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대루 빈 공간의 美·나룻배·비포장 도로…
자연을 사랑한 옛 선조의 마음 그대로구나
안동 하회마을은 여전히 많은 답사객들의 종착지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십여 년간 하회마을의 구들장 위에서 대여섯 번 정도는 밤을 보냈던 것 같다. 쉰내가 나는 이불을 덮고 잿빛으로 변해버린 장판 위에서 자면 뭐 어떤가? 파전을 곁들인 동동주에 얼큰히 취해버린 채 잠들면 될 일이었다. 수탉들이 발악하는 소리에 할 수 없이 새벽에 깨면 또 어떤가? 잃어버린 아침잠이 아깝지 않았다.
게으른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마을 한 바퀴를 산책했다. 낙동강의 물안개 향기로 가득한 새벽길은 많지 않은 나이에도 옛 마을의 매력을 다 이해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해줬다.
요즘은 하회마을 정화작업의 결과로 동네가 깔끔해졌다. 수많은 식당과 민박집들은 마을 밖에 새로 조성한 하회장터로 자리를 옮겼다. 개인적으로 하회장터의 인공적인 분위기는 적응이 쉽지 않지만, 하회마을 자체는 도로 옛 정취를 찾은 듯해서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실 내 안동행의 진정한 목적이 하회마을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곳은 최종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서울서부터 먼 길을 달렸던 피로를 푸는 장소에 더 가까웠다.
만대루에서 앉아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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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항상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대학생 시절 우연히 알게 되었고, 여전히 시간만 허락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신을 벗고 만대루에 오를 땐 여전히 긴장되고 설렌다.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건축가들에게 줄곧 제1의 답사지로 꼽혀왔다. 작은 건물이지만 여러 번 들러도 그 건축을 온전히 답사하지 못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공간의 힘이 느껴진다. 서원도 서원이지만 그 앞의 낙동강 백사장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마저 부럽지 않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발길을 그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 이르기 전 좁은 샛길로 빠져 구불구불 들어가면 있다. 요즘이야 안내판이 잘 돼 있지만 예전에는 긴장하고 입구를 찾아야 했다. 물론 하회마을에서 걸어가는 길도 있다. 인적이 참 드물어 한적함을 느끼기엔 최고의 산책로다. 다만 딴생각을 하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기억력이 나빠 서원의 역사 자체에 대한 지식은 없다. 다만 그 공간이 좋았다. 대문을 지나 누각 밑을 통과해 마당으로 가는 진입 과정도 좋았고, 대청마루에 앉아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만대루가 좋았다.
사실 만대루의 건축 구조는 극히 단순하다.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도 2층도 특별한 장치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비어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 비어 있음이 서원의 영역을 가득 채우는 역할을 한다. 비움에 의해 서원 앞에 펼쳐진 낙동강 물줄기와 백사장과 그 너머 절벽의 풍경이 안마당까지 유입된다.
건축의 여러 가지 역할 중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인간과 인간이 사는 주변과의 관계 맺음이 아닐까 한다. 대자연 속에 위치한 서원이기에 서원 건축에 있어서 주위의 자연환경과 내부 영역 사이의 관계 설정 역시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병산서원은 만대루라는 공간을 최소한의 부재만 남긴 채 모두 없애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부용대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본 안동 하회마을 전경.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옛사람들 마음이 건축으로 형상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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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좋다고 무조건 뻥 뚫어버리는 것은 너무 직설적이다. 그렇다고 밀실처럼 막아두기엔 앞의 전망이 아깝다. 열어두되 막았고 막아놓되 여는 만대루의 건축 구조는 정반합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물론 이 우리 건축의 명작을 감상하는 데에 복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최근 들렀던 병산서원엔 이미 유명세를 탄 장소의 업보로 인해 수많은 지뢰들이 있었다. 일단 정신없이 소리치며 만대루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그렇다. 아이들의 부모들이 들으면 발끈할 일이겠지만 그 예의 없음은 만대루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때론 어른들이 더 떠들기도 한다) 낙동강변 백사장에는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대여하는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들의 엔진소리와 바퀴자국 역시 만대루를 슬프게 만든다.
병산서원 초입에 펼쳐진 풍산들판도 4대강 사업으로 현재는 전체가 파헤쳐져 있는 상태다.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할 길이 없지만 과연 그곳이 오랜 시간을 이어온 밭이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다만 딱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병산서원에 이르는 길이 여전히 포장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산자락을 따라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이어지는 4㎞ 정도의 도로를 지나려면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영원히 포장이 안 되어 예의가 없는 존재들은 아예 발길을 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병산서원의 만대루 그 자체로 답사를 마무리 지어도 좋겠지만 한 군데 꼭 들러보는 곳이 더 있다. 바로 부용대라는 절벽 꼭대기다. 안동 쪽에서부터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거나 하회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인데 그곳에 올라 내려다보는 하회마을의 모습이 꽤 좋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우리 선조의 마음이 건축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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