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어당

굴어당의 한시.논어.맹자

http:··blog.daum.net·k2gim·

문집의 정본을 만들어야 한다.글쓴이 / 김문식

굴어당 2011. 1. 8. 19:32

2010년 한국고전번역원(이하 ‘번역원’이라 함)에서는 문집을 주 대상으로 하는 권역별 협동번역사업을 시작했다. 번역원은 2005년에 총 350집의 한국문집총간 간행을 완료하고, 금년 초에는 이를 DB로 구축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는데, 이제 한국문집총간을 대본으로 하는 번역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아직 속편 150집의 간행과 DB 구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500집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번역 사업이 전개될 것이다. 실로 장대한 사업이다.

고전 작품의 번역과 DB 구축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필자는 실록의 번역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실록의 번역이 끝났을 때와 DB 구축이 완료되었을 때를 기점으로 연구 수준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최근 한국의 전통문화를 다루는 서적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 실록은 이제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자료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국가에서 편찬한 서적의 대표 주자라면, 문집은 민간에서 편찬한 서적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문집은 해당 인물의 후손이나 제자들이 가장 정성을 들여 편찬한 책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문집의 번역본이 간행되고 DB 구축까지 이뤄진다면, 우리는 실록이 나왔을 때와 같은 변화를 다시 한 번 목격하게 될 것이다. 출판계나 문화계의 동향이 어떻게 바뀌고, 시민들은 전통문화에 대해 또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지 자못 기대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보아야 할 문제점이 있다. 협동번역사업은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된 문집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을 진행하는데, 그 대본에 수정 보완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만약 번역할 대본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그 결과는 번역자의 능력에 상관없이 부실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생각해 보자. 《여유당전서》는 1930년대에 신조선사에서 연활자로 간행한 것이 처음이고, 해방 이후 이를 영인한 책이 연구자들에게 보급되었다. 정약용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2천 건이 넘는데, 이들은 모두 신조선사본을 대본으로 하여 작성되었다. 필자도 신조선사본을 주로 이용했는데, 다행히 규장각에 근무하면서 필사본《여유당집》과 대조할 기회가 있었다.

정약용이 작성한 원본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여유당집》과 신조선사에서 간행한 《여유당전서》를 비교하면 그 체제부터 다르다. 《여유당집》의 체제는 경집(經集) 다음에 문집(文集)이 나오는데, 이는 모기령(毛奇齡)의 《서하집(西河集)》에서 연유한 것이다. 정약용이 모기령의 학문을 비판하면서도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신조선사본은 이를 시문집(詩文集), 경집(經集), 예집(禮集), 악집(樂集), 정법집(政法集), 지리집(地理集), 의학집(醫學集)으로 구분했는데, 이런 구분법은 문집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다. 정약용은 경집에서도 정조의 비평이 들어있는 《시경강의》를 제일 앞에 배치하여 정조와의 각별한 관계를 드러냈는데, 신조선사본에서는 사서(四書)에 관한 연구서를 먼저 배치했다. 정약용은 통상적으로 3권을 1책으로 묶었는데, 신조선사본에서는 1책을 1권으로 표시하여 권별 구분을 알 수 없게 했다.


《여유당전서》는 일제하 제반 여건이 어렵던 시절에 독지가들의 성금을 모아 간행되었는데, 이 책이 한국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여유당전서》가 활자본으로 보급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접하는 연구 가운데 상당수는 나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조선사본을 완전한 대본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2004년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시작한 《여유당전서》 정본(定本) 사업은 신조선사본이 가진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사업이다. 그동안 정본 사업에서는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정약용 저작의 필사본을 최대한 조사하여 수집했고, 신조선사본과 수집한 필사본들의 원문을 일일이 대조하여 교감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정약용이 인용한 자료가 있으면 그 원전을 찾아 확인했고, 9종의 문장 부호와 6종의 기타 기호를 사용하여 표점을 붙였다. 이 사업은 2012년에 1단계 작업이 완료될 예정인데, 향후의 번역 사업에서는 이를 대본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정본 사업은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입해야 하지만, 그 성과는 잘 나타나지 않는 사업이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한 사업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정본 사업은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지 않으면 누구라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사업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정본이 나온 이후의 연구는 이전과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라는 점이다. 정본을 대본으로 하는 번역본이 훨씬 좋아질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제대로 된 정본이 나온다면 번역은 이미 70~80% 정도가 진행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문집이 편찬되는 과정을 보면, 특정 인물의 글을 수집하여 연대순으로 배열하는 단계가 있고, 글의 종류에 따라 이를 재분류하는 단계가 있다. 이상의 두 단계에서는 빠진 기록을 추가하거나 삭제를 하고, 문장의 윤문이 이뤄진다. 이렇게 편집이 일단락되면, 문집을 간행하기 위한 대본을 깨끗이 필사하는 단계가 있고, 마지막으로 이를 바탕으로 목판을 새기거나 활자를 조합하여 인쇄를 한다. 따라서 목판본이나 활자본으로 간행된 문집이라면 일단 정본이 만들어졌지만, 필사본의 상태로 남아 있는 문집이라면 정본이 나오기 이전 어느 단계에서 작업이 중단된 경우로 보아야 한다.


한국문집총간의 문집을 보면 정본이 나오기 이전 단계에 있는 필사본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 필사본이 현재 전해지는 문집의 유일본이라면 이를 대본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당 문집의 다른 필사본이 남아있고, 이들이 정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게다가 문집의 주인공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면 정본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최근 이황의 《퇴계집》과 송시열의 《송자대전》 정본 사업이 《여유당전서》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는데, 정부 지원이 중단되면서 작업도 중단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현재 번역원에서 주관하는 문집의 번역 사업은 한국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사업의 효과를 더욱 높이려면 번역의 대본이 되는 문집의 정본을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 필자가 파악하기로 앞서 언급한 세 문집 외에도 박지원, 심환지, 홍석주, 홍경모의 문집에 2종 이상의 필사본이 있고, 박제가의 경우에는 흩어진 글을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현재 정본 작업이 중단된 사업을 포함하여 정본 사업을 추진하는 연구팀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번역을 진행하면서 해당 문집의 필사본을 일괄 조사하여 원문을 교감하고 번역에도 이를 반영시키는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한다면, 권역별 협동번역사업은 더욱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 김문식

*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주요저서

조선후기 경학사상 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등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