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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칸해저터널서 한·일해저터널의 미래를 보다

굴어당 2011. 1. 20. 16:18

총연장 53.85㎞로 세계 최장, 매일 일반여객·화물열차 92편 통과
한·일해저터널 기술적 문제 없어… 부산이냐 거제도냐, 기종점이 문제

▲ 일본 혼슈와 홋카이도 아래 쓰가루해협을 지나는 세이칸해저터널의 닷피해저역으로 혼슈 아오모리행 열차가 불을 밝히며 들어오고 있다.
일본 열도의 가장 큰 섬 혼슈(本州) 최북단 아오모리(靑森)역에서 하쿠초(白鳥)열차를 탔다. 48분이 지났을 때 ‘닷피( 飛)해저역’이라고 쓴 역에서 열차가 섰다. 동행한 후지하시 겐지(藤橋健次) 일·한터널협회 이사가 “이곳은 해수면 아래 135m 지점”이라고 말했다. 닷피해저역은 세이칸해저터널 안에 있다. 세이칸해저터널은 일본 혼슈와 북쪽의 홋카이도를 잇는다. 닷피해저역은 혼슈 쪽에서 해저로 19.5㎞ 들어간 지점에 있는 바다 아래 기차역. 열차는 기자를 내려놓고 홋카이도의 항구 도시 하코다테(函館)로 향해 다시 컴컴한 터널로 들어갔다. 열차가 출발하자 염분을 머금은 축축한 바람이 ‘휙’하고 두 뺨을 스쳤다.
   
   지난 10월 30일 일본 세이칸해저터널을 찾았다. 세이칸해저터널은 혼슈 아오모리와 홋카이도 하코다테 사이의 쓰가루(津輕)해협 아래를 지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터널이다. 총연장 53.85㎞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해협을 잇는 영·불해저터널은 총연장 50.45㎞이다. 땅 속 터널을 제외하고 바다 밑 터널 구간만 따지면 영·불해저터널이 38㎞로, 세이칸해저터널보다 길기는 하다. 세이칸(靑函)이란 이름은 터널이 시작되는 양쪽 도시인 아오모리와 하코다테에서 앞의 한 글자씩을 따서 붙였다.
   
   세이칸해저터널은 한·일 양국 학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가능성을 타진 중인 한·일해저터널 계획의 본보기로 얘기되고 있다. 한·일해저터널은 한반도 동남부와 일본 규슈를 해저터널로 연결시키자는 계획이다. 일본령 대마도와 이키섬을 통과하게 될 해저터널은 총연장 200㎞ 내외로, 이 중 해저구간은 140㎞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행한 서의택 한·일터널연구회 공동대표(현 중앙도시계획위원장)는 “한·일해저터널은 이제 민간 협의단계를 넘어 정부 차원의 검토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기자가 내린 닷피해저역은 긴급 대피역이다. 승강장에서 역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저터널 바닥 군데군데 지하수가 스며든 흔적이 보였다. 터널 굴착 시 깔아둔 작업용 레일은 이미 녹이 슬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수압으로 인해 터널 내부로 자연히 스며드는 물은 1분에 약 20톤에 달한다고 한다. 해저터널 내에는 1분에 20톤씩 스며드는 바닷물을 다시 밖으로 빼내는 대형 펌프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세이칸터널 안내를 맡은 JR(일본철도)홋카이도의 가와지리 야스오(川尻保夫)씨는 “해저터널의 가장 깊은 곳은 해수면 아래 240m 지점에 있다”고 설명했다. 닷피해저역에서 홋카이도 쪽을 바라봤다. 컴컴한 터널 속으로 열차 레일이 끝없이 뻗어있었다. 해저터널은 열차 두 대가 교행할 수 있는 복선 레일을 갖추고 있었다. 현재는 협궤(폭 1067㎜)를 사용하는 일반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만 다니고 있다. 신칸센을 제외한 일본의 일반열차는 폭이 좁은 협궤를 사용한다.
   
   
   1172명 수장된 도야마루호의 침몰
   
   1988년 해저터널 개통 전 홋카이도는 아이누족이 살던 일본 열도 북단의 섬에 불과했다. 메이지(明治)유신 직후 홋카이도는 한때 독립국을 표방하기도 했다. 해저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열차 페리를 비롯한 선박만이 아오모리와 하코다테 간 113㎞ 바다를 오고갔다. 하지만 열차 페리는 기상이 나쁘거나 태풍이 빈번한 여름철에는 결항되기 일쑤였다. 물살이 빠른 쓰가루해협에서 침몰사고도 종종 터졌다.
   
   세이칸해저터널의 개통도 1954년 도야마루(洞爺丸)호 침몰사고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태풍 마리에 의해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오가던 여객선 도야마루호가 쓰가루해협에서 침몰한 일본 역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다. 1172명이 쓰가루해협 아래 수장(水葬)됐다. 도야마루호 사고는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육상교통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그 결과 1946년부터 해저지질조사를 벌이던 일본 당국은 1964년 3월 해저터널 착공에 들어갔다.
   
   1985년 3월 해저터널을 관통시키는 데 성공한 일본 철도건설공단은 1988년 3월 터널을 정식으로 개통했다. 총연장 53.85㎞의 해저터널을 뚫는 데는 무려 24년이 소요됐다. 공사에 동원된 연인원만 1400만명에, 굴착에 사용된 화약이 2900톤이다. 사용된 시멘트는 85만톤으로 후지산 850개를 쌓을 수 있는 높이다. 공사비용은 6900억엔(약 9조5700억원)가량이 들었다고 한다. 34명의 인부들이 현장에서 순직했다.
   
   
   2015년부터 신칸센도 통과
   
   해저터널 개통 직후 ‘홋카이도 독립’ 주장은 쏙 들어갔다. 세이칸해저터널 관계자는 “하루에 37편의 여객열차와 55편의 화물열차가 터널을 통과한다”며 “태풍이 불면 들썩이던 홋카이도의 물가도 안정됐다”고 말했다. 해저터널 개통과 함께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잇던 열차페리선은 운항을 중단하고 현재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63년 한·일학생교류 때 열차 페리를 타봤다는 정태익 한·일터널포럼 자문위원(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닷피해저역에서 지상에 있는 세이칸해저터널 기념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닷피해저역과 해저터널기념관은 터널을 팔 때 인부들을 실어나르던 경사형 트램(Tram)으로 연결돼 있었다. 쓰가루해협을 바라보는 아오모리 최북단에 있는 세이칸터널기념관에는 해저터널 굴착에 사용된 녹슨 TBM(터널굴착장비)과 지하에서 깨진 암반을 퍼내던 화차(貨車)가 전시돼 있었다. 마침 이날 기념관은 세이칸해저터널을 찾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2015년에는 신칸센이 세이칸해저터널을 지나게 된다. 현재 기존 협궤 옆에 표준궤를 부설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신칸센은 일반열차와 달리 표준궤(폭 1435㎜)를 달린다. 오는 12월 4일에는 일본 동북지방을 연결하는 도호쿠신칸센(東北新幹線)이 아오모리까지 연장된다. 아오모리 역사(驛舍)와 시내 곳곳에는 ‘12월 4일 도호쿠신칸센 개통’이란 안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아오모리까지 올라온 도호쿠신칸센은 세이칸해저터널을 통과해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 삿포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했던 일제는 메이지유신 직후부터 ‘환동해(일본해)철도’를 구상해왔다. 일본 열도를 철도로 연결한 다음 한반도 동해안에서 연해주와 사할린을 거쳐 일본 열도로 이어지는 순환철도를 부설한다는 구상이었다. 동해를 일본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한·일해저터널의 기본구상인 ‘조선해협 철도터널 구상’이 처음 나온 것도 일제강점기인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8년 조선해협 철도터널 구상
   
   ‘환동해(일본해)철도’구상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일본 열도만을 철도로 연결하는 계획으로 축소됐다. 그 결과 1944년 혼슈와 규슈(九州)를 잇는 간몬(關門)해저터널(총연장 3.6㎞)에 이어 1988년에는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세이칸해저터널이 뚫렸다. 1994년 개통된 영·불해저터널(채널터널) 건설 때 일본의 토목기술자들이 대거 기술자문을 맡기도 했다.
   
   “현재 한·일해저터널 개통에 기술적 어려움은 없다”는 것이 한·일터널연구회 이용흠 대표의 설명이다. 다만 어느 지점에서 터널이 시작되어야 하느냐가 논란거리다. 한국 측 기종점(起終點)으로는 부산과 거제, 일본 측 기종점으로는 후쿠오카와 가라쓰가 거론된다. 기술적으로는 거제도에서 시작해 대마도 상도(上島)와 하도(下島)를 통과해 이키섬을 거쳐 가라쓰로 이어지는 안이 가장 유력하다. 가라쓰에는 해저지질조사차 바다 아래로 570m 정도 파고 들어간 ‘조사터널’이 있다.
   
   부산을 기종점으로 삼는 안(案)은 해저단층대를 통과하는 문제가 걸림돌이다. 한·일터널포럼의 기술분과자문을 맡고 있는 최재범 한진중공업 부회장은 “부산 앞바다를 지나는 해저단층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해저터널을 더 깊게 파야하는데 이 경우 공사비가 급증한다”며 “철도의 경사도 문제로 부산역과 해저터널을 직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이 경우 경남 양산이나 밀양에 해저터널입구가 들어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호서대 토목공학과 김상환 교수도 아오모리 현지에서 열린 ‘한·일해저터널 세미나’에서 “해저터널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물 문제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며 “수심이 깊고, 단층이 지나갈 경우 해저터널이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부산으로 이어지는 노선은 ‘양산단층’ 통과 문제가 있어 거제도로 돌아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얘기가 나온다”고 밝혔다.
   
   
   “한·일해저터널, 한반도 통일 기폭제 될 것”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타당성 논란이다. 지난 2003년 한국교통연구원 등이 실시한 타당성 평가에서 한·일해저터널은 ‘타당성 없음’으로 결론난 바 있다. 한·일터널연구회 측은 “해저터널 공사에 약 65조~95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한다.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비용편익분석 결과가 1 이상이면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데 한·일해저터널은 아직 비용편익분석에서 1 이하가 나온다”고 밝혔다.
   
   이에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전 국무조정실장)은 “큰 국가적 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을 갖추기가 어렵다”며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 등도 경제적 타당성이 없어 외국에서 지원을 거부했지만 지금은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지않나”라고 반문했다. 한·일터널포럼 회원인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도 “과거 공주 같은 도시는 철도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다가 쇠락하지 않았냐”며 “철도가 놓이면 주변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설명했다.
   
   남북통일을 염두에 둔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한·일해저터널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태익 한·일터널포럼 자문위원(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일해저터널은 북한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압력을 배가시켜 한반도 통일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것”며 “해저터널은 정치와 외교가 복합된 문제로 경제적·기술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논의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춘 한·일터널포럼 회장(전 법무장관·국회의원)은 “삼성이 소니를 극복하고,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이기고, 소녀시대가 오리콘 차트에 오르는 것처럼 한국의 국력은 왜군(倭軍)으로부터 동래성을 사수하던 임진왜란 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며 “대한민국이 규슈와 혼슈를 넘어 홋카이도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일해저터널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