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량도 지리산은 봄가을 주말이면 서울 도봉산 포대능선에 버금가는 정체 현상이 일어날 만큼 인기 높은 섬산이다. 등산동호인들 간에 가장 멋진 섬산을 꼽아보라는 설문 조사를 해본다면 아마 사량도 지리산이 첫손 꼽힐 것이다. 사량도 지리산의 이런 인기는 이 산 안팎의 풍광이 모두 뛰어나고, 공포감과 재미가 황금비율로 조합된 스릴이 연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량도 지리산은 온통 바위산이다. 그래서 일단 바다 쪽 조망이 산행 내내 시원스레 터진다. 우뚝한 암봉에서 암봉으로 길이 이어지기에 이쪽에서 저쪽을 보든, 저쪽에서 이쪽을 보든 모두가 ‘그림’이다. 친구와 가족을 그 그림 가운데에 서게 하거나 자신이 서서 한 컷 하며 감탄하는 재미가 유난스러운 것이다.
사량도 지리산 길은 대부분 바윗길인데 방심하면 안 될 만큼 위험하고, 크게 위험한 곳은 밧줄이나 급경사 계단이 설치돼 있다. 그러므로 노약자라도 어렵게나마 산행을 이어갈 수 있되 짜릿한 스릴이 연속된다. 이런 여러 가지 특장점이 두루 알려지며 사량도 지리산은 한국 대표 섬산행지로 떠오른 것이다.
푸른 바다와 갈매기의 낭만을 즐길 만한, 그러나 너무 길어 멀미가 날 정도는 아닌 40여 분간의 뱃길 여행이 양념으로 보태어져 사량도 지리산행은 더욱 맛깔스럽다.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토·일요일 이 사량도 지리산행은 일방통행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절로 그렇게 서쪽에서 동쪽으로 행렬이 흐른다. 주말에 이 방향을 거슬러 산행하려다가는 아마 절반도 채 못 가서 되돌아서게 될 것이다. 3월 13일 일요일의 사량도 지리산 등산객들은 그렇듯 마치 약속한 것처럼 서에서 동으로 걸었다. 버스나 자가용 차량을 주차해 둘 공간이 동쪽 금평항 일대가 한결 넓고, 서에서 동으로 갈 때 앞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한결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 ▲ 1 사량도 지리산의 새 코스인 금북개~정상 간 능선상에 돌출한 기암. 일반 등산로는 우측 아래로 나 있으나, 일부 산행객들이 암봉 위로 올랐다. 2 지리산 정상 오름길에 왼쪽 아래로 내려다뵈는 돈지항. 3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불모산~가마봉 암릉을 걷고 있는 사람들. 사량도 지리산은 거의 전 구간 바위가 드러나 있는 암릉길이다. 4 가마봉 전 급경사 암벽면을 오르는 등산객들. 밧줄이 설치돼 있고 요철이 크고 많아서 보기보다는 어렵잖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5 사량도 지리산에서 종종 지나게 되는 양쪽이 급경사인 암릉 구간. 실족하면 크게 다치게 되는 곳이다.
- 섬산에 웬 정체현상?
사량도는 아랫섬, 윗섬 두 섬으로 나뉜다. 조선 초 윗섬은 상박도(上樸島), 아랫섬은 하박도(下樸島)라 했고 두 섬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긴 뱀처럼 구불구불 굽었다고 하여 사량도(蛇梁島)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뱀이라면 좀 과장된 것 같고, 널찍한 강 같은 풍모다.
지리산은 사량도 윗섬에 동서로 뻗어 있다. 지리산(397.8m)~불모산(399m)~가마봉(303m)~옥녀봉(261m)~고동산(216.7m)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해발 0m에서 바위산으로 400m 가까이 불끈 솟아, 그 기세는 내륙의 1,000m급 바위산 이상 간다.
그간 사량도 지리산행의 주된 시작지점은 섬 남서쪽 기슭의 돈지리였다. 지리산을 30여 회 이상 올라본 진주 산꾼 김종현씨는 “거기 말고, 요새는 북동쪽 금북개 코스가 인기”라며 일행을 이끈다. 금북개마을에서 해안가 서쪽으로 도로를 따라 300m쯤 가노라니 도로 왼쪽에 승용차 10대는 댈 만한 공터가 뵌다. 50m 옆 등산로 시작지점 나뭇가지엔 ‘등산로’ 팻말과 더불어 리본들이 매달려 있다(좌표 N34 51 14 E128 10 30).
소나무숲 능선을 거슬러 오른 지 오래지 않아 암릉 위로 나서며 한려수도 푸른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조심! 이 사량도 지리산의 바위 면은 물고기 주둥이마냥 삐죽한 것들이 촘촘히 솟아 있어, 풍치에만 마음을 빼앗겼다가는 자칫 발길이 걸려 넘어지며 큰일을 당할 수 있다.
암부가 숲을 벗어나 점점 더 높고 크게 드러나며 조망도 걸음마다 넓고 좋아진다. 사람들의 실루엣이 불쑥불쑥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른다.
이 산에서 길을 어떻게 잃어버릴 수 있을까. 양쪽이 급경사 벼랑이니 오로지 외길이다. 하지만, 짤막하게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곤 하는 우회로는 무수히 많다. 간혹은 벼랑으로 앞이 막히기도 하는데, 그런 데서는 지체 없이 발길을 되돌려 편한 길을 택하면 된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 발길이 늦어지자, 김종현씨는 일부러 그런 샛길로 일행을 이끌곤 한다.
- ▲ (위)가마봉 너머 암반지대로 내려서면 저 앞에 탄금바위가 뵌다. 밧줄을 잡아야만 하는 급경사 벽을 지나 탄금바위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아래)가마봉 동사면 사다리는 주말이면 늘 정체된다.
- 벌써 초여름 같은 무더위가 느껴져 옷들을 벗어젖힌다. 무덤자리 그늘 쉼터, 그 다음의 소나무그늘 쉼터도 반갑다. 길이 50m쯤 되는 위험한 암릉 구간을 지나,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20분쯤 뒤 ‘지리산’ 표지석이 선 정상에 다다른다.
<통영시지>에 따르면 ‘지리산은 돈지리(敦池里)의 돈지(敦池)마을과 내지(內池)마을의 경계에 있는 산이라 하여 두 마을의 지명 중 공통된 음절인 지리(池里)를 딴 이름으로 사료된다’고 했다. 여기서 멀리 내륙의 명산 지리산(智異山)이 바라뵈는 산이라 하여 지리망산(智異望山), 혹은 지리산이라 했다는 설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오늘 맑기는 해도 이내가 뿌옇게 끼어 저 멀리의 지리산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사방이 훌쩍 트인 바다 풍경으로 사람들은 새삼 환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