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유식 베이징특파원
"글쎄, 평소 간장 사러도 안 나가던 집사람이 아이폰4를 사려고 4시간 줄을 서서 기다렸다네." "아이에게 대학 합격하면 뭘 사줄까 하고 물었더니, 무조건 아이폰4라고 하더구먼."
얼마 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참석차 베이징에 온 안후이(安徽)성 대표들이 아침식사를 하며 나눴다는 이 대화가 요즘 중국 내에서 화제이다. 전인대 대표는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에 해당한다.
비슷한 회기로 열린 국정 자문회의격의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도 마찬가지였다. 회의장에 앉아 아이패드로 자료를 살펴보는 정협위원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한 여기자가 '질문'이라고 쓴 아이패드를 높이 치켜들어 질문을 신청하기도 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애플 광풍(狂風)은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식 제품이 출시되기 전부터 밀수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마니아들이 아이폰4나 아이패드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그럴수록 중국인들의 탄식도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운동화의 90%, 전 세계 컴퓨터 부품의 95%를 생산하는 제조업 대국인 중국에서 왜 아이폰4 같은 제품이 나오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지난 14일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 나온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심정도 비슷한 듯했다. 그는 중국이 경제발전 방식을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성장률을 낮추고도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과학기술형 중소기업을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보는 애플식 패러다임의 양대 기둥은 기술력을 갖춘 폭넓은 중소기업군(群)과 이들을 결합할 능력이 있는 창의적인 대기업이다. 중국의 한 IT 전문가는 최근 신문 기고문에서 "애플의 경쟁력은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기술을 사들여 소비자가 원하는 신제품을 창조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알리바바닷컴의 데이비드 웨이 전 사장도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애플은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 20여개의 기술기업을 사들였다. 삼성이 내부 연구개발(R&D)만으로 이런 애플에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50년 동안 경제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우리나라 대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강력한 오너 체제와 유능한 전문경영인 체제의 결합에 있다. 여기에 직원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헌신, 국가적 지원이 더해져 세계적인 수준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체제는 혁신에 취약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몇년 전부터 'S(수퍼)급 천재의 영입'을 외쳐온 것도 아마 혁신에 대한 갈증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폰의 등장은 동아시아 기업들에게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오너 경영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외부 수혈에 유연해져야 하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위한 기업의 덩치 키우기만큼 풍부한 기술기업을 만들 수 있는 기업생태계 건설도 중요하다.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초과이익공유제'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