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천안함 폭침 이후 돌연 북한을 감싸고 도는 분명한 자세를 보인 것은 ‘북한을 등 뒤에서 보호하며 미국과 맞선다’는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허장성세(虛張聲勢)의 심리가 발동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 스텔스기 동영상 공개는 중국 정부의 의도적인 ‘이벤트’일 가능성
⊙ 쑹창, 《중국은 기분이 나쁘다》란 책에서 미국과 러시아를 ‘늙은 오이’로 지칭
⊙ 미국, 지금도 중국을 ‘리저널 파워(regional power)’로 규정
⊙ 중국의 외교전략은 大國爲主…중국의 입장에서 韓中관계는 中美관계의 종속변수란 사실 인식해야
朴勝俊
⊙ 1954년생.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국제부장, 중국전문기자, 베이징특파원 겸 지국장,
북중전략문제연구소장,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겸임교수 역임.
⊙ 現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국제정치학).
⊙ 스텔스기 동영상 공개는 중국 정부의 의도적인 ‘이벤트’일 가능성
⊙ 쑹창, 《중국은 기분이 나쁘다》란 책에서 미국과 러시아를 ‘늙은 오이’로 지칭
⊙ 미국, 지금도 중국을 ‘리저널 파워(regional power)’로 규정
⊙ 중국의 외교전략은 大國爲主…중국의 입장에서 韓中관계는 中美관계의 종속변수란 사실 인식해야
朴勝俊
⊙ 1954년생.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국제부장, 중국전문기자, 베이징특파원 겸 지국장,
북중전략문제연구소장,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겸임교수 역임.
⊙ 現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국제정치학).
중국이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방중(訪中)에 맞춰 J-20스텔스전투기(사진) 시험비행 사실을 공개한 것은 미국과 대등한 반열에 서려는 중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이날 오후 후진타오와 만난 게이츠 장관은 회담 도중 J-20 시험비행에 관해 질문을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후진타오와 중국 측 배석자들은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당황스러워 했고, 자신들은 게이츠 장관과의 회담 두세 시간 전에 이뤄진 중국 최초의 스텔스(stealth)기 시험비행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인상을 게이츠 장관과 미국 측 배석자들에게 주었다.
다음 날 오전 베이징 북동쪽의 무텐위(慕田?) 만리장성 관광에 나선 길에 미국기자들을 만난 게이츠 장관은 “중국 민간인(civillian) 지도자들은 J-20 시험비행에 대해 놀라워했고, 미 국방장관인 나의 방문과 중국 최초의 스텔스기 시험비행은 절대로(absolutely) 무관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게이츠 장관을 만난 후진타오와 중국 측 배석자들이 과연 미 국방장관과 중국 국가주석 회담 직전에 이뤄진 중국 최초의 스텔스기 J-20의 시험비행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게이츠와 후진타오 회담 직후 회담에 대해 설명하면서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J-20 시험비행과 관련, “중국의 무기와 장비의 발전은 전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방위하기 위한 필요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특정 국가나 특정 목표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텔스기 동영상 공개는 의도적일 가능성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은 “J-20 시험비행과 게이츠 장관 중국 방문은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원수인 국가주석일 뿐만 아니라 중국군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는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직하고 있는 후진타오가 모르는 가운데, 그것도 후 주석이 미 국방장관과의 회담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중국 최초의 스텔스기 시험비행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더구나 중국 국가주석이 미 국방장관과 회담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시험비행이 중국 인터넷 블로거들을 통해 공개됐다는 사실은, 중국 사회의 구조상 시험비행 동영상의 공개가 의도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거꾸로 입증해 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사이버 공간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해 공안당국이 삼엄한 통제를 하고 있다. 특히 군 관련 정보에 관해서는 당국이 유통을 허용하지 않는 정보를, 그것도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어떤 형벌을 받을 것인지를 잘 아는 보통 중국인 가운데 중국 최초의 스텔스기의 시험비행에 관한 동영상을 유통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거나 감행하려는 중국 네티즌이 출현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국의 인터넷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이뤄지는 중국 공안당국의 통제의 정도는 지난해 말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로 결정됐다는 사실이 상당 기간 중국의 인터넷 공간에서 완벽하게 유통 통제된 사실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게이츠 장관이 후진타오 주석과 회담을 하기에 앞서 J-20 시험비행이 이뤄지고, 또 인터넷 블로거들을 통해 공개됐다는 사실은 게이츠 장관이 2009년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과 관련해서 “중국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실전배치는 2020년 이전에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J-20 스텔스기 개발은 중국인들의 ‘몐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지난 1월 11일 게이츠 미 국방장관과의 회담 중, 게이츠 장관의 질문을 받고 중국이 개발한 스텔스기의 시험비행 사실을 확인해 줬다. |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의 5세대 스텔스기의 시험비행과 실전배치에 관해서는 허웨이룽(何爲榮) 중국공군 부사령관도 2009년에 “시험비행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실전배치는 8~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일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J-20의 시험비행이 지난 1월 11일 성공적으로 이뤄져 15분 이상 중국 상공을 날았다면 중국의 스텔스기 개발 작업진도가 크게 앞당겨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런 사실의 공개를 미 국방장관의 중국 방문에 맞춰 감행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번에 시험비행에 성공했다고 중국 블로거들이 주장하는 J-20은 꼬리 날개가 두 개로, 외형이 미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Raptor)를 쏙 빼닮은 꼴이라는 것이 미 항공전문가들의 진단이다. F-22는 미 공군이 1981년에 설계하고, 1990년에 처음 시험비행을 했으며, 2004년부터 실전배치했다. 그러나 F-22는 엔진이 두 개로, 생산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미국은 게이츠 장관의 판단에 따라 2009년부터 F-22 생산 예산을 삭감했다.
대신, 단발(單發) 엔진으로 생산비용이 싼 F-35를 개발해 2006년부터 시험비행을 하고 있는 중이며, 실전배치는 2014년 이후에 이뤄질 예정이라고 한다. 미 공군은 F-22를 미 영공 내에서의 훈련과 작전을 위해서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해외에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미국의 안보 우산을 제공하기 위해 괌과 오키나와에만 배치해 두고 있다.
그러니까 중국이 이번에 게이츠 장관의 방중(訪中)에 맞춰 J-20의 성공적인 시험비행 사실을 은근슬쩍 하는 수법으로 공개한 것은 중국 자신들에게도 미국의 F-22에 필적할 만한 스텔스 전투기의 개발이 완성단계에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며, 중국 국내용으로도 공개의 필요성을 느낀 중국 지도부가 머리를 짜내 보여준 ‘이벤트’라고 보아야 할 듯싶다.
2008년 10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본 중국 지도부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는 마당에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가 한국과 일본 등 태평양 서쪽 상공을 누비고 있는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또한 국내용으로도 어떻든 F-22에 대한 대응책을 공개해야 그래도 중국인으로서는 가장 중시하는 몐쯔(面子ㆍ체면)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지는 따로 검증해 봐야
중국군의 무기체계는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이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 수준이다. 러시아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인 수호이 T-50은 시험비행을 지난해인 2010년 1월에야 겨우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이번에 비행에 성공한 J-20을 스텔스 전투기라는 중국어 ‘인싱(隱形)’ 전투기인 것으로 공개했으나, 과연 실제로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지는 따로 검증해 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중국이 실제로 제5세대 스텔스기를 개발했으며, J-20이 실제로 레이더에 잡히느냐 않느냐의 문제보다도 중요한 것은 중국이 이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미국에 대해 부(不ㆍ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이 되고 싶다”라는 말이라는 점을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만약 2011년 1월 11일 시험비행에 성공했다는 J-20의 스텔스 기능이 스텔시(stealthy) 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중국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는 마당에 미국이 F-22 스텔스 전투기를 갖고 있다면 우리도 J-20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체면 중시의 논리가 그 이유가 된 것으로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No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 지 15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오른쪽)의 저자 쑹창(왼쪽). |
중국이 “No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 지는 벌써 15년이 됐다. 1996년 여름 중국 지식인들이라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이라는 책을 읽어봤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중국 제1의 개방도시 선전(深?)에서 우리로 치면 부구청장 정도의 지방행정 관리 생활을 한 경험도 있고, 산둥(山東)성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생활을 한 경험도 있는 쑹창(宋强)이라는 지식인이 대표 집필자가 되어 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은 그 표지에 “중국이 No라고 말하는 것은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등해지고 싶기 때문”이라고 큰 제목을 쓰고, 표지 안쪽에 “미국을 이끌 수 있는 것은 미국 자신뿐이며, 일본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일본 자신뿐”이라고 쓰고, “그렇다면 중국을 이끌 수 있는 것도 중국 자신뿐이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중국인들을 향해 던졌다.
1990년 초에 시작돼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붕괴와 냉전 해체과정을 지켜본 중국의 지식인으로서 그 두 과정을 주도한 미국이라는 유일 초강대국에 대해 “그래도 우리 중국은 할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No라고 말하는 중국》은 주로 담고 있다. “이제 앞으로는 중국을 억제(contain)하는 것이 미국의 장기전략이 될 것”이며, “미국은 그런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反) 중국 클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런 눈으로 국제정치를 보면 “일본은 늘 그런 미국의 눈치를 보아가며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불만스러워 하면서 “그런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줄 아는 중국이 되는 것이 오히려 중국에 국제적인 협력의 마당을 넓혀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만약 미국이 아시아의 대국(大國)인 중국을 계속 억누르려고 한다면 오히려 미국이 아시아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쑹창은 중국이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을 대체로 성공적으로 개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2009년 1월에는 《중국은 기분이 나쁘다(中國不高興)》는 책을 펴내 중국 서점가에 장기 베스트셀러가 됐다. 중국대륙과 홍콩, 대만에서 동시에 발행된 《중국은 기분이 나쁘다》는 쑹창이 군사평론가 쑹샤오쥔(宋曉軍), 극작가 황지쑤(黃紀蘇) 등과 함께 썼으며, 중국인들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중국의 내우외환(內憂外患)들의 원인을 열거했다.
쑹창 등이 펴낸 ≪중국은 기분이 나쁘다≫는 2009년 중국 등 중화권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
이 책의 집필자들은 중국이 기분 나쁜 이유로, 1840년 아편전쟁 이래로 계속되고 있는 서방국가들의 국제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분위기, 특히 1996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출판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1999년 미국의 유고 공습, 역시 배후에 미국이 있는 오렌지혁명(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오렌지색 물결로 뒤덮은 대대적인 부정선거 규탄시위), 미국의 이라크 공격, 2008년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양 세력이 배후작용을 한 것으로 보이는 티베트 사태, 프랑스에서 시작된 베이징올림픽 성화 릴레이 방해 사건 등을 보면서 중국사람들은 기분이 나빠졌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서양 사람들에게 중국인들이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려주고, 서양 사람들이 중국의 그런 기분을 정시(正視)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기분이 나쁘다》는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은 종이호랑이가 아니라 늙은 오이에 불과하다”고 규정하고, 미국은 2001년 9ㆍ11테러 사건으로 이미 종이호랑이 정도가 아니라 늙고 쭈글쭈글해진 오이 신세가 되고 말았으나, 이라크와 아프간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등의 이른바 ‘녹색칠’을 다시 하는 수법으로 싱싱한 오이처럼 보이게 하는 눈가림 전술만 쓰고 있다고 미국을 비난하고 격하했다.
필자들은 내친김에 러시아에 대해서도, 2008년 8월 8일 베이징올림픽 개막식날에 시각을 맞춘 듯이 그루지야에 대한 군사공격을 감행한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필자들은 또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정보통신의 도움을 받아 투폴레프 22 폭격기를 동원한 공격을 하는가 하면, 러시아 탱크에는 GPS 장비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했고, 러시아가 통제하는 위성도 정지위성 17개에 불과하더라”면서 “러시아도 이미 종이호랑이를 넘어 늙은 오이가 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기분이 나쁘다》는 미국도 러시아도 이미 늙은 오이가 됐지만 계속해서 녹색칠을 함으로써 싱싱한 오이처럼 보이게 하는 행동만 하고 있다는 점을 중국인들은 잘 알아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황해’ 韓美 합동군사훈련 저지하려 게이츠의 訪中 취소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이번 1월 베이징 방문은 지난해인 2010년 6월 초 중국이 돌연 게이츠 장관의 방문일정을 취소함으로써 빚어진 것으로, 그 이후 지속된 미ㆍ중 간의 불화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방문의 성격이 강했다. 지난해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미국이 항모 조지 워싱턴호를 동원해서 백령도 근해에서 한국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지 전술의 일환으로 중국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 직후 베이징을 방문하겠다는 게이츠 장관의 요청을 거절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에서 쑹창이 기대하던 중국의 ‘No’를 현실 대미(對美)외교에서 실현한 셈이었다. 물론 명분은 2010년 초 오바마 미 대통령이 대만에 대해 무기판매를 강행하고, 달라이 라마를 초청해서 만나는 등 중국에 적대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 등을 들었으나, 직접적으로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항모 조지 워싱턴호를 중국이 지난 19세기 말 청일전쟁 패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황해(黃海·우리의 서해)’에서 실시하려는 데 대한 강력한 저지 카드로 활용한 것이 배경이었다.
중국의 그런 심사는 8개월 만에 복원된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베이징 방문 과정에서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과 관영언론들이 곳곳에서 중국과 미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회담을 진행한 점을 거듭 강조한 데서 잘 나타났다. 관영 《신화통신》은 1월 11일 후진타오 주석과 게이츠 장관의 회담에서 후진타오가 “중·미 양국 국방장관들은 상호존중과 상호신뢰, 그리고 대등과 호혜의 원칙에 따라 대화와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관영언론들은 후진타오의 그런 언급을 ‘중ㆍ미 간의 4원칙’이라고 확대 포장하기도 했다. 게이츠 장관을 만난 미래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도 “중국과 미국이 상호 주권과 안전, 발전 이익을 상호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했고,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도 “미국이 최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일(美日), 미·한(美韓) 군사동맹을 부단히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중국과 미국 양국 군대의 전략적 상호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북한을 등 뒤에서 보호하며 미국과 맞선다’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등 중국의 실력이 실제로 미국의 인정을 받거나 미국의 두려움 대상이 되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형식상으로라도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심사는 추이톈카이 외교부 부부장의 후진타오-오바마 회담에 대한 설명에서도 잘 나타났다. 추이톈카이는 1월 19일로 예정된 미ㆍ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1월 12일 개최한 설명회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의 첫 해에 열리는 중요한 회담이라는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으며, 우리는 이 회담에서 중·미 관계가 진일보하고 새로운 시기의 양국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기를 바라며, 그 방향은 상호 윈윈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아직도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은 되지 못하고, 주변 지역에 위협이 되는 ‘리저널 파워(regional power)’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이 전 세계 GDP의 24%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3분의 1 정도인 8% 선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대등한 상대방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스런 심사가 곳곳에서 중국지도자들이 “대등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2010년 3월의 천안함 폭침 이후 돌연 북한을 감싸고 도는 분명한 자세를 보여준 데는 ‘북한을 등 뒤에서 보호하며 미국과 맞선다’는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허장성세(虛張聲勢)의 심리가 발동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2010년에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충돌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월=중국,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에 대한 항의로 군사협력 중단. 3월=중국 천안함 침몰과 관련 북한 비난을 거부. 7월=중국,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남중국해 간섭 발언에 항의. 9월=중국, 조어도(釣漁島) 분쟁에서 미국이 일본 편을 든 데 대해 분노를 표시. 10월=미, 중국의 반체제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11월=중국, 연평도 포격 관련 북한 비난을 거부. 미국은 한국과 서해 합동군사훈련 실시. 12월=미, 류샤오보 노벨상 수상을 축하. 항모 칼빈슨호를 한국 근해에 증파.>
大國爲主의 외교전략, 한중관계는 미중관계의 ‘종속변수’
작년 12월 미·일해군의 합동군사훈련. 중국은 한·미,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
한국 정부로서는 중국의 외교적 행동이 한중 관계의 맥락에 맞는 행동만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중심이 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마오쩌둥(毛澤東)의 외교전략의 기본은 친소반미(親蘇反美)였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집권 후반기 중국의 외교전략 기조는 친미반소(親美反蘇)로 돌아섰고, 1978년 이후 개혁개방 시대 중국의 기본 대외전략은 미국의 경제를 활용하기 위한 친미일변도(親美一邊倒) 전략이었다는 점을 볼 때 중국의 외교전략은 대국위주(大國爲主)로 짜여 있다는 점에 우리는 항상 유의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한중(韓中)관계는 중미(中美)관계의 종속변수일 뿐이며, 미국과의 관계의 맥락 아래서 한중 관계를 짜나간다는 점을 항상 의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미중 관계의 맥락 아래서 한중 관계를 점검하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1월 오바마-후진타오 간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충분한 자료 수집과 정밀한 분석 등 주권독립 국가로서의 정보 수집과 외교적 판단을 주도면밀하게 해나가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당한 뒤에야 중국의 태도가 싸늘한 점에 대해 원망과 비난을 퍼부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외교적 행동을 예상하는 단계로 우리의 외교가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19세기 말에 당시로서는 결코 강한 국가가 아니었던 청(淸)에 흥선대원군이라는 국가지도자를 톈진(天津)으로 납치당하는 수모를 다시 당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도 19세기 말에 일본에 패한 청일전쟁을 전쟁이 발생한 해가 갑오년이라고 해서 ‘갑오(甲午)전쟁’이라고만 부르고 있고,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공한 전쟁을 중일(中日)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런 심리적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의 형식과 체면 중시의 사고를 잘 활용하는 전략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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