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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7대륙 최고봉 등정한 정승권등산학교 총동문회

굴어당 2011. 3. 25. 10:12

1년 만에 7대륙 최고봉 등정한 정승권등산학교 총동문회

7대륙 꼭대기에 휘날린 정승권등산학교의 깃발

 ‘아콩카구아 재추진 원정대’ 인천공항에 나온 7명의 환송 인파의 손에 들려 있는 플래카드에 적힌 글이었다. 재도전이라는 단어가 재추진으로 인쇄된 것에 한바탕 웃는다. 아콩카구아는 정승권등산학교 총동문회의 7대륙원정에서 유일하게 실패를 겪은 산이다. 2010년 12월 다른 6대륙 최고봉이 모두 등정된 상황에서 마지막 도전을 위해 민경오 원정대장, 조규택 등반대장, 이명선 대원, 유재순 대원 이렇게 4명의 대원은 결연한 의지로 등산학교 전체의 숙명이 된 산 아콩카구아로 향한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캐나다의 밴쿠버와 토론토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29시간 26분 동안 비행기를 타느라고 씨름을 한 셈인데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비행기 요금도 절약할 겸 안데스산맥도 구경할 겸 아르헨티나의 멘도사로 가는 길은 비행기 대신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싼 비행기 요금을 찾아서 그 값으로 1인당  180만3,500원을 내고, 등산학교 동문들의 눈물겨운 십시일반 도움으로 마련한 비용을 아끼고 아껴, 1인당 250만 원씩을 준비해 온 가난한 등반대다.

12월 16일 베이스캠프인 플라자 데 뮬라스(4,300m)에 도착했다. 12월 22일부터 25일까지가 가장 좋은 날씨라서 일정을 앞당기기로 한다. 21일 오전에 짐을 정리하고 오후에 캠프1로 올라갔다. 22일에는 캠프2인 니도 콘도레스(5,560m)로 갔다. 캠프1에서 캠프2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5시간가량 걸렸다. 광활하게 펼쳐진 캠프2는 깨끗한 눈이 많아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다. 23일은 날씨가 좋지 않아 캠프2에서 휴식하고, 24일에 캠프3인 베르린 캠프(5,930m)로 이동한다.


▲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정승권등산학교 백호기 동문. 아콩가구아에서의 실패로 위기를 맞는 듯 했으나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는 날,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우리들을 착한 아이들로 여겼는지 산타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좋은 날씨를 선물로 주셨다. 아침 7시 40분, 캠프3를 출발해 정상인 6,962m에 도착했다. 날씨가 너무 좋으니 고소증세도 없는 것인지, 달팽이처럼 천천히 걸으며 몸속에 산소를 힘껏 불어 넣으려 계속 큰 숨을 들이마시며 걷는 것이 맛있다. 이 상쾌한 느낌. 아콩카구아여, 감사합니다!

-아콩카구아 원정대의 원정기 중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찾아온 아콩카구아 등정으로 정승권등산학교 총동문회는 2010년 한 해 동안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정승권등산학교 총동문회는 개교 20주년을 기념해 동문산악회를 중심으로 7대륙 최고봉 등정계획을 2008년에 세웠다. 2009년 세븐서밋 원정 운영위원회를 만들었다. 운영위원회는 세부 계획을 세우고 원정 희망자를 모집, 훈련에 들어갔다.

먼저 4개의 동문산악회가 각각 하나의 산을 맡기로 했다. 정승권 교장은 “비용이나 모든 면에서 에베레스트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고 한다. “조직력이 강한 산악회에서 큰 산을 맡는 걸로 하자”고 해서 에베레스트는 바름산악회, 아콩가구아는 등반사랑산악회, 매킨리는 산빛산악회, 엘브루즈는 골수회가 맡게 되었다. 3개의 산이 남았는데 킬리만자로와 코지어스코는 세븐서밋 운영위원회가 맡는 걸로 해서 모든 동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남극의 빈슨메시프는 정승권 교장이 직접 나서기로 했고 박종관씨가 자비를 들여 동참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원정비용이었다. 동문 산악회들이 지원금을 냈고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했다. 옷을 만드는 등의 행사를 열어 수익금을 보탰고 원정에 참가하는 대원들이 분담금을 내는 식으로 충당했다. 총 6억 2,000만 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했고 불가능해 보였던 금액을 동문들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정승권등산학교는 1990년 산악인 정승권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등산학교다. 정승권씨는 당대의 가장 테크니컬한 등반가라는 평가에 걸맞게 암벽반과 빙벽반을 개설, 20여 년간 뛰어난 역량의 산악인을 배출해 왔다. 정승권등산학교는 졸업 후에 연계되는 동문 산악회 활동을 통해 산을 더 가깝게 접하게 되고, 동문 산악회의 단합력은 정평이 나있다.


▲ 1. 정승권등산학교 깃발을 배낭에 꽂고 매킨리를 오르는 김영수 원정대장. / 2. 엘부르즈 정상에 선 골수회의 김태환, 이주미(오른쪽) 대원. / 3. 킬리만자로를 배경으로 선 정승권등산학교 동문들. 전원 등정의 성과를 거뒀다.
2009년 12월 7대륙 원정대 발대식을 열고 아콩가구아를 시작으로 1년간 원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첫 단추였던 아콩가구아 원정에서 정상에 오르는 데 실패, 시작부터 위기를 맞게 된다. 두 번째 원정은 7대륙 최고봉 등정의 열쇠라 해도 좋은 에베레스트였다. 노멀루트로 줄서서 올라가는 시절이라곤 해도 세계 최고봉이고 위험은 늘 상존해 있어 등정을 쉽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당시 “동문들은 에베레스트 등정 여부에 7대륙 최고봉 계획의 성사가 달려 있었다”고 운영위 김웅씨는 얘기한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지 못할 경우 아콩가구아도 재도전할 필요가 없기에 계획은 실패가 자명해지는 것이다.

동문들의 기대 속에 부담을 안고 원정에 나선 이들은 바름산악회원들이었다. 백호기 대원의 원정기를 소개한다.

에베레스트에 걸린 세븐서밋의 승패

신들의 계곡에 들어온 인간을 몰아내려는 듯 폭풍이 몰아쳤다. 격정이 가시지 않은 5월 11일 윤왕용 원정대장과 말 한마디 없이 정상으로의 채비를 서두른다. 비장한 마음이다. 출발 전 라마제단에 합장하는 짧은 순간, 등산학교 20주년 기념 동문 7대륙 최고봉 도전이라는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한 시간들과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불가능해 보이던 등반비용을 마련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정승권 교장선생님과 동문 산악인들, 보내고 싶지 않지만 차마 가지 말라고 말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눈물 삼키는 소리를 뒤로하고 베이스캠프에 입성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거대한 쿰부빙하 아이스폴 구간을 오르내리며 캠프1(5,940m)을 4회, 캠프2(6,030m)를 2회, 캠프3(7,315m)를 1회 운행하며 너무 힘들어 로체페이스의 빙벽에 머리 처박고 소리 내서 울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베이스캠프에 들어온 지 28일째, 이제 정상으로 향한다. 캠프1에 도착해 따뜻한 차 한 잔을 하고 바로 캠프2로 향하는데 바람은 더욱 사나워져 로라봉을 눕체봉 너머로 옮겨놓을 기세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목표로 하는 베이스캠프의 많은 원정대 중에서 오늘 운행하는 팀은 우리뿐이다.

다행히 우리는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캠프2에 도착했으나 찢어지는 듯 펄럭이는 텐트 소리에 제대로 자지 못하고 3일을 초조하게 웅크리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4일째 바람이 약해져 캠프3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고소적응을 하지 못한 고도라 약간의 두려움 속에 오른다. 옐로밴드를 지나 제네바스퍼 중간쯤에서 며칠 전 로체 등반 중 추락사 한 주검이 내려온다. 어서 내려오라고 매달린 로프를 당겨준다. 누군가에게는 끝이지만 내게는 시작 지점에서 죽은 자가 확보하고 내려간 줄에 등강기를 끼운다. 죽은 자의 영혼이 나를 지켜주길 바라면서 어렵게 록밴드를 오르고서야 사우스콜 마지막 캠프가 보인다.

출발한 지 열세 시간 만에 캠프4에 들어가 윤왕용 대장을 기다리며 산소마스크를 점검한다는 것이 레귤레이터로 연결되는 노즐 끼우는 부분을 절반쯤 깨트리고 말았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허탈하게 깨진 조각들을 만지작거리는데, 대장님이 도착했다. 계획대로라면 서너 시간쯤 휴식하고 정상으로 향해야 하는데 산소마스크가 하나밖에 없으니, “형, 먼저 다녀오세요”하고 얘기했다. 윤 대장은 “대원보다 먼저 가는 대장이 어디 있냐? 내 마스크 가지고 먼저 다녀와라”고 한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사가르마타의 여신은 이날 누구에게도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 1. 호주 코지어스코 전원 등정을 이룬 등산학교 동문들. / 2. 빈슨메시프 정상의 정승권, 박종관(왼쪽). 이 등정으로 박종관씨는 7대륙 최고봉 완등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5.13 클라이머이며 마라톤 서브쓰리까지 달성한 집념의 산악인이다. / 3. 아콩가구아 베이스캠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조규택(왼쪽부터), 민경오, 유재순 동문.

캠프4에서 하루를 더 머물게 되면서 고장난 산소마스크를 왕용 형의 마스크 머리띠를 잘라내어 동여매는 것으로 수리했지만 정상으로 운행 중에 풀려 버리면 어디서라도 돌아서리라 다짐한다. 밤새 사납게 몰아치던 사우스콜의 바람은 아침이 되어서도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되레 텐트를 뽑아 티베트로 날려 보낼 기세다. 오늘도 정상으로 가지 못하면 내려가야 한다. 포도 통조림 1개와 알파미 1봉지, 약간의 누룽지밖에 없고 가스도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하게 바람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는데, 다행히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 텐트가 흔들리지 않는다. 오후 6시쯤 김학규 형이 올라와 셋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좁은 텐트에서 뒤척이다가 학규 형과 락파치링 세르파가 먼저 출발하고 9시가 넘어 텐트를 나섰다.

벌써 정상으로 향하는 각국 원정대의 랜턴 불빛이 길게 이어져 있다. 다섯 시간 이상 오르고서야 발코니에 도착하니 여명이 밝아오고 어스름하게 티베트 쪽 산군이 멀리 펼쳐져 있고 웅대한 마칼루산군이 한번 와보라 하며 하늘을 이고 있다.

발코니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남동릉 등반이다. 이제는 띄엄띄엄 무리들이 보인다. 어렵게 한 명씩 추월하면서, 산소마스크만 이대로 유지된다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정체가 심한 바위구간을 피해 이전 시즌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낡은 로프를 이용해 남봉에 올랐다. 이후 30분을 더 가 정상에 닿았다.

세상의 정점이다. 이곳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던가. 누군가는 정상에 서서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떠오르고 가족들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나는 힘들지도 슬프지도 않고 허전할 뿐이다. 로체, 마칼루, 초오유, 눕체 등을 내려다보는 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이렇게 끝에 서버렸다는 것에 더 이상 고통의 쾌락을 맛보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과 허무함이 몰려든다. 우리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등정을 꿈꾸는 사람들이니 내려가야만 한다.

-바름산악회 백호기 대원의 원정기


에베레스트 등정으로 분위기가 반전된 정승권등산학교 동문들은 일사천리로 나머지 원정을 추진한다. 다음 최고봉은 북미의 매킨리를 산빛산악회가 도전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원정이었다. 다음은 이종률 대원의 원정기 중 일부다.


캠프4에서 9시간 만에 캠프5에 다다랐다. 조규택 대원이 정찰하러 나갔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 정상까지 올랐다. 일단 등정을 축하하며 조편성을 다시 한다. 예보상의 좋은 날씨를 기다리려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다. 기력을 다해 정상에 섰으나 날씨가 심상치 않다. 서둘러서 사진 촬영 후 하산한다. 사진 촬영을 위해 우모장갑을 벗은 게 좋지 않다. 손가락이 말을 안 듣는다. 화이트 아웃이 점점 심해진다. 두려움이 몰려온다. 길이 안 보이니 러시아 상업등반대의 뒤에 붙기로 하고 서두른다. 화이트 아웃으로 러시아팀이 길을 잃은 것 같다. 왔던 길을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체력이 바닥날 즈음, 발을 헛디뎌 추락한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활락정지를 시도하는데 로프가 당겨준다. 이태영 대원이 나를 잡은 것이다. 지옥과 천국의 거리는 불과 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찰나의 순간이었다. 러시아팀은 우리의 추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기 길을 가버렸다. 다시 속력을 내서 따라 붙기 시작했다.

 하산 9시간 만에 우리 텐트가 보였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텐트에서 형들이 뛰어나와 끌어안았다. 힘들고 지쳤다. 등정의 영예 따위는 생각에 없었다.

-산빛산악회 이종률 대원의 원정기 중에서-


엘브루즈는 골수회의 8명의 대원이 도전, 전 대원 등정을 이뤄냈다. 1차로 등정한 5명의 대원은 대행사 없이 모든 원정을 직접 운영하고 현지 시설물을 이용하지 않고 등정에 성공했다. 킬리만자로와 코지어스코는 세븐서밋 운영위원회 동문들이 도전, 두 원정 모두 전원이 정상에 올랐다. 남극의 빈슨메시프는 정승권 교장과 박종관 대원이 올랐다(234페이지 원정기 참조). 특히 박종관씨는 남극 최고봉에 올라 7대륙 최고봉 등정의 영예까지 안게 되었다. 이후 아콩가구아에서 재도전이 이뤄졌다. 2010년을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 초조하게 원정대의 소식을 기다리던 동문들은 유재순, 이명선, 조규택 대원의 등정 소식에 환호했다.

정승권 교장은 “동문들의 순수한 마음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동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 교장은 “벽 등반 같은 알파인 스타일로 하지 않은 건 모든 동문의 참여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며, “모든 동문이 참여했다는 데 있어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등산학교 동문들 중 일부는 이번 원정을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사비를 털어야 했고, 개인 시간의 대부분을 쏟아 부어야 했다. 등산학교 개교 20주년을 기념하여 동문 모두가 가고자 했기에 순수하게 힘을 보탤 수 있었다. 그 순수한 힘이 산에서 나온다는 걸 정승권등산학교 동문들은 알고 있다. 함께 로프를 묶고 벽을 오른 기억과 한 텐트에서 보낸 숱한 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글 사진 신준범 기자 | 사진 정승권등산학교 총동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