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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國 漢 詩 鑑 賞

굴어당 2010. 8. 15. 15:25
中 國 漢 詩 鑑 賞

[詩 題 一 覽]

1. 戱贈杜甫(李白)…(희증두보-이백) 장난삼아 지어서 두보에게 주다----------------- 3
2. 秋浦歌(李白)…(추포가) 추포의 노래---------------------------------------4
3. 子夜吳歌(李白)…(자야오가) 자야의 사랑 노래--------------------------------4
4. 山中與幽人對酌(李白)…(산중여유인대작) 산 속에서 산사람과 대작하면서------------4
5. 早發白帝城(李白)…(조발백제성) 일찍이 백세성을 떠나-------------------------4
6. 望天門山(李白)…(망천문산) 찬문산을 바라보며-------------------------------5
7.陪族叔刑部侍郞曄及中書舍人賈至遊洞庭(李白)…(배족숙형부시랑엽급중서사인가지유동정) 족숙 형부시랑 엽과 중서사인 가지를 모시고 동정호에서 놀다.----------------------5
8. 登岳陽樓(杜甫)…(등악양루-두보) 악양루에 올라------------------------------5
9. 春望(杜甫)…(춘망) 봄날의 조망(眺望)-------------------------------------6
10.北征(杜甫)…(북정) 북으로 가는 길---------------------------------------7
11.初月(杜甫)…(초월) 초승달----------------------------------------------7
12.登高(杜甫)…(등고) 높은 대에 올라---------------------------------------8
13.曲江(杜甫)…(곡강) 곡강에서--------------------------------------------8
14.凉州詞(王翰)…(양주사-왕한) 양주의 노래-----------------------------------9
15.春曉(孟浩然)…(춘효-맹호연) 봄날 아침------------------------------------9
16.凉州詞(王之渙)…(양주사-왕지환) 양주의 노래--------------------------------9
17.閨怨(王昌齡)…(규원-왕창령) 첫사랑---------------------------------------9
18.出塞(王昌齡)…(출새) 전장(戰場)의 노래----------------------------------- 9
19.竹裡館(王維)…(죽리관-왕유) 대숲 속에서----------------------------------10
20.鹿柴(王維)…(녹채) 사슴 울짱------------------------------------------10
21.黃鶴樓(崔顥)…(황학루-최호) 황학루에 올라--------------------------------10
22.逢雪宿芙蓉山(劉長卿)…(봉설숙부용산-유장경) 눈을 만나 부용산에서 자면서---------11
23.磧中作(岑參)…(적중작-잠삼) 사막에서------------------------------------11
24.楓橋夜泊(張繼)…(풍교야박-장계) 풍교의 밤--------------------------------11
25.夜上受降城聞笛(李益)…(야상수항성문적-이익) 밤에 수항성에 올라 날라리[胡笛] 소리를 들으며------------------------------------------------------------11
26.烏衣巷(劉禹錫)…(오의항-유우석) 오의항 거리-------------------------------12
27.村夜(白居易)…(촌야-백거이) 시골의 밤-----------------------------------12
28.江雪(柳宗元)…(강설-유종원) 눈 내리는 강---------------------------------12
29.將進酒(李賀)…(장진주-이하) 술 듭시다-----------------------------------12
30.泊秦淮(杜牧)…(박진회-두목) 진회에 닻을 풀고------------------------------14
31.山行(杜牧)…(산행) 단풍철의 산길---------------------------------------14
32.贈別(杜牧)…(증별) 어린 연인(戀人)에게-----------------------------------14
33.己亥歲(曺松)…(기해세-조송) 기해년의 난리--------------------------------14
34.悼亡(梅堯臣)…(도망-매요신) 죽은 아내를 애도하며---------------------------15
35.東欄梨花(蘇軾)…(동란이화-소식) 동쪽 난간의 배꽃---------------------------15
36.示兒(陸游)…(시아-육유) 아들에게---------------------------------------15
37.癸巳五月三日北渡(元好問)…(계사오월삼일북도-원호문) 계사년 5월 3일에 북쪽 나루를 건너며------------------------------------------------------------15

번역은 어렵다고 한다. 시(詩)는 더욱 그렇다. 역사와 문화와 습속(習俗)이 다른 세상의 가장 뛰어난 천재(天才)가 자기들만의 역사적 문법(文法)으로 형상화한 문학적 언어를 생리가 전혀 다른 남의 말로 옮긴다는 것이 원래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번역을 새로운 창작(創作)이라고 한다던가? 어차피 원작(原作)의 세계를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옮기는 언어의 문법으로 환원(還元)하여 다시 형상화(形象化)하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 인류가 만들어낸 글자 중에서 한문(漢文)은 가장 유난한 글일 것이다. 그 자양(字樣)의 복잡성이나 구문(構文)의 미묘함은 차치하고라도, 지나친 전고(典故)의 원용(援用)이나 문맥(文脈)의 비약 등은 참으로 골치 아픈 글이란 생각이 든다. 한시(漢詩)는 더욱 그럴 것이다. 흔히들 번역한 한시는 제 맛이 안 난다고 한다. 그야 어디 한시뿐이겠는가? 그래서 번역이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학교 다닐 때 서양시(西洋詩) 번역을 못 읽고 말았다. 그렇게 유명한 작품들인데도,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는 커녕 우리 시를 읽을 때 느끼던 그 감미로운 맛을 도저히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중의 서점에 나오는 한시 번역들을 보면 원시(原詩)의 주석서(註釋書) 이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거의 없다. 결국 시의 번역은 불가능한 것이란 말인가?

나는 어려서 《천자문(千字文)》 나부랭이를 읽은 탓으로 더러 한문을 가까이 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충분한 공부를 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이따금 혼자서 한시집(漢詩集)을 읽는 것이 취미가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차츰 그들 번역물들에 대한 불만(不滿)이 생겨서, 가끔씩 혼자서 시역(試譯)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를 한번 정리하여 보기로 한 것이 지금의 이것이다.

한시(漢詩)의 고조(高潮)는 당시(唐詩)이며, 당시의 정점(頂點)은 성당(盛唐)이고, 성당의 태두(泰斗)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다시 말하여 이태백(李太白)과 두자미(杜子美)이다. 이태백과 두자미는 《시경(詩經)》 이래 중국 시 3000여 년의 최고봉(最高峰)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제일의 한시인(漢詩人)일 뿐만 아니라, 세계 시사상(詩史上)에도 역시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이다.

이백은 진정 천출(天出)의 시인이다. 그의 시는 호방(豪放)하고 표일(飄逸)하며, 시어(詩語)는 평이(平易)하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청수(淸水)에서 솟은 연꽃처럼 천의무봉(天衣無縫)하다. 11세 연하의 시우(詩友)인 두보는 두고두고 그를 사모하면서 거듭하여 칭송(稱頌)을 보냈다. <春日憶李白>의

이백의 시재(詩才)는 당할 자가 없구나 白也詩無敵
표일(飄逸)한 시상(詩想)은 남들과 달랐다네 飄然思不群

라든가, <寄李十二白二十韻>의

붓 끝이 떨어지자 폭풍우 몰아치고 筆落驚風雨
시편(詩篇)을 이루니 귀신이 통곡한다 詩成泣鬼神

라든가, <飮中八仙歌>의

이태백은 술 한 말에 시 백 편 짓고 李白一斗詩百篇
서울 거리 술집에서 잔다네 長安市上酒家眠
천자가 불러도 배에 아니 오르고 天子呼來不上船
스스로 자기는 주중선(酒中仙)이라는구나 自稱臣是酒中仙

하는 것들이 그 중의 일부이다.

한편 두보는 철저한 각고(刻苦)의 시인이다. 그처럼 시작(詩作)을 위하여 온 생명을 불태운 시인도 고금(古今)에 드물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백이 그를 만났을 때 장난삼아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서 읊었다.

반과산 머리에서 두보 만나니 飯顆山前逢杜甫
눌러 쓴 갓 위에 햇발이 쨍쨍 頂戴笠子日亭午
그 사이 왜 그리 여위었는고 借問別來太瘦生
모두가 시 짓느라 애쓴 탓이지 總爲從前作詩苦

그는 스스로도

사람됨이 별스러워 아름다운 시구절을 좋아해서 爲人性僻耽佳句
남들을 놀라게 못하면 죽어서도 그만 못 둔다네 語不驚人死不休

할 정도였다.

두보 시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비장미(悲壯美)이다. 그의 조사(措辭)는 근엄(謹嚴)하고 정치(精緻)하면서도 웅혼(雄渾)하고 비장(悲壯)하여, 독자로 하여금 놀라 일어나서 다시 옷깃을 여미고 경배(敬拜)하게 한다. 나는 그의 오율(五律) 〈강한(江漢)〉을 읽다가, “落日心猶壯 秋風病欲蘇”에 이르러서 정신이 번쩍하며 실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던 일을 기억한다.

이백은 개인의 정감(情感)을 노래하였고 두보는 인간의 사랑을 열창(熱唱)하였다. 이백은 유미적(唯美的) 낭만적(浪漫的)이었으나 두보는 사실적(寫實的) 사회적(社會的)이었다. 이백은 귀족(貴族)⋅유협(游俠)⋅향렴(香奩)⋅신선(神仙)을 찾고, 몇 번이고 결혼을 했으나, 두보는 가족⋅친구⋅백성⋅나라를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한 아내와 가족과 동기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였다. 이백은 항상 현실을 초월하여 이상(理想)의 세계를 동경했지만, 두보는 끝까지 현실의 고통 속에서 바람직한 인간의 삶을 갈구(渴求)하였다. 후인(後人)은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하고, 두보를 시성(詩聖)이라 한다. 어떤 평자(評者)는, 두보의 시어(詩語)를 침미(沈美)하다 하고 이백의 그것을 명염(明艶)하다 하였다.

나부끼는 흰 머리털 삼천 발 白髮三千丈
시름에 겨워 이다지도 자랐네 緣愁似個長
모르겠구나 저 거울 속 모습 不知明鏡裡
어디서 가을 서리를 맞았나 何處得秋霜

이백(李白 701-762)의 오절(五絶) 《추포가(秋浦歌)》의 끝 수(首)이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흰 머리가 삼천 발이라니, 참으로 호방(豪放)하고 기상천외(奇想天外)하다. 자꾸만 희어가는 머리털을 바라보며 느끼는 시름의 길이. 그 길이야 어쩌면 삼천 발이 넘을 수도 있겠지!

서울 거리 밤하늘에 조각달이 떴는데 長安一片月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다듬이 소리 萬戶擣衣聲
끝없이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秋風吹不盡
옥관에서 보내오는 당신의 사랑입니까 總是玉關情
언제쯤 오랑캐 쳐부수고 何日平胡虜
당신이 싸움에서 돌아오리까 良人罷遠征

이백의 오고(五古-五言古詩) 《자야오가(子夜吳歌)》의 첫째 수이다. 마치 홍수(洪水)가 벌판을 휘몰아 나가듯, 바람이 만리(萬里)를 휩쓸고 지나가듯, 여섯 구 전편(全篇)이 한 호흡에 끝나버린다. 그리고 그 위에, 전쟁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女人)의 한이 실리어서 굽이쳐 흐른다. ‘玉關情’을 대개 모두 ‘옥관(玉關)에 싸움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정’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나는 이를 반대로 ‘옥관은 곧 남편이 전쟁 나가 있는 곳으로서, 이 옥관 쪽 곧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서북풍인 가을바람은 모두 남편이 거기에다 실어서 보내주는, 아내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라고 느끼는 아내의 마음’으로 해석하였다.

그대와 마주 앉아
한 잔 또 한 잔 마시는 술에
한 송이 두 송이 산꽃이 피네
내가 취하여 졸려우니 兩人對酌山花開
그만 돌아갔다가 一杯一杯復一杯
내일 아침 생각나거든 我醉欲眠卿且去
거문고 안고 또 오게나 明朝有意抱琴來

이백의 칠절(七絶)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이다. 참으로 멋있는 한 편이다. 술 한 잔 마시면 산꽃이 한 송이 벌고, 산꽃이 한 송이 벌면 술 한 잔 마시고. 그러다가 취하여 졸려우면 쓰러져 자고. 그대도 돌아가 푹 쉬게나. 내일 아침 또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렴! 그야말로 자연과 술과 인간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 무위(無爲)의 경지(境地)라고 하겠다.

아침 채색구름 속에서 백제성을 떠나 朝辭白帝彩雲間
천리 길 강릉 땅을 하루에 돌아왔다네 千里江陵一日還
강기슭 잔나비들 마냥 울어대는데 兩岸猿聲啼不住
쪽배는 어느 사이 만 겹 산을 지났네 輕舟已過萬重山

이백의 칠절(七絶)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다. 명(明)나라의 호응린(胡應驎)이 다음의 〈망천문산(望天門山)〉과 함께 신품(神品)이라고 격찬(激讚)한, 한시 칠절(七絶) 중의 제일로 치는 걸작(傑作)이다. 이백이 멀리 야랑(夜郞) 땅으로 귀양 가다가, 중간에서 풀려나 양자강에서 배를 타고 다시 강릉(江陵)으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기분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신나는 장면이다.

하늘 문이 갈라지며 양자강이 열려서 天門中斷楚江開
푸른 물이 흘러오다 회돌아 나가네 碧水東流至此廻
강기슭 산봉우리들 숨바꼭질 하는데 兩岸靑山相對出
돛배 한 척 아득히 해 옆에서 떠오네 孤帆一片日邊來

이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호응린이 격찬한 이백의 〈망천문산〉이다.

동정호 서쪽 벌에 초강이 갈라 흐르고 洞庭西望楚江分
호수 끝 남쪽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네 水盡南天不見雲
장사 벌에 해질 제 아득한 가을 빛 日落長沙秋色遠
어디 가서 상군의 넋을 조문을 할고 不知何處弔湘君

이것은 이백의 칠절(七絶) 〈陪族叔刑部侍郞曄及中書舍人賈至遊洞庭〉이다.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 유성룡(柳成龍)은 이 시를 칠절(七絶) 중의 최고 걸작이라고 했다. 진정 신운(神韻)이 표일(飄逸)하는 작품이다.

전에 늘 동정호 이야기를 듣다가 昔聞洞庭水
오늘 그 악양루에 올라라 今上岳陽樓
오나라 초나라가 동남이 터졌구나 吳楚東南坼
하늘도 땅도 밤낮없이 떠 있네 乾坤日夜浮
친한 벗에게선 소식 한 자 없는데 親朋無一字
늙고 병든 몸이 조각배 신세란다 老病有孤舟
저 북쪽 고향은 여태도 싸움판인가 戎馬關山北
바라보는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 憑軒涕泗流

두보(杜甫 712-770)의 유명한 오율(五律) 〈등악양루(登岳陽樓)〉이다. 청(淸)의 건륭제(乾隆帝)는 이 시를 천고절창(千古絶唱)이라 했으며, 서거정(徐居正)은 또 그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동정호를 읊은 작품으로는 맹호연(孟浩然)의 ‘물안개가 운몽택을 끓이는구나. 파도는 악양성을 뒤흔든다.[氣烝雲夢澤 波撼岳陽城]’한 것이 가장 멋지다. 그런데도 그것이 저 두보의 ‘吾楚東南坼 乾坤日夜浮’에는 한 참 미치지 못하니, 도대체 두보의 흉중(胸中)에는 몇 개의 동정호가 들어있었단 말인가?” 하면서 감탄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규모(規模)의 웅대(雄大)함은 물론 두보 쪽이겠지만, 표현의 장쾌(壯快)함은 오히려 맹호연을 취하고 싶다.

예 듣던 동정호를
오늘
그 악양루에 올랐어라

어허! 오나라 초나라가
남쪽과 동쪽이 터졌는데
질펀한 물바다!
하늘도 땅도 밤낮 떠있구나

야속한 벗들이여!
편지마저 잊었느냐
병들어 늙은 몸이
조각배 신세란다

저 북쪽 고향 땅은
여태도 싸움판인가
말굽에 이는
티끌만이 뽀얗고녀!

사위어질 듯 바라보는
멍멍한 두 눈에
주르륵 눈물방울이 구른다

이것은 위의 〈등악양루-악양루에 올라〉를 다시 한 번 풀어 써본 것이다.

나라가 파망(破亡)해도 산하(山河)는 남아 國破山河在
도성(都城)에 봄 돌아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 城春草木深
시절이 하 어려우니 꽃을 보아도 눈물만 나고 感時花濺淚
이별을 한하노라니 새소리에도 마음이 놀라라 恨別鳥驚心
봉홧불 저리도 석 달을 오르니 烽火連三月
집 소식을 어이 얻어 들으랴 家書抵萬金
흰 머리는 빗을수록 모지라지는구나 白頭搔更短
이제는 비녀도 꽂을 수가 없다네 渾欲不勝簪

두보의 오율(五律) 명편(名篇) 〈춘망(春望)〉이다. 서울 장안(長安)은 반적(叛賊)에게 함락되어 파괴되었고, 그 또한 포로(捕虜)의 신세가 되어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날 그 화려하던 거리는 파괴되어 저처럼 황폐하였으나, 그럼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서 꽃이 피고 새가 울고 풀이 무성하다. 아직도 싸움판은 계속되고 있으니, 산지사방(散之四方) 흩어진 가족들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그런데도 몸은 더욱 늙어서 쇠잔해가고만 있구나!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은 이 시를 읽고, “나라는 깨어지고 산하만 남았다 했으니 남아있는 아무 것이 없음을 밝힌 것이요, 성 안에 봄이 와서 초목이 깊다 했으니 인적이 끊어졌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였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은 유명한 구절이다. 6.25 동란 후 폐허가 된 서울에 돌아온 월탄 박종화(月灘朴鍾和)는 “초토(焦土)에도 달이 떴소.…” 하고 〈공도부(空都賦)〉를 읊었다. 유난히도 외침(外侵)이 많았던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가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리라!

허물어져버린 이 땅에
산등성이 강줄기는 그래도 남았구나!
성 안에는 봄이 찾아들어
푸나무들만 파랗게 어울렸다

원통한 시절이여!
꽃을 보아도 눈물만 나고
애 타는 너 생각에
새소리마저 깜짝 놀라워
마구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리 석 달을
봉숫불만 오르니
어인 재간에
집 소식 얻어 들으랴

몇 올 남은 흰 머리칼이 굼뜬 빗질에
또 한 올 내려앉는다
인제는
비녀마저 꽂을 수 없구나

이것은 위의 〈춘망-봄을 바라보며〉를 다시 한 번 풀어 써본 것이다.

솔개는 잎 누른 뽕나무에서 울고 鴟鳥鳴黃桑
들쥐 떼는 분주히 돌서덜을 누비는구나 野鼠拱亂穴
밤 깊어 싸움터를 지나자니 夜深經戰場
차가운 달이 백골을 비춘다 寒月照白骨

이것은, 청(淸)의 건륭제(乾隆帝)가, “견줄 옛사람 없고 따를 새사람 없으니, 오언(五言) 있은 이래의 대문자(大文字)이다.”라고 극찬(極讚)한 두보의 장편(長篇) 오고(五古) 〈북정(北征)〉 중의 일절(一節)이다.

희미한 초승달이 시울이 부풀어 오를 듯 光細弦欲上
그림자의 바퀴가 편안하지 못하구나 影斜輪未安
옛 성채 위에 잠깐 보이더니 微升古塞外
어느 새 벌써 구름 끝에 숨었네 已隱暮雲端
은하수의 빛깔도 그대로인데 河漢不改色
국경의 산 빛만 괜스레 스산하구려 關山空自寒
뜰 앞에 만발한 국화꽃에 庭前有白露
방울방울 이슬이 함초롬히 맺혔네 暗滿菊花團

두보의 오율(五律) 〈초월(初月)〉이다. 누구는, 귀신같은 솜씨로 초승달을 그렸다고 감탄했다. 도저히 제 맛을 그대로 옮길 수가 없다.

하늘 높고 바람 찬데 잔나비 슬피 울고 風急天高猿嘯哀
맑은 강 흰 모래엔 갈매기 떼 돌아든다 渚淸沙白鳥飛廻
끝없이 지는 낙엽이 쓸쓸하게 휘날리는데 無邊落木蕭蕭下
한없이 긴 강물은 출렁출렁 흘러만 가네 不盡長江滾滾來
만리타향 슬픈 가을 나그네 되어 萬里悲秋常作客
한 평생 병 많은 몸이 홀로 대에 올라라 百年多病獨登臺
고달픈 신세에 늘어나는 흰 머리만 괴롭구나 艱難苦恨繁霜鬢
늙고 지쳐 이젠 그 좋아하던 술마저 끊었다네 潦倒新停濁酒盃

두보 칠률(七律)의 대표작인 〈등고(登高)〉이다. 시인 이원섭(李元燮)은 그의 《두보시선(杜甫詩選)》에서, “지극히 크며 지극히 슬프다. 1,2구는 구마다 가을의 슬픔이 구층탑처럼 포개지고, 3,4구는 시야를 천하의 가을로 돌려 기상이 웅혼(雄渾)하다. 전자는 비애의 깊이요 후자는 그 폭이다. 5구 이하는 제 늙음과 불우를 한하되, 그 한은 만리에 걸치고 백년을 휘감아 온통 천지를 자기 슬픔으로 채우니, 이 어찌 하늘을 구름이 뒤덮고 바다를 바람이 흔드는 솜씨가 아니겠는가?” 하였다.

날마다 퇴근하면 봄옷을 전당 잡혀 朝回日日典春衣
강가에 나가서 흠뻑 취해 돌아온다네 每日江頭盡醉歸
외상 술값이야 가는 곳마다 있다만 酒債尋常行處有
사람 나이 칠십은 고래로 드물다네 人生七十古來稀
꽃 찾는 나비는 꽃 속에서 잠들었는데 穿花蛺蝶深深見
물차는 제비가 한가로이 날으는구나 點水蜻蜓款款飛
이 보아 봄날이여 다같이 흘러가거니 傳語風光共流轉
우리 잠깐 놓치지 말고 함께 즐기자꾸나 暫時相賞莫相違

두보 칠률(七律)《곡강(曲江)》 2수 중의 두 번째이다. ‘人生七十古來稀’는 유명한 구절로, ‘고희(古稀)’란 말의 어원(語源)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인생을 달관(達觀)하고 즐기는 일면(一面)이 엿보인다. 서예전(書藝展) 같은 데에 흔히 등장하는 시편이다. 언젠가 누가 국전(國展)에서 이 시를 써 대통령상을 받았다가, 무언가 화제(話題)를 일으켰던 기억이 난다.

야광배 술잔에 넘치는 빠알간 포도주를 葡萄美酒夜光杯
마시려니 마상에서 비파가 재촉을 하네 欲飮琵琶馬上催
사장에 취해 누웠다고 그대여 웃지 말게나 醉臥沙場君莫笑
고래로 전쟁터에서 돌아간 이가 몇이던가 古來征戰幾人回

변새시(邊塞詩)의 걸작(傑作)으로 초당(初唐) 칠절(七絶)의 으뜸이란 평을 받는 왕한(王翰 687?-726?)의 〈양주곡(凉州曲)-양주사(凉州詞)〉이다. 명(明)의 담지춘(譚之春)은 ‘우장우비(又壯又悲)’란 말로 이를 평했다.

봄잠이 곤하여 날 샌 줄도 몰랐네 春眠不覺曉
사방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들 處處聞啼鳥
밤새껏 비바람이 휘몰아쳤으니 夜來風雨聲
꽃들이 얼마나 졌을까? 花落知多少

자연파(自然派)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오절(五絶) 〈춘효(春曉)〉이다. ‘春眠不覺曉’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다.

황하를 거슬러 멀리 흰 구름 속을 오르니 黃河遠上白雲間
만 길 우뚝한 봉우리에 외로운 산성 하나 一片孤城萬仞山
날라리는 어쩌자고 절양류곡만 부느냐 羌笛何須怨楊柳
봄빛은 저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 것을 春光不度玉門關

왕지환(王之渙 695-?)의 칠절(七絶) 〈출새(出塞)-양주사(凉州詞)〉이다. 어떤 평자(評者)는 말하기를, “당(唐)의 칠절(七絶) 중 압권(壓卷)을 고른다면 왕한의 ‘葡萄美酒’와 왕지환의 ‘黃河遠上’이 될 것이다.” 하였다. 〈절양류곡〉은 중국 고래의 악곡(樂曲) 이름으로, 상춘(傷春)과 석별(惜別)의 사(辭)인데, 정인(征人)에 대한 회념(懷念)의 작(作)이 많았다고 한다. ‘옥문관’은 중국에서 서역(西域)을 드나들던 관문으로, 군사의 요충(要衝)이기도 하였다.

안방 새아씨 아직 사랑을 몰라 閨中少婦不知愁
봄날 곱게 단장하고 다락에 올랐었지 春日凝粧上翠樓
문득 눈앞에 다가드는 파란 버들 빛 忽見陌頭楊柳色
아 어쩌자고 그이를 벼슬 떠나보냈나 悔敎夫壻覓封侯

왕창령(王昌齡 698-765?)의 칠절(七絶) 〈규원(閨怨)〉이다. 얼핏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열여섯 살 아낙의 춘정(春情)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의 “秦時明月漢時關”은 칠절(七絶) 변새시(邊塞詩)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데, 그 시는 이렇다.

진나라 때 달빛에 한나라 때의 관문이로구나 秦時明月漢時關
만리 밖 싸움나간 사람들 돌아온 적이 없다네 萬里長征人未還
다만 용성에 비장을 보내어서 지키게만 한다면 但使龍城飛將在
음산을 오랑캐의 말들이 넘지 못하게 하련만 不敎胡馬度陰山

진한(秦漢) 시절부터 끊임없이 북방민족들과 다투어 온다는 말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명장(名將) 이광(李廣)을 용성(龍城) 곧 우북평(右北平)의 태수로 임명했더니, 호인(胡人)들이 그를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부르면서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제(詩題)는 〈출새(出塞)〉이다.

대숲 속에 홀로 앉아 獨坐幽篁裡
거문고를 타다간 휘파람 분다 彈琴復長嘯
이 그윽한 곳을 누가 알랴 深林人不知
달빛만 가득 비칠 뿐 明月來相照

빈 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空山不見人
두런거리는 말소리만 들릴 뿐 但聞人語響
숲 속에 비쳐든 석양이 返景入深林
다시 이끼 위에 반사되네 復照靑苔上

앞의 것은 자연(自然) 관조(觀照)의 시인(詩人) 왕유(王維 701-781)의 〈죽리관(竹裡館)〉이고, 뒤의 것은 그의 〈녹채(鹿柴)〉이다. 왕유는 그림 또한 잘 그려서 ‘詩中有畵 畵中有詩’라 하였다. 남종화(南宗畵)의 비조(鼻祖)이기도 하다. 그의 “江流天地外 山色有無中-窓中三楚盡 林外九江平-大漠孤煙直 長河落日圓” 같은 일련의 연구(聯句)들은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우며, “松風吹解帶-竹喧歸浣女-日色冷靑松” 같은 표현은 지극히 섬세하고 날카롭다. 그의 〈송별(送別)〉에 나오는 “春草年年綠 王孫歸不歸”의 ‘춘초(春草)’나 ‘왕손(王孫)’과 같은 말들은 뒷사람들의 이별의 노래에 항상 감초처럼 따라 다녔다. 〈녹채〉의 ‘返景’이 ‘返影’으로 된 곳이 있다.

옛 사람이 황학 타고 가버린 뒤로 昔人已乘黃鶴去
황학루만 쓸쓸하게 남아 있구나 此地空餘黃鶴樓
황학이 가버리고 돌아오지 않으니 黃鶴一去不復返
천년을 속절없는 흰 구름만 흐를 뿐 白雲千載空悠悠
해맑은 강 건너 한양 벌의 숲 晴川歷歷漢陽樹
앵무 섬을 뒤덮은 파아란 풀밭 芳草萋萋鸚鵡洲
날 저무는 고향 땅이 어드메이냐 日暮鄕關何處是
강물에 뜬 저녁노을에 슬픔이 인다 煙波江上使人愁

최호(崔顥 704?-754)의 〈황학루(黃鶴樓)〉이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이 다락에 올랐다가 이 시를 보고는, 그만 기가 죽어서, 더 이상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하고 짓기를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뒷날 금릉(金陵)의 봉황대(鳳凰臺)에 올라서 “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란 기가 막힌 칠고(七古)를 읊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시의 신운(神韻)에는 미치지 못한다고들 평가하고 있다. 심덕잠(沈德潛)은 “수천천고지기(遂擅千古之奇-드디어 천고의 기걸(奇傑)을 천단(擅斷)하였다)”라는 말로 이를 극찬(極讚)하였으며, 엄우(嚴羽)는, “당인(唐人)들 칠률(七律) 중의 제일(第一)이다” 하였다. 최호의 〈황학루〉와 이백의 〈등금릉봉황대〉를 대개 모두 칠언율시(七言律詩)로 보고 있으나, 《고문진보(古文眞寶)》에서는 모두 칠언고시(七言古詩)로 분류하고 있다. 율시(律詩)로는 평측(平仄)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날 저물어
먼 산 아득히 어둠에 잠기고
차운 하늘에
가난한 초옥이 더욱 쓸쓸하구나 日暮蒼山遠
사립에 개 짖는 소리는 天寒白屋貧
눈보라 속에 柴門聞犬吠
돌아오는 사람 風雪夜歸人

유장경(劉長卿 709-780)의 〈봉설숙부용산(逢雪宿芙蓉山)〉이다. 시골 겨울밤의 춥고 쓸쓸한 풍경이, 눈보라를 맞으며 돌아오는 사람으로 하여 한 줄기 온기(溫氣)가 돈다. 오절(五絶)의 명편(名篇)이다.

서쪽으로 말을 달리니 하늘로 치닫는 듯 走馬西來欲到天
집 생각 나 보는 달이 두 번이나 둥글었네 思家見月兩回圓
오늘 밤은 이 한 몸 어디서 자게 될는지 今夜不知何處宿
일만 리 모래벌판에 밥 짓는 연기가 끊어졌구나 平沙萬里絶人煙

잠삼(岑參 715-770)의 칠절(七絶) 〈적중작(磧中作)〉이다. 平沙萬里絶人煙! 보이는 것이라곤 다만 모래벌판 뿐. 그런데도 거기서 시를 읊는 사람이 있다니! 변새시(邊塞詩)의 걸작 중의 하나이다.

달 지자 까마귀 울어 서리 치는 밤 하늘 月落烏啼霜滿天
신나무숲 고기잡잇불 시름 속에 드는 잠 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 밖 저 멀리 한산사 절간에서는 姑蘇城外寒山寺
밤중만치 북소리 울어 나그네 뱃머리를 친다 夜半鐘聲到客船

장계(張繼-753년 무렵 進士)의 칠절(七絶)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이 시만큼 유명한 한시(漢詩)도 드물 것이다. 지난 날 한문책이나 읽은 사람치고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회락봉 앞 모래가 눈처럼 희구나 回樂峰前沙似雪
수항성 밖 달빛은 서리가 친 듯 受降城外月如霜
어디서 그 누구가 갈피리를 부느냐 不知何處吹蘆管
온밤 내 병사들이 향수에 젖는다네 一夜征人盡望鄕

이익(李益 748-827)의 칠절(七絶) 〈야상수항성문적(夜上受降城聞笛)〉이다. 중당(中唐) 칠절의 최고 걸작으로 치는 작품이다. 역시 변새시(邊塞詩)로서, 당시(唐詩)가 변새시에 걸작(傑作)이 많은 것은 그만큼 전쟁이 많았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겸하여 시인들이 대개 모두 종군(從軍)으로 그들의 생존(生存)을 호도(糊塗)할 수밖에 없었던 때문일 것이다.

주작교 다리 머리엔 들풀꽃이 피었는데 朱雀橋邊野草花
오의항 거리 어귀에 석양이 비꼈구나 烏衣巷口夕陽斜
옛날에 재상집 대청 끝을 드나던 재비가 舊時王謝堂前燕
지금은 백성들의 추녀 밑을 날아든다네 飛入尋常百姓家

유우석(劉禹錫 772-842)의 칠절(七絶) 〈오의항(烏衣巷)〉이다. 지난 날 동진(東晋 317-420)의 권문세가(權門勢家)인 왕도(王導)와 사안(謝安)의 대가족(大家族)들이 살 때는 그렇게도 번화하던 옛 서울의 거리가 지금은 들풀꽃만 석양을 받아 어지럽게 피었고,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사라진 빈 자리엔 백성들의 다소곳한 초가지붕이 여기저기 늘어섰는데, 그러나 추녀 밑을 드나는 제비야 예나 제나 다를 것이 무엇이랴? 무상(無常)한 회고(懷古)의 정이 잔잔한 시간의 선상(線上)에서 나른한 석양을 받아 안온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푸섶에 서릿발이 보얀데
절절한 풀벌레 울음
앞마을 뒷마을 행인은 끊어지고
홀로 문밖에 나와 霜草蒼蒼蟲切切
저 멀리 들밭을 바라보니 村南村北行人絶
메밀꽃이 달빛 받아 獨出門前望野田
눈처럼 하얗다 月明蕎麥花如雪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칠절(七絶) 〈촌야(村夜)〉이다. 농촌 들 마을의 가을밤. 달빛 받아 하얗게 핀 메밀꽃은 진정 아름답고도 몽환적(夢幻的)이다.

산이란 산에 새 끊어지고 千山鳥飛絶
길이란 길 자취 없이 묻혔네 萬徑人蹤滅
거룻배에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늙은이 孤舟簑笠翁
홀로 찬 강에 내리는 눈을 낚는다 獨釣寒江雪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강설(江雪)〉로, 오절(五絶)의 절창(絶唱)이다. 이후 ‘寒江獨釣’를 주제로 하는 시와 그림이 많이 만들어졌다.

파아란 유리 술잔에
발그레한 호박 빛 술
예쁜 술통에 똑똑 떨어지는
빠알간 진주 방울들

용머리 볶고
통째로 봉새도 굽고
불판에는 구슬기름이 지글지글
비단병풍 수장막에
여인네들 향취가 휘감긴다
琉璃鍾
용피리를 불어라 늴리리야 늬리닐닐 琥珀濃
악어가죽 장고를 두드려라 둥더꿍 두둥둥둥 小槽酒滴眞珠紅
계집이 하얀 이빨 드러내고 烹龍炮鳳玉脂泣
노래를 부르면 羅屛繡幕圍香風
버들허리 하늘대는 무녀(舞女)의 춤사위도 고와라 吹龍笛
擊鼉鼓
어얼시고 청춘 봄날이 다 저물어간다 皓齒歌
복사꽃이 우수수 빨간 눈발로 날린다 細腰舞
況是靑春日將暮
여보소 우리 종일 마음껏 취하여 봅시다 桃花亂落如紅雨
술이 언제 술 좋아하던 勸君終日酩酊醉
유령(劉伶)의 무덤 속을 찾아갑디까 酒不到劉伶墳上土

이하(李賀 791-817)의 〈장진주(將進酒)〉이다. 시인 이원섭(李元燮)은 이 시를 평하는 글에서, “이 한 편 속에 담겨진 말들은 별이라도 몇 되 퍼다 놓은 것 모양 찬란(燦爛)한 광채를 발산하고 있다.…이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진주(珍珠)라도 쏟는 듯한 음향(音響)과 함께 석쇠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타는 냄새와, 짙은 여인(女人)의 체취(體臭)가 풍겨온다.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가 음주(飮酒)의 정신적인 즐거움을 나타낸 것이라면, 이것은 육체(肉體)가 느끼는 향락(享樂)의 노래다.” 하였다. 그리고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

유리잔에 가득히
호박(琥珀) 빛 액체를 따르라
진주같이 붉은 것 술통에서 철철철 넘쳐 흐르고
용(龍)을 삶고 봉황(鳳凰)을 구우면 기름이 우는데
병풍 치고 장막 드리우니 우리들 마실 자리
용 울음처럼 피리를 불고
악어가죽 북을 치자 둥둥두둥둥
계집은 흰 이빨 드러내어 노래하고
계집은 가는 허리 하늘하늘 춤을 추라
봄도 어느덧 기울려 하느니
보라 붉은 비처럼 붉은 빗방울처럼 지는 복사꽃!
종일토록 마시고 마시고 취하자
유령(劉伶)에겐들 죽은 다음에야 누가 술을 권하리

그는 또 이하의 평전(評傳)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느 시인보다도 먼저 소개하고 싶은 것이 이하(李賀)다. 그는 병적(病的)인 시인(詩人)이다. 그는 ‘二十心已朽’를 읊었으며 ‘夢泣生白頭’라고 노래하였다. 그는 현실(現實)과 몽환(夢幻)을 같이 보았으며, 인간계(人間界)의 주민(住民)이자 저승의 국적(國籍)도 가지고 있었다.…그의 노래는 요기(妖氣)가 후광(後光)을 이룬다. 그의 노래는 어둠을 태우는 귀화(鬼火)와도 같다.” 하였다. 결국 그는 27세의 짧은 나이로 요절(夭折)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백을 선재(仙才)라 하고 이하를 귀재(鬼才)라 하였다.

강물엔 안개 끼고 모래톱엔 하얀 달빛 煙籠寒水月籠沙
진회에 닻을 푸니 즐비한 술집들 夜泊秦淮近酒家
술 파는 계집들은 망국한을 모르느냐 商女不知亡國恨
강 건너선 짐짓 후정화만 부르는구나 隔江猶唱後庭花

두목(杜牧 803-852)의 〈박진회(泊秦淮)〉이다. 그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당시(唐詩) 칠절(七絶) 중의 대표작의 하나이다. 어떤 이는, 이 시가 갖는 신운(神韻)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니, 부디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서 그 쾌감(快感)을 느껴보도록 하라고 했다. 〈후정화(後庭花)〉는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로 중국 남조(南朝) 진(陳)의 마지막 임금 후주(後主)가 지어서 부른 노래 이름인데, 후주는 이처럼 질탕(跌宕)하게 노래나 지어 부르면서 향락(享樂)에 빠졌다가, 결국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후정화〉는 망국(亡國)의 노래인 것이다.

먼 산 돌길을 오르노라니 遠上寒山石徑斜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 두어 채 白雲生處有人家
석양에 타는 가을 단풍이 停車坐愛楓林晩
지난 봄철의 꽃보다 붉네 霜葉紅於二月花

두목의 칠절(七絶) 〈산행(山行)〉이다. 고래(古來)로 너무도 유명하여,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이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어여쁘디 어여쁘다 열세 살 남짓 娉娉嫋嫋十三餘
두구나무 연한 순 이월의 햇순 荳蔲梢頭二月初
봄바람 십리 길 양주 거리의 春風十里揚州路
주렴 속 아가씨들이야 어림도 없지 捲上珠簾總不如

역시 두목이 나이 어린 정인(情人)에게 주는 〈증별(贈別)〉이다. 그는 미남(美男)이요, 멋쟁이요, 재사(才士)요, 탕아(蕩兒)였다. 젊은 시절 양주(揚州)에서 벼슬살이 할 때는, 춘풍십리(春風十里) 번화한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청루(靑樓)와 주사(酒肆)를 어지간히도 드나들면서, 숱한 로맨스를 뿌리고 환락의 늪에서 헤매었다고 한다.

수향(水鄕)의 이 강산이 싸움터 되니 澤國江山入戰圖
백성들 어느 겨를에 풀 베고 나무하랴 生民何計樂樵蘇
그대여 제발 출세하겠단 말 마오 憑君莫話封侯事
한 장수 공 세우자면 일만 병졸 죽어야 한다오 一將功成萬骨枯

조송(曺松 830?-901)의 칠절(七絶) 〈기해세(己亥歲)〉이다. AD879년 겨울. 세상은 온통 황소(黃巢)의 반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쟁이란 얼마나 참담(慘憺)한 것이며, 입신출세(立身出世)란 도대체 무엇이며,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또 무엇이더란 말인가? ‘一將功成萬骨枯’는 유명한 말이다.

인명이야 원래 장단이 있으니 從來有修短
하늘에 어찌 따져 물으랴만 豈敢問蒼天
세상의 아내들 다 보아도 見盡人間婦
그대처럼 귀엽고 착한 이는 없데 無如美且賢
설령 못난이를 오래 살게 한대도 譬令愚者壽
어째 나이를 빌려나마 못 주나요 何不假其年
천하와도 못 바꿀 이 귀한 보배를 忍此連城寶
차마 어찌 땅 속에 묻는단 말인가 沈埋向九泉

송대(宋代) 매요신(梅堯臣 1002-1060)의 오율(五律) 〈도망(悼亡)〉이다. 솔직한 진정이 꾸밈없이 토로되어 있다. 아내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면 이처럼 직절(直切)한 애도시(哀悼詩)를 썼을까? 차마 어찌 그대를 땅 속에 묻느냐고!

배꽃은 하얗고 버들 숲은 파랗고 梨花淡白柳深靑
버들개지 날릴 때 배꽃 활짝 피었네 柳絮飛時花滿城
아 동쪽 난간 눈송이 한 떨기 惆悵東欄一株雪
인생이 몇 번이나 그 맑은 모습을 보리 人生看得幾淸明

송나라 소식(蘇軾 1036-1101)의 〈동란이화(東欄梨花)〉이다. 소식 곧 소동파(蘇東坡)는 유명한 문장가로서, 그의 〈적벽부(赤壁賦)〉는, 비록 한문에 문외한(門外漢)이라도, 그래도 그 제목 정도는 알만큼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걸작(傑作)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겠지만 死去元知萬事空
다만 나라의 통일을 못 봄이 한이로구나 但悲不見九州同
왕사(王師)가 북쪽 땅을 평정하거든 王師北定中原日
잊지 말고 제사 때에 알리려무나 家祭無忘告乃翁

남송(南宋) 육유(陸游 1125-1210)의 〈시아(示兒)〉이다. 송조(宋朝)는 요(遼)와 금(金)에 쫓겨 강남(江南)으로 가서 남송을 세웠으나, 육유가 죽은 뒤 그마저 몽고(蒙古)에게 망하고 말았다.

흩어진 백골이 삼검불(삼거웃) 같구나 白骨縱橫似亂麻
몇 년을 고향 땅이 싸움판 됐나 幾年桑梓似龍沙
이 고장 사람들 다 죽은 줄 알았더니 只知河朔生靈盡
그래도 몇 집에서는 저녁연기가 오르네 破屋疎煙却數家

금(金)의 원호문(元好問 1190-1257)이 지은 〈계사오월삼일북도(癸巳五月三日北渡)〉 세 수 중의 끝수이다. 몽고[元]가 금의 서울 변경(汴京)을 함락하고 재물과 부녀자를 약탈(掠奪)하여 돌아갔다. 그래서 이젠 사람 그림자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몇 집에서는 저녁연기가 오른다고 했다. 그 기막힌 참상(慘狀)을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랴? 송(宋)의 육유는 금(金)을 미워하다 죽고, 금의 원호문은 원(元)을 미워하며 이 시를 지었다. 원호문은 선비족(鮮卑族)의 피를 받고 태어나서, 여진족(女眞族)의 금나라를 섬기면서, 한민족(漢民族)의 중국문화를 정통(正統)으로 숭배하였다. 대체 인종(人種)이란 무엇이며, 국경(國境)이란 무엇이며, 너와 나는 또 무엇이더란 말인가? 인간은 꼭 이렇게 서로 죽이고 죽어야 하는가? 더불어 웃으면서 같이 살 수는 없는가? [1990.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