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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전환기 조선 사회의 새로운 독서 전략.글쓴이 / 노관범

굴어당 2011. 1. 8. 19:13

한국사는 세계사이다. 평범한 생각이지만 깨닫기 어려운 생각이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세계화가 되지 못했다며 곳곳에서 글로벌을 외치며 숨가쁘게 뛰어다니는 우리 사회 안에서 볼 때 결코 공감 받지 못할 생각이다. 세계란 미국과 유럽이고 한국은 본디부터 태생적으로 세계가 아닌데 어떻게 한국사가 세계사란 말인가? 아니면 이런 생각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위대한 세계제국을 건설한 일도 없고 찬란한 세계문명을 발명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한글이나 거북선 같은 것으로는 세계사를 말하기 빈약하지 않은가?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세계사는 그런 뜻이 아니다.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독특한 생활 습관을 만들었고, 그것들은 모두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문제로 조명될 가치가 있다. 세계사란 우리 스스로 지구인이 되기 위해 알아야할 세계 인류의 그러한 보편적인 삶의 문제의 역사이다. 그렇게 볼 때 전통시대 한국사는 세계사적인 문제들을 적지 않게 담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가지가 독서이다. 조선시대는 후기로 갈수록 유교문화가 확산되면서 전사회적인 차원에서 독서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넘쳐났다. 개화기 서양인이 감탄했듯이 곳곳에 책이 있었고 곳곳에서 글읽는 소리가 들렸다. 이러한 삶의 외양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글읽기에 관한 남다른 안목이 있었는데, 아래에 예시할 이상수(李象秀 : 1820~1882)의 글은 조선 후기 글읽기의 역사에서 시대전환적인 생각을 피력하고 있어 주목된다.

 

 

1.
원래는 글을 읽은 뒤에야 글을 잘 지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지은 뒤에야 글을 잘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째서인가? 무릇 글[文字]에는 모두 법이 있다. 단지 글자만 알고 법을 알지 못한다면 옛사람의 묘한 곳을 모르는 것이다. 이를 일러 촌학구(村學究)라고 한다. 무엇을 글의 법이라 하는가? 장(章)에는 장법이 있고 구(句)에는 구법이 있고 자(字)에는 자법이 있다. 육경(六經)은 법으로 논할 수 없지만 후세의 글짓기는 법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다. 『좌전(左傳)』, 『장자(莊子)』, 『한서(漢書)』, 『사기(史記)』에서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구양수(歐陽脩), 소식(蘇軾)에 이르러 그 법이 비로소 구비되고 규승(糾繩)과 척도(尺度)가 삼연(森然)하여 구차하지 않게 되었다. 

글을 읽는 사람은 먼저 종지(宗旨)를 구하고 다음으로 결구(結構)를 찾아야 한다. 결구를 찾지 못하면 종지(宗旨)의 중요한 곳이 나오지 않는다. 포치(布置)의 차례, 맥리(脈理)의 단락, 지분(枝分)의 마디를 요연히 밝게 분석해야 마침내 전체를 관통하고 작자의 묘한 곳이 비로소 드러난다. 이를테면 땅을 보는 사람은 그 용세(龍勢)와 국체(局體)를 알아 모두 법에 들어맞아야 정혈(正穴)을 얻을 수 있다. 집 짓는 것을 보는 사람은 그 결구와 승척(繩尺)을 알아 모두 도에 합해야 장인의 솜씨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불변의 이치이다. 지금 글을 읽는 것은 단지 시문(時文)을 짓기 위해서인데, 시문을 짓는 자는 글을 읽으면서 법을 구할 필요가 없다. 대략 피상적으로 글자 뜻만 얻으면 이미 그 문구를 따서 충분히 편장(篇章)을 이루게 되니, 결구를 찾지 않아도 과거 시험 합격에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글의 법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고(班固)ㆍ사마천(司馬遷)ㆍ한유(韓愈)ㆍ구양수(歐陽脩)의 글은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그것이 어째서 묘하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이미 한유ㆍ구양수ㆍ반고ㆍ사마천이 지은 것이라서 자연히 묘할 것이고 옛사람이 이미 모두 추앙하였고 온 세상이 모두 외워 익히니까 나도 그것이 묘하다고 한다. 이것은 난장이가 공연을 구경하는 것이다. 난장이가 공연을 구경하다 나중에 온 키 큰 사람이 앞을 가려 보지 못하는데, 이윽고 관중들이 크게 웃으면 난장이도 웃는다. 너는 무엇을 보았길래 웃었냐고 물으면 키 큰 사람이 모두 웃으니 필시 웃을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나도 웃었다고 대답한다. 이치로 보면 본디 맞는 말이나 그것이 자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때문에 글을 지은 뒤에야 글을 잘 읽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심하다, 시문의 폐단이여! 하물며 육경(六經)과 사서(四書)도 그들이 보고나서 내가 깨닫기를 바랄 것인가? 하지만, 반고ㆍ사마천ㆍ한유ㆍ구양수를 잘 읽어서 그들의 묘한 곳을 알면 육경과 사서에 대해서도 맹랑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2.

글을 읽을 때 단지 종이 위에 씌어 있는 것만 구하면 글을 잘할 수 없다. 어째서인가? 우리나라[東國] 사람이 읽는 것은 모두 중국의 글이다. 중국의 글은 모두 중국 사람의 말이다. 중국은 말이 곧 글이다. 우리나라는 말과 글이 두 가지라서 본디부터 판연히 같지 않은데, (중국의 글을) 일절 우리나라 말뜻으로 구하면 어찌 어긋남이 없겠는가. 촌학구들은 중국의 말이 우리나라와 같을 것이라고, 또 중국에서 글을 읽을 때도 우리나라와 같이 이른바 구결이 있을 것이라고, 또 중국에 언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단히 어리석은 것이다. 글을 지어 무엇하겠는가? 이는 단지 종이 위에서만 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말이란 것은 시간으로 천 년이 되면 변하고 공간으로 천 리가 되면 변한다. 때문에 진한(秦漢)의 말이 삼대(三代)로부터 변하였고, 당송(唐宋)이 진한으로부터 변하였고 명청(明淸)이 다시 당송으로부터 변하였으니 이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진(秦)나라 사람의 말이 오(吳)ㆍ월(越)과 같지 않고, 초(楚)나라 사람의 말이 제(齊)ㆍ노(魯)와 같지 않으니 이것은 지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이 달라진 것을 생각지 않고 장구만 묵수하면 또한 곤란하지 않겠는가. 중국의 풍요(風謠), 피복(被服), 궁실(宮室)이 고금에 변화가 없을 수 없고 하물며 우리나라는 일체 모두 다른데, 문자로 기재함에 있어 모두 중국의 사물인 것을 일체 우리나라의 사물에서 구하면 어찌 딱 들어맞겠는가? 


그러므로, 훈고(訓詁)에 통달하지 않으면 안 되고, 형명(形名)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자의(字義)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 중국 풍요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단지, 종이 위에 적힌 것만 갖고 구하면 글을 잘할 수 없다.

〈원문〉

讀書而後能作文。固矣。余謂作文而後乃能讀書。何也。凡文字皆有法。只得其辭而不曉其法。則不知古人妙處。是謂村學究。何謂文法也。章有章法。句有句法。字有字法。六經不可以法論。然後世作文無不由是而出。自左莊班馬。至韓柳歐蘇。其法始備。規範尺度森然不苟。讀之者先求宗旨。次尋結構。結構不尋。則宗旨肯綮之所在亦不出。鋪置次第脈理段落支分節解瞭然昭晰。乃可以貫其全體。而作者妙處始露。如相地者。曉其龍勢局體。皆中於法。乃能得正穴。相作室者。曉其結構繩尺皆合於度。乃知匠氏之能。此不易之理也。今之讀書者。只爲作時文。作時文者。讀書不必求法。略得辭義皮膚。則已摘其文句。足以成篇。不尋結構。未嘗有妨於取科第。故文法在所不言。然班馬韓歐之文。童習至白紛。問其何以妙乎。則不能置對。旣是韓歐班馬。自然應妙。古人已皆推服。擧世無不誦習。我不得不謂其妙。此矮人之觀場也。矮人觀場。而後至長人蔽遮不得見。已而滿場大笑。矮人亦笑。或問汝何所見而笑。對曰。長人皆笑。必有可笑。故吾亦笑。理固得矣。何有於己哉。故曰作文而後能讀書。甚矣。時文之弊也。況於六經四子書。望其認而有得耶。然能讀班馬韓歐而知其妙。亦於六經四子書。必不至孟浪矣。

 

凡讀書只求之紙上。未有能文者也。何也。東國人所讀。皆中國之文也。中國之文。皆中國人言語也。中國言語卽文字。東國言語文字爲二事。已固判然不同。一切以東國求之。豈無乖戾乎。村學多認中國言語亦如東國。又認中國讀書亦如東國。有所謂口訣。又謂中國有諺文。蒙然甚矣。何以文爲此。只求諸紙上之故也。且言語者。竪之千歲而變。橫之千里而變。故秦漢言語有變於三代。唐宋有變於秦漢。明淸又有變於唐宋。此以世異也。秦人言語不同於吳越。楚人言語不同於齊魯。此以地異也。不考其遞異而株守章句。不亦難乎。中國風謠被服宮室。古今不能無變。況東國一切皆異。而載於文字罔非中國者。一切以東國求之。豈可吻合乎。故訓詁不可不通也。形名不可不講也。字義不可不究也。中國風謠不可不知也。只求之紙上。未有能文者也。

 

- 이상수(李象秀), 〈글읽기[讀書]〉,《어당집(峿堂集)》
  


〈해설〉
    
독서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오래된 만큼 독서의 풍경도 많이 변하였다. 백제 사람들은 논어를 읽으면서 목간(木簡)을 매만졌고 고려 사람들은 불경을 읽으면서 두루마리를 펼쳤고 조선 사람들은 사서삼경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책의 형태가 달라진 탓이다. 글을 읽는 습관도 한결같지 않았다. 율곡 같은 이는 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 책을 읽었다고 하지만 대개 한적본을 읽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독서는 일반적으로 음독이었다. 반면 양장본을 읽는 근대계몽기 신사들의 독서는 묵독이었다. 이미륵 같은 이는 상해에서 마르세이유로 가는 배 안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한문 책을 읽을 때는 음독으로 서양 책을 읽을 때는 묵독으로 선택적인 독서를 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고 베트남과 한국의 독서 방식에 비슷한 점이 있음을 기록하였다.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변화 못지 않게 독서의 역사에서 중요한 포인트로 주목해야할 현상이 집중적인(intensive) 읽기에서 포괄적인(extensive) 읽기로의 변화이다. 자기 삶의 초월적인 변혁을 위해 책을 읽었던 사람들은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천번만번 집중적으로 읽었다. 성인이 남긴 육경을 자연스럽게 마치 자기 삶에서 쏟아진 자기 말처럼 능숙히 읽을 수 있는 경지에 간다는 것, 그 경건하고 치열한 과정에 취미로서의 독서는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책이 증가하고 지식이 확장되면서 사정은 바뀌었다. 청나라 연경에서 매년 쏟아져 들어오는 간행본들, 조선 사회에서 매년 생산되는 상업적 출판물들, 그러한 사회 풍조에서 생산과 유통 속도가 더욱 빨라진 필사본들. 이제 성인의 글과 대면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왜 글을 읽느냐는 물음 못지 않게 어떻게 글을 읽느냐는 물음이 중요해졌다. 자기 삶의 현존에 비추어 글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통찰하는 ‘깨달음의 읽기’보다는 책의 언어적 특성에 비추어 글의 구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눈썰미의 읽기’가 중요해졌다. 포괄적인 읽기가 확산된 결과였다.


이상수는 포괄적인 읽기의 시대에 접어들어 향촌 사회의 선비들을 위해 글읽기 전략을 새롭게 마련하였다. 철두철미 글이란 언어적 인공물이라는 가정을 취하고 있다. 먼저 글의 주제를 파악하라, 그리고 글의 구성을 분석하라, 그래야만 고전이 왜 훌륭한 글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는 흡사 기초적인 현대 논술 강의를 방불케 한다. 먼저 언어를 탐구하라, 동일한 한자어라도 그것이 지시하는 사물이 중국과 우리나라가 서로 다를 수 있음에 주의하라, 최초의 한자어가 지역적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또 시대적으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공간적, 시간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음에 주목하라. 이는 흡사 학술적인 역사언어학 강의를 방불케 한다.


이상수가 살았던 시대는 서울을 중심으로 문학과 고증학이 풍미하고 있었다. 조선의 학계는 경ㆍ향 간에 문학 대 도학, 고증학 대 주자학의 구도로 학문이 갈리고 있었다. 경화학계에서 향촌사회로 이주해 온 이상수가 문학과 고증학에 입각한 방법론적인 글읽기 전략을 마련하였을 때 과연 향촌사회 선비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을까? 성인의 글을 굳이 분석적으로 읽지 않아도 성인의 글에 진리가 담겨 있음을 믿었던 사람들, 성인이 사용한 언어를 성인의 시대에 비추어 역사적으로 재구성하지 않아도 성인의 언어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자기 삶에서 체험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 이상수의 제안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의 글을 분석적으로 읽기 전에는 성인이 추구한 진리를 확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성인의 글을 성인이 살았던 시대의 언어적 조건에서 역사적으로 독해해야만 비로소 성인과 자신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상수의 제안은 그런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방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상수가 제시한 글읽기 전략은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ㆍ참고사항
글쓴이 / 노관범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
*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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