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인재 10만명 키우자 1부·(10) SW 살려야 나라가 산다
국내시장 5년간 정체
SW는 공짜라는뿌리깊은 인식…불합리한 하청구조가 원인
뒤처지는 기술력
국제품질인증 韓 70·中 929개…R&D 규모 韓 2조·MS 6조
SW는 융합산업
정부·출연硏·대기업·중기, 개방형 협력체제 구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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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수 성균관대 교수(맨 왼쪽)와 학생들이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점검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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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SW) 관련 중소기업 간부 A씨는 공무원들과 대기업 관계자들을 '큰 형님들'이라고 부른다. 그는 "소위 말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을'은커녕 '정(갑-을-병-정)'일 뿐"이라며 "어떤 SW 정책이 나와도 바뀌는 건 없다"고 자조했다. 정부나 공공기관 등이 용역을 발주하면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들이 이를 수주하고, 다시 중소 SW업체에 재하청하는 뿌리깊은 거래관행이 SW업체들을 황폐화시킨 지 오래됐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저력은 SW
국내 SW 시장은 지난 5년간 사실상 정체 상태였다는 평가다. SW는 '공짜'라는 인식과 협소한 내수 시장, 불합리한 거래구조가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대기업 계열 소수 IT서비스 업체들의 역량은 어느 정도 성장했으나, 금융 · IT컨설팅 · 임베디드 SW 등에서 경쟁력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IT산업 전체를 뒤흔든 아이폰도 따지고 보면 SW 혁명에서 비롯됐다.
추현승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국내 IT 관련 대기업들이 애플 한방에 갔던 이유는 바로 소프트웨어"라며 "사회 저변에 깔린 소프트웨어 무시 풍조가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초창기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속물로 인식돼 단순제어 및 연산 기능 등만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동차 조선 항공 등 제조업뿐 아니라 바이오 · 의료, 에너지 · 환경 등과 연관돼 단순히 정보산업 차원이 아닌 산업 전반에 투입되는 '융합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이 NHN 등 거대 인터넷기업이나 중소 SW기업으로부터 인력 충원에 여념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아바타는 'GPGPU'라는 3D 전문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기존 방식보다 100배나 빠른 속도로 영화를 제작, 환상적인 장면을 선사하며 2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컴퓨팅 기술이 핵심인 게놈정보처리기술로 창출될 맞춤형 의료서비스 시장은 세계적으로 209조원대에 이른다. 김성수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은 "경제와 산업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도구로서 소프트웨어의 부가가치는 이미 하드웨어를 추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W 산업 체질을 개선해야
국내 SW산업에 투입되는 R&D 투자규모는 민간과 정부를 합해 2008년 기준 1조7000억원 선이다. 같은 해 마이크로소프트(MS)의 투자규모는 6조6000억원, 오라클은 2조원이었다. 한 국가의 투자액이 글로벌 기업 한 개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국내 SW 기업들 가운데 국제소프트웨어품질기준(CMMI) 인증을 획득한 곳은 지난해 3월 기준으로 70개.중국 929개, 미국 731개, 인도 274개에 비해 턱없이 적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패키지 SW 중에서도 시스템 SW는 선진 기술력(100점) 대비 83점 수준으로 가장 큰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시스템 SW 육성 정책을 내놓고 SW 지원 예산을 지난해 1333억원에서 올해 2142억원으로 대폭 늘렸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월드 베스트 SW' 를 만들고 'SW 마에스트로'를 육성한다는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산업 자체의 기반과 체질을 개선하는 방식이 아닌 단순 지원책의 반복으로는 SW 산업은 절대 정상화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를테면 IT서비스는 촉박한 구축기간과 내수중심 전략,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 등 관행으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임베디드 SW 개발환경이 더없이 열악하다는 점도 문제다. 김성수 연구원은 "용역개발에 주력하는 국내 임베디드 SW 기업들은 상당수가 영세하고 연구인력이 부족하다"며 "그러다보니 운영체제(OS)나 기반기술에 접근하지 못하고 품질 · 공정관리를 체계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하드웨어와 IT인프라의 강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출연연구소, 대기업 · 중소기업 간 개방형 협력체제(오픈이노베이션)를 구축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대기업들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며 SW 인력을 대규모로 빼내가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라며 "단기적인 목표에 급급해 SW 생태계를 망치지 말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상생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과학·기술 인재 10만명 키우자 1부·(10) SW 살려야 나라가 산다
추현승·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저커버그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아닙니다. '사업적 안목'을 지닌 프로그래머죠."
추현승 · 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융합의 부재'라고 입을 모았다. 두 교수는 사람과 기계 또는 서로 다른 기계들이 소통할 수 있게 돕는 일종의 '외국어 통역기'인 융합형 소프트웨어 분야의 전문가다. 이들은 "기술에만 의존한 제품은 수명이 짧을 뿐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며 "인문학 · 경영학적 소양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흔히 천재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뛰어난 경영자'에 가깝다는 게 두 교수의 평가다.
조 교수는 "코딩(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기계언어를 나열하는 것)기술 측면에서 보면 페이스북은 평범한 작품"이라며 "주목할 것은 저커버그가 사업 초기부터 최고재무관리자(CFO)를 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무관리나 비즈니스 모델 구축의 중요성을 인지했다는 얘기다.
성공의 배경에는 '융합교육'이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연구원 시절 재직했던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경우 예술,경제,정치 등 거의 모든 전공 강의실에서 컴퓨터공학과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며 "팀 프로젝트를 할 때도 반드시 타 전공 학생과 함께 과제를 수행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저커버그도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다.
우리나라 현실은 정반대다. 추 교수는 "컴퓨터공학 전공 학생들은 코딩에 매달려 밖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며 "그 결과 기술적으로는 우수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제품만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초기 소셜네트워크(SNS)시장을 개척했지만 사업을 확장하지 못했던 국내 벤처기업의 실패 원인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프리챌은 시장 조사를 통한 비즈니스 모델 확립 없이 유료화 서비스를 추진했다가 소비자에게 외면당한 대표적 사례"라며 "CEO의 경영 마인드 부족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해답은 뭘까. 조 교수는 전공과목들을 물리적으로 결합시키는 억지 융합이 아닌 제대로 된 융합교육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픽(주제) 기반 교육이 대표적 예다. 컴퓨터공학 전공 학생들에게 '회계'라는 주제를 던지고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게 하는 식이다.
코딩기술을 익혀야 할 뿐 아니라 관련 정보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융합적 사고를 갖게 된다. 추 교수는 "기껏해야 워드,엑셀 등 응용프로그램 활용 교육으로는 제대로 된 프로그래머를 양성할 수 없다"며 "직접 프로그램을 만드는 교육을 중 · 고등학교부터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