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集註卷之三 公孫丑章句上 凡九章 본문
孟子集註卷之三
公孫丑章句上
凡九章
<제1장>
公孫丑ㅣ 問曰夫子ㅣ 當路於齊하시면 管仲晏子之功을 可復許乎ㅣ잇가
孟子ㅣ曰子誠齊人也ㅣ로다 知管仲晏子而已矣온여
或이 問乎曾西曰吾子ㅣ 與子路孰賢고 曾西ㅣ 蹵然曰吾先子之所畏也ㅣ니라 曰然則吾子ㅣ 與管仲孰賢고 曾西ㅣ 艴然不悅曰爾何曾比予於管仲고 管仲이 得君이 如彼其專也ㅣ며 行乎國政이 如彼其久也ㅣ로대 功烈이 如彼其卑也하니 爾何曾比予於是오하니라
曰管仲은 曾西之所不爲也ㅣ어늘 而子ㅣ 爲我願之乎아
曰管仲은 以其君覇하고 晏子는 以其君顯하니 管仲晏子는 猶不足爲與잇가
曰以齊로 王이 由反手也ㅣ니라
曰若是則弟子之惑이 滋甚케이다 且以文王之德으로 百年而後崩하샤대 猶未洽於天下ㅣ어시늘 武王周公이 繼之然後에 大行하니 今言王若易然하시니 則文王은 不足法與잇가
曰文王은 何可當也ㅣ시리오 由湯으로 至於武丁히 賢聖之君이 六七이 作하야 天下ㅣ 歸殷이 久矣니 久則難變也ㅣ라 武丁이 朝諸侯有天下호대 猶運之掌也하시니 紂之去武丁이 未久也ㅣ라 其故家遺俗과 流風善政이 猶有存者하며 又有微子微仲王子比干箕子膠鬲이 皆賢人也ㅣ라 相與輔相之故로 久而後에 失之也하니 尺地도 莫非其有也ㅣ며 一民도 莫非其臣也ㅣ어늘 然而文王이 猶方百里起하시니 是以難也ㅣ니라
齊人이 有言曰雖有知慧나 不如乘勢며 雖有鎡基나 不如待時라하니 今時則易然也ㅣ니라
夏后殷周之盛에 地未有過千里者也하니 而齊ㅣ 有其地矣며 鷄鳴狗吠ㅣ 相聞而達乎四境하니 而齊ㅣ 有其民矣니 地不改辟矣며 民不改聚矣라도 行仁政而王이면 莫之能禦也ㅣ리라
且王者之不作이 未有疏於此時者也하며 民之憔悴於虐政이 未有甚於此時者也하니 飢者에 易爲食이며 渴者에 易爲飮이니라
孔子ㅣ 曰德之流行이 速於置郵而傳命이라 하시니
當今之時하야 萬乘之國이 行仁政이면 民之悅之ㅣ 猶解倒懸也ㅣ리니 故로 事半古之人이오 功必倍之는 惟此時ㅣ 爲然하니라
<제2장>
公孫丑ㅣ 問曰夫子ㅣ 加齊之卿相하샤 得行道焉하시면 雖由此覇王이라도 不異矣리니 如此則動心가 否乎ㅣ잇가 孟子ㅣ 曰否ㅣ라 我는 四十이라 不動心호라
曰若是則夫子ㅣ 過孟賁이 遠矣샤소이다 曰是ㅣ 不難하니 告子도 先我不動心하니라
曰不動心이 有道乎ㅣ잇가 曰有하니라
北宮黝之養勇也난 不膚撓하며 不目逃하야 思以一毫ㅣ나 挫於人이어든 若撻之於市朝하야 不受於褐寬博하며 亦不受於萬乘之君하야 視刺萬乘之君호대 若刺褐夫하야 無嚴諸侯하야 惡聲이 至커든 必反之하니라
孟施舍之所養勇也난 曰視不勝호대 猶勝也ㅣ로니 量敵而後進하며 慮勝而後會하면 是는 畏三軍者也ㅣ니 舍ㅣ 豈能爲必勝哉리오 能無懼而已矣라 하니라
孟施舍는 似曾子하고 北宮黝는 似子夏하니 夫二子之勇이 未知其孰賢이어니와 然而孟施舍는 守ㅣ 約也ㅣ니라
昔者에 曾子ㅣ 謂子襄曰子ㅣ 好勇乎아 吾嘗聞大勇於夫子矣로니 自反而不縮이면 雖褐寬博이라도 吾不惴焉이어니와 自反而縮이면 雖千萬人이라도 吾往矣라 하시니라
孟施舍之守는 氣라 又不如曾子之守ㅣ 約也ㅣ니라
曰敢問夫子之不動心과 與告子之不動心을 可得聞與잇가 告子曰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하며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라 하니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는 可커니와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은 不可하니 夫志는 氣之帥也ㅣ오 氣는 體之充也ㅣ니 夫志ㅣ 至焉이오 氣ㅣ 次焉이니 故로 曰持其志오도 無暴其氣라 하니라
旣曰志ㅣ 至焉이오 氣ㅣ 次焉이라 하시고 又曰持其志오도 無暴其氣者는 何也잇고 曰志壹則動氣하고 氣壹則動志也ㅣ니 今夫蹶者趍者ㅣ 是氣也而反動其心이니라
敢問夫子는 惡乎長이시니잇고 曰我는 知言하며 我는 善養吾의 浩然之氣하노라
敢問何謂浩然之氣잇고 曰難言也ㅣ니라
其爲氣也ㅣ 至大至剛하니 以直養而無害則塞于天地之間이니라
其爲氣也ㅣ 配義與道하니 無是면 餒也ㅣ니라
是集義所生者ㅣ라 非義ㅣ 襲而取之也ㅣ니 行有不慊於心則餒矣니 我ㅣ 故로 曰告子ㅣ 未嘗知義라 하노니 以其外之也일새니라
必有事焉而勿正하야 心勿忘하며 勿助長也하야 無若宋人然이어다 宋人이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ㅣ러니 芒芒然歸하야 謂其人曰今日에 病矣와라 予ㅣ 助苗長矣와라 하야날 其子ㅣ 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槀矣리라 天下之不助苗長者ㅣ 寡矣니 以爲無益而舍之者는 不耘苗者也ㅣ오 助之長者는 揠苗者也ㅣ니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何謂知言이니잇고 曰詖辭애 知其所蔽하며 淫辭애 知其所陷하며 邪辭애 知其所離하며 遁辭애 知其所窮이니 生於其心하야 害於其政하며 發於其政하야 害於其事하나니 聖人이 復起사도 必從吾言矣시리라
宰我子貢은 善爲說辭하고 冉牛閔子顔淵은 善言德行이러니 孔子ㅣ 兼之하샤대 曰我ㅣ 於辭命則不能也ㅣ로라 하시니 然則夫子는 旣聖矣乎ㅣ신뎌
曰惡ㅣ라 是何言也오 昔者애 子貢이 問於孔子曰夫子는 聖矣乎ㅣ신뎌 孔子ㅣ 曰聖則吾不能이어니와 我는 學不厭而敎不倦也ㅣ로라 子貢이 曰學不厭은 智也ㅣ오 敎不倦은 仁也ㅣ니 仁且智하시니 夫子는 旣聖矣신뎌하니 夫聖은 孔子도 不居하시니 是何言也오
昔者애 竊聞之호니 子夏子游子張은 皆有聖人之一體하고 冉牛閔子顔淵은 則具體而微라 하니 敢問所安하노이다
曰姑舍是하라
曰伯夷伊尹은 何如하니잇고 曰不同道하니 非其君不事하며 非其民不使하야 治則進하고 亂則退는 伯夷也ㅣ오 何事非君이며 何使非民이리오 하야 治亦進하며 亂亦進은 伊尹也ㅣ오 可以仕則仕하며 可以止則止하며 可以久則久하며 可以速則速은 孔子也ㅣ시니 皆古聖人也ㅣ라 吾未能有行焉이어니와 乃所願則學孔子也ㅣ로라
伯夷伊尹이 於孔子애 若是班乎ㅣ잇가 曰否ㅣ라 自有生民以來로 未有孔子也ㅣ시니라
曰然則有同與잇가 曰有하니 得百里之地而君之면 皆能以朝諸侯有天下ㅣ어니와 行一不義하며 殺一不辜而得天下는 皆不爲也ㅣ리니 是則同하니라
曰敢問其所以異하노이다 曰宰我子貢有若은 智足以知聖人이니 汙不至阿其所好ㅣ니라
宰我ㅣ 曰以予觀於夫子컨댄 賢於堯舜이 遠矣샷다
子貢이 曰見其禮而知其政하며 聞其樂而知其德이니 由百世之後하야 等百世之王컨댄 莫之能違也ㅣ니 自生民以來로 未有夫子也ㅣ시니라
有若이 曰豈惟民哉리오 麒麟之於走獸와 鳳凰之於飛鳥와 泰山之於丘垤와 河海之於行潦애 類也ㅣ며 聖人之於民에 亦類也ㅣ시니 出於其類하며 拔乎其萃나 自生民以來로 未有盛於孔子也ㅣ시니라
<제3장>
孟子ㅣ 曰以力假仁者는 覇니 覇必有大國이오 以德行仁者는 王이니 王不待大라 湯이 以七十里하시고 文王이 以百里하시니라
以力服人者는 非心服也ㅣ라 力不贍也ㅣ오 以德服人者는 中心이 悅而誠腹也ㅣ니 如七十子之服孔子也ㅣ라 詩云自西自東하며 自南自北이 無思不服이라 하니 此之謂也ㅣ니라
<제4장>
孟子ㅣ 曰仁則榮하고 不仁則辱하나니 今에 惡辱而居不仁이 是猶惡濕而居下也ㅣ니라
如惡之댄 莫如貴德而尊士ㅣ니 賢者ㅣ 在位하며 能者ㅣ 在職하야 國家ㅣ 閒暇ㅣ어든 及是時하야 明其政刑이면 雖大國이라도 必畏之矣리라
詩云迨天之未陰雨하야 徹彼桑土하야 綢繆牖戶ㅣ면 今此下民이 或敢侮予아 하야늘 孔子ㅣ 曰爲此詩者ㅣ 其知道乎뎌 能治其國家ㅣ면 誰敢侮之리오 하시니라
今國家ㅣ 閒暇ㅣ어든 及是時하야 般樂怠傲하나니 是는 自求禍也ㅣ니라
禍福이 無不自己求之者ㅣ니라
詩云永言配命이 自求多福이라 하며 太甲애 曰天作孼은 猶可違어니와 自作孼은 不可活이라 하니 此之謂也ㅣ니라
<제5장>
孟子ㅣ 曰尊賢使能하야 俊傑이 在位則天下之士ㅣ 皆悅而願立於其朝矣리라
市에 廛而不征하며 法而不廛則天下之商이 皆悅而願藏於其市矣리라
關애 譏而不征則天下之旅ㅣ 皆悅而願出於其路矣리라
耕者를 助而不稅則天下之農이 皆悅而願耕於其野矣리라
廛無夫里之布則天下之民이 皆悅而願爲之氓矣리라
信能行此五者則鄰國之民이 仰之若父母矣리니 率其子弟하야 攻其父母는 自生民以來로 未有能濟者也ㅣ니 如此則無敵於天下하리니 無敵於天下者는 天吏也ㅣ니 然而不王者ㅣ 未之有也ㅣ니라
<제6장>
孟子ㅣ 曰人皆有不忍人之心하니라
先王이 有不忍人之心하샤 斯有不忍人之政矣시니 以不忍人之心으로 行不忍人之政이면 治天下는 可運之掌上이니라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는 今人이 乍見孺子ㅣ 將入於井하고 皆有怵惕惻隱之心하나니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ㅣ며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ㅣ며 非惡其聲而然也ㅣ니라
由是觀之컨댄 無惻隱之心이면 非人也ㅣ며 無羞惡之心이면 非人也ㅣ며 無辭讓之心이면 非人也ㅣ며 無是非之心이면 非人也ㅣ니라
惻隱之心은 仁之端也ㅣ오 羞惡之心은 義之端也ㅣ오 辭讓之心은 禮之端也ㅣ오 是非之心은 智之端也ㅣ니라
人之有是四端也ㅣ 猶其有四體也ㅣ니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는 自賊者也ㅣ오 謂其君不能者는 賊其君者也ㅣ니라
凡有四端於我者를 知皆擴而充之矣면 若火之始然하며 泉之始達이니 苟能充之면 足以保四海오 苟不充之면 不足以事父母ㅣ니라
<제7장>
孟子ㅣ 曰矢人이 豈不仁於函人哉리오마는 矢人은 惟恐不傷人하고 函人은 惟恐傷人하나니 巫匠도 亦然하니 故로 術不可不愼也ㅣ니라
孔子ㅣ 曰里仁이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 焉得智리오하시니 夫仁은 天之尊爵也ㅣ며 人之安宅也ㅣ어늘 莫之禦而不仁하니 是는 不智也ㅣ니라
不仁不智라 無禮無義면 人役也ㅣ니 人役而恥爲役하논디 由弓人而恥爲弓하며 矢人而恥爲矢也ㅣ니라
如恥之댄 莫如爲仁이니라
仁者는 如射하니 射者는 正己而後에 發하야 發而不中이라도 不怨勝己者ㅣ오 反求諸己而已矣니라
<제8장>
孟子ㅣ 曰子路는 人이 告之以有過則喜하더라
禹는 聞善言則拜러시다
大舜은 有大焉하시니 善與人同하샤 舍己從人하시며 樂取於人하야 以爲善이러시다
自耕稼陶漁로 以至爲帝히 無非取於人者ㅣ러시다
取諸人以爲善이 是ㅣ 與人爲善者也ㅣ니 故로 君子는 莫大乎與人爲善이니라
<제9장>
孟子ㅣ 曰伯夷는 非其君不事하며 非其友不友하며 不立於惡人之朝하야 不與惡人言하더니 立於惡人之朝하야 與惡人言호대 如以朝衣朝冠으로 坐於塗炭하며 推惡惡之心하야 思與鄕人立에 其冠不正이어든 望望然去之하야 若將浼焉하니 是故로 諸侯ㅣ 雖有善其辭命而至者ㅣ라도 不受也하니 不受也者는 是亦不屑就已니라
柳下惠는 不羞汗君하며 不卑小官하야 進不隱賢하야 必以其道하며 遺佚而不怨하며 阨窮而不憫하더니 故로 曰爾爲爾오 我爲我ㅣ니 雖袒裼裸裎於我側이나 爾焉能浼我哉리오 하니 故로 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하야 援而止之而止하니 援而止之而止者는 是亦不屑去已니라
孟子ㅣ 曰伯夷는 隘하고 柳下惠는 不恭하니 隘與不恭은 君子ㅣ 不由也ㅣ니라
孟子集註卷之三 終
公孫丑章句上 제1장 해설
<제1장>
公孫丑ㅣ 問曰夫子ㅣ 當路於齊하시면 管仲晏子之功을 可復許乎ㅣ잇가
공손추 묻자와 가로대 선생께서 제나라 길(요로)에 당하시면 관중 안자의 공을 가히 다시 허락하리잇가
公孫丑는 孟子弟子니 齊人也ㅣ라 當路는 居要地也ㅣ라 管仲은 齊大夫니 名은 夷吾라 相桓公하야 覇諸侯라 許는 猶期也ㅣ라 孟子ㅣ 未嘗得政하시니 丑ㅣ 蓋設辭以問也ㅣ라
공손추는 맹자 제자이니 제나라 사람이라. 당로는 요지에 거함이라. 관중은 제나라 대부이니 이름은 이오라. 환공을 도와 패제후(제후의 패권을 잡게 했느)니라. 허는 기약과 같음이라. 맹자가 일찍이 정치 참여를 하시지 않으셨으니 공손추가 대개 말을 가설해서 서 물음이라.
孟子ㅣ 曰子誠齊人也ㅣ로다 知管仲晏子而已矣온여
맹자 가라사대 자네는 진실로 제나라 사람이로다. 관중 안자만을 알뿐이온여!
齊人이 但知其國에 有二子而已요 不復知有聖賢之事라
제나라 사람이 다만 그 나라에 두 사람이 있음을 알 뿐이오, 다시 성현의 일이 있음을 아지 못함이라.
或이 問乎曾西曰吾子ㅣ 與子路孰賢고 曾西ㅣ 蹵然曰吾先子之所畏也ㅣ니라 曰然則吾子ㅣ 與管仲孰賢고 曾西ㅣ 艴然不悅曰爾何曾比予於管仲고 管仲이 得君이 如彼其專也ㅣ며 行乎國政이 如彼其久也ㅣ로대 功烈이 如彼其卑也하니 爾何曾比予於是오 하니라
어떤 사람이 증서에게 물어 가로대 우리 선생님이 자로와 더불어 누가 어진고? 증서가 찡그리며 가로대 우리 할아버지(증자)도 (자로를) 두려워하신 바이니라. 가로대 그렇다면 우리 선생님이 관중과 더불어 누가 어진고? 증서가 발끈하여 기뻐하지 아니하며 가로대 네 어찌 일찍이 나를 관중에게 비하는고? 관중이 인군을 얻음이 저와 같이 오로지 했으며(전권을 흔들었으며) 국정을 행함이 저와 같이 오래했음이로대 공렬이 저와 같이 낮으니, 네 어찌 일찍이 나를 이(관중)에 비유하는고 하니라.
蹵 : 찰 축, 밟을 축, 蹴과 같음. 여기서는 蹙(찡그릴 축)과 같은 뜻. 蹵然 : 삼가는 모양 또는 불안한 모양 艴 : 발끈할 불(발) 曾 : 일찍이 증
孟子ㅣ 引曾西與或人問答如此라 曾西는 曾子之孫이라 蹵은 不安貌라 先子는 曾子也ㅣ라 艴은 怒色也ㅣ라 曾之는 言則也ㅣ라 烈은 猶光也ㅣ라 桓公이 獨任管仲四十餘年하니 是專且久也로대 管仲이 不知王道而行覇術이라 故로 言功烈之卑也ㅣ라 楊氏 曰孔子ㅣ 言子路之才曰千乘之國에 可使治其賦也어니와 使其見於施爲如是而已오 其於九合諸侯하고 一正天下에는 固有所不逮也ㅣ라 하시니 然則曾西ㅣ 推尊子路如此하고 而羞比管仲者는 何哉오 譬之御者컨대 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ㅣ오 管仲之功이 詭遇而獲禽이라. 曾西는 仲尼之徒也ㅣ라 故로 不道管仲之事니라.
맹자가 증서와 다못 혹인이 문답한 말을 인용함이 이와 같음이라. 증서는 증자의 손자라. 축은 불안한 모양이라. 선자는 증자라. 불은 성내는 빛이라. 증은 ‘곧 즉’을 말함이라. 열은 빛남과 같음이라. 환공이 홀로 관중에게 40여년을 책임지웠으니 이것이 오로지 함이고 또 오래 함이로대 관중이 왕도를 아지 못하고 패권의 술수를 행함이라. 그러므로 공렬이 낮다고 말함이라. 양씨 가로대 공자가 자로의 재주를 말씀해 가라사대 천승의 나라에 가히 하여금 부세를 다스리거니와 하여금 그 베풀어 하는 것이 이와 같을 뿐이오 그 제후를 구합하고 한번 천하를 바루는 데에는 진실로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 하시니, 그렇다면 증서가 자로를 추존함이 이와 같고, 관중에게 비교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고? 말 모는 사람에게 비유컨대 자로는 곧 나의 치구법(말 모는 법칙)에 따르면 잡지 못하고, 관중의 공은 속임수를 써서 짐승을 잡음이라. 증서는 중니(공자의 字)의 무리라. 그러므로 관중의 일을 이르지 아니했느니라.
詭 : 속일 궤
曰管仲은 曾西之所不爲也ㅣ어늘 而子ㅣ 爲我願之乎아
가라사대 관중은 증서도 하지 않은 바이어늘 그대가 나를 위해서 원하도록 함이냐
曰은 孟子言也라 願은 望也라
왈은 맹자의 말씀이라. 원은 바람이라.
曰管仲은 以其君覇하고 晏子는 以其君顯하니 管仲晏子는 猶不足爲與잇가
(공손추) 가로대 관중은 그 인군으로써 패권을 잡게 하고 안자는 그 인군으로써 (세성에) 드러나게 했으니 관중 안자는 (그렇게 하고도) 오히려 부족하니잇까?
顯은 顯名也라
현은 이름을 나타냄이라.
曰以齊로 王이 由反手也ㅣ니라
가라사대 제나라로써 왕하는 것이 손을 뒤집는 것과 같으니라.
反手는 言易也라
반수는 쉬움을 말함이라.
曰若是則弟子之惑이 滋甚케이다 且以文王之德으로 百年而後崩하샤대 猶未洽於天下ㅣ어시늘 武王周公이 繼之然後에 大行하니 今言王若易然하시니 則文王은 不足法與잇가
가로대 이와 같다면 제자의 의혹이 아주 심하나이다. 또한 문왕의 덕으로써 백년 뒤에 돌아가셨으되 오히려 천하에 미흡하시늘 무왕 주공이 계승한 연후에 크게 행해졌으니 이제 왕하는 것이 쉽다고 하시니 그러면 문왕은 족히 법하지 못하니잇가
[본문 해설]
맹자의 글에는 자심케이다하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맹자 천독을 하면 툭탁하는 소리가 난다는 얘기가 있다.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한 제자가 천독을 하였음에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자 선생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孟子千讀에 未聞‘툭탁’之聲하니 弟子之惑이 滋甚케이다(맹자 천독을 하고도 툭탁하는 소리를 아직 듣지 못했으니 제자의 의혹이 매우 심하나이다)” 그러자 선생이 “此ㅣ 툭탁之聲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滋는 益也라 文王이 九十七而崩하시니 言百年은 擧成數也ㅣ라 文王이 三分天下에 才有其二하시고 武王이 克商에 乃有天下하시며 周公이 相成王하사 制禮作樂然後에 敎化大行이라.
자는 더함이라. 문왕이 97세에 돌아가시니 백년은 성수를 들어 말함이라. 문왕이 삼분 천하할 때 그 둘을 두시고 무왕이 상나라를 이긴 뒤 이에 천하를 두시며 주공이 성왕을 도와 예를 짓고 음악을 지은 후에 교화가 크게 행해지니라.
曰文王은 何可當也ㅣ시리오 由湯으로 至於武丁히 賢聖之君이 六七이 作하야 天下ㅣ 歸殷이 久矣니 久則難變也ㅣ라 武丁이 朝諸侯有天下호대 猶運之掌也하시니 紂之去武丁이 未久也ㅣ라 其故家遺俗과 流風善政이 猶有存者하며 又有微子微仲王子比干箕子膠鬲이 皆賢人也ㅣ라 相與輔相之故로 久而後에 失之也하니 尺地도 莫非其有也ㅣ며 一民도 莫非其臣也ㅣ어늘 然而文王이 猶方百里起하시니 是以難也ㅣ니라
가라사대 문왕은 어찌 가히 당하시리오. 탕임금으로부터 무정에 이르기까지 어질고 착한 인군이 여섯, 일곱이 일어나서 천하가 은나라에 돌아감이 오래되었으니 오래한즉 변하기 어려움이라. 무정이 제후를 조회받고 천하를 두는데 손바닥을 운전하는 것같이 하시니 주가 무정을 감이 오래하지 않느니라. 그 옛 가문과 전해진 풍속과 흐른 풍속과 선정이 오히려(아직도) 존함이 있으며, 또 미자, 미중, 왕자 비간, 기자, 교격이 다 어진 사람이라. 서로 더불어 보상한 고로 오랜 후에 망하니, 한 자 땅도 그 둠이 아님이 없으며 한 사람의 백성도 그 신하가 아님이 없거늘 그런데 문왕이 오히려 백리로 일어나시니 이로써 어려우니라.
[본문 해설]
문왕이 아무리 성군이라 하더라도 당할 수가 없다. 탕임금이 하나라 걸임금을 치고 천하 통일을 한 뒤에 무정 임금(22대)에 이르기까지 6, 7명의 성군이 나와 나라를 잘 다스리니 모두가 은나라에 귀의하고 그 세월이 오래됨에 따라 미풍양속이 전해져 내려왔다. 여기에 정치를 매우 잘한 무정 임금과 폭군 주(30대)와의 거리가 얼마되지 않아 여전히 은나라의 미풍양속이 풍미하고 현인들이 있었기에 주가 폭정을 하고난 오랜 뒤에야 은나라가 망했다. 하지만 한 뼘의 땅, 한 사람의 백성 그 모두가 은나라의 것이 아닌 것이 없었다. 아무리 문왕이 성군이고 주가 폭군이라고는 하지만 이와같이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은나라를, 아무런 기반도 없고 아무런 유풍선속도 없이 백리의 땅으로 시작한 문왕이 어찌 쉽게 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속에서도 문왕은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주나라의 기반을 닦은 것만도 매우 훌륭한 일이다.
當은 猶敵也ㅣ라 商自成湯으로 至于武丁이 中間에 太甲太戊祖乙盤庚이 皆賢聖之君이라 作은 起也ㅣ라 自武丁至紂이 凡七世라 故家는 舊臣之家也ㅣ라
당은 대적과 같음이라. 상나라가 탕임금으로부터 무정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태갑(4대), 태무(9대), 조을(13대), 반경(19대)이 모두 현군이고 성군이라. 작은 일어남이라. 무정으로부터 주까지는 무릇 7세라. 고가는 옛 신하의 집이라.
齊人이 有言曰雖有知慧나 不如乘勢며 雖有鎡基나 不如待時라 하니 今時則易然也ㅣ니라
제나라 사람이 말을 두어 가로대 비록 지혜가 있으나 승세와 같지 못하며 비록 자기가 있으나 때를 기다림만 같지 못하다 하니 지금의 때는 쉬우니라.
鎡 : 호미 자
鎡基는 田器也ㅣ라 時는 謂耕種之時라
자기는 밭농사짓는 농기구라. 때는 갈고 심는 때를 이름이라.
夏后殷周之盛에 地未有過千里者也하니 而齊ㅣ 有其地矣며 鷄鳴狗吠ㅣ 相聞而達乎四境하니 而齊ㅣ 有其民矣니 地不改辟矣며 民不改聚矣라도 行仁政而王이면 莫之能禦也ㅣ리라
하후씨와 은나라 주나라가 성할 적에 땅이 천리에 지난 자가 있지 아니하니 제나라가 그 땅을 두고 있으며, 닭 울음과 개짓는 소리가 서로 들려서 사방 국경에 통하니 제나라가 그 백성을 두고 있으니, 땅을 고쳐 열지 않으며 백성을 고쳐 모이지 않더라도 어진 정사를 행해 왕하면 능히 막을 이가 없으리라.
此는 言其勢之易也ㅣ라 三代盛時에 王畿不過千里러니 今齊已有之하니 異於文王之百里요 又雞犬之聲이 相聞하야 自國都로 以至于四境하니 言居民稠密也ㅣ라
이는 그 세력의 쉬움을 말함이라. 삼(하 은 주) 대가 성할 적에 왕의 서울이 천리를 넘지 않거늘 이제 제 나라가 이미 (그 땅을) 두고 있으니, 문왕의 백리와 다르고, 또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서 국도로부터 변방에 이르기까지 백성이 많이 살고 있음을 말함이라.
且王者之不作이 未有疏於此時者也하며 民之憔悴於虐政이 未有甚於此時者也하니 飢者에 易爲食이며 渴者에 易爲飮이니라
또한 왕자가 일어나지 않음이 이 때보다 소원함이 있지 아니하며 백성이 학정에 초췌하니 이 때보다 더 심함이 있지 아니하니 배고픈 자에 쉽게 먹고 목마른 자에 쉽게 마시니라.
[본문 해설]
훌륭한 왕자가 있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려 매우 피곤해 있다. 마치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면 얼른 달게 먹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면 바로 달게 마시듯이 지금의 정치가 바로 이와 같으니 이처럼 정치하기 쉬운 때가 어디 있겠는가.
此는 言其時之易也ㅣ라 自文武至此ㅣ 七百餘年이니 異於商之聖賢繼作이요 民苦虐政之甚이 異於紂之猶有善政이라 易爲飮食은 言飢渴之甚에 不待甘美也ㅣ라
이는 그 때의 쉬움을 말함이라. 문왕, 무왕으로부터 이에 이르기까지 7백여년이니 상나라 성현이 일어남과 다르고 백성이 학정의 시달림이 심함이 紂에 오히려 선정이 있는 것과 다름이라. 이위음식은 기갈이 심한 데는 감미를 기다리지 않음을 말함이라.
孔子ㅣ 曰德之流行이 速於置郵而傳命이라 하시니
공자 가라사대 덕의 유행(흘러 행함)이 파발로(우편으로) 명을 전함보다 빠르다 하시니
郵 : 역참 우
置는 驛也ㅣ요 郵는 馹也ㅣ니 所以傳命也ㅣ라 孟子ㅣ 引孔子之言如此하니라
치는 역이요 우도 역이니 써 명을 전하는 바라 맹자가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심이 이와 같음이라.
馹 : 역마 일
當今之時하야 萬乘之國이 行仁政이면 民之悅之ㅣ 猶解倒懸也ㅣ리니 故로 事半古之人이오 功必倍之는 惟此時ㅣ 爲然하니라
이제 때를 당해서 만승의 나라가 인정을 행하면 백성의 기뻐함이 거꾸로 매달린 것을 푸는 것과 같으리니 그러므로 일은 옛 사람의 반만 하고 공은 반드시 배가 됨은 오직 이 때가 그러하니라.
倒懸은 猶困苦也ㅣ라 所施之事는 半於古人하고 而功은 倍於古人은 由時勢易而德行速也ㅣ라
도현은 곤고에 비유함이라. 베푸는 바의 일은 옛 사람의 반만 하고 공은 옛 사람보다 배가 됨은 시세(때와 형세)의 쉽고 덕행이 빠름으로 말미암음이라.
[앞주 해설]
문왕은 성인이라도 몇 대에 걸쳐 주나라를 세웠는데, 제환공을 도운 관중은 구합제후하고 패제후하여 통일천하를 하였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관중이 더 낫지 않을까하고 생각할텐데 맹자는 이를 제나라 사람의 말을 빌어 물음을 던지고 답을 하고 있다. 문왕을 칭찬하면서 관중의 공을 얕보는 맹자에 대해 제나라 사람이 문왕도 그다지 대단치 않은 인물이 아닌가 하고 다시 묻자 맹자가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쉬운 때에 왕이 조금만 덕을 베풀면 그 공은 오히려 옛 사람보다 훨씬 많아짐을, 공자의 “德之流行이 速於置郵而傳命이라”한 말씀을 인용해 대답했다.
公孫丑章句上 제2장 해설
<제2장>
公孫丑ㅣ 問曰夫子ㅣ 加齊之卿相하샤 得行道焉하시면 雖由此覇王이라도 不異矣리니 如此則動心가 否乎ㅣ잇가 孟子ㅣ 曰否ㅣ라 我는 四十이라 不動心호라
공손추 물어 가로대 “선생님께서 제나라의 경상에 더하사(지위가 높아져) 얻어 도를 행하시면 비록 이로 말미암아 패와 왕을 하더라도 괴이치 않으리니 이와 같으신즉 마음이 움직이시리잇가, 아니하시리잇가?” 맹자 가라사대 “아니라. 나는 사십이라.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였노라.”
此는 承上章하야 又設問孟子ㅣ 若得位而行道시면 則雖由此而成覇王之業이라도 亦不足怪리니 任大責重이 如此면 亦有所恐懼疑惑而動其心乎아 하니라 四十은 彊仕ㅣ니 君子道明德立之時라 孔子四十而不惑도 亦不動心之謂니라
이는 상장을 이어서 또 가설하여 묻기를 맹자가 만약 위를 얻어서 도를 행하시면 곧 비록 이로 말미암아 패왕의 업을 이루더라도 또한 족히 괴이치 않으리니 책임이 크고 직책이 무거움이 이와 같으면 또한 공구하고 의혹하는 바가 있어서 그 마음이 움직이시리까 하니라. 사십은 강한 벼슬이니 군자가 도가 밝아지고 덕이 서는 때라. 공자가 사십이 불혹이라 한 것도 또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이름이니라.
曰若是則夫子ㅣ 過孟賁이 遠矣샤소이다 曰是ㅣ 不難하니 告子도 先我不動心하니라
(공손추)가로대 이와 같은즉 선생께서 맹분의 지나심이 멀사소이다. (맹자) 가라사대 이 어렵지 아니하니 고자도 나보다 먼저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니라.
賁 : 빛날 비, 여기서는 ‘빛날 분’
[본문 해설]
맹분은 쇠의 생뿔을 맨손으로 잡아 뽑은 秦나라의 무사다. 공손추는 맹자의 부동심은 이러한 맹분의 용맹보다도 훨씬 더 강한 용맹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자는 맹자의 性善說이나 순자의 性惡說과는 대비되는 性勿善勿惡(성품은 선함도 없고 악함도 없다)을 주장한 학자다. 곧 물은 본래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지만, 아래를 막으면 위로 올라 흐르기도 하고 옆으로 새어 흐르기도 하듯이 성품이란 이러한 물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러한 성리도 잘 모르는 고자도 맹자 자신보다도 먼저 부동심을 하였음을 맹자는 칭찬하고 있다.
孟賁은 勇士라 告子의 名은 不害라 孟賁은 血氣之勇이니 丑蓋借之하야 以贊孟子不動心之難이라 孟子ㅣ 言告子ㅣ 未爲知道오도 乃能先我不動心하니 則此未足爲難也ㅣ라 하시니라
맹분은 용사라. 고자의 이름은 불해라. 맹분은 혈기의 용맹이니, 추가 대개 빌려서 써 맹자 부동심의 어려움을 칭찬함이라. 맹자 말씀하시되 고자가 도를 알지 못하는데도 이에 능히 나보다 먼저 부동심을 했으니 곧 이는 족히 어려움이 되지 않느니라 하시니라.
曰不動心이 有道乎ㅣ잇가 曰有하니라
(공손추)가로대 부동심은 도가 있나잇가 (맹자) 가라사대 있느니라
程子ㅣ 曰心有主면 則能不動矣라
정자 가라사대 마음이 주장함이 있으면 능히 움직이지 않느니라.
北宮黝之養勇也난 不膚撓하며 不目逃하야 思以一毫ㅣ나 挫於人이어든 若撻之於市朝하야 不受於褐寬博하며 亦不受於萬乘之君하야 視刺萬乘之君호대 若刺褐夫하야 無嚴諸侯하야 惡聲이 至커든 必反之하니라
북궁유의 용맹을 기르는 데는 살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눈이 도망치지 아니하야 생각이 써 한 터럭이나 남에게 꺾이거든 저자나 조정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같이 하여 갈관박(누더기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비렁뱅이)에게도 받지(당하지) 아니하며, 또한 만승지군에게도 당하지 아니하야 만승의 인군 죽임을 보대 갈부 죽이는 것같이 하여 두려워하는 제후가 없어 악한 소리가 이르거든 반드시 돌아가니라.
黝 : 검을 유 撓 : 흔들 요 逃 : 피할 도 挫 : 꺾을 좌 撻 : 종아리 달 褐 : 베옷 갈, 누더기 갈 刺 : 찌를 자
[본문 해설]
공손추가 부동심을 용맹에 비유하며 맹분의 예를 들기에 맹자는 고자를 들어 부동심을 얘기하였다. 그러자 다시 공손추가 부동심에도 도가 있느냐고 묻자 맹자는 그렇다며 북궁유의 용맹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대목이다. 북궁유의 용맹이란 칼에 찔려도 살이 떨리는 일이 없고 눈에 칼이 들어와도 눈동자를 굴리는 일도 없을 만큼 조금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는 것을 못견뎌했다. 만약 그 용맹을 꺾는다는 것은 마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저잣거리나 조정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갈관박한테 수모를 당하지 않음은 물론 만승지군한테도 수모를 당하지 않고, 만승지군을 죽이는 것을 보더라도 마치 갈부를 죽이는 것처럼 이 세상에 두려워하는 제후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악한 소리, 죽임을 당하는 소리가 나야 돌아갔다.
北宮은 姓이요 黝는 名이라 膚撓는 肌膚被刺而撓屈也ㅣ오 目逃는 目被刺而轉睛逃避也ㅣ라 挫는 猶辱也ㅣ라 褐은 毛布요 寬博은 寬大之衣니 賤者之服也ㅣ라 不受者는 不受其挫也ㅣ라 刺는 殺也ㅣ라 嚴은 畏憚也ㅣ니 言無可畏憚之諸侯也ㅣ라 黝는 蓋刺客之流니 而必勝으로 爲主하야 而不動心者也ㅣ라
북궁은 성이요, 유는 이름이라. 부요는 살이 찔림을 당하여 흔들리고 굴함이오, 목도는 눈이 찔림을 당하여 눈동자가 굴러서 도피함이라. 좌는 욕과 같음이라. 갈은 모포요, 관박은 관대한 옷(걸치기만 하는 옷)이니 천한 자의 옷이라. 불수자는 그 꺾임을 받지 않음이라. 자는 죽임이라. 엄은 두려워하고 꺼림이니 가히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제후가 없음을 말함이라. 유는 대개 자객의 유니 반드시 이김으로써 주장을 삼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자라.
睛 : 눈동자 정
孟施舍之所養勇也난 曰視不勝호대 猶勝也ㅣ로니 量敵而後進하며 慮勝而後會하면 是는 畏三軍者也ㅣ니 舍ㅣ 豈能爲必勝哉리오 能無懼而已矣라 하니라
맹시사의 용맹을 기른 바는 이기지 못함을 보대 이김과 같이 하노니 적을 헤아린 뒤에 (싸우러) 나가며 이김을 생각한 후에 모이면(교전하면) 이는 삼군을 두려워함이니 사가 어찌 능히 반드시 이김을 하리오, 능히 두려워함이 없을 따름이라 하니라.
[본문 해설]
북궁유와는 전혀 다른 맹시사의 예를 들어 맹자가 용맹을 이야기하고 있다. 북궁유는 기어이 죽여서 그 죽는 소리가 나야 가는 사람으로 꼭 이기는 것을 용맹으로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맹시사는 꼭 이기는 것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먹은 바 곧 줏대가 더욱 중요함을 따지는 사람이다. 싸움에 이기지 못하더라도 이기는 것처럼 하는데 싸워서 이기든 지든, 죽든 살든 반드시 적을 헤아려 싸우거나 이길 것을 생각하고 싸운다면 이는 삼군을 두려워하는 것이니 꼭 이기는 것만이 용맹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라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 맹시사의 용맹이다.
참고로 맹시사의 본래 이름은 맹사이다. 맹과 사를 붙여 읽을 때 발음이 바로 그치기에 발음하기 좋게 ‘시’를 하나 더 넣은 것이다.
孟은 姓이오 施는 發語聲이오 舍는 名也ㅣ라 會는 合戰也ㅣ라 舍ㅣ 自言其戰이 雖不勝이라도 亦無所懼니 若量敵慮勝而後에 進戰이면 則是無勇하야 而畏三軍矣라 舍ㅣ 蓋力戰之士니 以無懼로 爲主하야 而不動心者也ㅣ라
맹은 성이오, 시는 말을 발하는 소리요, 사는 이름이라. 회는 합전이라. 사가 스스로 말하기를 그 싸움이 비록 이기지 못하더라도 또한 두려하는 바가 없으니 만약에 적을 헤아리고 이김을 생각한 뒤에 나아가 싸우면 곧 이는 용맹이 없어 삼군을 두려워함이라. 사는 대개 힘써 싸우는 선비니 두려움이 없음으로써 주장을 삼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자라.
孟施舍는 似曾子하고 北宮黝는 似子夏하니 夫二子之勇이 未知其孰賢이어니와 然而孟施舍는 守ㅣ 約也ㅣ니라
맹시사는 증자와 같고 북궁유는 자하와 같으니 무릇 두 자의 용맹이 그 누가 나은 것은 아지 못하거니와 그러나 맹시사는 지킴이 요약하니라.
[본문 해설]
무릇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이다. 맹시사는 싸워서 꼭 이길 것만을 따져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할 경우에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움에 임했으므로 맹시사는 북궁유보다 오히려 정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맹시사를, 맹자는 증자에 비유했다. 증자는 ‘고기 어(魚)’자와 ‘노나라 로(魯)’자를 분별하지 못할 만큼(魚魯不辨)’ 어린 나이에 공자의 제자가 된 이로, 후에 공자의 도를 전한 훌륭한 제자이다. 증자는 날마다 자기 몸을 세 번씩 살필 만큼(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아 與朋友交而不信乎아 傳不習乎아-『논어』 學而편) 수약(守約)한 제자였다.
자하는 『논어』 學而편에 “賢賢호대 易色하며 事父母호대 能竭其力하며 事君호대 能致其身하며 與朋友交호매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호대 吾必謂之學矣라(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색을 변하듯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인군을 섬기되 능히 그 몸에 다하며 붕우를 사귀매 말에 믿음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아니하여도 나는 반드시 배웠다 이르노라)”라는 말에서 그의 됨됨이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자하에 맹자는 북궁유를 비유했다. 그러니 누가 더 나은지는 알 수 없으나 그윽히 바라보면 맹시사는 허황되지도 않고 거창하지도 않아 그 지극한 됨됨이가 증자의 수약과 같다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黝는 務敵人하고 舍는 專守己하며 子夏는 篤信聖人하고 曾子는 反求諸己라 故로 二子之與曾子子夏에 雖非等倫이나 然이나 論其氣象이면 則各有所似라 賢은 猶勝也ㅣ요 約은 要也ㅣ라 言論二子之勇이면 則未知誰勝이어니와 論其所守면 則舍比於黝에 爲得其要也ㅣ니라
유는 사람을 대적하는데 힘쓰고, 사는 오로지 몸을 지켰으며, 자하는 성인을 돈독히 믿고, 증자는 돌아가 저 몸에서 구하니라. 그러므로 두 사람(맹시사와 북궁유)이 증자와 자하와 더불매 비록 등수로 비유를 하지 못하나, 그러나 그 기상을 논하면 곧 각각 같은 바가 있느니라. 현은 나음과 같고 약은 요약함이라. 말하되 두 자의 용맹을 논하면 누가 나은 것은 아지 못하거니와 그 지키는 바를 논하면 곧 사를 유에게 비함에 그 요약함을 얻었다 할 것이니라.
倫 : 비유할 륜
昔者에 曾子ㅣ 謂子襄曰子ㅣ 好勇乎아 吾嘗聞大勇於夫子矣로니 自反而不縮이면 雖褐寬博이라도 吾不惴焉이어니와 自反而縮이면 雖千萬人이라도 吾往矣라 하시니라
옛적에 증자가 자양에게 일러 가라사대 자네가 용맹을 좋아하는가, 내 일찍이 큰 용맹을 부자에게 들었노니 스스로 돌이켜서 곧지 아니하면 비록 갈관박이라도 내 두렵게 못하거니와 스스로 돌이켜서 곧으면 비록 천만 사람이라도 내 간다 하시니라
縮 : 곧을 축 惴 : 두려워할 췌
[본문 해설]
증자가 제자 자양에게 용맹에 대한 공자의 말씀을 전하는 대목이다. 스스로 돌이켜 행동과 마음이 곧지 아니하면 천한 사람조차 나를 두렵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반성해 곧으면 천만 사람이 있는 곳이라도 떳떳하게 갈 수 있는 것이다. 곧 용맹이란 縮이냐 不縮이냐 즉, 곧으냐 곧지 않느냐의 기준을 갖고 판단해야 할 일인 것이다.
此는 言曾子之勇也ㅣ라 子襄은 曾子弟子也ㅣ라 夫子는 孔子也ㅣ라 縮은 直也ㅣ니 檀弓에 曰古者에 冠은 縮縫이러니 今也에는 衡縫이라 하고 又曰棺束을 縮二衡三이라 하니라 惴는 恐懼之也ㅣ라 往은 往而敵之也ㅣ라
이는 증자의 용맹을 말함이라. 자양은 증자 제자라. 부자는 공자라. 축은 곧음이니 『단궁』에 가로대 옛적에 갓을 곧게 꿰매더니 오늘에는 옆으로 꿰맸다 하고 또 가로대 관 묶는 것을 곧게 둘, 횡으로 셋을 묶었다 하니라. 췌는 공구함이라. 왕은 가서 대적함이라.
縫 : 꿰맬 봉 衡 : 저울대 형, 여기서는 ‘비낄 횡’.
孟施舍之守는 氣라 又不如曾子之守ㅣ 約也ㅣ니라
맹시사의 지킴은 기운이라. 또 증자의 지킴의 요약함만 같지 못하니라.
言孟施舍ㅣ 雖似曾子나 然이나 其所守는 乃一身之氣니 又不如曾子之反身循理하야 所守ㅣ 尤得其要也ㅣ라 孟子之不動心은 其原이 蓋出於此하니 下文에 詳之하니라
말하되 맹시사가 비록 증자와 같으나 그러나 그 지키는 바는 이에 일신의 기운이니 또한 증자의 반신순리(몸을 반성하고 이치에 따름)의 지키는 바가 더욱 그 요약함을 얻은 것만 같지 못하니라. 맹자의 부동심은 그 근원이 대개 이(증자의 수약)에서 나왔으니 아랫글에 자세하니라.
曰敢問夫子之不動心과 與告子之不動心을 可得聞與잇가 告子曰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하며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라 하니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는 可커니와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은 不可하니 夫志는 氣之帥也ㅣ오 氣는 體之充也ㅣ니 夫志ㅣ 至焉이오 氣ㅣ 次焉이니 故로 曰持其志오도 無暴其氣라 하니라
(공손추) 가로대 감히 묻잡노니 부자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을 가히 얻어 들으리잇가? (맹자) 고자 가로대 말에 얻지 못하거든 마음에 구하지 말며, 마음에 얻지 못하거든 기운에 구하지 말라 하니, 마음에 얻지 못하거든 기운에 구하지 말라 함은 가커니와, 말에 얻지 못하거든 마음에 구하지 말라 함은 불가하니, 무릇 뜻은 기운의 장수요, 기운은 몸의 채움이니 무릇 뜻이 이르고 기운이 버금하니 그러므로 가로대 그 뜻을 갖고도 그 기운을 서운하게 말라 하니라.
持 : 가질지 帥 : 장수 수 暴 : 서운할 포
[본문 해설]
고자가 말한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은 고자의 부동심이다. 말을 내뱉음에 실지가 없어 무슨 일을 이루지 못하면 마음에 돌아가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는 마음 먹은 바대로 되지 못했다고 하여 기운에 힘입어 주먹을 발끈 쥐고 윽박지르며 성사시킬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에 맹자는 고자의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는 오히려 불상사가 생기기에 가하다 하였다. 하지만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은 不可하다 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때로 말을 잘못 내뱉아 실수를 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말은 삼가야겠다’는 의지를 마음에서 가다듬어야 하는데 고자가 ‘勿求於心’이라 하였으니 이는 옳은 않은 말이다.
참고로 먼저 뜻과 관련된 글자들의 차이를 알아보자. ‘志’는 ‘선비(士)의 마음(心)’으로 선비가 마음을 먹은 것, 생각이 우러나 세운 뜻이고, ‘意’은 ‘以發心’으로 서서 가는, 곧 행하는 뜻이고, ‘情’은 마음이 파릇파릇 생동감 넘치게 나아가는 뜻이다. 따라서 뜻(志)이란 내 마음의 이치로 기운을 거느리고 가는 장수이다. 기운이란 것은 몸을 꽉 채운 것이라 했으니 志는 정신적인 것이요, 기는 육체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志가 먼저하고 氣가 다음이니 뜻을 잘 가지고 기운을 잘 붙잡아야지, 그러지 아니하고 志가 약해 기운을 통솔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고자의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을 맹자가 불가하다고 한 이유는 말이 장수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뜻은 기운을 이끌어가는 장수가 되고, 기운은 몸에 꽉 차 육체적으로 활동하고 힘을 내는 것인데, 힘이 앞서고 뜻이 뒤에 하면 뜻이 힘을 조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뜻이 먼저 이르고 기운이 따라야 하며, 뜻을 갖고도 기운을 서운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고자와 맹자의 부동심의 차이다.
‘夫志는 氣之帥也ㅣ오 氣는 體之充也ㅣ라’는 대목은 맹자의 氣공부에 해당한다. 정자는 이 대목에 이르러 맹자보다 주역을 더 잘 아는 이가 없다고 칭찬한 글귀이기도 하다.
此一節은 公孫丑之問에 孟子誦告子之言하시고 又斷以己意而告之也ㅣ시니라 告子ㅣ 謂於言에 有所不達이어든 則當舍置其言하고 而不必反求其理於心하며 於心에 有所不安이어든 則當力制其心하고 而不必更求其助於氣라 하니 此所以固守其心하야 而不動之速也ㅣ라 孟子ㅣ 旣誦其言而斷之하사 曰彼謂不得於心이어든 而勿求諸氣者는 急於本而緩其末이니 猶之可也어니와 謂不得於言이어든 而不求諸心은 則旣失於外하야 而遂遺其內하니 其不可也ㅣ 必矣로다 然이나 凡曰可者는 亦僅可而有所未盡之辭耳라 若論其極이면 則志ㅣ 固心之所之요 而爲氣之將帥라 然이나 氣亦人之所以充滿於身하야 而爲志之卒徒者也ㅣ라 故로 志固爲至極이요 而氣卽次之니 人固當敬守其志나 然이나 亦不可不致養其氣하니 蓋其內外本末이 交相培養이니라 此則孟子之心에 所以未嘗必其不動이나 而自然不動之大略也ㅣ라
이 한 마디는 공손추의 물음에 맹자가 고자의 말씀을 외우시고 또 자기의 뜻으로써 판단하여 고하심이니라. 고자가 이르되 말에 달하지 못한 바가 있거든 곧 마땅히 그 말을 놔두고 반드시 돌아가 그 이치를 마음에 구하지 않을 것이며 마음에 편안하지 못한 바가 있거든 곧 마땅히 그 마음을 힘껏 제어하며 반드시 다시 그 도움을 기운에 구하지 아니한다 하니, 이 써 진실로 그 마음을 지켜서 부동하는 바의 속함이라. 맹자가 이미 그 말을 외우시고 판단하시어 가라사대 저(고자) 이르기를 마음에 얻지 못하거든 저 기운에 구하지 말라 함은 근본에 급하고 그 끄트머리에 누그럽게 함이니 오히려 가하거니와, 이르되 말에 얻지 못하거든 저 마음에 구하지 아니함은 곧 이미 밖에서 잃고 드디어 그 안을 버림이니 그 불가함이 기필함이로다. 그러나 무릇 가로대 可라는 것은 또한 겨우 可하다는 것이지 다하지 않은 바가 있는 말이라. 만약에 그 지극함을 논하면 곧 뜻은 진실로 마음의 가는 바요 기운의 장수가 됨이라. 그러나 기운 또한 사람의 써 몸에 충만해서 뜻의 졸도가 됨이라. 그러므로 뜻은 진실로 지극함이 되고 기운은 곧 버금으로 나아가니 사람이 진실로 마땅히 그 뜻을 공경하고 지켜야 하나 그러나 또한 가히 그 기운을 길러 이르지 아니치 못하니 대개 그 내외본말이 사귀어 서로 북돋아(培 : 內本) 기름(養 : 外末)이니라. 이는 곧 맹자의 마음에 써한 바 일찍이 반드시 그 부동하지 아니하나 자연히 부동의 대략이라.
舍 : 놓을 사 置 : 둘 치
旣曰志ㅣ 至焉이오 氣ㅣ 次焉이라 하시고 又曰持其志오도 無暴其氣者는 何也잇고 曰志壹則動氣하고 氣壹則動志也ㅣ니 今夫蹶者趍者ㅣ 是氣也而反動其心이니라
(공손추) 이미 가라사대 뜻이 이르고 기운이 버금한다 하시고 또 가라사대 그 뜻을 갖고도 그 기운을 사납게 하지 말라는 것은 어찌함잇고? (맹자) 가라사대 뜻이 하나한즉 기운이 움직이고 기운이 하나한즉 뜻이 움직이니, 이제 무릇 엎드러지는 자, 뛰는 자 이 기운이 도리어 그 마음을 움직이니라.
蹶 : 넘어질 궐 趍 : 달아날 추, 추창할 추
公孫丑ㅣ 見孟子ㅣ 言志至而氣次라 故로 問如此則專持其志ㅣ 可矣어늘 又言無暴其氣는 何也오 하니라 壹은 專一也ㅣ라 蹶은 顚躓也ㅣ라 趍는 走也ㅣ라 孟子ㅣ 言志之所向이 專一則氣固從之나 然이나 氣之所在ㅣ 專一則志亦反爲之動하니 如人이니 顚躓趍走이면 則氣專在是하야 而反動其心焉하니 所以旣持其志오도 而又必無暴其氣也ㅣ라 하시니라 程子ㅣ 曰志動氣者는 什에 九요 氣動志者는 什에 一이라
공손추가 맹자가 뜻이 이르고 기운이 버금한다고 한 말씀을 보니라. 그러므로 묻기를 이와 같은즉 그 뜻을 오로지 가짐이 가하거늘 또한 그 기운을 서운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심은 어째서닛고 하니라. 일은 오로지 하나라. 궐은 엎어지고 미끄러짐이라. 추는 달림이라. 맹자가, 뜻의 향하는 바가 전일한즉 기운이 진실로 따르나 그러나 기운의 있는 바가 전일한즉 뜻이 또한 도리어 (기운을) 위하여 움직이니 마치 사람이 엎드러지고 미끄러지고 뛰고 달리면 곧 기운이 오로지 이에 있어서 도리어 그 마음을 움직이니 써한 바 이미 그 뜻을 갖고도 또한 반드시 그 기운을 사납게 하지 말라 말씀하시니라. 정자 가로대 뜻이 기운을 움직이는 것은 십에 아홉이오, 기가 뜻을 움직이는 것은 십에 하나니라.
顚 : 엎어질 전 躓 : 미끄러질 지
敢問夫子는 惡乎長이시니잇고 曰我는 知言하며 我는 善養吾의 浩然之氣하노라
감히 묻잡노니 선생님께서는 어느 것이 장점이시니잇고. 가라사대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호연한 기운, 자연스런 기운)를 잘 기르노라
公孫丑ㅣ 復問孟子之不動心이 所以異於告子如此者는 有何所長而能然고 한대 而孟子ㅣ 又詳告之以其故也ㅣ라 知言者는 盡心知性이니 於凡天下之言에 無不有以究極其理요 而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也ㅣ라 浩然은 盛大流行之貌라 氣는 則所謂體之充者라 本自浩然이나 失養故로 餒라 惟孟子ㅣ 爲善養之하사 以復其初也ㅣ시니라 蓋惟知言이면 則有以明夫道義ㅣ 而於天下之事에 無所疑요 養氣이면 則有以配夫道義ㅣ 而於天下之事에 無所懼니 此其所以當大任而不動心也ㅣ라 告子之學이 與此로 正相反하니 其不動心이 殆亦冥然無覺하고 悍然不顧而已爾라
공손추가 다시 맹자의 부동심이 써한 바 고자와 다름이 이와 같다는 것은 어느 것이 길어(장점이어서) 능히 그러하니잇고 물으니, 맹자 또한 자세히 그 까닭으로써 가르쳐주심이라. 말을 안다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아는 것이니, 무릇 천하의 말에 써 그 이치를 지극한데까지 연구하고 그 시비득실의 소이연을 알지 않음이 없느니라. 호연은 성대히 유행하는 모양이라. 기운은 곧 이른바 몸을 채우는 것이라. 본래 자연히 호연이나 기름을 잃기 때문에 주려지는 것이라. 오직 맹자께서만이 잘 길러 써 그 처음을 회복하시니라. 대개 말을 알면 무릇 도의를 밝혀서 천하의 일에 의심할 바가 없음이오, 기운을 기르면 곧 써 무릇 도의에 배합이 되어 천하의 일이 두려운 바가 없음이니 이는 그 써한 바 대임에 합당하니 마음을 동하지 아니하니라. 고자의 학문은 이와 더불어 정히 상반하니 그 부동심이 자못 또한 어두어져 깨닫지 못하고 사납기만 하고 돌아봄이 없을 뿐이라.
敢問何謂浩然之氣잇고 曰難言也ㅣ니라
(공손추) 감히 묻잡노니 어찌 일러 호연의 기운이잇고 (맹자) 가라사대 말하기 어려우니라
孟子ㅣ 先言知言이시어늘 而丑ㅣ 先問養氣者는 承上文ㅣ 方論志氣而言也ㅣ라 難言者는 蓋其心所獨得而無形聲之驗이니 有未易以言語로 形容者라 故로 程子ㅣ 曰觀此一言이면 則孟子之實有是氣를 可知矣로다
맹자는 먼저 지언을 말씀하셨는데 공손추가 먼저 양기를 물은 것은 상문을 이어 바야흐로 지기를 논하여 말함이라. 난언이라는 것은 대개 그 마음속에서 홀로 얻은 바이고 형용이나 소리의 증험이 없으니 언어로써 쉽게 형용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정자 가로대 이 한 말(難言)을 보면 곧 맹자의 실지로 이 기운이 있음을 가히 알 만하다.
其爲氣也ㅣ 至大至剛하니 以直養而無害則塞于天地之間이니라
그 기운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곧음으로써 길러서 해함이 없으면 곧 즉 천지 사이에 차니라
至大는 初無限量이오 至剛은 不可屈撓라 蓋天地之正氣요 而人得以生者니 其體段이 本如是也ㅣ니라 惟其自反而縮이면 則得其所養이오 而又無所作爲以害之면 則其本體ㅣ 不虧而充塞無間矣라 程子ㅣ 曰天人은 一也ㅣ라 更不分別이니 浩然之氣는 乃吾氣也ㅣ라 養而無害면 則塞于天地요 一爲私意所蔽면 則欿然而餒하야 知其小也ㅣ라 謝氏 曰浩然之氣는 須於心得其正時에 識取라 又曰浩然은 是無虧欠時라
지대는 처음에 한량이 없음이오, 지강은 가히 굴하고 흔들리지 아니함이라. 대개 천지의 정기이오, 사람이 얻어 써 난 것이니 그 체단이 본래 이와 같음이라. 오직 그 스스로 돌이켜서 곧으면 곧 그 기르는 바를 얻음이오 또 작위하여(인위적으로 지어 만들어) 써 해롭게 함이 없으면 곧 그 본체가 이지러지지 않고 꽉 차서 틈이 없으리라. 정자 가로대 하늘과 사람은 한 가지라. 다시 분별하지 못하니 호연의 기운은 이에 나의 기운이라. 길러서 해롭게 함이 없으면 곧 천지에 꽉 찰 것이오, 하나라도 사사로운 뜻이 가리는 바(폐단)가 있다면 곧 흠결이 생겨 말라 붙으니 그 작음을 아느니라. 사씨 가로대 호연지기는 모름지기 마음에서 그 바름을 얻을 때에 알아서 취함이라. 또 가로대 호연은 이 이지러지거나 흠결이 없는 때라.
段 : 조각 단 欿 : 구덩이 감
其爲氣也ㅣ 配義與道하니 無是면 餒也ㅣ니라
그 기운됨이 의와 다못 도에 배합하니 이것이 없으면 주리느니라(말라붙느니라)
配者는 合而有助之意라 義者는 人心之裁制요 道者는 天理之自然이라 餒는 飢乏而氣不充體也ㅣ라 言人能養成此氣이면 則其氣合乎道義而爲之助하야 使其行之勇決하야 無所疑憚이오 若無此氣이면 則其一時所爲가 雖未必不出於道義나 然이나 其體ㅣ 有所不充이면 則亦不免於疑懼요 而不足以有爲矣라
배는 합하여 도움이 있는 뜻이라. 의는 인심의 재제(사람 마음의 마름하고 지음)함이요 도는 천리의 자연이라. 뇌는 주리고 주려서 기운이 몸에 차지 못함이라. 말하되 사람이 능히 이 기운을 양성하면 곧 그 기운이 도의에 합해 위하여 도와서 하여금 그 행함이 용감히 결단하여 의심되고 꺼리는 바가 없음이오, 만약 이 기운이 없으면 곧 그 한 때에 하는 바가 비록 반드시 도의에서 나오지 아니치 아니하나 그러나 그 체가 차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곧 또한 의구를 면치 못할 것이오, 족히 써 하옴이 있지 않으리라.
乏 : 가난할 핍
是集義所生者ㅣ라 非義ㅣ 襲而取之也ㅣ니 行有不慊於心則餒矣니 我ㅣ 故로 曰告子ㅣ 未嘗知義라 하노니 以其外之也일새니라
(기운은) 이 의를 모아서 생하는 바라. 의가 엄습해서 취함이 아니니 행함에 마음에 족하지 못함이 있은즉 주리니(마르나니) 내(맹자)가 그러므로 가로대 고자가 일찍이 의를 아지 못한다 하노니 그 바깥으로써 할새니라.
慊 : 족할 겸, 찐덥지 않을 겸
集義는 猶言積善이니 蓋欲事事ㅣ 皆合於義也ㅣ라 襲은 掩取也ㅣ니 如齊侯襲莒之襲이라 言氣雖可以配乎道義나 而其養之之始에 乃由事皆合義하야 自反常直이라 是以로 無所愧怍하야 而此氣ㅣ 自然發生於中이요 非由只行一事가 偶合於義하야 便可掩襲於外而得之也ㅣ니라 慊은 快也ㅣ며 足也ㅣ라 言所行이 一有不合於義而自反不直이면 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라 然則義豈在外哉리오 告子ㅣ 不知此理하고 乃曰仁內義外라 하야 而不復以義爲事하니 則必不能集義하야 以生浩然之氣矣라 上文에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이 則外義之意니 詳見告子上篇하니라
집의는 적선을 말함과 같음이니 대개 일마다 다 의리에 합하고자 함이라. 습은 가리어서 취함이니 제나라 후가 거나라를 엄습했다는 습과 같음이라. 말하되 기운이 비록 가히 써 도의에 배합했으나 그 기르는 처음에 이에 일로 말미암아 다 의리에 합하게 해서 스스로 돌이켜 항상 곧게 함이라. 이로써 괴작(부끄럽고 부끄러워 함)이 없어 이 기운이 자연히 중심(마음속)에서 발생함이요, 다만 한 가지 일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우연히 의리에 합해서 문득 가히 밖에서 엄습해서 얻어짐이 아니니라. 겸은 쾌함이며 족함이라. 말하되 행하는 바가 하나라도 의리에 합하지 못함이 있어 스스로 돌이켜 곧지 못하면 곧 마음에 족하지 못하고 그 체가 차지 못하는 바가 있느니라. 그런즉 의가 어찌 밖에 있으리오. 고자가 이 이치를 아지 못하고 이에 가로대 인은 안에 있고 의는 바깥이라 하여, 다시 의로써 일을 삼지 아니하니 곧 반드시 능히 의를 모아서 써 호연의 기운을 생하지 못하느니라. 윗글에 말에 얻지 못하거든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는 것은 곧 의를 바깥으로 한 뜻이니 자세함은 고자 상편에 나타나니라.
莒 : 감자 거, 여기서는 ‘따 거’로 나라이름이다.
[앞주 해설]
仁內義外는 봄의 씨앗인 仁과 가을의 결실인 義라는 측면에서 볼 때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곧 씨앗은 숨겨져 있다가 밖으로 나와 결실을 맺기 때문에 인은 안이오, 의는 밖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기운의 인의에 해당하기에 주역 계사상전에서 공자가 말한 “縣諸仁(현저인)하며 藏諸用(장저용)하야”에 해당된다. 縣諸仁이라는 것은 감추어져 있는 인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터 나온 것을 말하고, 藏諸用은 용적인 물건 자체가 씨앗이 되어 다시 땅 속에 들어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곧 씨앗인 인은 가을과 겨울 동안에 감춰져 있는데 봄과 여름이 되면 나타나고, 용은 가을 되어 곡식을 이용해 먹는 것이지만 그 쓰임을 겨울에 깊이 감춰둬야 봄을 기다렸다가 나오는 것이다. 바로 기운이란 안에서 쌓였다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맹자는 仁內義外가 아닌 仁外義內를 강조하는 것이다.
必有事焉而勿正하야 心勿忘하며 勿助長也하야 無若宋人然이어다 宋人이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ㅣ러니 芒芒然歸하야 謂其人曰今日에 病矣와라 予ㅣ 助苗長矣와라 하야날 其子ㅣ 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槁矣리라 天下之不助苗長者ㅣ 寡矣니 以爲無益而舍之者는 不耘苗者也ㅣ오 助之長者는 揠苗者也ㅣ니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반드시 일을 두고 예기치 말아서 마음에 잊지 말며 긺(크는 것)을 돕지 말아서 송나라 사람과 같지 말지어다. 송나라 사람이 그 싹의 길지 않음을 민망히 여겨 뽑은 자 있더니 망망연히(무지하게, 멍청하게) 돌아와서 이르기를 그 사람(집식구)에게 일러 가로대 오늘 피곤하다, 내 싹의 긺을 도왔노라 하야늘 그 자식이 뛰어가 보니 싹이 곧 말랐더라. 천하에 싹의 긺을 돕지 않는 자 적으니 써 유익함이 없다하여 버리는 자는 싹을 김매지 않는 자요, 긺을 돕는 자는 싹을 뽑는 자니 한갓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 해로움이라.
正 : 여기서는 꼭 그렇게 된다는 뜻의 ‘예기할 정’ 揠 : 뽑을 알 芒 : 풀 망 槁 : 마를 고, 原字는 槀 舍 : 버릴 사 徒 : 한갓 도
[본문 해설]
가만히 두어도 될 일을 어리석은 행동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해악만 불러일으킨다는 故事로 유명한 대목이다. 성질이 매우 급한 송나라 사람이 모를 심어놓고, 크게 자란 것만이 능사인줄 알고 모의 싹을 모두 잡아 뽑아 올렸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피곤하다며 눕길래 그 자식이 연유를 물어보니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다(助苗長)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자식이 논에 달려나가 보았더니 이미 싹은 말라죽어 있었다.
사람이 나서서 해야 할 일과 하늘이 하는 일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사람은 순명(順命)할 뿐이다. 봄에 심고 중간에 거름주고 김 매는 일을 잊지 않는다면 가을에 오곡백과가 다 영글 것이다. 곧 무슨 일이든지 하늘에 앞서 행하지 말며, 다만 마음 속에 때에 맞춰 일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송나라 사람은 그 싹이 자라지 않음을 민망히 여겨서 싹을 뽑아 올리고 마치 대단한 일을 한 듯이 집에 와서는 자기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다며 자랑했다.
이에 대해 맹자는 “天下之不助苗長者ㅣ 寡矣라”하였다. 集義所生이어야 하는데 襲取하는 자가 많음을 깨우치는 말이다. 어쩌다 한 가지 의리에 우연히 들어맞는다고 호연지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본래 천지자연의 호연지기를 타고 났는데 이 호연지기를 도와 의로써 합치시켜 꾸준히 몸에 꽉 채워야 호연지기가 길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은 의리를 모아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당장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맹자는 이것을 싹이 자라는 것을 돕는다고 그 싹을 뽑아올리는 송나라 사람의 어리석음에 비유하였다. 자기가 쌓은 공은 생각지 않고 조급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나무라고 있다.
必有事焉而勿正은 趙氏 程子ㅣ 以七字로 爲句하고 近世에 或幷下文心字讀之者도 亦通이라 必有事焉은 有所事也ㅣ니 如有事於顓臾之有事라 正은 預期也ㅣ니 春秋傳에 曰戰不正勝이 是也ㅣ라 如作正心義亦同하나 此與大學之所謂正心者와는 語意自不同也ㅣ라 此는 言養氣者ㅣ 必以集義爲事하고 而勿預期其效하며 其或未充이어든 則但當勿忘其所有事요 而不可作爲하야 以助其長이니 乃集義養氣之節度也ㅣ라 閔은 憂也ㅣ라 揠은 拔也ㅣ라 芒芒은 無知之貌라 其人은 家人也ㅣ라 病은 疲倦也ㅣ라 舍之而不耘者는 忘其所有事요 揠而助之長者는 正之不得하야 而妄有作爲者也라 然이나 不耘則失養而已요 揠則反以害之니 無是二者면 則氣得其養而無所害矣라 如告子는 不能集義하고 而欲彊制其心이면 則必不能免於正助之病이니 其於所謂浩然者에 蓋不惟不善養이라 而又害之矣라
‘필유사언이물정’은 조씨와 정자가 일곱 자로써 한 구절을 삼고 근세(주자때)에 와서 혹 아래글의 ‘心’을 아울러(붙여) 읽는 자(必有事焉而勿正心하야 勿忘하며)도 또한 통하니라. 필유사언은 일하는 바를 둠이니 전유의 일이 있다(전유라는 나라에 전쟁이 있다, 사건이 있다)는 것과 같이 일이 있음이라. 정은 미리 기약함이니 춘추전에 가로대 전쟁에는 이김을 예기치 못한다 함이 이것이라. 정심이라고 지은 것도 뜻이 또한 같으나 이는 대학의 이른바 정심과 더불어 말뜻이 스스로 같지 않음이라. 이는 말하되 기운을 기르는 자는 반드시 의를 모음으로써 일을 삼고 그 효력을 예기치 말며, 그 혹 차지 못하거든 곧 다만 마땅히 그 일을 둔 바를 잊지 말고 가히 작위하여 써 그 긺을 돕지 말야야 할 것이니 이에 의를 모아서 기운을 기르는 절도니라. 민은 근심이라. 알은 뺌이라. 망망은 무지한 모양이라. 기인은 집사람이라. 병은 피로하고 권태로움이라. 버리고 김매지 않는 자는 그 일하는 바를 잊어버림이오(호연지기를 버리는 사람이오), 뽑아서 긺을 돕는 자는 바름을 얻지 못해 망령되이 작위함이 있음이라. 그러나 김을 매지 않은즉 기름을 잃을 뿐이오, 뽑은 즉 오히려 해가 되니 이 둘이 없으면 곧 기운이 기름을 얻어 해되는 바가 없음이라. 고자같은 이는 능히 의를 모으지 아니하고 그 마음을 강제하고자 하면 반드시 정조의 병(능히 예기해서 돕는 병)을 면치 못하니 그 이른바 호연에 대개 오직 잘 기르지 아니치 못하리라. 또한 해로우니라.
顓 : 따(땅)이름 전, 어리석을 전 臾 : 잠깐 유 顓臾 : 여기서는 땅이름
何謂知言이니잇고 曰詖辭애 知其所蔽하며 淫辭애 知其所陷하며 邪辭애 知其所離하며 遁辭애 知其所窮이니 生於其心하야 害於其政하며 發於其政하야 害於其事하나니 聖人이 復起사도 必從吾言矣시리라
무엇을 지언이라 이르시니잇고? 가라사대 한쪽(편벽된) 말에 그 가리운 바를 알며, 음탕한 말에 그 빠진 바를 알며, 간사한 말에 그 떠나는 바를 알며, 도망하는 말에 그 궁한 바를 아니, 그 마음에 생하여 그 정사에 해로우며 그 정사에 발해서 그 일에 해하나니 성인이 다시 일어나셔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르시리라.
詖 : 편벽될 피, 치우칠 피 遁 : 도망할 둔
[본문 해설]
공손추가 맹자에게 ‘知言’이 무엇인지를 묻자 맹자가 대답하는 말씀이다. 말은 둥글게 하여야 하는데 편벽된 말(詖辭)을 하는 사람에게는 막히고 가려진 바가 있음을 알 수 있고, 음탕한 말(淫辭) 속에는 잘못 빠져든 바가 있음을 알고, 간사한 말(邪辭)에는 그 사람이 이반할 것을 알 수 있고, 이랬다 저랬다 회피하는 말(遁辭) 속에는 논리정연하지 못하고 궁색한 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이라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기에 잘못하면 그 정사를 해롭게 하고 그 정사는 말이 발로가 되어 모든 일을 해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는 옛날 성인이 다시 나온다 하여도 반드시 자기의 말을 따를 것이라 하였다.
맹자의 ‘我는 知言하며’ ‘我는 善養吾浩然之氣하노라’와 관련해서는 이미 공자가 『주역』 계사하전 맨끝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將叛者는 其辭ㅣ 慙하고 中心疑者는 其辭ㅣ 枝하고 吉人之辭는 寡하고 躁人之辭는 多하고 誣善之人은 其辭ㅣ 游하고 失其守者는 其辭ㅣ 屈하니라(장차 배반할 자는 그 말이 부끄럽고, 속마음에서 의심하는 자는 그 말이 가지하고(가지가 돋고), 길한 사람의 말은 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고, 착한 것을 속이는 사람은 그 말이 놀고, 그 지킴을 잃은 자는 그 말이 비굴하니라).
此는 公孫丑ㅣ 復問而孟子ㅣ 答之也ㅣ라 詖는 偏陂也ㅣ오 淫은 放蕩也ㅣ오 邪는 邪僻也ㅣ오 遁은 逃避也ㅣ니 四者ㅣ 相因은 言之病也ㅣ라 蔽는 遮隔也ㅣ오 陷은 沈溺也ㅣ오 離는 叛去也ㅣ오 窮은 困屈也ㅣ니 四者ㅣ 亦相因은 則心之失也ㅣ라 人之有言이 皆出於心하니 其心이 明乎正理而無蔽然後에 其言이 平正通達而無病이오 苟爲不然이면 則必有是四者之病矣리라 卽其言之病而知其心之失하고 又知其害於政事之決然而不可易者ㅣ 如此하니 非心通於道ㅣ 而無疑於天下之理하면 其孰能之리오 彼告子者는 不得於言이어든 而不肯求之於心이라 하야 至爲義外之說하니 則自不免於四者之病이라 其何以知天下之焉而無所疑哉리오 程子ㅣ 曰心通乎道然後에 能辨是非如持權衡以較輕重이니 孟子所謂知言이 是也ㅣ라 又曰孟子知言은 正如人在堂上이라 方能辨堂下人曲直이니 若猶未免雜於堂下衆人之中이면 則不能辨決矣리라
이는 공손추가 다시 묻고 맹자가 대답하심이라. 피는 편벽되고 언덕짐이오, 음은 방탕함이오, 사는 간사스럽고 궁벽함이오, 둔은 도피함이니, 네 가지(詖, 淫, 邪, 遁)가 서로 인함은 말의 병이라. 폐는 가리고 막힘이오, 함은 침닉함(잠기고 빠짐)이오, 리는 배반해서 감이오, 궁은 곤하고 굴함이니 네 가지(蔽, 陷, 離, 窮)가 또한 서로 인함은 곧 마음의 잃음이라. 사람이 말을 둠이 다 마음에서 나오니 그 마음이 정리에 밝고 폐단(가리워짐)이 없은 연후에 그 말이 평정하고 통달(평평하고 바르고 통하고 달해)해서 병이 없을 것이오, 진실로 그러하지 아니하면 곧 반드시 이 네 가지의 병이 있으리라. 그 말의 병에 나아가서 그 마음의 잃음을 알고 또 그 해가 정사를 결단하는데 가히 바꾸지 못할 것을 앎이 이와 같으니 마음이 도에 통해 천하의 이치에 의심함이 없는 이가 아니면 그 누가 능하리오. 저 고자는 말에 얻지 못하거든 즐기어 마음에서 구하지 아니한다 하여 의리를 바깥에 한 말에 이르니 곧 스스로 네 가지 병에 면하지 못하리라. 그 어찌 써 천하의 말을 알고 의심하는 바가 없으리오. 정자 가로대 마음이 도에 통한 연후에 능히 시비를 분별함이 저울과 저울대를 가지고 써 경중을 비교함과 같으니 맹자 이르신 바 지언이라고 이른 바가 이것이라. 또 가로대 맹자 말을 안다함은 정히 사람이 당 위에 있어야 바야흐로 능히 당 아래 사람의 곡직을 분별함과 같으니 만약 오히려 당 아래 뭇사람 가운데 섞여 있음을 면치 못하면 곧 능히 분별하고 결단하지 못하리라.
宰我子貢은 善爲說辭하고 冉牛閔子顔淵은 善言德行이러니 孔子ㅣ 兼之하샤대 曰我ㅣ 於辭命則不能也ㅣ로라 하시니 然則夫子는 旣聖矣乎ㅣ신뎌
재아 자공은 설사(말)을 잘 하였고, 염우 민자 안연은 덕행을 잘 말하더니 공자는 겸하샤대 가라사대 내(공자)가 사명에는 능치 못하노라 하시니 그러한 즉 부자는 이미 성인이신저!
[본문 해설]
사마천의 『史記』「孔子世家」에 따르면, 공자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모두 3천명으로 그중 六藝(禮樂射御書數)에 통달한 자가 72명이라고 되어 있다. 흔히 이들을 神通鬼才라 하고, 그중 열 명의 제자를 孔門十哲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자가 제자들의 장점에 따라 언급한 열 명의 제자로『論語』「先進篇」에 나와 있다.
“子ㅣ曰 從我於陳蔡者ㅣ 皆不及門也로다 德行엔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이오 言語엔 宰我 子貢이오 政事엔 冉有 季路ㅣ오 文學엔 子游 子夏이니라(공자 가라사대 진나라 채나라에서 나를 따른 자 모두가 문에 미치지 못했도다(문하에 없도다). 덕행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오, 언어엔 재아 자공이오, 정사엔 염유 계로요, 문학엔 자유 자공이니라)”
위에서 말한 덕행은 모든 행위가 바른 것, 언어란 제후간 응대 수사가 뛰어난 것, 정사란 치국에 뛰어난 것, 문학이란 고전에 정통한 것이다. 덕행, 언어, 정사, 문학 네 가지를 들어 제자들을 나누어 말하였기에 흔히 四科十哲이라고도 한다. 四科라 한 것은 후한 때의 『논형(論衡)』문공편(問孔篇)과 『後漢書』정현전(鄭玄傳)에서부터이고, 十哲이란 명칭을 부여한 것은 당나라 때 『史通』암혹편(暗惑篇)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자의 제자 가운데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증자가 일컫는 曾參이나 有若 子張 등이 포함되지 않았기에 주자는 ‘皆不及門也로다’를 ‘문하에 없도다’라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이 당시 공자의 나이는 69세로 철환주유를 마치고 마지막 말년을 노나라로 보낼 때였기 때문이다. 어쨌듯 철환주유를 하면서 가장 곤경에 빠졌던 때가 진나라와 채나라에서였다. 이때 그를 따랐던 열 명의 제자 가운데 진나라나 채나라에서 벼슬한 이가 아무도 없었기에 ‘皆不及門也로다’를 ‘벼슬에 오르지 못했도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참고로 열 명의 제자들의 면면을 잠깐씩 들여다본다.
① 안회(顔回, 기원전 521년~기원전490년) : 字는 연(淵).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30세가 적었다. 가정이 빈한하였지만 매우 열심히 학문을 닦아 공자가 안자라 존칭하였을 정도였다. 안회(안자)가 32살에 돌아가셨을 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쳤다(噫라 天喪予삿다 天喪予삿다 : 『論語』「先進篇」)고 통곡할 만큼 탁월한 제자였다. 주역에도 안회를 언급하였는데, 그가 부활할 것을 예언하며 “공자 말씀하시길 안씨의 자식(顔子)이 그 자못 가까울진저(거의 부활할 조짐이 보일진저!) 선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일찍이 알지 않음이 없었으며(어른 알았으며), 그것을 알면 일찍이 다시 행하지 아니하나니(子曰 顔氏之子ㅣ 其殆庶幾乎인뎌 有不善이면 未嘗不知하며 知之ㅣ면 未嘗復行也하나니)”라고 하였다. 안회는 누추한 거리에 살면서 대나무로 엮은 밥그릇에 밥을 담아 쪽박의 물을 먹으면서도(一簞食와 一瓢飮에 在陋巷이라) 조금도 배우는 즐거움이 변치 않으니 공자는 안회야말로 참으로 어질다(賢哉아 回也여)고 거듭거듭 칭찬했다(『論語』雍也편). 노나라의 애공이 공자에게 제자 중 누가 배우기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안회를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단명으로 죽어 지금은 없다. 그후로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들은 바가 없다(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今也則亡하니 未聞好學者也ㅣ라 : 『論語』雍也편)”고 하였을 정도이다. 안회는 또한 은군자적인 면모가 강하여 莊子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② 민자건(閔子騫, 기원전 536~?) : 성은 민, 이름은 손(損), 자는 자건이다.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15세 아래였다. 살이 찐 편이었고 과묵했다고 한다. 효행으로 세상에 알려져 중국 24효 중 하나로 꼽히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로부터 학대를 받았지만 원망하지 않고 효도하고 공경하여 집안이 화목했고 이웃의 칭찬을 받았다. 공자 또한 “孝哉라 閔子騫이여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이로다(효성스럽다, 민자건이여. 사람들이 그 부모형제의 칭찬하는 말에 트집잡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다.
③ 염백우(冉伯牛, 기원전 544년~?) : 성은 염, 이름은 경(耕), 자는 백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7세 아래인데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안회 민자건과 더불어 공자의 면모에 가깝다고 일컬어지나 천형으로 일컬어지는 나환, 곧 문둥병을 앓았다. 이때 공자가 병문안을 하나 염백우가 피하자 남창너머로 손을 잡으며 “이럴 리가 없는데! 운명이로구나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伯牛有疾이어늘 子問之하실새 自牖로 執其手하사 曰亡之러니 命矣夫라 斯人也而有斯疾也할새 斯人也而有斯疾也할새 :『論語』雍也편)라며 탄식하셨다.
④ 중궁(仲弓, 기원전 522년~?) : 성은 염(冉), 이름은 옹(雍), 자는 중궁.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세 적다. 덕행이 높고 박학하여 공자가 왕이 될 재목이라고 칭찬하자 염옹은 출신이 미천함을 한탄했다. 그러자 공자는 “얼룩소 새끼로 털이 붉고 뿔이 바르면 희생으로 쓰려 하지 않아도 산천이 내버려 두겠는가(子謂仲弓曰 ꝃ牛之子ㅣ 騂且角이면 雖欲勿用이나 山川은 其舍諸아 :『論語』雍也편)”하며 반드시 등용되어 쓰일 것이라고 격려했다. 실제로 중궁은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의 재상이 되어 대소사를 잘 다스렸다. 한 가지 약점은 말재주가 없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공자는 "어찌 말재주를 쓰리오, 남을 대함에 입으로써 하면 자주 남에게 미움을 받느니라(焉用寧이리오 禦人以口給하야 屢憎於人하나니 :『論語』公冶長편)”라고 옹호해주었다.
⑤ 재아(宰我, 기원전 522년~?) : 노나라 사람으로 성은 재, 이름은 여(予), 자는 아(我), 또는 재아(宰我)라고도 한다. 재아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언변이 뛰어났지만 게으르고 반항심이 강해 공자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았다. 이에 관해서는『論語』公冶長편에 잘 나타나 있다. “공자 가라사대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으로 다질수가 없으니 재여에 대해 무어라 나무라리오. 공자 가라사대 처음에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그 말을 듣고 그 행동을 믿었는데 지금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그 말을 듣고 그 행동을 살피노니 재여로 해서 이를 바꾸었노라(子ㅣ 曰朽木은 不可雕也며 糞土之牆은 不可杇也니 於予與에 何誅리오 子ㅣ 曰始吾於人也에 聽其言而信其行이라니 今吾於人也에 聽其言而觀其行하노니 於予與에 改是와라)
⑥ 자공(子貢, 기원전 520년~기원전 456년) : 위(衛)나라 사람으로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자는 자공이다. 공자보다 31세 적다. 자공은 대단히 영리해서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도 출세하는 방법을 알았으며, 사교에 능해 아첨하지 않고도 섬기는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또 말을 유창하게 하고,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나 계씨의 종주가 외교회의에 그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論語』에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항상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공자가 轍環天下하는데 재산을 다 쓸 정도로 공자에 대한 존경이 지극했다. 두루 능력이 뛰어나 사람들이 자공에게 공자에 필적할 만하다고 말할 때마다 자공은 극히 차분한 어조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이해가 부족한 소치라고 말하였다. 자공은 공자가 돌아가신 후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각각 대부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제나라에서 죽었다.
⑦ 염유(冉有, 기원전 522년~?) : 노나라 사람으로 성은 염, 이름은 구(求), 자는 자유(子有) 또는 염유라고도 부른다. 화술에 능하여 상대를 부드럽게 설득할 줄 알았으며, 유능한 행정가이자 용맹스런 장수였다. 약삭빠르게 자신에게 이로운 길을 선택하는 그의 재주는 정치적으로 출세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한번은 염구가 공자에게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이 모자랍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지금 자네는 스스로 선을 그으니라(冉求曰非不說子之道언마는 力不足也로이다 子曰 力不足者는 中道而廢하나니 今女는 畫이로다”고 나무랄 정도로 공자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따르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람을 대하든 일을 선택하든 항상 실리를 냉정하게 가늠했던 그는 후에 공자를 떠나 계씨 밑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세금 제도를 시행하는데 있어 계씨와 공자의 의견이 맞섰을 때 염구는 계씨를 도왔는데, 결국 공자에게 이단으로 공격당했다.
⑧ 자로(子路, 기원전 542년~기원전 480년) :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이다. 子路는 자(字)이며, 계로(季路)라고도 한다. 노(魯)나라 변(卞, 지금의 산동성) 출신으로, 무용(武勇)에 뛰어났으며 인품이 호방하고 성실하였다. 무술로써 항상 공자를 수행하였는데 공자는 가끔 그의 만용과 과단한 성격에 대해 꾸지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솔직한 성격으로 공자와 가장 마음이 통했던 제자로 꼽혀지기도 한다. 공자와 자로의 이러한 관계는 논어에 자주 언급된다. 자로는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였으나 위나라 괴외(蕢聵)의 내란 때 전사했다. 이때 그의 시체가 소금에 절여진 것을 안 공자는 매우 슬퍼했다고 했다. 공자보다 9세 연하였다.
⑨ 자유(子游, 기원전 506년~?) : 오나라 사람으로 성은 언(言), 이름은 언(偃), 자는 자유이다. 공자보다 45세나 적은 나이지만,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문학적 소양이 가장 풍부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가장 주요하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의례였다. 자유는 일찍이 노나라 무성의 성주가 되어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어느 날 공자가 자유가 다스리고 있는 무성으로 가다 보니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공자는 흐뭇한 마음으로 자유를 만나 빙그레 미소지으며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고 묻자 자유는 공자의 뜻을 알아차리고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들으오니 군자가 도를 들으면 사람들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공자는 “얘들아, 언의 말이 옳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이었니라”고 하였다(子之武城하사 閒弦歌之聲하시고 夫子莞爾而笑曰 割雞에 焉用牛刀리오 子游對曰 昔者偃也ㅣ 聞諸夫子호니 曰君子學道이면 則愛人이오 小人學道이면 則易使也ㅣ로이다 子曰二三者아 偃之言이 是也ㅣ니 前言戱之耳니라“.
⑩ 자하(子夏, 기원전 507년~?) :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자는 자하. 위나라 온읍 사람으로 공자보다 44세가 적다. 문학에 뛰어났으며 공자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크게 한도를 벗어나지 않는 경미한 도덕 문제에는 다소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공자처럼 절대적 선을 위한 一以貫之의 입장보다는 저속적인 면이 많이 드러난다. 훗날 위나라 문후의 스승이 되었으나 아들이 죽자 통곡을 하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此一節은 林氏ㅣ 以爲皆公孫丑之問이라 하니 是也ㅣ로다 說辭는 言語也ㅣ오 德行은 得於心而見於行事者也ㅣ라 三子ㅣ 善言德行者는 身有之故로 言之親切而有味也ㅣ라 公孫丑ㅣ 言數子ㅣ 各有所長而孔子兼之하시나 然이나 猶自謂不能於辭命이어시늘 今孟子ㅣ 乃自謂我能知言하시고 又善養氣라 하시니 則是兼言語德行而有之시니 然則豈不旣聖矣乎아 하니라 此夫子는 指孟子也ㅣ라 ○程子ㅣ 曰孔子ㅣ 自謂不能於辭命者는 欲使學者로 務本而已시니라
이 한 마디는 임씨가 써 다 공손추의 물음이라 하니 옳도다. 설사는 언어(言은 말의 통칭이고 語는 남의 말에 대답하는 말)요. 덕행은 마음에 얻어 일을 행하는데 나타남이라. 삼자가 덕행을 잘 말하는 것은 몸에 둔 고로 말이 친절하고 맛이 있느니라. 공손추가 말하기를 몇 사람들이(재아, 자공, 염우, 민자, 안연 등) 각각 긴 바(장점)이 있고 공자가 겸하셨으나 그러나 오히려 스스로 사명에는 능치 못하다 하였거시늘 이제 맹자가 이에 스스로 이르시기를 내 능히 말을 안다 하시고 또 기운을 잘 기른다 하시니 즉 이 언어와 덕행을 겸하여 두신다 하셨으니 그런즉 어찌 이미 성인이 아니시랴 하니라. 이에 부자는 맹자를 가르침이라. ○정자 가라사대 공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사명에 능하지 못하다고 하심은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근본에 힘쓰게 하고자 하실 따름이니라.
曰惡ㅣ라 是何言也오 昔者애 子貢이 問於孔子曰夫子는 聖矣乎ㅣ신뎌 孔子ㅣ 曰聖則吾不能이어니와 我는 學不厭而敎不倦也ㅣ로라 子貢이 曰學不厭은 智也ㅣ오 敎不倦은 仁也ㅣ니 仁且智하시니 夫子는 旣聖矣신뎌하니 夫聖은 孔子도 不居하시니 是何言也오
왈 가라사대 아니라. 이 무슨 말인고. 옛적에 자공이 공자에게 물어 가로대 부자는 성인이신저. 공자 가라사대 성인은 내가 능치 못하거니와 나는 배움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가르침을 게을리 아니하노라. 자공이 가로대 배움을 싫어하지 않음은 지혜이고 가르침을 게을리 아니 함은 어짊이니, 인하고 또 지혜로우시니 부자는 이미 성인이신저 하니, 무릇 성인은 공자도 처하지(자처하지) 않으시니 이 무슨 말인고.
惡는 驚歎辭也ㅣ라 昔者以下는 孟子ㅣ 不戡當丑之言하시고 而引孔子子貢問答之辭하사 以告之也ㅣ시니라 此夫子는 指孔子也ㅣ라 學不厭者는 智之所以自明이오 敎不倦者는 仁之所以及物이니 再言是何言也하사 以深拒之시니라
오는 경탄하는 말이라. 석자 이하는 맹자가 감히 추의 말에 당치 못하시고, 공자와 자공이 문답한 말을 이끌어서 써 고하시니라. 여기 부자는 공자를 가리킴이라. 배움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지의 써 스스로 밝음이오 가르침을 게을리 아니함은 인의 써 물건의 미치는 바니, 두 번 이 무슨 말인고를 말하셔서 써 깊이 막으시니라.
昔者애 竊聞之호니 子夏子游子張은 皆有聖人之一體하고 冉牛閔子顔淵은 則具體而微라 하니 敢問所安하노이다
옛적에 그윽히 들으니 자하 자유 자장은 다 성인의 일체를 두고 염우 민자 안연은 곧 (성인의) 체를 갖추었으되 미약하다 하니 감히 처하실 바를 묻잡노이다.
此一節은 林氏ㅣ 亦以爲皆公孫丑之問이라 하니 是也ㅣ로다 一體는 猶一肢也ㅣ라 具體而微는 謂有其全體로대 但未廣耳라 安은 處也ㅣ라 公孫丑ㅣ 復問孟子ㅣ 旣不敢比孔子시면 則於此數子에 欲何所處也ㅣ오 하니라.
이 한마디는 임씨가 또한 써하되 다 공손추의 물음이라 하니 옳도다. 일체는 일지(四肢의 4분의 1)와 같으니라. 몸뚱이를 갖추고도 미약함은 이르되 그 전체를 두었으되 다만 넓지 못함이라. 안은 처함이라. 공손추가 다시 묻기를 맹자가 이미 감히 공자께 비하지 못하시면 곧 이 여러 사람에 어느 곳에 처하고자 하시닛고 하니라.
曰姑舍是하라
가라사대 우선 이를 놔두어라
孟子ㅣ 言且置是者는 不欲以數子所至者로 自處라
맹자가 또한 이를 놔두라고 말씀하신 것은 수자의 이른 바로써 자처하고자 아니하심이라.
曰伯夷伊尹은 何如하니잇고 曰不同道하니 非其君不事하며 非其民不使하야 治則進하고 亂則退는 伯夷也ㅣ오 何事非君이며 何使非民이리오 하야 治亦進하며 亂亦進은 伊尹也ㅣ오 可以仕則仕하며 可以止則止하며 可以久則久하며 可以速則速은 孔子也ㅣ시니 皆古聖人也ㅣ라 吾未能有行焉이어니와 乃所願則學孔子也ㅣ로라
가로대 백이 이윤은 어떠하니잇고. 가라사대 도가 같지 아니하니 그 인군이 아니면 섬기지 아니하며 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아니해서 다스린즉 나아가고 어지러운즉 물러간 이는 백이요, 어디를 섬긴들 인군이 아니며 어디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리오 하며 다스려도 또한 나가며 어지러워도 또한 나간 이는 이윤이오, 가히 써 벼슬함즉 한즉(벼슬을 할만하면) 벼슬하며, 가히 써 그침즉 한즉(그칠 만하면) 그치며, 가히 써 오래함즉 한즉(오래할 만하면) 오래하며, 가히 써 속함즉 한즉 속한 이는 공자이시니 다 옛 성인이라. 내 능히 행함이 있지 못하거니와 이에 원하는 바인즉 공자를 배움이로라.
伯夷는 孤竹君之長子니 兄弟遜國하고 避紂隱居라가 聞文王之德而歸之러니 及武王이 伐紂에 去而餓死하니라 伊尹은 有莘之處士니 湯이 聘而用之하사 使之就桀한대 桀이 不能用이어늘 復歸於湯하니 如是者五에 乃相湯而伐桀也ㅣ라 三聖人事는 詳見此篇之末及萬章下篇하니라
백이는 고죽군의 장자(혹은 ‘고죽나라의 군장 아들’로 해석)니 형제가 나라를 사양하고 주를 피하여 숨어 거하다가 문왕의 덕을 듣고 돌아가더니 무왕이 주를 치는데 미침에 떠나가서 굶어죽으니라. 이윤의 유신이라는 지방의 처사인데 탕이 불러서 쓰사 하여금 걸에게 나아가게 한대 걸이 능히 쓰지 않거늘 다시 탕에게 돌아가니 이와 같이 다섯 번을 함에 이에 탕을 도와서 걸을 침이라. 세 성인(백이 이윤 공자)의 일은 이 책의 끝 만장 하편에 자세히 나타나니라.
遜 : 겸손할 손, 사양할 손 莘 : 나라 이름 신, 고을 이름 신
伯夷伊尹이 於孔子애 若是班乎ㅣ잇가 曰否ㅣ라 自有生民以來로 未有孔子也ㅣ시니라
백이 이윤이 공자에 이와 같이 비등하니잇가. 가라사대 아니라. 생민이 있음으로부터 써 옴으로(사람이 생긴 이래로) 공자만한 이가 있지 않으시니라.
班 : 아롱 반
班은 齊等之貌라 公孫丑ㅣ 問而孟子ㅣ 答之以不同也ㅣ시라
반은 제등한(가지런하고 등등한) 모양이라. 공손추가 물음에 공자가 부동함으로써 대답하심이라.
曰然則有同與잇가 曰有하니 得百里之地而君之면 皆能以朝諸侯有天下ㅣ어니와 行一不義하며 殺一不辜而得天下는 皆不爲也ㅣ리니 是則同하니라
가로대 그런즉 같음이 있나잇가. 가라사대 있으니 백리의 땅을 얻어서 인군하면 다 능히 써 제후를 조회하고 천하를 두거니와 한 의롭지 않음을 행하며 한 죄없는 이를 죽여서 천하를 얻는 것은 다 하지 않으리니 이는 곧 같으니라.
有는 言有同也ㅣ라 以百里而王天下는 德之盛也ㅣ오 行一不義하며 殺一不辜而得天下를 有所不爲는 心之正也ㅣ라 聖人之所以爲聖人은 其根本節目之大者가 惟在於此하니 於此不同이면 則亦不足爲聖人矣라
유는 유동을 말함이라. 백리로써 천하를 왕하는 것은 덕의 성함이오, 한 의롭지 않음을 행하며 한 죄없는 이를 죽여서 천하 얻는 것을 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은 마음의 바른 바라. 성인의 써 성인이 된 바는 그 근본과 절목의 큼이 오직 이에 있으니, 이에 같지 않으면 곧 또한 족히 성인이 되지 못하니라.
曰敢問其所以異하노이다 曰宰我子貢有若은 智足以知聖人이니 汙不至阿其所好ㅣ니라
가로대 감히 그 써 다른 바를 묻잡노이다. 가라사대 재아 자공 유약은 지혜가 족히 써 성인을 아나니 아래해도 그 좋아하는 바에 아첨하는데 이르지 않느니라.
汙 : 아래 와, 더러울 와(오), 汚와 같음.
[본문 해설]
有若(기원전 509년~?)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13살 적으나 모습이 공자와 비슷하다(有若似孔子)하여 공자 사후 문인들이 그를 스승으로 삼자고 했으나 증자가 반대했다.
汙는 下也ㅣ라 三子ㅣ 智足以知夫子之道하니 假使汙下로 必不阿私所好하야 而空譽之니 明其言之可信也ㅣ라
와는 아래라. 삼자(재아 자공 유약)가 지혜가 족히 써 부자의 도를 아나니 가사(가령) 맨 밑에 있어도 반드시 좋아하는 바에 사사로이 아첨해서 공연히 영예롭지 아니하니 그 말의 가히 믿음을 밝히심이라.
宰我ㅣ 曰以予觀於夫子컨댄 賢於堯舜이 遠矣샷다
재아 가로대 나로써 부자를 보건대 요순보다 어짊이 멀으샷다
[본문 해설]
재아가 말하기를 자기에게 선생님인 공자를 평하라 한다면 선생님이 요순보다 훨씬 더 어질다고 하였다.
程子ㅣ 曰語聖則不異하고 事功則有異하니 夫子ㅣ 賢於堯舜은 語事功也ㅣ라 蓋堯舜은 治天下하시고 夫子는 又推其道하사 以垂敎萬世하시니 堯舜之道는 非得孔子면 則後世에 亦何所據哉리오
정자 가라사대 성인을 말한즉 다르지 아니하고 일과 공인즉 다름이 있나니 부자가 요순보다 어짊은 일과 공을 말함이라. 대개 요순은 천하를 다스리시고 부자는 또 그 도를 미루어서 써 만세에 가르침을 드리우시니 요순의 도가 공자를 얻지 아니했으면 곧 후세에 또한 어느 곳에 근거를 두리오.
[앞주 해설]
‘夫子는 又推其道하사 以垂敎萬世하시니’라고 하듯이 공자를 ‘萬世之師’ 곧 만세의 스승이라 부른다. 요순의 도는 공자가 있기에 더욱 빛났고 그러기에 공자의 공이 더 크다고 말하고 있다.
子貢이 曰見其禮而知其政하며 聞其樂而知其德이니 由百世之後하야 等百世之王컨댄 莫之能違也ㅣ니 自生民以來로 未有夫子也ㅣ시니라
자공이 가로대 그 예를 보고 그 정사를 알며 그 음악을 듣고 그 덕을 아나니 백세(3천년)의 뒤로 말미암아서 백세의 왕을 차등하건댄 능히 어길 이 없나니 생민으로부터 써 오므로 부자만한 이가 있지 않으시니라
言大凡見人之禮면 則可以知其政이오 聞人之樂이면 則可以知其德이니 是以로 我從百世之後하야 差等百世之王컨댄 無有能遁其情者니 而見其皆莫若夫子之盛也ㅣ라
말하되 대체로 사람의 예를 보면 곧 가히 써 그 정사를 알 것이오,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곧 가히 써 그 덕을 아니 이로써 내가 백세의 뒤를 좇아 백성의 왕을 차등하건댄 능히 그 실정에 도망할 이가 있지 아니하니(실정을 숨길 수가 없나니, 실정대로 나타나건대) 그 모두가 다 부자의 성함과 같은 이가 없음을 보게 되니라.
有若이 曰豈惟民哉리오 麒麟之於走獸와 鳳凰之於飛鳥와 泰山之於丘垤와 河海之於行潦애 類也ㅣ며 聖人之於民에 亦類也ㅣ시니 出於其類하며 拔乎其萃나 自生民以來로 未有盛於孔子也ㅣ시니라
유약이 가로대 어찌 오직 백성뿐이리오. 기린의 주수에와 봉황의 비조에와 태산의 구질에와 하해의 행료에 같으며, 성인의 백성에 또한 같으시니 그 무리에 뛰어나며 그 모임에 빼어났으나 생민으로부터 써 오므로 공자보다 성대한 이가 있지 아니하시니라.
垤 : 개밋둑 질 潦 : 물흐를 요, 개천 요 萃 : 모일 취(췌)
[본문 해설]
유약이 말하기를 어찌 백성만 놓고 비유할 것인가. 공자가 기린이라면 백성들은 달리는 짐승이고, 공자가 봉황이라면 백성들은 나는 새이며, 공자가 태산이라면 백성들은 언덕이나 개미둑이며, 공자가 하해라면 백성들은 잠깐 흘렀다 말라붙는 개천물과 같으며(비유되며), 성인과 백성이 또한 같으시니 모든 인류에서 공자 성인은 뛰어났으며, 그 모인 가운데서 빼어났으나 백성들이 세상에 난 이래로 공자보다 성대한 이가 있지 아니하다.
麒麟은 毛蟲之長이오 鳳凰은 羽蟲之長이라 垤은 蟻封也ㅣ라 行潦는 道上無源之水也ㅣ라 出은 高出也ㅣ오 拔은 特起也ㅣ라 萃는 聚也ㅣ라 言自古聖人이 固皆異於衆人이나 然이나 未有如孔子之尤盛者也ㅣ라 ○程子ㅣ 曰孟子此章은 擴前聖所未發이시니 學者ㅣ 所宜潛心而玩索也ㅣ니라
기린은 모충의 어른이오, 봉황은 우충의 어른이라. 질은 개미둑이라. 행료는 길위에 근원없는 물이라. 출은 높이 남이오, 발은 특기(특별히 일어남)이라. 취는 모임이라. 말하되 예로부터 성인이 진실로 다 중인과 다르나 그러나 공자의 더욱 성함과 같은 이가 있지 않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맹자의 이 장은 전성의 발하지 못한 바를 확대하심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마음을 잠기고 구경하고 찾아야(침잠완색) 할 바이니라.
蟻 : 개미 의
公孫丑章句上 제3장 해설
<제3장>
孟子ㅣ 曰以力假仁者는 覇니 覇必有大國이오 以德行仁者는 王이니 王不待大라 湯이 以七十里하시고 文王이 以百里하시니라
맹자 가라사대 힘으로써 인을 빌리는 자는 패니, 패는 반드시 대국을 둬야 하고,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자는 왕이니, 왕은 큼을 기다리지 않느니라. 탕임금이 칠십리로써 하시고 문왕이 백리로써 하시니라.
力은 謂土地甲兵之力이라 假仁者는 本無是心而借其事하야 以爲功者也ㅣ라 覇는 若齊桓晉文이 是也ㅣ라 以德行仁이면 則自吾之得於心者를 推之하야 無適而非仁也ㅣ라
력은 토지와 갑병의 힘을 이름이라. 가인이란 본래 이 마음이 없다가 그 일을 빌려서 써 공을 삼음이라. 패는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같은 이가 이라. 덕으로써 인을 행하면 곧 스스로 내가 마음에 얻은 것을 미루어서 가는 데마다 인하지 않음이 없음이라.
以力服人者는 非心服也ㅣ라 力不贍也ㅣ오 以德服人者는 中心이 悅而誠腹也ㅣ니 如七十子之服孔子也ㅣ라 詩云自西自東하며 自南自北이 無思不服이라 하니 此之謂也ㅣ니라
힘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자는 마음으로 굴복함이 아니라 힘이 족하지 못함이오, 덕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자는 중심이 기뻐서 성심으로 복종함이니 칠십 자의 공자에 복종함과 같음이라. 시경에 이르기를 서로부터 하고 동으로부터 하며 남으로부터 하고 북으로부터 함이 생각에 굴복지 않음이 없다하니 이를 이름이니라.
贍은 足也ㅣ라 詩는 大雅文王有聲之篇이라 王覇之心이 誠僞不同이라 故로 人所以應之者ㅣ 其不同이 亦如此라 ○鄒氏ㅣ 曰以力服人者는 有意於服人而人不敢不服이오 以德服人者는 無意於服人而人不能不服이니 從古以來로 論王覇者多矣로대 未有若此章之深切而著明者也ㅣ니라
섬은 족함이라. 시는 대아 문왕 유성편이라. 왕이나 패의 마음이 정성과 거짓이 같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써 응하는 바가 그 같지 않음이 또한 이와 같으니라. ○추씨 가로대 힘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자는 뜻이 사람을 굴복시키는데 있어서 사람이 감히 굴복지 않음이 없음이오, 덕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자는 뜻이 사람을 굴복시키는데 없지만 사람이 능히 굴복치 아니치 아니하니 예로 좇아 써 옴으로 왕과 패를 논한 자 많되 이 장같이 심절(깊고 간절)하고 저명(나타나고 밝음)함이 있지 아니하니라.
公孫丑章句上 제4장 해설
<제4장>
孟子ㅣ 曰仁則榮하고 不仁則辱하나니 今에 惡辱而居不仁이 是猶惡濕而居下也ㅣ니라
맹자 가라사대 어진즉 영화롭고 어질지 못한즉 욕되나니 이제에 욕을 미워하되 어질지 못한데 거함이 이것은 습함을 미워하면서 아래에 거함과 같으니라
好榮惡辱은 人之常情이라 然이나 徒惡之하고 而不去其得之之道면 不能免也ㅣ라
영화를 좋아하고 욕을 미워함은 사람의 떳떳한 정이라. 그러나 한갓 미워만 하고 얻는 방법을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면치 못하니라.
如惡之댄 莫如貴德而尊士ㅣ니 賢者ㅣ 在位하며 能者ㅣ 在職하야 國家ㅣ 閒暇ㅣ어든 及是時하야 明其政刑이면 雖大國이라도 必畏之矣리라
만약 미워할진댄 덕을 귀히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만 같음이 없으니 어진 자가 위에 있으며 능한(기술있고 재주가 있는) 자가 직책에 있어서 국가가 한가하거든 이 때를 미쳐서 그 정사와 형벌을 밝히면 비록 대국이라도 반드시 두려워하리라.
此는 因其惡辱之情하야 而進之以彊仁之事也ㅣ라 貴德은 猶尙德也ㅣ라 士는 則指其人而言之라 賢은 有德者ㅣ니 使之在位면 則足以正君而善俗이오 能은 有才者ㅣ니 使之在職이면 則足以修政而立事라 國家閒暇는 可以有爲之時也ㅣ라 詳味及字면 則惟日不足之意를 可見矣라
이는 그 욕을 미워하는 실정으로 인하여 어짊을 강조하는 일로써 나아감이라. 귀덕은 덕을 숭상함과 같음이라. 사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말함이라. 현은 덕이 있는 자니 위에 있게 하면 곧 족히 써 인군을 바르게 하고 풍속을 선하게 할 것이오, 능은 재주가 있는 자니 직책에 있게 하면 곧 족히 써 정사를 닦고 일을 세움이라. 국가 한가는 가히 써 하옴이 있는 때라. ‘미칠 급’자를 자세히 음미해보면 즉 오직 날이 족하지 못한(惟日不足) 뜻을 가히 보리라.
詩云迨天之未陰雨하야 徹彼桑土하야 綢繆牖戶ㅣ면 今此下民이 或敢侮予아 하야늘 孔子ㅣ 曰爲此詩者ㅣ 其知道乎뎌 能治其國家ㅣ면 誰敢侮之리오 하시니라
시에 이르기를 “하늘이 음우치 아니함에 미쳐서 저 뽕나무 뿌리껍질을 벗겨서 창문을 얽고 얽매면 이제 이 아래 백성이 혹 감히 나를 업신여기랴” 하야늘 공자 가라사대 이 시를 한 자, 그 도를 안저! 능히 그 국가를 다스리면 누가 감히 업신여기리오 하시니라.
迨 : 미칠 태 徹 : 거둘 철 土 : 흙 토, 여기서는 ‘뿌리 두’ 綢 : 얽을 주 繆 : 얽을 무, 삼 열 단 무 牖 : (남쪽으로 난) 창문 유 侮 : 업신여길 모
[본문 해설]
음우는 그늘지고 비오는 것, 곧 컴컴하게 구름끼었다가 비오는 것을 말하는데 未陰雨이므로 비가 오지 않을 때를 말한다. 이때 새가 뽕나무 뿌리 껍질을 벗겨 집을 짓는데 누가 그것을 감히 업신여길 것인가. 공자는 이런 시를 지은 자에 대해 참으로 도를 안다고 하였다. 국가가 별다른 큰 일이 없을 때 여론을 모아 정사와 형벌을 바로 세우면 아무도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
詩는 豳風鴟鳩之篇이니 周公之所作也ㅣ라 迨는 及也ㅣ라 徹은 取也ㅣ라 桑土는 桑根之皮也ㅣ라 綢繆는 纒緜補葺也라 牖戶는 巢之通氣出入處也ㅣ라 予는 鳥自謂也ㅣ라 言我之備患이 詳密如此어늘 今此在下之人이니 或敢有侮予者乎아 周公이 以鳥之謂巢如此로 比君之爲國하야 亦當思患而預防之하시니 孔子讀而贊之하사 以爲知道也ㅣ라 하시니라
시는 빈풍 치효편이니 주공의 지음이라. 태는 미침이라. 철은 취함이라. 상두는 뽕나무 뿌리의 껍질이라. 주무는 얽어매고 보완하고 이음이라. 유호는 새집의 기운이 통하고 출입하는 곳이라. 여는 새가 스스로 이름이라. 말하되 내가 근심을 방비함이 자세하고 주밀함이 이와같거늘 이제 이 아래 있는 사람이 혹 감히 나를 업신여기는 자 있으랴. 주공이 새가 새집을 짓는 것이 이와 같음으로써 인군이 나라를 하는데 견주어서 또한 마땅히 근심을 생각하고 예방케 하심이니 공자가 읽고 칭찬을 하사 써 도를 안다고 하시니라.
鴟 : 소리개 치 鴞 : 올빼미 효 纒 : 얽을 전, 纏(돌릴 전, 묶을 전, 얽을 전)의 俗字 緜 : 얽을 면, 햇솜 면 葺 : 이을 즙, 기울 즙
[앞주 해설]
‘思患而預防之’는 『주역』 水火旣濟괘 大象傳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가 다 된 旣濟의 상을 보고 본받아서 앞으로 旣濟가 다시 未濟로 갈 것을, 즉 앞으로 환란이 닥칠 것을 미리 생각해서 예방을 튼튼히 한다는 뜻이다.
今國家ㅣ 閒暇ㅣ어든 及是時하야 般樂怠傲하나니 是는 自求禍也ㅣ니라
이제 국가가 한가하거든 이때를 미쳐서 반락하고 태오하나니 이는 스스로 화를 구함이니라.
般 : 일반 반, 여기서는 ‘즐거울 반’
言其縱欲偸安도 亦有日不足也ㅣ라
말하되 그 욕심에 방종하고(따르고) 편안함을 도둑질하는 것도 또한 날을 족하게 여기지 않음이라.
偸 : 훔칠 투
禍福이 無不自己求之者ㅣ니라
화와 복이 몸으로부터 구하지 않는 자 없느니라.
結上文之意라
상문의 뜻을 맺음이라.
詩云永言配命이 自求多福이라 하며 太甲애 曰天作孼은 猶可違어니와 自作孼은 不可活이라 하니 此之謂也ㅣ니라
시에 이르기를 “길이 생각하여 명에 배합함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함이라” 하며, 태갑에 가로대 “하늘이 지은 얼은 오히려 가히 피하거니와 스스로 지은 얼은 가히 도망하지 못한다” 하니 이를 이름이니라.
詩는 大雅文王之篇이라 永은 長也ㅣ라 言은 猶念也ㅣ라 配는 合也ㅣ라 命은 天命也ㅣ라 此는 言福之自己求者라 太甲은 商書篇名이라 孽은 禍也ㅣ라 違는 避也ㅣ라 活은 生也ㅣ니 書에 作逭이니 逭은 猶緩也ㅣ라 此는 言禍之自己求者라
시는 대아 문왕의 편이라. 영은 긺이라. 언은 생각함과 같음이라. 배는 합이라. 명은 천명이라. 이는 복을 몸으로부터 구함을 말함이라. 태갑은 (『서경』) 상서 편명이라. 얼은 화라. 위는 피함이라. 활은 생함이니 『서경』에는 도망함으로 지었으니 환은 느림(늦춤)과 같음이라. 이는 화를 몸으로부터 구함을 말함이라.
逭 : 도망할 환
公孫丑章句上 제5장 해설
<제5장>
孟子ㅣ 曰尊賢使能하야 俊傑이 在位則天下之士ㅣ 皆悅而願立於其朝矣리라
맹자 가라사대 어진 이를 높이고 능한 이를 부려서 준걸이 位에 있은즉 천하의 선비가 다 기뻐하여 그 조정에 서기를 원하리라.
俊傑은 才德之異於衆者라
준걸은 재덕이 무리와 다른 이라.
市에 廛而不征하며 法而不廛則天下之商이 皆悅而願藏於其市矣리라
저자에 집자리만 하고 취하지 아니하며, 법으로만 하고 집자리를 아니한즉 천하의 상인이 다 기뻐하여 그 시장에 저장하기를 원하리라.
廛 : 집자리터 전, 가게 전 征 : 칠 정, 여기서는 세금을 취한다는 뜻
[본문 해설]
집자리는 집자리세를 받는 것을 말하며 취한다 함은 세금을 받는다는 뜻이다. 전체적으로 내용을 다시 훓어보면 다음과 같다. 시장을 세우고 그 자릿세만 받고 물건을 팔고 난 뒤 남는 이문에서 세금을 거두지 아니하며, 그것을 저자의 법으로 삼고 또 집 자릿세를 과도하게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상인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 저자에 물건을 쌓아놓고 장사하기를 원할 것이다.
廛은 市宅也ㅣ라 張子ㅣ 曰或賦其市地之廛하고 而不征其貨하며 或治以市官之法하고 而不賦其廛하니 蓋逐末者ㅣ 多則廛而抑之하고 少則不必廛也ㅣ라
전은 시택(점포)라. 장자 가로대 혹 그 시지의 집자리를 부과하고 그 재물은 취하지 아니하며, 혹 시관의 법으로써 다스리고 그 집자리는 부세하지 아니하니, 대개 끝을 좇는 자가 많은즉 집자리를 해서 억누르고 적은즉 반드시 집자리를 아니 하나니라.
[앞주 해설]
예로부터 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인을 가장 끝에 두었기에 逐末者는 상인, 곧 장사꾼을 말한다. 한편 장사꾼은 이문 곧 물건값의 끄트머리를 좇기에 ‘逐末者’라 표현했으니 재미있게 음미해볼 단어이다.
關애 譏而不征則天下之旅ㅣ 皆悅而願出於其路矣리라
관문에 살피고 (관세를) 취하지 아니한즉 천하의 나그네가 다 기뻐해서 그 길에 나감을 원하리라.
解見前篇이라
해석이 전편(양혜왕장 하편)에 나타나니라.
耕者를 助而不稅則天下之農이 皆悅而願耕於其野矣리라
경작하는 자를 도와만 주고 공세를 아니한즉 천하의 농부가 다 기뻐해서 그 들에 경작하기를 원하리라.
[본문 해설]
‘耕’를 보면 ‘우물 정(井)’에 ‘쟁기 뢰(耒)’를 더한 글자이다. 옛날에는 토지를 ‘우물 정’자처럼 한 칸에 백 묘(畝)씩 아홉 칸으로 나누는 井田制를 시행하였다. 한 가구당 백 묘씩 나눠주고(私田) 농사를 지어먹게 하되 세금을 거두지 아니하고, 가운데 한 칸 백 묘만 公田으로하여 공동경작케 하고 이것으로 세금을 대신했다.
但使出力하야 以助耕公田하고 而不稅其私田也ㅣ라
다만 하여금 출력(노동력을 내게)케 해서 써 공전을 도와 경작하게 하고 그 사전에서는 세금을 취하지 않느니라.
廛無夫里之布則天下之民이 皆悅而願爲之氓矣리라
집자리에 부와 리의 포가 없은즉 천하의 백성이 다 기뻐해서 (그 나라의) 백성 되기를 원하리라.
氓 : 백성 맹, 다른 지방이나 나라에서 이주해온 백성으로 흔히 백성들이라 할 때는 天民, 人民, 賤民, 農民에서 볼 수 있듯이 ‘民’으로만 쓰고, 정치와 관련지을 때에만 氓으로도 쓴다. 다시 말해 정치를 잘못하면 백성들이 도망한다는 뜻의 ‘氓’이다.
[본문 해설]
夫는 私田인 백 묘에서 생산되는 곡식에 부과하는 세금을 말하며, 里는 한 마을 단위인 25집에서 짜내는 베를 세금으로 거두는 것을 말한다. 夫란 한 것은 글자 자체가 ‘한 지아비’란 뜻으로 곧 農夫를 가리킨다. 곧 한 집에서 농사짓는 사전인 백 묘에 부과하는 농지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
周禮에 宅不毛者는 有里布하고 民無職事者는 出夫家之征이라 하니 鄭氏ㅣ 謂宅不種桑麻者를 罰之하야 使出一里二十五家之布하며 民無常業者를 罰之하야 使出一夫百畝之稅와 一家力役之征也ㅣ라 하니라 今戰國時에 一切取之하야 市宅之民이 己賦其廛하고 又令出此夫里之布이니 非先王之法也ㅣ라 氓은 民也ㅣ라
주례에 집안에 불모한 자는 里와 布를 두고, 백성이 직사(맡은 일)가 없는 자는 부와 가에 정(세금)을 내게 한다 하니, 정씨 이르되 집안에 뽕나무와 삼을 심지 않은 자를 벌해서 하여금 한 마을 25가에 포를 내게 하고, 백성이 상업(항상하는 일)이 없는 자를 벌하여 하여금 한 지아비 백묘의 세금과 한 집안 역사(부역)하는 세금을 내게 한다 하니라. 이제 전국 때에 일제히 취해서 시택의 백성이 이미 그 집자리를 부과하고 또 하여금 이 부와 리의 포를 내게 하니 선왕의 법이 아니라. 맹은 백성이라.
[앞주 해설]
宅不毛者의 뜻은 뽕나무나 삼을 심지 않아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땅, 곧 집자리를 말한다. 집집마다 뽕나무나 삼을 심어 베를 짜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그 벌로 25집마다 일정하게 베를 세금으로 거둬들였다.
信能行此五者則鄰國之民이 仰之若父母矣리니 率其子弟하야 攻其父母는 自生民以來로 未有能濟者也ㅣ니 如此則無敵於天下하리니 無敵於天下者는 天吏也ㅣ니 然而不王者ㅣ 未之有也ㅣ니라
진실로 능히 이 다섯 가지를 행한즉 이웃나라의 백성이 우러르기를 부모같이 하리니 그 자제를 거느려서 그 부모를 치게 하는 것은 생민으로부터 써 옴으로 능히 건널 자 있지 아니하니 이와 같은 즉 천하에 적이 없으리니 천하에 적이 없는 자는 천리(하늘의 아전, 하늘이 낸 임금)니 그러고 왕 못할 자 있지 아니하니라.
[본문 해설]
다섯 가지는 ①尊賢使能 俊傑在位 ②市廛而不征 法而不廛 ③關譏而不征 ④耕者助而不稅 ⑤廛無夫里之布를 말한다. 이 다섯 가지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정치를 잘하는 내 나라의 인군을 부모같이 여길 것이다. 그런데 그 이웃나라의 인군이 내 나라를 친다는 것은 그 자제를 이끌고 그 부모를 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니 성공할 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곧 천하에 대적할 자 없으니 이는 곧 하늘이 낸 인군으로 왕 못할 자 없을 것이다.
呂氏 曰奉行天命을 謂之天吏요 廢興存亡은 惟天所命이라 不敢不從이니 若湯武ㅣ 是也ㅣ니라 ○此章은 言能行王政이면 則寇戎도 爲父子요 不行王政이면 則赤子도 爲仇讐니라
여씨 가로대 천명을 봉행하는 이를 천리라 이르고, 폐하고 흥하고 존하고 망하는 것은 오직 하늘이 명하는 바라. 감히 좇지 아니치 못할지니 탕임금과 무왕 같은 이가 이 분(천리)이시라. ○이 장은 능히 왕정을 행하면 곧 도적떼들도 부자가 되고, 왕정을 행하지 못하면 곧 갓난아이도 원수가 됨을 말하니라.
[앞주 해설]
인군이 위에 든 다섯 가지를 따라 정치를 하면 도적떼들도 임금을 아버지로 여기지만, 그렇지 못하면 갓난아이 곧 백성들 모두가 원수가 된다.
公孫丑章句上 제6장 해설
<제6장>
孟子ㅣ 曰人皆有不忍人之心하니라
맹자 가라사대 사람이 다 사람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두나니라.
[본문 해설]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란,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거나 죽는 것을 보고 고소해서 웃거나 발로 더 밀어붙이거나 하는 마음은 없다는 뜻이다. 꼭 사람을 해친다는 것보다도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측은한 마음이 있다는 의미이다.
天地는 以生物로 爲心하고 而所生之物은 因各得夫天地生物之心하야 以爲心하니 所以人皆有不忍人之心也ㅣ라
천지는 생물로써 마음을 삼고, 생하는 바의 물건은 각각 무릇 천지 생물의 마음을 얻음으로 인해서 써 마음을 삼으니 써 사람이 다 사람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둔 바라.
先王이 有不忍人之心하샤 斯有不忍人之政矣시니 以不忍人之心으로 行不忍人之政이면 治天下는 可運之掌上이니라
선왕이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두사 이에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정사를 두시니,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으로써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정사를 행하면 천하를 다스림은 가히 손바닥 위의 운전함이니라.
言衆人은 雖有不忍人之心이나 然이나 物欲이 害之하야 存焉者寡하니라 故로 不能察識而推之政事之間이오 惟聖人이아 全體此心하야 隨感而應故로 其所行이 無非不忍人之政也ㅣ시니라
말하되 중인은 비록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두나 그러나 물욕이 해해서 존하는 자가 적으니라. 그러므로 능히 살펴 알아서 정사의 사이에 미루어 나가지 못하고, 오직 성인이라야 이 마음을 온전히 체득해서 감동함에 따라 응하는 고로 그 행하는 바가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정사가 아님이 없음이라.
[앞주 해설]
體此心은 仁之體를 말한다. 주역 건괘 문언전에 “君子ㅣ 體仁이 足以長人이며(군자가 인을 체득함이 족히 사람의 어른이며)”라는 뜻과 통한다.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는 今人이 乍見孺子ㅣ 將入於井하고 皆有怵惕惻隱之心하나니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ㅣ며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ㅣ며 非惡其聲而然也ㅣ니라
써한 바 이르되 사람이 다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두었다 함은, 이제 사람이 갑자기 젖먹이 아이가 장차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다 출척하고 측은한 마음을 두나니, 써 사귐을 유자의 부모와 맺으려는 바가 아니며, 또 명예를 향당 붕우에게 요구하려 하는 바가 아니며, 그 소리를 싫어서 그렇게 함이 아니니라.
乍 : 잠깐 사 孺 : 젖먹이 유 怵 : 슬퍼할 출 惕 : 슬퍼할 척 內 : 안 내, 여기서는 ‘맺을 납’
[본문 해설]
不忍人之心과 관련한 맹자의 유명한 어귀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그 예를 든 것이다. 갑자기 어린 아이가 엉금엉금 기어서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아이구 어쩌나’ 하며 안타까워 깜짝 놀라는 출척(怵惕)의 마음과 동시에 깜짝 놀라면서 ‘아이구 안됐다’하는 측은(惻隱)의 마음이 발현되어 아이를 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당신 자식을 구해주었소’ 하며 그 젖먹이의 부모로부터 칭찬 듣고 덕이라도 보려고 한 것이 아니며, 어린 아이를 구해주었다고 향당이나 붕우에게 명예를 떨치려고 하는 것도 아니며, 어린 아이가 물에 빠져 죽는데도 구해주지 않았다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혹은 잔인하다는 소리가 싫어서 구해준 것도 아닌 것이다.
乍는 猶忽也ㅣ라 怵惕은 驚動貌라 惻은 傷之切也ㅣ오 隱은 痛之深也ㅣ니 此卽所謂不忍人之心也ㅣ라 內은 結이요 要는 求요 聲은 名也ㅣ니 言乍見之時에 便有此心하야 隨見而發이요 非由此三者而然也ㅣ라 程子ㅣ 曰滿腔子는 是惻隱之心이니라 謝氏 曰人須是識其眞心이니 方乍見孺子入井之時에 其心怵惻이 乃眞心也ㅣ라 非思而得이며 非勉而中이니 天理之自然也ㅣ오 內交 要譽 惡其聲而然이면 則人欲之私矣라
사는 홀연과 같음이라. 출척은 놀라서 움직이는 모양이라. 측은 상함이 간절함이오, 은은 아픔이 깊음이니 이것이 즉 이른바 ‘不忍人之心’이라. 납은 맺음이오, 요는 구함이요, 성은 (잔인하다는) 이름이니, 갑자기 볼 때에 문득 이러한 마음을 두어서 보는데 따라 발함이요,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함이 아님을 말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창자에 가득함이 이 측은지심이니라. 사씨 가라사대 사람이 모름지기 이 그 참된 마음을 아나니, 바야흐로 갑자기 어린 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볼 때에 그 마음이 출척하고 측은해지는 것이 이에 진심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얻으며 힘쓰지 않아도 맞음이니 천리의 자연이오, 교분을 맺으려 하거나 명예를 구하려거나 그 나쁜 소리를 싫어해서 그러한 것이면 곧 인욕의 사사로움이라.
由是觀之컨댄 無惻隱之心이면 非人也ㅣ며 無羞惡之心이면 非人也ㅣ며 無辭讓之心이면 非人也ㅣ며 無是非之心이면 非人也ㅣ니라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수오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시비의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니라.
羞는 恥己之不善也ㅣ오 惡는 憎人之不善也ㅣ오 辭는 解使去己也ㅣ오 讓은 推以與人也ㅣ오 是는 知其善而以爲是也ㅣ오 非는 知其惡而以爲非也ㅣ니 人之所以爲心이 不外乎是四者라 故로 因論惻隱而悉數之라 言人若無此면 則不得謂之人이니 所以明其必有也ㅣ니라
수는 자기의 불선함을 부끄러워 함이오, 오는 남의 불선함을 증오함이라. 사는 (나에게 있는 것을) 풀어서 하여금 몸에서 가게 함이오, 양은 밀어서 써 남에게 줌이라. 시는 그 선함을 알고서 써 옳다 함이오, 비는 그 악함을 알고서 써 그르다 함이니 사람이 써 마음을 삼은 바가 이 네 가지에 바깥하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측은을 논함으로 인하여 다 셈이라. 말하되 사람이 만약 이것이 없으면 곧 실어곰(얻어) 사람이라 이르지 못할지니 써 그 반드시 있음을 밝힌 바니라.
惻隱之心은 仁之端也ㅣ오 羞惡之心은 義之端也ㅣ오 辭讓之心은 禮之端也ㅣ오 是非之心은 智之端也ㅣ니라
측은한 마음은 인의 단이요, 수오하는 마음은 의의 단이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이요, 시비하는 마음은 지의 단이니라.
惻隱 羞惡 辭讓 是非는 情也ㅣ오 仁義禮知는 性也ㅣ오 心은 統性情者也ㅣ라 端은 緖也ㅣ라 因其情之發하야 而性之本然을 可得而見이니 猶有物在中而緖見於外也ㅣ니라
측은 수오 사양 시비는 情이요, 인의예지는 性이오, 심은 성정을 거느림이라. 단은 실마리라. 그 정의 발함을 인하여 성의 본연을 가히 얻어 나타나니 물건이 가운데 있어 실마리가 밖에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人之有是四端也ㅣ 猶其有四體也ㅣ니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는 自賊者也ㅣ오 謂其君不能者는 賊其君者也ㅣ니라
사람이 이 사단을 둠이 그 사체가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두고도 스스로 능치 못하다 이르는 자는 스스로 해하는 자요, 그 인군이 능치 못하다 이르는 자는 그 인군을 해치는 자니라
四體는 四肢니 人之所必有者也ㅣ라 自謂不能者는 物欲이 蔽之耳라
사체는 사지니 사람이 반드시 둔 바라. 스스로 능치 못하다 이름은 물욕이 가림이라.
凡有四端於我者를 知皆擴而充之矣면 若火之始然하며 泉之始達이니 苟能充之면 足以保四海오 苟不充之면 不足以事父母ㅣ니라
무릇 사단이 내게 있음을 알아서 다 넓혀 채워나가면, 불이 비로소 타오르며, 샘이 비로소 솟아나는 것과 같으니, 진실로 능히 채우면 족히 써 사해를 보존하고, 진실로 채우지 못하면 족히 써 부모도 섬기지 못하느니라.
然 : 그럴 연, 여기서는 ‘불탈 연’, 燃과 같음
擴은 推廣之意라 充은 滿也ㅣ라 四端이 在我하야 隨處發見하니 知皆卽此推廣하야 而充滿其本然之量이면 則其日新又新하야 將有不能自已者矣리니 能由此而遂充之면 則四海雖遠이나 亦吾度內에 無難保者요 不能充之면 則雖事之至近이나 而不能矣리라 ○此章所論은 人之性情과 心之體用이 本然全具하야 而各有條理如此하니 學者ㅣ 於此反求하야 黙識而擴充之면 則天之所以與我者를 可以無不盡矣리라 ○程子ㅣ 曰人皆有是心로대 惟君子라야 爲能擴而充之하나니 不能然者는 皆自棄也ㅣ라 然이나 其充與不充은 亦在我而已矣라 又曰四端에 不言信者는 旣有誠心爲四端이면 則信在其中矣라 愚는 按四端之信이 猶五行之土하야 無定位하며 無成名하며 無專氣호대 而水火金木이 無不待是以生者라 故로 土於四行에 無不在하고 於四時則寄王焉하니 其理ㅣ 亦有是也ㅣ니라
확은 미루어 넓히는 뜻이라. 충은 가득함이라. 사단이 내게 있어서 곳에 따라 발현하니 알아서 다 이에 나가 미루어 넓혀서 그 본연의 도량을 충만하면 곧 그 날로 새롭고 또 새로워서 장차 능히 스스로 말지(그치지) 않음이 있으리니, 능히 이로 말미암아 드디어 채워나가면 곧 사해가 비록 멀지만 또 내 법도 내에서 보존하기 어려움이 없고 능히 확충하지 못하면 곧 비록 일이 지극히 가까우나 능치 못하리라. ○이 장에 논한 바는 사람의 성정과 마음의 체용이 본연에 온전히 갖추어져 각각 조리가 있음이 이와 같으니, 배우는 자가 이에 돌이켜 구해서 묵묵히 알아서 넓혀 채워나가면 곧 하늘이 내게 써 준 바를 가히 써 다하지 않음이 없으리라. ○정자 가라사대 사람이 다 이 마음이 있되 오직 군자라야 능히 넓혀서 채워나가니 능히 그러하지 못한 자는 다 스스로 포기함이라. 그러나 그 채우고 다못 채우지 못함은 또한 내게 있을 따름이라. 또 가라사대 사단에 ‘信’을 말하지 않음은 이미 성심이 있어 사단을 하면 곧 ‘信’이 그 가운데 있으리라. 어리석은 내가 상고하건대 사단의 信이 오행의 土와 같아서 정한 위도 없으며 이룬 이름도 없으며 오로지 한 기운도 없되 수화금목이 이(土)를 기다려서 써 나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토가 사행에 있지 않음이 없고, 사시에 곧 기왕(왕절에 부치니, 토에 의존)하니 그 이치가 또한 이와 같으니라.
[앞주 해설]
‘土於四行에 無不在’란 뜻은 12地支로 나눠본 12달 속에 土가 모두 배속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木旺之節인 봄은 寅(1월) 卯(2월) 辰(3월)인데, 寅卯는 木에 속하고 辰은 土에 속하며, 火旺之節인 여름은 巳(4월) 午(5월) 未(6월)로 巳午는 火에 속하고 未는 土에 속하며, 金旺之節인 가을은 申(7월) 酉(8월) 戌(9월)로 申酉는 金에 속하고 戌은 土에 속하며, 水旺之節인 겨울은 亥(10월) 子(11월) 丑(12월)로 亥子는 水에 속하고 丑은 土에 속한다. 석 달씩 배속된 계절 속을 살펴보면 끝 달마다 모두가 토가 간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3월 辰土 속에는 地藏艮이라 하여 木이 들어 있으며, 6월 未土속에는 火가, 9월 戌土 속에는 金이, 12월 丑土 속에는 水가 들어 있으니 土가 들어 있지 않는 곳이 없다. 날수로 따진다면 계절별로 석달씩이니 30x3월x4계절=1년 360일이 되는데, 계절마다 토에 18일씩을 내주니 토왕지절은 18x4하여72일이 되고 각 계절마다 18일씩을 빼앗겼으니 실제로는 90-18하여 72일이 된다. 이렇게 4계절을 5행으로 나눠보더라도 72x5하여 일년 周天常數 360일이 됨을 알 수 있으니 이를 정자는 ‘於四時則寄王’이라고 표현하였다.
公孫丑章句上 제7장 해설
<제7장>
孟子ㅣ 曰矢人이 豈不仁於函人哉리오마는 矢人은 惟恐不傷人하고 函人은 惟恐傷人하나니 巫匠도 亦然하니 故로 術不可不愼也ㅣ니라
맹자 가라사대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투구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리오마는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이 상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투구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이 상할까 두려워하나니, 무당과 널짜는 공장도 또한 그러하니, 그러므로 기술을 가히 삼가지 아니치 못하느니라.
函 : 투구 함
函은 甲也ㅣ라 惻隱之心을 人皆有之하니 是는 矢人之心이 本非不如函人之仁也ㅣ라 巫者는 爲人祈祝하야 利人之生하고 匠者는 作爲棺槨하야 利人之死하니라
함은 갑옷(투구)이라. 측은한 마음을 사람이 다 두었으니 이는 화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본디 투구 만드는 사람같이 어질지 못함이 아니라. 무당은 사람을 위하여 빌어주어서 사람의 생을 이롭게 하고, 널짜는 사람은 관곽을 짜서 사람의 주검을 이롭게 하나니라.
孔子ㅣ 曰里仁이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 焉得智리오 하시니 夫仁은 天之尊爵也ㅣ며 人之安宅也ㅣ어늘 莫之禦而不仁하니 是는 不智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이인이 아름다우니 가리되(가려서 사는데) 인에 처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라 하리오 하시니, 무릇 인은 하늘의 높은 벼슬이며 사람에게는 편안한 집이어늘 막는 이가 없으되 어질지 아니하니 이는 지혜롭지 못함이니라.
里有仁厚之俗者를 猶以爲美하니 人이 擇所以自處而不於仁이면 安得爲智乎아 此는 孔子之言也ㅣ라 仁義禮智는 皆天所與之良貴로대 而仁者는 天地生物之心을 得之最先而兼統四者니 所謂元者는 善之長也ㅣ라 故로 曰尊爵이라 在人은 則爲本心全體之德하야 有天理自然之安하며 無人欲陷溺之危하니 人當常在其中而不可須臾離者也ㅣ라 故로 曰安宅이라 此는 又孟子ㅣ 釋孔子之意하사 以爲仁道之大如此어늘 而自不爲之하니 豈非不智之甚乎아 하시니라
마을에 인후한 풍속이 있음을 오히려 써 아름답다 하니, 사람이 써 스스로 처하는 바를 가리되 어진데 아니하면 어찌 얻어 지혜라 하랴. 이는 공자의 말씀이라. 인의예지는 다 하늘이 준 바 양귀함이로대, 인은 천지 생물의 마음을 가장 먼저 얻어서 네 가지(인의예지)를 겸하여 거느리니, 이른바 (주역에서 말하는) 원은 선의 어른이라. 그러므로 가로대 높은 벼슬이라. 사람에게 있어서는 곧 본심 전체의 덕이 되어서 천리 자연의 편안함이 있으며 인욕 함닉의 위태함이 없으니 사람은 마땅히 항상 그 가운데에 있어서 가히 잠깐이라도 떠나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가로대 안택이라. 이는 또 맹자가 공자의 뜻을 해석해서 써 인도의 큼이 이와 같거늘 스스로 하지 아니하니 어찌 지혜롭지 않음이 심하지 않으랴 하시니라.
不仁不智라 無禮無義면 人役也ㅣ니 人役而恥爲役하논지 由弓人而恥爲弓하며 矢人而恥爲矢也ㅣ니라
어질지 아니해서 지혜롭지 아니하니라. 예도 없고 의도 없으면 사람의 노역함이니, 사람에게 노역하며 노역함을 부끄러워하논지! 궁인이 활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시인이 화살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함과 같으니라.
由 : 말미암을 유, 여기서는 ‘같을 유’
以不仁故로 不智요 不智故로 不知禮義之所在니라
어질지 못함으로써 한 고로 지혜롭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고로 예의의 소재를 아지 못하니라.
如恥之인댄 莫如爲仁이니라
만일에 부끄러워할진댄 인을 함만 같지 못하니라
此亦因人愧恥之心而引之하야 使志於仁也ㅣ라 不言智禮義者는 仁該全體하니 能爲仁則三者ㅣ 在其中矣라
이는 또한 사람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인하여 이끌어서 하여금 인에 뜻하게 함이라. 지예의를 말하지 아니함은 인이 전체를 포함했으니 능히 인을 한즉 세 가지는 그 가운데 있음이라.
該 : 포함할 해
仁者는 如射하니 射者는 正己而後에 發하야 發而不中이라도 不怨勝己者ㅣ오 反求諸己而已矣니라
인은 활쏘는 것과 같으니 활을 쏘는 자는 몸을 바로 한 뒤에 발사하여, 발사하고 맞지 않더라도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 저 몸에서 구할 따름이라.
爲仁이 由己니 而由人乎哉아
인을 함이 내 몸에서 말미암았음이니 다른 사람에게서 말미암았으랴.
公孫丑章句上 제8장 해설
<제8장>
孟子ㅣ 曰子路는 人이 告之以有過則喜하더라
맹자 가라사대 자로는 사람이 허물로써 고한즉 기뻐하더라
憙其得聞而改之하니 其勇於自修ㅣ 如此라 周子ㅣ 曰仲由는 憙聞過라 令名無窮焉하더니 今人은 有過어든 不喜人規하논지 如諱疾而忌醫하야 寧滅其身而無悟也하니 嘻라 程子ㅣ 曰子路는 人이 告之以有過則喜하니 亦可爲百世之師矣로다
그 얻어 듣는 것을 기뻐해서 고치니 그 스스로 닦는데 용감함이 이와 같으니라. 주자 가라사대 “중유(자로의 字)는 허물 듣는 것을 기뻐하니라. 어진 이름이 궁함이 없더니 이제 사람은 허물이 있거든 남의 규정을 기뻐하지 않는지, 병을 꺼리면서 의원을 꺼려하는 것과 같아서 차라리 그 몸을 멸해도 깨달음이 없으니, 슬프도다!” 정자 가라사대 “자로는 사람이 허물이 있음으로써 고한즉 기뻐하니 또한 가히 백세(3천년)의 스승이 될 만하도다.”
禹는 聞善言則拜러시다
우임금은 선한 말을 들은즉 절하더시다.
書에 曰禹拜昌言이라 하니 蓋不待有過하고 而能屈己하야 以受天下之善也ㅣ라
서경에 가로대 우임금이 창성한(선한) 말에 절했다 하니 대개 허물이 있음을 기다리지 않고 능히 몸을 굴해서 써 천하의 선을 받으시니라.
大舜은 有大焉하시니 善與人同하샤 舍己從人하시며 樂取於人하야 以爲善이러시다
대순은 큼이 있더시니 선을 사람과 더불어 같이하사 자기를 버리고 사람을 좇으시며 사람에게 취해서 써 선을 함을 즐거워하더시다.
言舜之所爲ㅣ 又有大於禹與子路者는 善與人同하사 公天下之善而不爲私也ㅣ시니라 己未善이면 則無所係吝하야 而舍己以從人하고 人有善이면 則不待勉强하야 而取之於己하니 此는 善與人同之目也ㅣ라
순임금이 하는 바는 또한 우임금과 다못 자로보다 큼이 있는 것은 선을 사람과 더불어 같이하사 천하의 선을 공변되이 하고 사사로이 하지 아니함을 말함이라. 자기가 선하지 못하면 곧 매인 바에 인색함이 없어 자기를 버리고 써 사람을 좇고 남이 선이 있으면 면강(힘쓰고 어거지로 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몸에 취하니 이는 선을 사람과 더불어 한 가지하는 조목이라.
自耕稼陶漁로 以至爲帝히 無非取於人者ㅣ러시다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고기잡음으로부터 써 황제가 되는데 이르히 남에게서 취하지 않음이 없더시다.
舜之側微에 耕于歷山하시고 陶于河濱하시고 漁于雷澤하시니라
순임금이 미천하실 적에 역산에서 경작하시고 하빈에서 질그릇 구으시고 뇌택에서 고기를 잡으심이라.
取諸人以爲善이 是ㅣ 與人爲善者也ㅣ니 故로 君子는 莫大乎與人爲善이니라
저 사람에게 취해서 써 선을 함이 이는 다른 사람이 선을 함을 돕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다른 사람이 선을 함을 돕는 것보다 큼이 없느니라.
與는 猶許也ㅣ며 助也ㅣ라 取彼之善하야 而爲之於我면 則彼益勸於爲善矣리니 是는 我助其爲善也ㅣ라 能使天下之人으로 皆勸於爲善이면 君子之善이 孰大於此리오 ○此章은 言聖賢樂善之誠이 初無彼此之間故로 其在人者는 有以裕於己하고 在己者는 有以及於人하니라
여는 허락이며 돕는다는 것과 같으니라. 저의 선을 취해서 나에게 하면 곧 저 선을 하는데 더욱 권함이니 이것은 내가 그 선을 함을 도움이니라. 능히 천하의 사람으로 하여금 다 선을 하는데 권하면 군자의 선이 무엇이 이보다 크리오. ○이 장은 성현들의 선을 즐거워하는 정성이 처음에는 피차의 사이가 없는고로 그 남에게 있는 것은 써 내 몸에 여유있게 하고 내 몸에 있는 것은 써 남에게 미치게 함이 있음을 말씀함이라.
公孫丑章句上 제9장 해설
<제9장>
孟子ㅣ 曰伯夷는 非其君不事하며 非其友不友하며 不立於惡人之朝하야 不與惡人言하더니 立於惡人之朝하야 與惡人言호대 如以朝衣朝冠으로 坐於塗炭하며 推惡惡之心하야 思與鄕人立에 其冠不正이어든 望望然去之하야 若將浼焉하니 是故로 諸侯ㅣ 雖有善其辭命而至者ㅣ라도 不受也하니 不受也者는 是亦不屑就已니라
맹자 가라사대 백이는 그 (어진) 인군이 아니면 섬기지 아니하며, 그 (사귈만한) 벗이 아니면 사귀지 아니하며,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지 아니해서 악한 사람과 더불어 말하지 않더니,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서 악한 사람과 더불어 말하되 조의와 조관으로써 도탄에 앉은 것 같이하며, 악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생각에 시골사람과 더불어 섬에 그 갓이 바르지 않거든 망망연히 가서 장차 더럽힐 것같이 하니, 이런 고로 제후가 그 사명을 잘하는 이가 있어 이르더라도 받지 아니하니, 받지 아니함은 이 또한 나아감을 깨끗이 여기지 않음이라.
浼 : 더러울 매 屑 : 깨끗할 설, 결백할 설
塗는 泥也ㅣ라 鄕人은 鄕里之常人也ㅣ라 望望은 去而不顧之貌라 浼는 汙(汚)也ㅣ라 屑은 趙氏 曰潔也ㅣ라 하고 說文에 曰動作切切也ㅣ라 하니 不屑就는 言不以就之爲潔하야 而切切於是也ㅣ라 已는 語助辭라
도는 진흙이라. 향인은 향리의 보통사람이라. 망망은 가면서 돌아보지 않는 모양이라. 매는 더러움이라. 설은 조씨 가로대 결이라 하고 설문에 가로대 동작을 절절(急急)하게 함이라 하니, 불설취는 나아감으로써 결백하게 여겨서 이를 절절하게 하지 아니함이라. 이는 어조사라.
柳下惠는 不羞汙君하며 不卑小官하야 進不隱賢하야 必以其道하며 遺佚而不怨하며 阨窮而不憫하더니 故로 曰爾爲爾오 我爲我ㅣ니 雖袒裼裸裎於我側이나 爾焉能浼我哉리오 하니 故로 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하야 援而止之而止하니 援而止之而止者는 是亦不屑去已니라
유하혜는 더러운 인군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소관을 낮게 여기지 아니하며, 나아가되 어짊을 숨기지 아니하여 반드시 그 도로써 하며, 유일해도 원망하지 아니하며 액궁해도 민망히 여기지 않더니 그러므로 가로대 ‘너는 너고 나는 나니 되니 비록 내 곁에서 웃통 벗고 벌거벗으나 네 어찌 능히 나를 더럽히리오’ 하니 그러므로 유유연히(여유있게 웃으며) 더불어 함께 해서 스스로 잃지 않아 잡아당기어 그치게 하면 그치니, 잡아당겨 그치게 하면 그치는 것은 이 또한 감을 깨끗이 여기지 아니함이라.
汙 : 더러울 오, 汚와 같음 遺 : 끼칠 유, 버릴 유 佚 : 잃을 일 阨 : 곤할 액 窮 : 곤궁할 궁 袒 : 얼맬 단, 한쪽 어깨만을 벗은 모습 裼 : 웃통 벗을 석 裎 : 벌거숭이 정 焉 : 어조사 언, 여기서는 ‘어찌 언’ 偕 : 함께 해 援 : 잡아당길 원
柳下惠는 魯大夫展禽이니 居柳下而諡惠也ㅣ라 不隱賢은 不枉道也ㅣ라 遺佚은 放棄也ㅣ라 阨은 困也ㅣ라 憫은 憂也ㅣ라 爾爲爾로 至焉能浼我哉는 惠之言也ㅣ라 袒裼은 露臂也ㅣ라 裸裎은 露身也ㅣ라 由由는 自得之貌라 偕는 並處也ㅣ라 不自失은 不失其正也ㅣ라 援而止之而止者는 言欲去而可留也ㅣ라
유하혜는 노나라 대부 전금이니 버드나무 아래에 거하고 시호는 혜라. 어짊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은 도를 굽히지 않음이라. 유일은 방기(내치고 버림)이라. 액은 곤함이라. 민은 근심이라. 爾爲爾로부터 焉能浼我哉까지는 혜의 말이라. 단석은 팔뚝을 드러냄이라. 나정은 몸을 드러냄이라. 유유는 스스로 얻는 모양이라. 해는 아울러 처함이라. 스스로 잃지 않음은 그 바름을 잃지 않음이라. 잡아당기어 그치게 해서 그침은 가고자 했다가 가히 머무름을 말함이라.
臂 : 팔 비
孟子ㅣ 曰伯夷는 隘하고 柳下惠는 不恭하니 隘與不恭은 君子ㅣ 不由也ㅣ니라
맹자 가라사대 백이는 좁고 유하혜는 공손치 못하니 애와 다못 불공은 군자가 말미암지 않느니라.
隘 : 좁을 애
隘는 狹窄也ㅣ오 不恭은 簡慢也ㅣ라 夷惠之行이 固皆造乎至極之地나 然이나 旣有所偏則不能無弊라 故로 不可由也ㅣ라
애는 협착함이라. 불공은 간만(너무 간략하고 오만함)이라. 백이나 유하혜의 행실이 진실로 다 지극한 땅에 나아가나 그러나 이미 편벽된 바가 있은즉 능히 폐단이 없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가히 말미암지 않느니라.
孟子集註卷之三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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