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만세!>(송기정 옮김, 현암사 펴냄)는 현재 각종 해외 언론 매체에서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국제 저널리스트로 활약 중인 장리자의 입지전적인 인생을 담은 회고록이다.
이 책은 1980년대 개혁 개방이 몰고 온 혼돈과 소용돌이 속에서 뒤틀린 인생을 헤쳐 나가는 10대 소녀의 성장 이야기이다. 나약하고 순응적이며 무지한 소녀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당돌한 여인으로 변신해나가는 성장담에는 문화 대혁명의 어두운 그림자와 개혁 개방의 새로운 파고가 뒤엉켜 공존하던 1980년대 중국의 사회상이 녹아들어가 있다.
<중국 만세!>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저자가 번역 후기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중국의 현대사를 회고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이 문화 혁명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1980년대를 다룬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 시대의 서막에 해당하는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를 되돌아보는 일은 중국 사회가 경험한 변화의 궤적을 추적하고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던져준다.
▲ <중국 만세!>(장리자 지음, 송기정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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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은 1980년 아직 세상에 나설 준비가 되지 않는 16세의 소녀가 엄마의 직장을 물려받아 군수공장의 노동자가 되는 것에서 시작하여 1989년 동료 노동자를 선동해 톈안먼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 예쁘지는 않지만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외국어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우등생 장리자는 장차 대학에 진학해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왔지만, 엄마의 강압에 떠밀려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취직을 한다.
그러나 장리자에게 육체노동자라는 신분은 견딜 수 없는 치욕이다. 공장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기 위한 어린 소녀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전개된다. 그 몸부림은 대학생 남자 친구와의 열정적인 사랑에게 가장 격렬하게 표출된다. 장리자의 연애사는 <중국 만세!>를 한 개인의 입지전적인 성공담을 넘어서는 이야기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장리자와 대학생 남자 친구 사이의 연애 이야기는 야학 교사와 노동자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마치 강의를 하듯 대학생 남자 친구는 당시 지식인들의 고민을 토로하고 이를 통해 장리자는 자신이 동경해왔던 지식인의 세계를 경험하고 공장 밖의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단순하고 무료한 공장 일상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는 장리자에게 대학생 남자 친구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작고 침체된 나의 세계와 활기찬 지식인의 세계 사이를 연결해주는" 통로이다. 또 대학생 애인과 "수준 차이를 좁히려고 스스로 개발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사랑"에 장리자는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남자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영어 공부에 미친 듯 매달리는 장리자를 직장 동료들이 "백조가 되고 싶어 하는 두꺼비"라며 비웃지만 그는 오히려 숙명을 거부하는 자신이 대단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자신이 속한 가난하고 저속한 노동자의 세계를 벗어나겠다는 집념, "잘 차려입고 교양 있게 보이는 사람들"의 세계를 향한 욕망은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공산당과 대장들의 말에도 거역하지 않으며 정해진 길대로만 잘 따르는 아이"를 대담한 반항아로 변모시켜 나간다. 정규 대학 진학의 꿈을 허용하지 않았던 사회에 대한 장리자의 원망이 깊어질수록 "반역자 되는 것은 정당하다"는 마오쩌둥의 명언을 되새기며 사회가 강요하는 도덕과 규율을 이탈하고 거부하는 반칙의 인생을 즐긴다.
장리자의 일탈은 매번 실패로 끝난 사랑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뭇 남자들과 하룻밤 관계를 맺는데서 절정에 이른다.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장리자는 마취도 없이 이루어진 낙태 수술의 육체적 고통에 신음하지만 아무런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으로 다져온 반항아 기질은 마침내 정치적 행동으로 비약한다. 1986년 12월 장리자는 공장을 뛰쳐나와 학생 시위가 벌어지는 도심 광장으로 달려가고 1989년 5월에는 노동자 시위대를 이끌며 학생들의 민주화 항쟁에 동참한다.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려는 장리자의 몸부림은 처절하기 짝이 없지만 책 전체의 분위기는 전혀 비장하지도 무겁지도 않다. 가난에 찌든 일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감이 느껴진다.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을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중국인들은 위로부터의 개혁이 몰고 오는 변화에 순순히 자신의 삶을 내맡긴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보이지 않는 하늘 끝, 존재하지만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권층에 속하는 지식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장리자가 자신의 존재, 즉 "사회주의의 위대한 주인" 육체노동자를 부정하면서 중국 사회주의의 위선적 현실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지만 장리자와 책속에 등장하는 중국의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도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도 없다. 아무런 선택권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중요한 고민거리가 아니다. 시대를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지식인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익 추구의 욕망과 도덕적 불감증의 늪에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지식인들의 도덕적 불감증은 더 사악한 공산당 절대권력 앞에서 합리화된다.
흥미로운 것은 장리자와 지식인들이 공산당 독재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가난과 폭정의 역사를 넘어서지 못하는 중국 문명 자체의 후진성에 괴로워할 때마다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받는 자유와 기회의 땅, 아름다운 나라 미국"이 현실에서 도달할 수 있는 이상향으로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특히 저자의 서구 문명과 미국에 대한 동경은 너무도 노골적이고 맹목적이다. 반항아 장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중국 만세!>(원제 "사회주의는 위대하다")라는 책 제목을 그로테스크한 역설로 만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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