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어당

굴어당의 한시.논어.맹자

http:··blog.daum.net·k2gim·

한국의 파워라이터]한문학자 안대회 교수,글 주영재·사진 강윤중 기자

굴어당 2012. 9. 10. 17:50

한국의 파워라이터]한문학자 안대회 교수

 

ㆍ“고서점·경매사이트서 조선후기 희귀자료 찾아내”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51)는 2007년 어느 날 고서를 구하기 위해 들른 경매 사이트에서 눈에 띄는 고서 한 권을 발견했다. 책의 제목은 <북상기(北廂記)>. 몇 장밖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책의 가치를 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국문학사에서 <동상기> 이후 두 번째로 발굴된 희곡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性) 희곡으로 19세기 조선 문학의 지형도를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61세의 노인과 18세 여인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설정부터 노골적인 성애 묘사까지 <북상기>는 유교 사회의 금기를 뛰어넘은 작품이었다. 그의 <북상기> 발굴은 이후 고려대 도서관에서 발견된 또 다른 희곡인 <백상루기>와 함께 한국 고전 희곡의 역사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 교수는 그간 학계에서 소홀히 한 조선후기 산문에 주목해 새로운 사료들을 발굴해 냈고, 이를 오늘날의 언어로 대중에게 소개해왔다. <벽광나치오>(휴머니스트)와 <정조의 비밀편지>(문학동네) 등 그의 저서들은 꾸준히 1만부 이상 팔리고 있다. 인문서 저자로서 이 정도의 독자층을 갖고 있는 이는 흔치 않다. <정조의 비밀편지>를 편집한 문학동네의 구민정씨는 “어려운 인문학 내용을 시의성 있게, 오늘날 대중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써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탄탄한 사료 발굴에 기초하고 인문, 역사, 철학, 심리를 넘나드는 치밀함으로 18세기 조선후기 다양한 지식인의 내공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글쓰기의 또 다른 전범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비가 내리던 지난 4일 그를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2학기 강의를 막 시작한 주여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아 분주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저술에 시의성이 있다고 평한 데 대해 “딱히 요즘의 정치나 사회 분위기에 맞추려 노력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단지 그는 “‘고전은 고전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전을 풀어썼다”고 설명했다. 현대를 살아가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고전이 주는 사유의 힘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자신이 고전에 관심을 두는 이유를 자신의 ‘근원을 파는 성미’에서 찾았다. “현대보단 고대로 올라가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비극과 중국 선진시대의 글을 많이 읽었죠. 국문학을 선택하면서는 자연히 한문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고전을 대중성있게 소개하기 위해 문체에 신경을 썼다. 단문을 구사하려 노력했고 번역체가 아닌 우리말 어법을 최대한 지키려 했다.

지금까지 번역서를 포함해 20여권의 책을 낸 그는 다작의 비결을 ‘자료의 힘’이라고 했다. “글을 빨리 쓰는 편이긴 하지만 제 생각을 장황하게 펼치기보다 자료를 통해 이야기를 하는 편입니다. 자료가 없었다면 이렇게 많이 못 썼을 거 같고 그러다 보니 번역서가 많은 편이죠.” 그는 대학 도서관과 고서점의 고서, 경매에 나온 고서들을 꼼꼼히 살펴 남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책들을 많이 소개했다. 그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정조의 명으로 화원들이 그린 <성시전도>에 문신들이 붙인 시가 있다. 이전까지 서너명의 것만 남아있던 것에 새로 11명을 찾아냈다. 지난해에는 조선후기 노비 시인인 정초부의 시집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사료 발굴은 그 안에 묻혀 있던 인물들의 삶과 생각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수많은 문헌 속에서 관련된 기록과 자료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이지만 그는 벌써 이런 작업이 여러 번이다. 정초부를 비롯해 조선후기 문인으로 벼루 만들기, 회화, 천문학, 수학 등 여러 기술과 학문에 능했던 정철조, 검무로 18세기를 빛낸 최고의 춤꾼이었던 운심 등이 그 예이다. 그의 손끝에서, 기록 하나 남기지 않은 이들의 삶이 되살아났다. 그는 “학계에서 연구되지 않은 참신한 주제를 찾아서 이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글로 만들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때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정조가 정적으로 알려졌던 심환지에게 보낸 300여통의 편지들도 찾아냈다. 그는 이를 <정조의 비밀편지>라는 책으로 대중에게 소개해 성군으로만 알려졌던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게 해 학계와 대중의 큰 관심을 불렀다.

그의 서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고서의 영인본들이다. 또 18~19세기를 중심으로 연구에 필요한 고서도 수십권을 갖고 있다. 이덕무와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의 시선집인 <한객건연집>과 조선후기 시인인 조수삼 시집 <추재기이> 등이다. <한객건연집>은 사본으로 여러 명의 손을 거친 듯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좋은 대목들에 동그란 비점(批點)이 쳐져 있었다. “이 중 가장 아끼는 책은 <북상기>입니다.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유일본이라 아끼고 있죠. 학생들도 볼 수 있도록 기본적인 고서는 갖추려고 합니다.”

이번 학기에 그가 개설한 과목은 ‘소품문 강독’이다. 소품문은 우리나라에서 18~19세기에 창작된 독특한 산문 문체이다. 소비사회로 접어든 조선후기 사회의 여러 면면들을 미인론, 잠언인 청언소품, 기인의 기록 등의 주제로 살필 계획이다. 벌써 강의계획서를 요청하거나 청강을 하겠다는 출판사 편집자들이 잇따른다. 강의 내용을 책으로 내왔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한 해 동안 매주 문학동네의 온라인 카페에 연재한 ‘궁극의 시학’은 매회 100여개의 댓글이 달리는 호응을 얻었다. 중국의 <24시품>을 중심으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동아시아의 독특한 미학 전통을 고궁의 건축, 사대부의 건축, 생활속의 미학까지 연결시켜 분석했다. 조선시대 아동 한시를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쓰는 작업도 시작했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진행 중인 <택리지>의 정본 작업도 번역서로 출간할 생각이다. 또 네이버 ‘오늘의 캐스트’에 ‘18세기의 맛’을 기획해 오는 11일부터 격주 화요일마다 연재할 계획이다.


‘정조의 비밀편지’등 24권 펴내

안대회 교수는 지금까지 번역서와 공저를 포함해 24권의 책을 냈다. 한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한문학의 감성과 사유의 세계를 대중적인 필치로 풀어내는 책들이다.

<정조의 비밀편지>(2010·문학동네)는 정조어찰을 제왕학, 정치학 측면에서 풀어썼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300여통의 편지를 중심으로 성군으로만 알려졌던 인간 정조의 내면을 밝혔다. 신하들을 편지로 다스리고, 회유하며 때로는 거친 언사마저 마다하지 않았던 정조의 통치술에서 마키아벨리즘을 볼 수 있다. 현재 5쇄까지 찍어 1만부 가까이 팔렸다.

그가 학술서로 대표작으로 꼽는 것은 <18세기 한국한시사 연구>(1999·소명)이다. 18세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결정적인 초기저작이자 그 이후 나온 많은 논문의 근거가 되었던 저작이다. <벽광나치오>(2011·휴머니스트)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시기로 평가받는 18세기를 살며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해 일가를 이룬 문화계 인물을 조명한다. 제목은 벽(癖·고질병자), 광(狂·미치광이), 나(懶·게으름뱅이), 치(痴·바보), 오(傲·오만한 자)라는 뜻이다. <고전 산문 산책>(2008·휴머니스트)은 조선후기 천재 작가 23명을 소개하고 그들이 쓴 160여편의 산문을 뽑아 우리말로 옮기고 그 내용과 미학적 의미를 밝힌 책이다.

안 교수는 “서민층은 조선시대의 공백이었다”며 “학계에서 관심 밖에 있었기 때문에 더 연구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2010·한겨레출판)은 이런 관점에서 재담꾼, 구기 전문인, 광대, 전기수와 같은 저잣거리 예인들을 소개한다.

공저인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2011·북스코프)는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을 다룬 책이다. ‘위리안치’는 유배객이 머무는 집의 지붕 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유배객을 유폐시키는 형벌이다. 저자들은 14개의 유배의 섬을 찾아, 유배객들의 삶의 궤적을 좇았다. <한서열전> <소화시평> <추재기이> <원야> 등 한문 고전을 국내 처음으로 번역한 책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