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공사 실명제… '刻字(각자) 성돌'로 책임 관리,원선우 기자
서울시, 왕조실록과 石文 비교… 자세한 성곽 축성 내역 확인
- 서울 성곽 개축 당시 공사 구간 책임자와 감독자 이름, 축성 구간, 작업 인원과 완공연도 등을 새긴‘각자 성돌’모습. /서울시 제공
1396년(태조 5년) 처음으로 조성된 서울 성곽은 1422년(세종 4년)과 1704년(숙종 30년) 대규모로 개축됐다. 당시 조정은 공사 구간을 97개로 나눈 뒤 돌마다 구간 책임·감독자 성명, 축성 구간, 작업 인원 출신지, 완공 연도를 새겨넣는 '공사실명제'를 실시했다. 문제가 생기면 해당 구간 감독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각자 성돌'로 불리는 이 돌은 세월이 지나면서 심하게 풍화돼 석문 자체를 판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서울시 연구진은 각자 성돌의 석문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과 전수(全數) 대조하는 '교차 분석'을 벌였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서울과학고 뒤편에서 발견된 '○谷(곡)'이라고 새겨진 성돌의 경우 연구진이 실록에 기록된 '谷'자를 모두 검색, 이 글자가 '조선왕조실록'의 세종대왕 시기에 있었던 '�谷(흡곡)'임을 알아냈다. 세종 당시 강원도 흡곡 주민들이 건설했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승정원일기'와 교차 분석했을 때는 공사 경위도 나타났다. '庚辰十月日(경진10월일)/看役金昌練(간역김창연)'이라고 새겨진 백악산 백악마루 동쪽 구간의 성돌은 순조 당시 김창연이라는 사람이 감독해 만든 구간이라는 의미다. 이 공사를 승정원일기에서 찾아보자 경진년(1820년·순조 20년) 5월 24일자에 '훈련도감이 맡고 있는 백악산 동측 첫 번째 성랑 근처 체성 9칸여가 무너졌다'며 '울타리를 치고 조속히 수축해야 한다'는 병조(兵曹)의 보고가 있다. 이를 김창연 감독관이 작업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 결과 문헌과 현장이 일치하는 구간이 숙종 12개, 순조 34개 등 모두 52개라고 밝혔다. 문인식 한양도성도감 관리팀장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 덕분에 서울 성곽의 역사성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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