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본. 50권 25책. 책 이름은 시경(詩經)의 구절인 황황자화(皇皇者華)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원접사(遠接使)를 의주(義州)까지 보내어 맞아 이들과 동행하여 서울에 들어오게 하였고, 사신이 돌아갈 때에는 원접사를 반송사(伴送使)로 개칭하여 다시 의주까지 전송하게 하였다. 중국의 사신으로 문신(文臣)이 올 때에는 특히 문학에 뛰어난 사람을 접반사(接伴使)로 임명하여 그들을 영송(迎送)하게 하였다. 이 황화집은 1450년(세종 32) 명나라 경제(景帝)의 등극조사(登極詔使)로 조선에 왔던 예겸(倪謙) ·사마 순(司馬恂)과 원접사 정인지(鄭麟趾) 및 종사관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등이 창화한 시들을 편찬하고 간행한 〈세종경오황화집(世宗庚午皇華集:景泰庚午皇華集)〉을 비롯하여 〈인조계유황화집 (仁祖癸酉黃華集:崇禎癸酉皇華集)〉에 이르기까지, 즉 1450~1633년(인조 11)에 23회에 걸쳐 간행되었다. 1506년(연산군 12) 무종등극조사(武宗登極詔使) 서목(徐穆)의 시는 〈성종임자황화집(成宗壬子皇華集)〉에 합부되었으며, 1773년(영조 49)에 한 질(帙)로 합본하여 중간되었다.
[출처] 황화집 [皇華集 ] | 네이버 백과사전
조선은 사대(事大)라는 분명한 기준 아래 중국과 긴밀한 외교정책을 유지했다. 특히 중국이 파견하는 천사(天使·중국 사신)에 대한 접대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이었다.
중국 사신과 시를 주고받는 수창(酬唱)도 빠뜨려서는 안됐다. 이것은 양국의 문화적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여서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이뤄졌다. 이때 주고받은 시들을 묶은 시집이 바로 ‘황화집(皇華集)’이다. 장서각에 소장돼 있는 황화집에는 1450년(세종 32년)부터 1633년(인조 11년)까지 24회에 걸쳐 명나라 사신과 조선 문신이 주고받은 시들이 수록돼 있다.
시의 내용은 경승지를 돌아보며 노래한 ‘경물시’가 대부분이며 외교관계나 국제정세를 읊은 시도 일부 포함돼 있다. ‘황화’라는 말은 ‘시경’ 녹명(鹿鳴)편에 실린 송별시 ‘황황자화(皇皇者華)’에서 따왔다.
중국에서 조칙을 알릴 일이 있으면 먼저 조선에 사신을 보낸다는 패문(牌文)을 보낸다. 패문이 도착하면 조정은 곧장 문재(文才)를 갖춘 이를 엄선하여 원접사로 임명한다. 원접사는 사신을 맞아 의주, 평양, 개성을 거쳐 벽제에 도착, 임금의 명을 기다린다. 임금은 서대문 밖 모화관(慕華館)에 행차하여 칙서와 사신을 맞는다.
중국 사신과 시를 주고받는 수창(酬唱)도 빠뜨려서는 안됐다. 이것은 양국의 문화적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여서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이뤄졌다. 이때 주고받은 시들을 묶은 시집이 바로 ‘황화집(皇華集)’이다. 장서각에 소장돼 있는 황화집에는 1450년(세종 32년)부터 1633년(인조 11년)까지 24회에 걸쳐 명나라 사신과 조선 문신이 주고받은 시들이 수록돼 있다.
시의 내용은 경승지를 돌아보며 노래한 ‘경물시’가 대부분이며 외교관계나 국제정세를 읊은 시도 일부 포함돼 있다. ‘황화’라는 말은 ‘시경’ 녹명(鹿鳴)편에 실린 송별시 ‘황황자화(皇皇者華)’에서 따왔다.중국에서 조칙을 알릴 일이 있으면 먼저 조선에 사신을 보낸다는 패문(牌文)을 보낸다. 패문이 도착하면 조정은 곧장 문재(文才)를 갖춘 이를 엄선하여 원접사로 임명한다. 원접사는 사신을 맞아 의주, 평양, 개성을 거쳐 벽제에 도착, 임금의 명을 기다린다. 임금은 서대문 밖 모화관(慕華館)에 행차하여 칙서와 사신을 맞는다.
중국 황제의 대리인인 사신에 대한 예우는 극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시로 중국의 사신을 접대해야 하는 관반(館伴)들은 나라와 임금을 대표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있었던 만큼 문화적 소양을 갖추어야 했다.
의주에서부터 서울에 이르기까지, 또 서울의 명승을 찾아 이루어지는 연회와 그에 따른 수창은 한 두 편의 시를 잘 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원접사를 비롯한 모든 관반들의 선발에는 문학적 자질이 우선시되었다.
중종 임금은 “수창하는 일이 매우 어려우니, 수창이 원활히 된다면 나머지 작은 일이 혹 뜻에 맞지 않더라도 책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랬으므로 벼슬의 높고 낮음이나 신분까지도 무시하고 글에 능하다면 모두 불러 관반의 수창을 돕게 하였다. 심지어 탄핵 받은 이들까지 임시로 선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직접 중국 사신을 접대하여 시를 짓는 것은 아니었다. 사신을 접대하는 관반이 제출해야 할 시를 대신 지어 주고, 관반이 이것을 자신의 시로 내놓았던 것이다.
실제 1606년(선조 39년) 명나라 주지번(朱之藩)이 황태손의 탄생을 알리는 사신으로 왔을 때 간성군수로 좌천되어 있던 서얼 출신의 최립을 급히 불러들여 돕도록 하였다. 물론 최립이 중국 사신을 응대한 것은 아니었다. 최립이 당시 지은 10여편의 시들은 모두 영의정 유영경의 이름으로 ‘황화집’에 실려 있다.
이러한 대작(代作)의 예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조정의 신하들이 동원되어 주요 경승지에 대한 시를 미리 지어놓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작과 예비시의 관행은 중국 사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조선과 중국은 양국간의 문화적 자존심이 걸려 있는 만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응대하였다. 사신으로 오는 인물의 개인적 성향과 능력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글 잘 하는 문사를 의원들과 섞어 몰래 들여보내기도 하였다. 1539년 화찰(華察)이 황태자의 책봉을 알리는 사신으로 오자 원접사 소세양(蘇世陽)은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있던 신잠(申潛)을 의원으로 위장시켜 사신의 방에 들어가 사신들의 시를 엿보게 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 사신과의 수창은 조선의 문화적 역량과 자존심을 건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박용만/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전문위원〉
의주에서부터 서울에 이르기까지, 또 서울의 명승을 찾아 이루어지는 연회와 그에 따른 수창은 한 두 편의 시를 잘 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원접사를 비롯한 모든 관반들의 선발에는 문학적 자질이 우선시되었다.
중종 임금은 “수창하는 일이 매우 어려우니, 수창이 원활히 된다면 나머지 작은 일이 혹 뜻에 맞지 않더라도 책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랬으므로 벼슬의 높고 낮음이나 신분까지도 무시하고 글에 능하다면 모두 불러 관반의 수창을 돕게 하였다. 심지어 탄핵 받은 이들까지 임시로 선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직접 중국 사신을 접대하여 시를 짓는 것은 아니었다. 사신을 접대하는 관반이 제출해야 할 시를 대신 지어 주고, 관반이 이것을 자신의 시로 내놓았던 것이다.
실제 1606년(선조 39년) 명나라 주지번(朱之藩)이 황태손의 탄생을 알리는 사신으로 왔을 때 간성군수로 좌천되어 있던 서얼 출신의 최립을 급히 불러들여 돕도록 하였다. 물론 최립이 중국 사신을 응대한 것은 아니었다. 최립이 당시 지은 10여편의 시들은 모두 영의정 유영경의 이름으로 ‘황화집’에 실려 있다.
이러한 대작(代作)의 예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조정의 신하들이 동원되어 주요 경승지에 대한 시를 미리 지어놓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작과 예비시의 관행은 중국 사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조선과 중국은 양국간의 문화적 자존심이 걸려 있는 만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응대하였다. 사신으로 오는 인물의 개인적 성향과 능력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글 잘 하는 문사를 의원들과 섞어 몰래 들여보내기도 하였다. 1539년 화찰(華察)이 황태자의 책봉을 알리는 사신으로 오자 원접사 소세양(蘇世陽)은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있던 신잠(申潛)을 의원으로 위장시켜 사신의 방에 들어가 사신들의 시를 엿보게 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 사신과의 수창은 조선의 문화적 역량과 자존심을 건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박용만/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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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세종 32)~1633년(인조 11) 동안 24차례에 걸쳐 조선에 온 명나라의 사신과 이들을 영송(迎送)한 접대관들이 서로 주고받은 시와 문을 실은 시문집.
23종이 있으며 각기 판종(板種)이 다르다. 1773년(영조 49) 어명(御命)에 의해 한 질로 합본하여 50권으로 간행했다. 활자본이고, 25책 또는 26책으로 분책(分冊)했다. 이 과정에서 작품 수를 줄이기도 하여 체제를 통일했으며 습유(拾遺)를 첨부시켰다. 사행(使行)이 왔던 때의 명나라 연호(年號)·간지(干支)를 나란히 '황화집'이라 쓴 것 앞에 붙여 각각의 책이름으로 삼았다(예를 들면 〈경태경오황화집 景泰庚午皇華集〉). 황화란 〈시경 詩經〉 소아(小雅) 편명인 '황황자화'(皇皇者華)의 준말이다. 황황자화는 천자가 제후국에 사신을 보낼 때 읊었던 시로서, 시의 의미를 기려 책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명나라 사신들은 명황제의 즉위나 복위, 황태자의 탄생이나 책봉을 알리는 황제의 조명(詔命)을 전달하는 일과 조선 왕에게 시호를 내려주는 일을 주로 했다. 원접사(遠接使)는 대개 당대의 육조판서·좌참찬·우참찬·좌찬성에서 선발되었고, 시작자(詩作者)들은 당대에 문명을 떨친 사람들이었다.
권9에 실린 기순의 〈조선잡영 朝鮮雜詠〉 10수와 이에 대한 서거정의 차운시는 기행시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당시의 문물을 흥미 있게 묘사했다. 권10에 실린 동월의 〈조선부 朝鮮賦〉는 우리나라에서 1개월 동안 보고 들은 사실을 부체(賦體)로 지은 것으로 부체 아래에 직접 주(註)를 붙였다. 권16에 실린 당고와 사도의 〈평양승적 平陽勝蹟〉은 평양의 고적과 경치 21곳에 대하여 지은 5언절구 21수를 모아놓은 것이고, 이에 대한 이행의 차운시 40수가 있다. 권22에 실린 공용경의 〈제정판서조천록 題鄭判書朝天錄〉과 오희맹의 〈조천록서 朝天錄序〉는 정사룡의 시집인 〈조천록〉에 관해 쓴 글로서 그를 칭찬하며 그의 시에 대한 특징을 설명했다. 권34에는 압록강을 건너서부터 숙녕관(肅寧館)·안정관(安定館)을 거쳐, 개성·파주·벽제 등을 지나 서울로 들어오는 도중에 지은 시와 〈숙태평관 宿太平館〉·〈국왕전별모화관 國王餞別慕華館〉 등 돌아가는 도중의 감회를 읊은 진삼모의 시 41수가 있다. 조사(詔使)의 도정(道程)과 이에 대한 접반의 절차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권36 끝에 실려 있는 〈여원접사첩 與遠接使帖〉은 조사(詔使) 황홍헌과 왕경민이 원접사 이이에게 보낸 글이다. 다른 편에서 볼 수 있는 조사들의 태도와는 달리 이이의 인격과 학문에 감동하여 흠모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전기의 풍속과 지리를 연구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조선 전기 관각문학(館閣文學)의 흐름을 파악하고, 한국·중국 문학의 수수(授受) 관계를 비교문학적 차원에서 고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자료이다. 23종 각각의 〈황화집〉과 이를 합본한 〈황화집〉은 차이가 있으므로 서지학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 김기화 ( Ki Hwa Kim ) | |
| 학술논문 > 사회과학 > 문헌정보학 > 서지학연구 - 서지학연구 제39권,201~253쪽(총53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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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화 ( Ki Hwa Kim ) | |
| 학술논문 > 사회과학 > 문헌정보학 > 서지학연구 - 서지학연구 제41권,227~264쪽(총38쪽) | |
| 신태영 ( Tae Young Shin ) | |
| 학술논문 > 어문학 > 국문학 > 한문학보 - 한문학보 제5권,115~144쪽(총30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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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논문 > 어문학 > 국문학 > 한국한시연구 - 한국한시연구 제7권,307~336쪽(총30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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