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비림(碑林)박물관에 갔다. 왕희지·소동파를 비롯한 명사·명필들 글씨가 새겨진 비석 1만1000여 점을 모아놓은 곳이다. 일행이 비문을 소리 내 읽으며 해독했더니 중국인들이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하자 "어떻게 한국인이 중국 고문(古文)을 읽을 수 있느냐"며 놀랐다. 지금 중국인에게 비문은 암호나 다름없다. 1964년 마오쩌둥 지시로 만든 간체자만 배웠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흔히 '평생 다 할 수 없는 세 가지'를 꼽는다. "음식을 다 먹어보지 못하고, 전국을 다 여행하지 못하며, 글자를 다 배우지 못한다." 중국의 한자는 8만5000자가 넘는다. 워낙 많고 복잡해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20세기 초 '아큐정전'을 쓴 문학가·사상가 루쉰(魯迅)도 임종을 앞두고 한탄했다. "한자가 사라지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漢字不滅 中國必亡)."
▶중국 국영 CCTV 프로그램 '한자 받아쓰기 대회'에서 쉬운 글자조차 못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홍콩 신문이 보도했다. 무작위로 뽑은 방청객 중에 '두껍다'는 뜻의 후(厚) 자를 정확히 쓴 사람은 절반이 안 됐다. 어려운 두꺼비 섬(蟾) 자는 30%만 제대로 썼다. 신문은 "디지털 시대에 중국인의 한자 쓰기가 퇴보하고 있다"고 했다. 제필망자(提筆忘字)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펜을 들었는데 글자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인 한자 해독 능력은 공산 정권 출범 후 '간체화' 때 급격히 떨어졌다. 이제 간체자마저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상은 '2차 단절'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기기가 일상을 지배하며 언어 생활을 망치는 현상은 중국만이 아니다. 우리도 '계좌번호'를 '괴자번호', '외숙모'를 '애숭모' '해괴망측'을 '회개망칙'으로 쓰는 청소년이 적지 않다. TV엔 '맨붕' '깜놀' 같은 '국어 파괴' 자막이 거침없이 뜬다. 어느 나라건 '디지털 문맹(文盲)'이 골칫거리다.
[만물상] 한자 못 쓰는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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