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중국 학자나 기업인들을 만나면 주고받은 명함에서 새로운 항목 하나를 자주 보게 된다. 'QQ'라는 영문 글자 뒤에 나열된 8~11개 자리의 숫자이다. 이 숫자는 중국의 대표적 포털사이트인 QQ의 메신저 아이디(ID)이다. 한국에서도 메신저가 개인 간 통신수단으로 폭넓게 쓰이지만, 중국의 메신저 활용도는 우리보다 더 넓다. 이를테면 타오바오왕(淘寶網) 같은 대형 인터넷 쇼핑몰의 구매 상담도 거의 메신저로 이뤄진다.
중국 내 한국 기업 주재원이나 특파원들이 지방 출장을 다닐 때도 부쩍 좋아진 중국 IT(정보기술) 수준을 실감하게 된다. '씨트립(Ctrip)'이라는 여행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면 중국 어느 지역의 호텔이든 원하는 수준과 가격에 맞춰서 예약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동북지역을 방문했을 당시, 그를 쫓아 택시로 지린(吉林)시에서 창춘(長春)시까지 이동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달리는 택시 안에서 휴대폰 인터넷과 씨트립을 이용해 김정일이 묵는 숙소에서 1.5㎞가량 떨어진 호텔을 어렵지 않게 예약했다.
중국 IT 기술과 기반시설의 빠른 발전은 한국에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2000년대 초·중반 기세 좋게 중국 시장에 진출했던 한국 IT기업들은 최근 2~3년 사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줄줄이 보따리를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한국 IT기업의 대표격인 네이버는 2004년 중국 시장 진출 당시 인수했던 게임 포털사이트 롄중(聯衆)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지난해 말 철수했다. 매각 가격은 당초 인수가격인 1200억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백억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SK텔레콤도 지난 2009년 중국 3대 통신사의 하나인 유니콤 지분을 매각한 데 이어 작년에는 인터넷 쇼핑몰 첸쉰왕(千尋網)을 헐값에 중국 기업에 넘기고 IT 분야에서 거의 손을 뗐다. 이들 대기업 외에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한국의 IT 중견·중소기업은 부지기수이다. 얼마 전 베이징에 있는 젊은 IT 기업인들의 저녁식사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기업인이 건배하면서 제안한 구호가 "살아남자!"였다.
다른 업종과 달리 한국의 IT 분야가 유독 중국 시장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 장벽, 시장 규모의 차이, 중국 기업의 빠른 성장세 등 여러 요인이 지적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IT기업이 세계 시장의 분업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애매해졌다는 점이다. 미국처럼 세계 시장을 주도할 위치에 올라가기도 전에 중국 기업들이 이미 턱밑까지 쫓아와 버린 것이다. 베이징의 한 한국 IT업체 사장은 "휴대폰 단말기와 3D(입체) 기술, 온라인게임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양국 간 기술격차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샌드위치론(論)'이 제기돼 왔지만, IT 분야에서는 이미 '샌드위치의 비극'이 시작됐다. 서둘러 대비하지 않는다면 또 언제, 어떤 분야가 중국발(發) 광풍 앞에 스러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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