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동포 3세, 마케팅 컨설턴트와 학원사업으로 富 일궈
⊙ 미공개 자료 정리 등 할 일 태산
⊙ 6만 점의 고지도·고서적·그림·도자기 등 세상에 모습 드러내기 기다리는 보물들 즐비
金惠靜
⊙ 1946년생.
⊙ 일본 도쿄공립여대 일문학과 졸업.
⊙ 현 경희대 석좌교수, 혜정문화연구소장, 혜정박물관장.
⊙ 미공개 자료 정리 등 할 일 태산
⊙ 6만 점의 고지도·고서적·그림·도자기 등 세상에 모습 드러내기 기다리는 보물들 즐비
金惠靜
⊙ 1946년생.
⊙ 일본 도쿄공립여대 일문학과 졸업.
⊙ 현 경희대 석좌교수, 혜정문화연구소장, 혜정박물관장.
김혜정 관장이 1737년 프랑스의 당빌(J.B D‘Anville)이 그린 ‘조선왕국지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지도는 우리나라가 독립적으로 그려진 최초의 서양 고지도다. |
김 관장의 말에 의하면, ‘여걸’로서의 자질은 어린 시절부터 보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면 그의 주위에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싸 준 계란말이 같은 반찬들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어요. 어머니가 잘 깎아서 필통에 넣어 준 연필도 친구들이 달라고 하면 나누어 줘서 필통에는 몽당연필만 남아 있곤 했죠.”
누군가에게 뭔가 나누어 주는 일, 그리고 사람 사귀는 일을 좋아하는 성품은 그때부터 비롯됐던 셈이다. 그에게 베푸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 김천수(金天守) 전(前) 일본 고마자와(駒潭)대학 교수였다. 그에게 혜정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원래 할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은 희숙(熙淑)이었어요. ‘밝을 희(熙)’자가 여자에게는 너무 센 이름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맑을 숙(淑)’자를 함께 넣어 이름을 지어 주셨죠. 하지만 아버지는 ‘여자는 세상에 베풀면서 조용히 사는 것이 좋다’는 의미에서 ‘은혜 혜(惠)’ 자와 ‘고요할 정(靜)’ 자를 써서 혜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어요.”
그래서 김 관장은 김혜정이라는 이름과 김희숙이라는 이름을 함께 쓴다. 명함에도 ‘金惠靜’이라는 이름 뒤에 ‘熙淑’이라는 이름을 병기(倂記)하고 있다.
김 관장의 집안은 원래 충남 아산의 한학자 집안이었다. 대대로 자손이 귀한 집안이었다. 김 관장의 증조부가 점쟁이에게 “자식을 외국으로 보내야 대(代)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를 일본으로 보냈다. 그게 1900년의 일이었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할아버지는 엄격했던 증조부를 꺼려 일본에 주저앉았다. 어린 시절 김 관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책 읽는 모습, 신문지에 붓글씨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났다.
“집에서 신문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어요. 아버지가 신문을 읽은 후에는 신문지에 붓글씨 연습을 해서 신문이 늘 새카맣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죠.”
젊은 시절 아사히신문 기자를 하기도 했던 아버지는 김 관장의 표현에 의하면 무척이나 튀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술을 가르쳐 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술을 참 좋아하셨어요. 고(高) 2때 술에 얼큰히 취해 들어오셔서는 ‘정아, 아빠랑 맥주 한 잔 할래?’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어이구, 그게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셨죠. 내가 ‘난, 맥주 못하는데…’라고 하자 아버지는 ‘좋은 거다’라며 권하시더군요. 한 잔 마셨는데, ‘이 쓴 걸 뭐 하러 마시나’ 싶었어요.
아버지는 기타를 참 잘 치셨어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기타를 연주하곤 하셨죠.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골프채를 사 주기도 하셨어요. 아버지는 내게 우상이었어요.”
18세기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제작자로 꼽히는 호만이 제작한 양반구 세계지도. 김혜정 관장은 서양 고지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고지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
대학 2학년 때 佛고지도 처음 구입
―술은 잘합니까.
“옛날에는 많이 했죠. 위스키 700mL짜리 반 병 정도…. 주는 대로 먹다가 뻗은 적도 있어요. 술을 많이 먹으면 실수가 많아서 문제죠.”
―무슨 실수입니까.
“누가 도와 달라고 하면 술김에 오케이를 해 버리는 거예요. 하지만 술김에 한 약속이라고 안 지킬 수 있나요. 지켜야죠. 난 ‘내가 얘기한 것은 곧 법(法)’이라는 생각으로 약속은 꼭 지키면서 살아왔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큰 약속은 아무리 노력해도 못 지키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그건 용서받을 수 있지요. 하지만 내가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죠.”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 관장은 도쿄공립여대 국문학과(일문학과)에 진학했다. 학교는 도쿄의 간다(神田) 신보초(神保町)에 있었다. 간다에는 지금도 유명한 고서점(古書店)거리가 있다. 김 관장의 회고다.
“강의를 땡땡이치고,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죠. 내게 대학은 도쿄공립여대 캠퍼스가 아니라, 간다의 헌책방이었어요. 책들을 뒤지고, 나이 든 서점 주인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간다 거리는 참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어요.”
김 관장이 생애 최초로 지도를 구입한 곳도 간다의 헌책방이었다.
“대학 2학년 때, 한 고서점에서 1750년대에 프랑스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발견했어요. 처음 보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에 빨려 들어갔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동안 모아 두었던 용돈에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졸라서 타낸 돈으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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