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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 제사 이 풍경, 베를린 간다

굴어당 2012. 5. 1. 20:23

종갓집 제사 이 풍경, 베를린 간다

사진작가 이동춘, 베를린 한국문화원서 15일부터 '宗家' 展
20년간 전국 종가·서원 촬영… "마지막 기록 남기자" 설득
제사에 초점 맞춘 50여점 유럽인 상대 한국 전통 첫선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인 아버지는 생전에 틈만 나면 제 사회과부도를 들여다보셨어요. 어느 길로 가면 고향에 빨리 갈 수 있을까, 늘 그것만 궁리하셨지요."

사진작가 이동춘(51·사진)씨는 20년 가까이 전국의 종가와 서원을 찾아다니며 제사와 일상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자들 고생시키는 종갓집이 왜 그렇게 끌렸느냐"고 물었더니 해방 후 여동생만 데리고 월남했다는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남쪽에서 뿌리가 없는 것을 늘 힘들어했어요.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린 뒤엔 환자복을 입은 채 고향에 간다며 북한산을 오르곤 하셨어요. 그래 봤자 약수터 정도지만." 이 때문에 맏이였던 자신도 어려서부터 가족의 뿌리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5월 15일부터 2주간 독일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선비 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전(展)을 갖는다. 선비 정신의 고향이라 할 만한 안동 종가와 서원을 찍은 사진 50여점을 유럽인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자리다. 종갓집의 일상 가운데 특히 제사에 초점을 맞췄다. "종가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힘든 게 제사입니다. 100명이 넘는 참가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요. 종가마다 이런 제사를 해마다 열대여섯 번씩 치릅니다."

낙동강변 서원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경북 안동 병산(屛山)서원에 서애 류성룡 선생 향사(享祀)를 지내기 위해 유사(儒士)들이 밤늦게까지 모여 있다. /사진작가 이동춘 제공
외부인이 종갓집에 카메라를 들이대기란 쉽지 않았다. 수시로 종택을 찾아 어른들과 얼굴을 익혔다. 말길이 열리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기록을 남기자"고 설득했다. 부엌에 들어가 나물도 다듬고, 어른이 비질하면 함께 거들었다. 할머니들을 모시고 목욕탕에 가 등을 밀거나 장 보러 가는 종부(宗婦)들을 태우고 시장에도 함께 다녔다. 처음에는 종가에 돈을 내고 묵었지만 요즘은 인사하고 "어느 방 쓸까요" 할 만큼 친근해졌다. 1년의 절반은 안동에 살다시피 한다. 명절 때면 먼저 전화를 걸어 "이번에 우리 집에 오느냐"고 묻는 집도 여럿이다.

퇴계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가는 유성종 도산서원 원장의 뒷모습. /이동춘씨 제공
그래도 가끔씩 퇴짜 맞을 때가 있다. 문중 어른께 허락을 받았지만 외부에서 제사를 지내러 온 방문객들이 마뜩잖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제사 지내는데 혼백에 방해되니까 나가달라고 해서 조용히 나왔어요."

선비의 고장 안동이지만 세태 변화는 막을 수 없다. '한옥 체험'이 유행하면서 종갓집 종손을 민박집 종업원처럼 마구 부리는 손님들도 있다. 아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버려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종가도 더러 있다. 제사 도중 제문을 읽다가 전화를 받으며 "지금 제사 지내니까 끊어"라고 말하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다.

독일 전시에 나서는 작품 가운데 그의 마음에 꼭 드는 사진이 하나 있다. 2010년 가을 퇴계 이황 제사를 기록하러 갔다가 얻었다. 퇴계 묘소를 참배하고 내려오는 유성종 도산서원 원장의 뒷모습이다. "두 팔을 내저으며 활기 있게 내려가는 선생의 뒷모습이 꼭 옛 선비의 자취를 보는 것 같았어요. 얼굴은 마음대로 꾸밀 수 있지만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수 없잖아요. 그 느낌이 좋았어요."

신구대 사진학과 출신인 이동춘씨는 10년간 디자인하우스 출판사에서 사진을 찍어 왔고, 2010년 '한옥, 오래 묵은 오늘'전을 열었다. 그는 "베를린 전시를 통해 석조 건축물 위주의 유럽에 친환경적인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목조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