경을 주워들고는, 관청을 찾아가서 울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했으나, 문지기는 도리어 호통을 치면서 쫓아버렸다고 한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요즈음 피폐(疲弊)한 마을의 가난한 집에는 아기를 낳기가 무섭게 홍첩(紅帖)이 벌써 와 있다. 음양의 이치는 하늘이 낸 것이니 교접(交接)하지 않을 수 없고, 교접하면 낳게 되어 있는데, 낳기만 하면 반드시 병적(兵籍)에 올려서 이 땅의 부모(父母)된 자로 하여금 천지(天地)의 생생(生生)하는 이치(끊임없이 만물을(자식을) 낳아 기르는 이치)를 원망하게 하여, 집집마다 탄식하고 울부짖게 하니, 나라의 무법(無法)함이 어찌 여기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심한 경우에는 배가 불룩한 것만 보고도 이름을 지어 군적에 올리며,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올리기도 하고, 더욱 심한 경우는 강아지 이름을 군안(軍案)에 올리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개의 이름이며, 절굿공이의 이름이 가끔 군첩(軍帖)에 나오기도 하는데, 이 또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절굿공이인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 ‘이 법을 고치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죽고 말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국사(國史) 시간에 황구첨정(黃口簽丁)이니, 백골징포(白骨徵布)니, 족징(族徵)이니, 인징(隣徵)이니 하며 배웠지만, 이 시 한 편에서 만큼 어처구니없었던 당시의 실상을 극명(克明)하게 실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 이상의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다산이 이때 강진에 귀양 가 있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중앙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정승 판서가 되고 하였더라면, 과연 이런 기가 막힌 광경을 보고 들을 수 있었으며, 동서고금의 시사상(詩史上)에 희유(稀有)한 이 같은 시를 남길 수 있었을까? 인간은 결코 자기가 체험(體驗)한 세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한다. 자기 체험의 확대, 이해와 공감의 폭의 확대, 우리에게는 이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항상 상대방과 입지(立地)를 바꾸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애절양(哀絶陽)〉의 내용에서 어려운 부분을 간단히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①조선시대의 병역제도(兵役制度)인 보법제(保法制)는 원래 상민(常民) 남자 16세부터 60세까지가 군역(軍役)의 의무를 지고 있었는데, 뒤에 이것이 신역(身役)에서 군포(軍布)로 바뀌면서 인두세화(人頭稅化)하였다. 그래서 나이 구분은 고사하고 다산(茶山)의 지적처럼 이미 죽어 황천객(黃泉客)이 된 자나 뱃속에 든 아이, 심지어 허수아비의 이름까지도 군적(軍籍)에 올리고, 도망가고 없어진 친척이나 이웃의 몫까지도 마구 엉뚱한 자에게 몰아쳐서 한없이 숫자를 늘려 수탈했기 때문에, 민생(民生)이 그만 파탄(破綻)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②민(閩)은 지금 중국 복건성 지방의 옛 이름이다. 당 나라는 환관(宦官)의 수요를 이 지방에서 공급받았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자식이 나면 거세(去勢)를 해서 팔아 바쳤다고 한다. 당시 이 부근에 폄적(貶謫)해 있던 고황(顧況-字逋翁)이란 자는 이 광경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민(閩) 땅에서는 아이가 나면
그 양물(陽物)을 잘라버리고
사내종 계집종으로 팔아
금석(金石)이 만당(滿堂)하다네

아비가 자식을 버리다니
너를 낳은 것이 후회스럽구나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찢어지는 가슴에 피눈물이 흐른다

③〈시구편(鳲鳩篇)〉은 통치자가 백성을 고루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뻐꾸기에 비유하여 읊은 노래인데,《시경(詩經)》에 나오는 편명(篇名)이다.

☆ ☆ ☆

이상에서 그 성격이 서로 다른 세 편의 한시(漢詩)를 읽어보았다. 하나는 진지하고 성실한 노력으로 자기완성(自己完成)의 삶을 추구한 경건(敬虔)한 성리학자의 구도시(求道詩)이며, 다른 하나는 부조리(不條理)한 세태를 고발하고 가증(可憎)스런 인심을 조롱한 저항적 기인(畸人)의 반어(反語)이며, 마지막 하나는 백성들의 삶의 실상(實相)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사회적 모순의 해결을 위한 수단과 방법의 모색에 모든 심혈(心血)을 기울였던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實學者)의 좌절적 체험담(體驗談)이다.
이들 세 편의 시는 비록 그 외양적(外樣的) 성격은 다르지만, 보다 깊고 참된 인간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추구(追求)한 결과의 산물(産物)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同一)하다. 길은 달라도 도(道)는 하나라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진리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이면서 동시에 ‘각유천추(各有千秋)’이기도 하다. ‘절대(絶對)’와 ‘유일(唯一)’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란 얻어진 결과의 어떤 결정체(結晶體)이기보다는, 탐구의 노력이며 모색의 과정일 것이다. 그 모든 노력이나 과정은 결국 모두 인간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1991.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