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拗와 拗救 - ≪唐詩三百首≫를 중심으로,姜 聲 尉

굴어당 2015. 2. 26. 01:19

 

 

拗와 拗救 - ≪唐詩三百首≫를 중심으로

 


姜 聲 尉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1-001-9501-05
pp.57-78


1.들어가는 말

오늘날 唐詩 入門書로 널리 읽히고 있는 ≪唐詩三百首≫는 康熙·乾隆 年間의 孫洙 (1711-1778)가 家學을 위한 敎本으로 엮은 책이다. 그의 이름보다 더 잘 알려진 그의 號 ' 塘退士'는 기실 그가 사용하였던 두 개의 號를 합칭한 것이다.1) 孫洙에 의하면 이 책 을 엮을 당시까지 아동들의 詩學書로는 ≪千家詩≫가 널리 유행하였다 한다. 그는 ≪千 家詩≫가 工拙에 관계없이 五·七言의 律詩와 絶句만을 취한 데다 唐人의 詩와 宋人의 詩가 섞여 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唐詩 가운데 널리 人口에 膾炙되고 있는 名篇만 을 각 詩體別로 얼마간씩 뽑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라 하였다.2) 짧은 그의 自序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初學者의 詩學(특히 作詩)에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엮었 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왕 作詩를 위한 것이라면 특정 詩體에 구애됨이 없이 衆體를 두 루 갖추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千家詩≫에는 수록하고 있는 宋詩를 배 제하였던 것은 아마 그가 唐詩를 시의 正宗으로 여겼던 때문일 것이다.

孫洙의 原書는 이미 볼 수가 없으며 가장 오래된 版本으로는 道光 15년(1835)에 간행 된 章燮의 注疏本을 들 수 있다.3) 淸 말엽의 上元女史 陳婉俊이 補註한 ≪唐詩三百首≫ 에는 孫洙의 原書에 있던 旁批가 실려 있다. 이 旁批는 일반적인 注釋이라기 보다는 詩 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詩(詩句)의 大義, 素材, 構成 등을 기술한 것이다. 하지 만 詩律에 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唐詩三百首≫의 注釋書로 가장 널리 읽히는 책으로는 단연코 邱燮友의 ≪新 譯唐詩三百首≫(臺灣 三民書局印行)를 들 수 있다.4) 이 책이 갖는 강점으로는 충실한 注 釋과 語譯, 作法分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는 이 책이 오 늘날 손쉽게 구해볼 수 있는 대부분의 주석서와는 달리 詩律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는 데 있다.

邱燮友는 중복되는 詩律에 대해서도 거의 每篇마다 설명할 정도로 독자를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몇 가지 詩律, 특히 拗를 둘러싼 詩律에 대해서는 다소 일관되지 못하거나 오류를 범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本稿는 바로 이 점을 주시하여 ≪唐 詩三百首≫에 실린 近體詩를 중심으로 拗에 관한 詩律을 살펴보고자 한다.5)

2.拗와 拗救의 정의

近體詩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는 押韻과 平仄, 對 을 들 수 있다.6) 물 론 律詩의 경우 聯과 頸聯에 對仗이 요구되기도 하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律詩에는 전혀 對仗을 쓰지 않는, 이른바 全散格7)과 聯에 對仗을 쓰지 않고 起聯에 對仗을 쓰는 偸春格, 頸聯에만 對仗을 쓰는 蜂腰格 등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詩律에서 자주 거론되는 拗란 平仄의 格式에 맞지 않는 詩句上의 글자를 말한다. 옛 사람들이 말한 拗는 二四六의 拗 이외에 五言 第三字와 七言 第五字가 격식에 맞지 않는 것과, ○○●●○ 句나 ●●○○●●○ 句에서 五言 第一字와 七言 第三字에 仄聲을 사 용한 것도 拗라 할 수 있다. 보통 五言의 第一字와 七言의 第一字, 第三字는 平仄을 따지 지 않으므로 拗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편의상 二四六이나 一三 五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平仄의 譜式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拗라고 할 수 있다.8)

통상 拗가 있는 句를 拗句라 칭한다. 唐人의 拗句에는 대략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律體가 아직 정해지기 이전에 사용된 拗로 이른바 古調이며, 다른 하나는 律體가 이미 정해진 이후의 拗로 이른바 拗調이다. 이에 대해 王士禎은 ≪分甘餘話≫에서 다음과 같 이 논하고 있다.

唐人의 拗體 律詩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 첫째는 아득하니 소리가 그치지 않는 가 운데 스스로 가락을 형성한 것으로 杜甫의 "城小徑仄旌 愁, 獨立 渺之飛樓(○●●● ○●○, ●●●●○○○)"와 같은 것이 그 예가 된다. 그 둘째는 單句(곧 出句)에서 어 떤 글자를 拗로 만들었다면 偶句(곧 對句) 또한 어떤 글자를 拗로 만들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기복이 있지만 이를 읽으면 하나의 가락처럼 여겨지는 것으로 許渾의 "湘潭雲盡暮山出, 巴蜀雪消春水來(○○○●●○●, ○●●○○●○)"와 같은 것이 그 예이다.

陳文華는 < <杜甫詩律探微> > 第二章 <審音辨律>에서 다음과 같은 표를 만들어 拗律 을 설명하고 있다.10)

拗律을 句式에 적용하는 拗와 體式에 적용하는 拗로 나누고 句式의 拗는 拗調와 古調 로, 體式의 拗는 拗 과 拗對로 나누고 있다. 吳體는 七言律詩에만 적용되는 규칙으로 拗 이나 拗對를 쓰면서 古調를 겸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곧 吳體란 拗體로 된 七言律詩 중에서 拗를 하였지만 救하지 않은 古調가 많고 失對와 失 등이 나타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吳體'라는 명칭은 杜甫의 詩 <愁> 原注( ≪杜詩詳注≫권18, 第四冊 1599쪽)에 보이는 "强戱爲吳體"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11) 우리가 일반적으로 칭하는 拗 (體)는 拗調를 쓰거나 拗 과 拗對를 만든 것을 뜻하며 吳體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한편 李鍾默은 王力의 ≪漢語詩律學≫과 曹淑娟의 <杜黃吳體詩析辨>( ≪中國學術年刊≫, 第四 期, 師大國文硏究所 畢業同學會, 民國七十一年 六月)을 위주로 拗體를 살피고 다음과 같 이 개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拗體는 拗律과 吳體로 크게 구분되며, 拗律은 句式에서 古調와 拗調로, 體式에서 拗 對와 拗 으로 다시 구분된다. 古調는 拗하고 救하지 않은 것을 가리키며, 拗調는 救 해야 할 拗는 반드시 救하는 것을 가리킨다. 拗對는 上句와 下句에서 平仄이 對를 이 루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며, 拗 은 앞 聯의 下句와 뒷 聯 上句의 平仄이 율법에 벗어난(같지 않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吳體는 古調를 위주로 하면서 拗調가 곁들여 진 것으로 拗對와 拗 이 많은 것을 특징적으로 일컫는 말로, 杜甫 詩의 특징적인 律 法이다.12)

拗救란 拗의 破格을 救하는 것을 뜻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拗救란 위에서 꼭 平 聲字를 사용할 자리에 仄聲字를 썼다면 아래에서 꼭 仄聲字를 써야 할 자리에 平聲字를 사용하여 상쇄해 버리는 것과, 꼭 위에서 仄聲字를 써야 할 자리에 平聲字를 썼다면 아 래의 平聲字를 써야 할 곳에 仄聲字를 써서 상쇄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13) 拗救가 이루 어진 시는 合律로 취급하지만 拗인데도 救하지 않으면 不合律이 되어 엄격한 의미에서 律詩14)라 할 수 없게 된다.

拗救는 크게 單拗와 雙拗로 나눌 수 있다.15) 單拗란 單句 내에서의 拗救, 곧 하나의 句 안에서 拗를 쓰고 이를 救한 것이고, 雙拗란 出句의 拗를 對句로 救한 것이다.16) 雙拗의 경우에 있어 때때로 시인들은 역으로 對句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出句에 拗를 쓰는 경우 도 있음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시인들이 시를 지을 때 句의 순서대로 차례로 쓰는 것만 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아주 흡족한 對句를 떠올렸으되 平仄이 譜式대로 되지 않을 때면 拗를 救하는 형태의 句로 바꾼 뒤 出句를 拗로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경우는 出句로 對句를 救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작가 자신이 그러한 사실(對句를 먼저 짓고 對句를 위해 出句를 拗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 히던 밝히지 않던 간에 적어도 결과적인 형태상으로는 對句로 出句를 救한 것이기 때문 에 出句로 對句를 救한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邱燮友가 孤平拗救라 칭한 것에는 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 雙拗로 편입시킬 수 있는 것 과 單拗로 편입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17) 本稿에서는 전자는 雙拗에서 후자는 單拗에서 다루기로 한다. 한편 單拗와 雙拗가 동시에 사용된 拗救도 있다. 이 각각의 부분에 관해 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拗救의 형식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격조의 고고함을 나타내는 외에 詩句를 만들 때 시인들에게 더욱 많은 자유를 부여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18)

한편 近體詩에서의 下三平과 通押 현상도 拗로 취급한다. 이는 달리 救할 방도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쓰인 近體詩는 통상 拗律로 본다.

3.拗의 救濟 ― 拗救의 방식

1)單拗

單拗에는 대체로 세 가지 방식이 있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은 五言의 ○○●○●과 七言의 ●●○○●○● 句이다. 이는 본래 平聲을 써야 할 五言 第三字의 자리(○○'○' ●●)와 七言 第五字의 자리(●●○○'○'●●)에 仄聲을 써서 律에 不合하여 拗가 되면 본래는 仄聲이라야 하는 同句의 第四字(五言의 경우)와 第六字(七言의 경우)를 平聲으로 고쳐서 위의 拗를 救하는 것이다.19) 바꾸어 말하면 五言 ○○○●● 句의 第三·四字와 七言 ●●○○○●● 句의 第五·六字의 平仄을 서로 바꾸는 것으로 본래의 ○●을 고쳐 서 ●○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
●●○○○●● → ●●○○●○●

외형상으로 五言의 第四字와 七言의 第六字가 孤平이 된 것 같으나 拗救를 목적으로 平仄을 호환했기 때문에 孤平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孤平이나 孤仄은 二四不同이나 二六 對의 원칙이 지켜진 시에서 따지는 格律이기 때문이다.

情人怨遙夜, 竟夕起相思. (91. 張九齡의 <望月懷遠 >)
○○●○● ●●●○○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225. 王維의 <竹里館>)
●●○○● ○○●○●
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 (271. 杜甫의 <江南逢李龜年>)
●●○○●○● ●○○●●○○

두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 句에서 第一字(七言은 第三字)를 만약 仄 聲字를 써서 孤平을 만들었을 경우((●●)'●'○●●○) 本句의 第三字(七言은 第五字)를 平聲으로 써서 이를 救하는 방식이다.

(●●)○○●●○ → (●●)●○○●○

이처럼 平仄을 호환하는 이유는 孤平을 피하는 데에 있다. 孤平은 唐代의 시인들이 가 장 꺼린 詩作上의 병폐이기 때문이다. ≪全唐詩≫에 수록된 近體詩 가운데 孤平을 범한 예는 두 개 뿐이라 한다.20) 邱燮友는 이 형식이 孤平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孤平拗救로 보기도 했다. 七言의 경우 第一字의 자리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여기에 平聲字를 사용하는 것은 올바른 用字法이라 볼 수 없다.

暮禽相與還(117. 王維의 <歸嵩山作>)
●○○●○
夜來風雨聲(232. 孟浩然의 <春曉>)
●○○●○
低頭思故鄕(233. 李白의 <靜夜思>)
●○○●○
笑問客從何處來(261. 賀知章의 <回鄕偶書>)
●●●○○●○

한편 王力은 ●○●○● 句를 "平仄의 특수형식" 범주에 넣고 있다.21) 王力의 관점에 의하면 이 句의 원래 形式은 ●○○●●이었는데 第三·四字의 平仄을 호환하여 ●○● ○●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형식 또한 單拗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偶然値林 (123. 王維의 <終南別業>)
●○●○●
擧頭望山月(233. 李白의 <靜夜思>)
●○●○●

율시에서 單拗 (●●)○○●○●은 대부분이 尾聯의 出句에서 사용되며 그 위치가 반 드시 제한된 것은 아니라 한다.22)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單拗가 미련 의 出句에 많이 발생한다는 지적은 押韻을 平聲으로 한 시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렇다 면 仄韻을 쓴 시에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 邱燮友는 255. <玉階 怨>의 韻律을 설명하면서 "末句 '玲瓏望秋月'은 '○○●○●'으로 되어 흡사 單拗와 같으 나, 單拗는 第四句에서는 좀체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 시는 仄韻을 썼기 때문이다."라 하 면서 仄韻을 쓴 시에서의 單拗 ○○●○●을 부정하고 있다.

趙執信이 ≪聲調後譜≫에서 古詩의 平仄을 논하면서 ○○●○● 형식에 대해 "拗律句" 라 하였는데 그가 사용한 拗律句란 말은 拗인 律句, 곧 律句에 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單拗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單拗라는 현상을 인식했기 때문에 표준이 되는 律句와는 구별지으려는 의도에서 오늘날 單拗로 칭해지는 '○○●○●', '●○○●○' 등 의 句式을 拗律句라 하였던 것이다. 그는 ○○●○● 형식이 仄韻을 쓴 시의 짝수구에 사용된 경우에도 拗律句라 칭하였다.23) 이것은 仄韻을 쓴 시에도 이 규율을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單拗의 위치가 고정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한 편 邱燮友는 五言律詩 해제 부분에서 ●○○●○의 현상에 대해 律詩를 쓰는 기본조건이 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單拗라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24) 平聲으로 押韻한 시라면 이 형식은 당연히 韻字句에 위치하는 것이므로 單拗가 對句에도 쓰인다는 얘기가 된다.

單拗의 함의는 그 구절 안에서 拗를 쓰고 그 구절 안에서 이를 해결〔救〕한다는 것이 다. 짝이 되는 다른 句와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單拗는 出句에만 존재 하고 어떤 單拗는 對句에만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近體詩의 절대다수가 平聲으로 압운함에 따라 ○○●○● 형식의 單拗는 出句에만 있는 것처럼 이해되고 ●○ ○●○ 형식의 單拗는 對句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 拗에서 논하는 것은 어떤 글자의 平仄이지 韻字 여부가 아니다. 따라서 仄韻을 쓴 시에서 對句 에 나타나는 ○○●○● 句 역시 單拗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仄韻을 쓴 近體詩 에서 無韻字句의 末字는 원칙적으로 平聲字이므로 出句에 나타나는 ●○○●○ 句 역시 單拗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王力은 다음과 같은 형식도 單拗로 간주하고 있다.

1) ○○●●●○○에서 七言 第一字는 마땅히 平聲이어야 하지만 仄聲字로 되어 있는 것과 第三字가 仄聲이어야 하나 平聲字로 되어 ●○○●●○○이 된 것.

2) ●●○○○●●에서 七言 第一字가 마땅히 仄聲이어야 하나 平聲字로 되어 있는 것과 字가 마땅히 平聲字이어야 하나 仄聲字로 되어 ○●●○○●●이 된 것.25)

曾是寂廖金燼暗, 斷無消息石榴紅. (217. 李商隱의 <無題>)
○●●○○●●, ●○○●●○○.

그렇다면 五言 ●●●○○과 ○○○●●에서 第一字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邱燮 友는 이 경우의 第一字는 구속을 받지 않는다고 하며 직접적으로 拗와 관계짓지는 않고 있다. 그는 113. 杜甫의 <旅夜書懷>를 분석하면서 第五句의 '名豈文章著(○●○○●)'와 第八句의 '天地一沙鷗(○●●○○)'에 대해 "'名'과 '天' 두 글자는 다음 글자를 仄聲으로 썼기 때문에 단독으로 쓸 수 있어 平仄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하였고, 134. 劉長卿의 <送李中丞歸漢陽別業>에서는 第一句 '流落征南將(○●○○●)'와 第三句 '罷歸無舊業(● ○○●●)'의 第一字는 "平聲으로도 할 수 있고 仄聲으로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旅夜 書懷> 第八句의 원래 句式은 ●●●○○이고 <送李中丞歸漢陽別業> 第三句의 원래 句 式은 ○○○●●인데 第一字에 아무 글자나 쓸 수 있다고 한 것은 이런 현상을 拗로 간 주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26)

2)雙拗

전술한 바와 같이 雙拗란 出句의 拗를 對句로 救하는 것이다. 이 雙拗는 二四不同(五 言)이나 二六對(七言)를 위반한 拗와 孤平을 범한 拗를 救한 것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 어 생각할 수 있다.

(1) 五言의 第四字와 七言의 第六字는 중요한 節奏 위치이기 때문에 그것이 平仄에 맞 지 아니하면 平仄의 규칙을 크게 위배하게 되며 二四六分明이라는 격언에도 맞지 않게 된다. 그러나 近體詩 가운데는 그 규칙을 위배한 예가 적지 않다. 出句의 第二字와 第四 字를 모두 仄聲으로 써서 다섯 자가 모두 仄이 되거나 혹은 ●●○●●, ○●●●● 등 의 拗句가 되었을 때, 對句의 第三字에 반드시 平聲을 써서 出句의 拗를 救한다. 七言이 면 出句는 ○○●●●●●, ○○●●○●●, ○○○●●●● 등의 형식으로 나타나며 對 句의 第五字를 반드시 平聲으로 써서 救한다.

① ●●○○●의 第四字와 ○○●●○○●의 第六字는 반드시 平聲을 써야 하는데 仄 聲을 써서 拗가 되었다면 五言의 경우는 對句의 第三字를, 七言의 경우는 對句의 第五字 를 平聲으로 고쳐서 拗를 救할 수 있다. 이를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 ○○○●○.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152. 白居易의 <賦得古原草送別>)

○○●●○○●, ●●○○●●○.

○○●●○●●, ●●○○○●○.
舞陽去葉裳百里, 賤子與公俱少年. (黃庭堅의 <次韻裴仲謀同年>)
●○●●○●●, ●●●○○●○.

그러나 위의 七言 譜式 규정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예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出句의 第一字와 對句의 第三字를 仄聲으로 쓴 예가 간혹 보일 뿐이다. 형태상 第 二字도 孤平이 되었으나 第二字의 단독 孤平을 救할 때와는 달리 對句의 第五字로 동시 에 救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듯하다.

② ①의 형식에서 더 나아가 五言 出句 ●●○●●의 第一字를 平聲으로, 第三字를 仄 聲으로 고치고 五言 對句 ○○○●○의 第一字는 仄聲으로 고칠 수 있다. 七言 出句 ○ ○●●○●●의 第一字와 第五字를 仄聲으로, 第三字를 平聲으로 고치고 七言 對句 ●● ○○○●○의 第一字는 平聲으로, 第三字는 仄聲으로 고칠 수도 있다. 이를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 ●○○●○.
人事有代謝, 往來成古今. (孟浩然의 <與諸子登峴山>)

○○●●○●●, ●●○○○●○.

●○○●●●●, ○●●○○●○.
宦遊何 路九折, 歸臥恨無山萬重. (陸游의 <桐廬縣泛舟東歸>)

王力은 ①과 ②와 같은 형식의 특징으로 出句 第二字(七言이면 第四字)는 반드시 仄聲 이며, 末二字는 반드시 ●●이고, 對句 第二字(七言이면 第四字)는 반드시 平聲이어야 하 며, 末三字는 반드시 ○●○이어야 한다고 하였다.27) 그러나 出句의 末二字가 반드시 ● ●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雙拗가 七言의 起聯이나 첫 句에 押韻된 五言의 起聯에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北闕休上書, 南山歸 廬. (127. 孟浩然의 <歲暮歸南山>)
●●○●◎, ○○○●◎.

③ 全仄句 : 近體詩에서 七言 全仄句는 있을 수 없다. 雙拗를 쓸 수 있는 出句의 형식 인 ○○●●○○●에서 중요한 節奏點28)인 第二字는 반드시 平聲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第二字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仄聲(●○●●●●●)이거나 第一字와 第二字만 平聲인 형식(○○●●●●●)은 가능하다.

馬蹄踐雪六七里, 山 有梅三四花. (方岳의 <夢尋梅>)
●○●●●●●, ○●○○○●○.

南朝四百八十寺, 多少樓臺煙雨中. (杜牧의 <江南春絶句>)
○○●●●●●, ○●○○○●○.

五言 全仄句의 예로는 崔塗의 다음 시를 들 수 있다.

漸與骨肉遠, 轉於 僕親. (165. <巴山道中除夜有懷>)
●●●●●, ●○○●○.

이상 세 가지는 二四不同(五言)이나 二六對(七言)를 위반한 拗를 救한 것이다. 한편 아 주 드물게 이를 救하지 않은 형식도 눈에 띈다.

八月湖水平, 涵虛混太淸. (124. 孟浩然의 望洞庭湖贈張丞相)
●●●●○, ○○●●○.

邱燮友는 230. 祖詠의 詩 <終南望餘雪>〔終南陰嶺秀, 積雪浮雲端. 林表明霽色, 城中增 暮寒.〕의 第三·四句는 ○●○●●, ○○○●○으로 雙拗인데도 平仄이 뒤섞였으며 律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편 그는 117. 王維의 <歸嵩山作> 聯〔流水如有意, 暮禽相與 還.(○●○●●, ●○○●○〕에 대해서는 雙拗라 이르고 있다. 雙拗의 對句는 ○○○● ○이 원칙이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으로 쓰기도 하므로 두 詩의 句式은 동 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처럼 설명이 상반되는 것은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譜式 규정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五言에서 出句의 二·四字를 모두 仄聲으로 쓰고 七言에서 四·六字를 모두 仄聲으로 쓴 것을 對句의 第三字(五言)와 第五 字(七言)에 平聲을 써서 救했다면 雙拗로 간주할 수 있다.

(2) 孤平拗救 가운데 對句로 出句의 拗를 救하는 형식이 있다. 이것은 出句와 對句의 상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拗救이기 때문에 당연히 雙拗라 할 수 있다. 29)

① 出句가 ●●○○●인 五言에서 平聲으로 써야할 第三字를 仄聲으로 쓰면 ●●●○ ●가 되어 孤平을 범하게 된다. 그러면 對句 第三字를 반드시 平聲을 써서 이를 救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第一字를 平聲으로 써서 拗를 救하기도 하나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七言에서는 ○○●●○○●을 ○○●●●○●으로 쓴 경우인데 對句 第五字를 平聲으로 써서 救한다. 五言의 예를 먼저 살펴보자.

●●○○●, ○○●●○.

●●●○●, ○○○●○.
萬 此俱寂, 惟餘鍾磬音. (98. 常建의 <題破山寺後禪院>)

이 형식의 變格으로 出句의 第一字를 平聲, 對句의 第一字를 仄聲으로 쓰거나 이 둘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吾愛孟夫子, 風流天下聞. (100. 李白의 <贈孟浩然>)
○●●○●, ○○○●○.
木落雁南渡, 北風江上漢. (132. 孟浩然의 <早寒江上有懷>)
●●●○●, ●○○●○.
蕃漢斷消息, 死生長別離. (151. 張籍의 <沒蕃故人>)
○●●○●, ●○○●○.

七言의 譜式 규정은 다음과 같다.

○○●●○○●, ●●○○●●○.

○○●●●○●, ●●○○○●○.

그러나 이 형식에서 出句의 第三字는 平聲도 가능하며 對句의 第三字는 仄聲도 가능하 다. 出句의 第三字를 平聲으로, 對句의 第三字를 仄聲으로 썼다면(○○○●●○●, ●● ●○○●○.) 다시 出句의 第一字를 仄聲으로, 對句의 第一字를 平聲으로 쓸 수도 있다. (●○○●●○●, ○●●○○●○.) 이것은 孤平拗를 발생시키는 곳 이외에서는 孤平을 범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平仄의 융통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한편 對句의 第一字를 平 聲으로 써서 孤仄을 만든 경우도 있으나(○●○○○●○) 孤仄은 큰 병폐가 되지 않으므 로 詩律에는 부합하는 것으로 본다.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261. 賀知章의 <回鄕偶書>)
○○○●●○● ●●●○○●○

晴川歷歷漢陽樹, 芳草 鸚鵡洲. (170. 崔顥의 <黃鶴樓>)
○○●●●○●, ○●○○○●○.

② 五言 出句 ○○○●●에서 第一字와 第三字를 仄聲으로 써서 孤平이 되거나 七言 出句 ○○●●○○●에서 第一字를 仄聲으로 써서 孤平이 되었다면 對句의 第一字를 平 聲으로 써서 이를 救한다.

○○○●●, ●●●○○.

●○●●●, ○●●○○.
祗應守索寞, 還掩故園扉. (孟浩然의 <留別王侍御維>)

○○●●○○●, ●●○○●●○.

●○●●○○●, ○●○○●●○.
茂陵不見封侯印, 空向秋波哭逝川. (220. 溫庭筠의 <蘇武廟>)

특이하게 七言 出句의 第二字와 第六字가 동시에 孤平인 예가 있다.

映 碧草自春色, 隔葉黃 空好音. (182. 杜甫의 <蜀相>)
●○●●●○●, ●●○○○●○.

出句 第二字의 孤平을 對句 第一字로 救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對句 第五字를 平聲으 로 쓰는 것만으로도 두 개의 孤平을 救濟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듯하다.

이들과는 별도로 孤仄拗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 ●●○○○●●에서 부득불 第一字를 平聲으로 써야 할 경우라면 對句 ○○●●●○○의 第一字는 仄聲으로, 第三字는 平聲으 로 바꾼다. 對句의 第三字를 平聲으로 바꾸는 이유는 그냥 두게 되면 孤平을 범하기 때 문이다.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예는 거의 없다. 이러한 拗救는 결과적으로 出句의 孤 仄을 救하고 동시에 對句의 孤平을 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

○●○○○●●, ●○○●●○○.
誰愛風流高格調, 共憐時世儉梳 . (222. 秦韜玉의 <貧女>)

王力은 ≪全唐詩≫에 수록된 近體詩 가운데 孤平을 범한 예는 두 개 뿐이라고 하면서 다음 두 句를 그 예로 들고 있다.

醉多適不愁. (高適의 <淇上送韋司倉>)
●○●●○.
百歲老翁不種田. (李 의 <野老曝背>)
●●●○●●○.

王力이 거론한 이 孤平은 모두 對句에서 발생한 것이다. 對句에서 발생한 孤平은 원칙 적으로 救할 길이 없다. 邱燮友는 102. <送友人>(李白)의 聯〔此地一爲別, 孤蓬萬里征. (●●●○●, ○○●●○.)〕에 대해 孤平인데 救하지 않았다 하고, 115. <輞川閑居裴秀才 迪>(王維)의 尾聯〔復値接輿醉, 狂歌五柳前. (●●●○●, ○○●●○.)〕에 대해서는 孤 平을 救하지 않았으므로 律에 不合한다고 하였다. 孤平은 드물게 對句의 第一字로도 救 할 수 있으므로 孤平을 救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없다. ≪全唐詩≫에 수록된 李白과 王 維의 이 두 작품의 해당 聯을 王力이 孤平의 예로 들지 않았던 것은 對句의 第一字로 出 句의 孤平을 救한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3)複合拗救

王力은 아래와 같은 구형을 甲種拗 항목에서 '本句自救'이면서 '對句相救'인 것으로 다 루면서 "반드시 拗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30)이라 하였다.

○○○●●, ●●●○○.

●○○●●, ○●●○○.
帝鄕明月到, 猶自夢漁樵. (158. 許渾의 <秋日赴闕題潼關驛樓>)

●●○○○●●, ○○●●●○○.

●●●○○●●, ○○○●●○○.
諸葛大名垂宇宙, 宗臣遺像肅淸高. (194. 杜甫의 <詠懷古跡> 其五)

●●○○○●●, ○○●●●○○

○●●○○●●, ●○○●●○○.
波上馬嘶看棹去, 柳邊人歇待船歸. (219. 溫庭筠의 <利洲南渡>)

拗句는 일반적으로 孤平을 범하거나 아니면 二四不同이나 二六對를 어긴 것에 한정되 고 있다. 따라서 孤平을 범하지도, 二四不同과 二六對를 어기지도 않은 위와 같은 형식에 대해 拗救라 칭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出句와 對句의 平仄이 글자마다 서로 대립하게 되어 매우 조화를 이루므로 시인들은 사용하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複合拗救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 雙拗 孤平拗救와 單拗 孤平拗救가 함께 쓰이기도 한다. 이 경우 五言의 對句 第三 字와 七言의 對句 第五字는 실제로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本句의 孤平을 방지하는 동시에 出句의 平聲字 자리에 仄聲字를 썼음을 보완해 주는 것이다.

…●●○●, ●○○●○.
……●●○●, ……●○○●○.

唐宋詩人들의 시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雙拗 孤平拗救만을 사용한 것은 매우 적고 單 拗 孤平拗救와 배합사용한 것은 상당히 많다. 唐宋詩人들이 그러한 格式을 만들어 사용 하기 좋아하였던 것은 그것이 格調의 고고함을 나타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31)

木落雁南渡, 北風江上漢. (132. 孟浩然의 <早寒江上有懷>)
●●●○●, ●○○●○.
蕃漢斷消息, 死生長別離. (151. 張籍의 <沒蕃故人>)
○●●○●, ●○○●○.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261. 賀知章의 <回鄕偶書>)
○○○●●○●, ●●●○○●○.

(2) 二四不同 내지는 二六對의 규율을 어긴 雙拗와 單拗 孤平拗救가 때때로 병용되기 도 한다. 이렇게 되면 五言에 있어서는 ●●○●●, ●○○●○으로 변하며 七言에 있어 서는 ○○●●○●●, ●●●○○●○으로 변하게 된다.32)

木落山覺瘦, 雨晴天似高. (劉敞의 <秋晴西樓>)
●●○●●, ●○○●○.

함께 쓰인 이러한 형식은 그 어느 하나로 쓰인 것보다 훨씬 많은데 이러한 특수형식은 분명히 古詩로부터 탈태된 것이다. 그러므로 五言에는 특별히 많고 七言에는 극히 적다. 이 경우 五言 對句 第一字는 仄聲字 쓰기를 좋아하게 되는데 이는 대체로 시인들이 한 句에서 네 개의 平聲字를 사용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33)

高閣客竟去, 小園花亂飛. (158. 李商隱의 <落花>)
●●●●●, ●○○●○.

4.下三平과 失韻

近體詩에서 末三字가 모두 平聲으로 이어지는 것을 下三平 혹은 下三連이라 하는데 詩 人들은 이의 사용을 아주 꺼려하였다. 下三平을 사용한 句는 통상 拗로 간주된다. 近體詩 의 절대 다수가 平聲으로 押韻함에 따라 이 下三平은 對句에 주로 나타나게 되며 달리 救濟의 방법이 없다. 물론 (●●)○○○●●으로 된 出句에서 平聲字를 사용해야 할 第三 字(七言은 第五字)에 仄聲字를 사용하여 下三仄을 만들었을 경우, 對句 (○○)●●●○○ 에서 第三字(七言은 第五字)를 平聲으로 고쳐 下三平을 만드는 방식이 있기는 하다.

山光悅鳥性, 潭影空人心. (98. 常建의 <題破山寺後禪院>)
○○●●●, ●●○○○.
草色全經細雨濕, 花枝欲動春風寒. (王維의 <酌酒與裴迪>)
●●○○●●●, ○○●●○○○.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下三仄을 救하려다 더 금기시 되는 下三平을 범한 것이다. 이에 대해 王力은 이러한 형식의 拗救는 아주 적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三平調의 古風 句式과 혼동되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34)

邱燮友는 251. 金昌緖의 <春怨>의 韻律을 논하여 "全詩가 律에 맞아 律絶이 된다. 首 句(打起黃鶯兒)는 下三平이나 救하지 않아도 된다."라 하였다. 下三平은 律詩에서 아주 꺼리는 것인데도 邱燮友가 救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은 아마 이 句가 出句에 쓰이고 있어 여기서의 下三平을 平韻을 쓴 시에서 出句에 나타나는 下三仄과 같은 정도의 破格 으로 이해하였던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下三仄이 용인되는 것은 仄聲의 範疇가 平聲보 다 넓기 때문이지 그것이 出句에 사용된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다. 바꾸어 말해 下三平이 對句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금기시 되는 것이라 볼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仄聲이란 上聲 과 去聲, 入聲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며, 실제로 唐人들이 사용한 下三仄을 살펴보면 上 聲과 去聲, 入聲 가운데 어느 한 聲으로만 세 글자를 연이은 예가 거의 없다. 이것은 어 느 한 聲으로만 세 글자를 연이어 쓰면 下三平과 마찬가지로 音의 和諧美를 해치는 것으 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35) 그런데 邱燮友는 191. 杜甫의 <詠懷古跡·其二>의 第三句 ( 望千秋一灑淚)에 대해서는 下三仄이므로 律에 맞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近體詩에서 下三仄은 下三平 만큼 심각한 병폐가 아니기 때문에 시인들이 종종 사용하였으며36) 통상 合律로 취급한다. 그리고 94. 杜審言의 <和晉陵陸丞早春遊望>과 97.王灣의 <次北固山 下> 등에서는 下三仄을 救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또 162. 馬戴의 < 上秋居>와 168. 韋莊의 <章臺夜思>에서는 下三仄을 律에는 맞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도리어 <春怨>의 下三平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詠懷古跡·其二>의 下三仄에 대해서는 엄격하 게 대하고 있으니 이는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그는 98. 常建의 <題破山寺後禪 院>에서는 또 下三平을 律에는 부합하지 못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近體詩는 押韻에 있어 一韻到底格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通韻이나 轉韻은 허용되지 않는다. 押韻을 제외한 모든 詩律이 近體詩의 格律에 부합하면서 通韻이나 轉韻이 이루 어지고 있다면 失韻이라 할 수 있다. 이 失韻을 달리 拗韻이라고도 칭하며 拗로 간주한 다. 이 역시 下三平과 마찬가지로 救濟의 방법이 없다.

245. 元 의 <行宮>〔廖落古行宮, 宮花寂寞紅. 白頭宮女在, 閒坐說玄宗.〕은 第一句와 第二句에서는 平聲 東韻으로 압운하고 第四句에서는 冬韻으로 압운하였으므로 失韻에 해 당된다. 그러나 251. 金昌緖의 <春怨>〔打起黃鶯兒, 莫敎枝上啼, 啼時驚妾夢, 不得到遼西. 〕에 대해서 "시는 上平聲八 齊韻을 썼으나 '兒'字는 支韻이 되어 韻을 벗어났다."라 한 邱燮友의 언급에는 문제가 있다. 五言絶句에서 第一句에 押韻할 때에는 왕왕 隣韻을 韻 脚으로 삼기도 하므로 韻을 벗어났다는 지적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228. 王維의 <雜詩>는 去聲 韻 '事'와 去聲 未韻 '未'로 通押하고 있으며, 239. 劉長卿 의 <送上人>〔孤雲將野鶴, 豈向人間住. 莫買玉洲山, 時人已知處.〕은 去聲 遇韻 '住'와 去 聲 御韻 '處'로 通押하고 있다. 近體詩에서는 通押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두 편의 시는 律 絶이 될 수 없다.

한편 301. 李商隱의 <隋宮>〔乘興南遊不戒嚴, 九重誰省諫書函. 春風擧國裁宮錦, 半作障 泥半作帆.〕은 七言이면서 第一句에 隣韻으로 압운한 시이다. '嚴'은 平聲 鹽韻에 속하며 '函'과 '帆'은 平聲 咸韻에 속한다. 近體詩 七言에서 第一句에 隣韻을 쓰는 것은 正格이 아니다. 그런데도 邱燮友는 이를 律絶이라 칭하고 있다.

七言律詩 217. 李商隱의 <無題gt;는 平聲 冬韻의 '重'과 '縫', 東韻의 '通', '紅','風'으로 通 押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七言 失韻이다.

5.拗와 결부한 失對와 失

邱燮友는 淸나라 사람 董文煥이 絶句를 律絶, 古絶, 拗絶 三種으로 나눈 것에 樂府絶을 보태어 네 종류로 나누었다.37) 그는 각종의 絶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 다.

1. 律 絶 : 平仄이 平起格 혹은 仄起格의 正式에 부합하는 絶句로 今絶이라고도 칭한다.
2. 樂府絶 : 본디 音樂에 들어가는 것을 주로 삼아서 歌行體에 속하는 絶句이다. 당인들의 악부시 가운데는 律詩의 영향을 받아서 대체로 平仄이 율에 맞는 작품이 많다.
3. 古 絶 : 平仄을 조화시키지 않은 四句詩이다. 古詩와 같다.
4. 拗 絶 : 律絶과 古絶을 섞어 쓰고 과 對를 강구하지 않은 絶句이다.

이에 근거하자면 樂府絶은 대체로 律絶에 포함될 수 있으며 拗絶은 律絶과 古絶의 중 간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句(3句)가 古詩의 투로 이루어지고 오직 한 句 만이 近體詩의 투로 이루어진 絶句도 拗絶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拗絶은 그 함 의상 古絶과 律絶이 반반씩 섞이거나 句 자체는 律句이나 對 이 지켜지지 않은 四句詩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拗를 救한 四句詩는 律絶로 파악해야 한다. 古詩 에는 拗를 적용하지 않을 뿐더러 설령 拗처럼 보이는 句가 있다 할지라도 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後人들이 古詩의 平仄을 따진 것은 귀납적으로 古詩의 律을 따져보려고 한 것이지 古詩 자체에 平仄을 따지는 요소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出句와 對句의 第二字의 平仄이 대립되지 아니하는 것을 失對라 하고 上聯 對句와 下 聯 出句의 第二字의 平仄이 같지 아니한 것을 失 이라 이른다. 나머지 節奏點은 拗와 같은 변수 요인으로 대립되거나 같지 아니할 수도 있지만 拗를 쓴 것이 合律하면 失對, 혹은 失 이라 칭하지 않는다.

對 의 법칙이 완정하지 못한 失對와 失 도 拗로 간주한다. 따라서 失對와 失 을 달 리 拗對와 拗 이라 하기도 한다. 盛唐 이전에는 對 을 별로 따지지 않고 보통 出句의 平仄을 對句의 平仄과 호환하는 것으로 合律이라 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후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하여 失對, 失 이라고 일컬었다. 그런데 이 對와 을 자세히 살펴보면 對가 보다 더 중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中唐 이후에 이르러서도 아직 對와 이 맞지 아니한 예들이 보이고 있다.38) 의 형식은 律詩 형성 當時에 있어서 이미 이런 경 향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직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규율은 아니었던 것 같다. 中唐 이후에 의 규율은 점점 엄격해졌으며 宋代 이후부터 과거시험에서 失對와 失 의 詩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 對는 거의 金科玉條로 여겨졌던 것 같다.39)

邱燮友는 224. 王維의 <鹿柴>에 대해 句는 모두 律에 들었지만 對 을 지키지 않았으 므로 拗絶이라 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타당하다.40) 그러나 225. 王維의 <竹里館>과 239. 劉長卿의 <送上人>의 韻律을 분석하면서 각각 第二句 '彈琴復長嘯(○○●○●)'와 第四句의 '時人已知處(○○●○●)'가 律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古絶로 간주하면서도 228. 王維의 <雜詩>〔君自故鄕來, 應知故鄕事. 來日綺窓前, 寒梅著花未. (○●●○○, ○ ○●○●. ○●●○○, ○○●○●.)〕 韻律에서는 "一, 三 두 句는 律에 맞지만 二, 四 두 句는 모두 ○○●○●으로 拗가 되었으니 이는 拗絶"이라 하였다. 同一한 현상41)에 대해 이처럼 어떤 시에서는 古句라 칭하고 어떤 시에서는 拗句라 칭한 것은 분명 자기 모순이다. 그리고 ○○●○● 형식은 이미 앞서 지적하였듯이 拗를 범하고서 이를 救濟 한 單拗이므로 拗句라 할 수 없다. 한편 그는 249. <尋隱者不遇>의 第四句 역시 ○○● ○●(雲深不知處)인데도 合律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42) 王維의 <雜詩>가 拗絶인 것은 二, 四句가 拗이기 때문이 아니라 法을 지키지 않은 데다 失韻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 는 232. 孟浩然의 <春曉>에서는 동일한 失 현상에 대해 "唐詩 가운데는 늘 이런 현상 이 있었으나 또한 合律로 친다"고 하였다. 곧 律絶로 본다는 얘기이다. 그러면서 그는 동 일한 현상의 244. 柳宗元의 <江雪>은 拗絶로 취급하고 있다.

또 七言에 있어 272. 韋應物의 < 州西澗>의 失 에 대해서는 拗絶이라 하며 295. 杜 牧의 <贈別>의 失 에 대해서는 律絶이라 하고 있다. 의론 전개가 심하게 일관성을 결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맺음말

黃永武는 平聲의 위치에 仄聲을 사용하면 슬픔을 억제하는 美感을 창출할 수 있고, 仄 聲의 위치에 平聲을 사용하면 平聲字의 돌출로 인해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하였 다.43)

근체시에서 요체가 구사되는 원인은 대체로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사용하고 있는 시어가 자연스럽게 평측이 선택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체를 구사할 수 밖에 없으며 특히 숫자나 고유명사로 대를 맞출 때에는 이러한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둘째 불편한 시인의 정서를 강개하게 표출하다 보면 자연히 정상적인 율격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고, 셋째 시인은 천성으로 기이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요체를 구사 한다는 점 등이 제시되고 있다.44)

近體詩 각 句의 平仄이 譜式 규정에 들어맞지 않을 때 우리는 拗라 할 수 있다. 이를 救濟하면 拗救가 되어 合律한 것으로 취급한다. 한편 下三平은 엄격하게 금하는 것이므 로 이 역시 拗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救濟의 방법이 별도로 없 다. 따라서 下三平이 쓰인 시는 拗體라 할 수 있다. 句의 平仄 외에 押韻과 對 에서도 拗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들 또한 달리 救濟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拗體로 간주한다.

孫洙의 ≪唐詩三百首≫는 엄격한 詩律에 근거하여 近體詩를 선록한 것은 아니다. 명백 히 古詩로 보이는 시들도 近體詩類에 列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孫洙의 이러한 입 장은 當時의 통념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邱燮友는 孫洙가 따른 통념을 무 시하지 않으면서 과학적인 분석을 시도하다가 몇몇 오류를 필연적으로 범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어떤 詩에 詩律을 적용할 경우 통념에 의거하는 것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하여도 과학적인 분석과 일관된 해석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拗體인데 도 관용적으로 合律하는 것으로 다룰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은 詩學 자체의 연구, 특히 拗와 拗救 여부를 따질 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拗와 拗救를 규 명하는 데는 詩學 자체의 格律을 따져본다는 일차적인 목표 외에 기왕에 이를 소개, 분 석한 연구자의 오류를 바로잡고 나아가 校勘 등의 연구행위에 보다 과학적인 접근방식을 제공하기 위한 또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각 주

1) ≪唐詩三百首評注≫(續之·章武·王友懷 評注, 三秦出版社, 1991, 西安)의 < 塘退士孫洙簡史>(≪名儒言行錄≫·卷下에 실린 내용을 재수록한 것임.)에 의하면 ' 塘'이 그의 本號이며 '退士'는 만년에 사용하였던 號이다.

3) ≪新譯唐詩三百首≫, 4쪽.
4) 이 외에 오늘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注釋書로는 다음과 같은 책을 들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책이 주석서의 전부인 것은 결코 아니다.
5) 필자가 저본으로 삼은 ≪新譯唐詩三百首≫는 1981에 간행된 것이다.
6) 王力은 ≪漢語詩律學≫(5쪽)에서 近體詩에서 가장 따지는 두 가지 요건으로 平仄과 對仗을 들고 있다. 王力의 이러한 시각은 近體詩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對 은 各 句間의 平仄을 따지는 것이므로 넓게는 平仄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7) 104. 李白의 <夜泊牛渚懷古>, 169. 皎然의 <尋陸鴻漸不遇> 등이 그러한 예이다.
8) ≪漢語詩律學≫, 90쪽.
9) ≪中國學術年刊≫ 8期(民國 75年) 張夢機의 <方回·紀 批少陵詩平議> 220쪽에서 재인용. 이 글에서 '其一'은 古調에, '其二'는 拗調에 해당된다.
10) 張夢機의 <方回·紀 批少陵詩平議> 220쪽에서 재인용.
11) 張夢機의 <方回·紀 批少陵詩平議> 219쪽.
12) 李鍾默, ≪海東江西詩派硏究≫(太學社, 1995, 서울), 38쪽.
13) 여기서 사용한 "위"라는 말은 같은 句 안에서의 앞의 글자, 혹은 上句(出句)의 특정 위치의 글자를 뜻하고, "아래"라는 말은 같은 句 안에서의 뒤의 글자, 혹은 下句(對句)의 특정 위치의 글자를 뜻하는데, 같은 구 안에서의 "위", "아래"가 반드시 인접한 글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出句와 對句를 연관시킨 "위", "아래"에서도 특정 위치의 글자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관한 전반적인 格律이 바로 拗와 拗救에 관한 規律이라 할 수 있다.
14) 律詩에는 두 가지의 함의가 있다. 하나는 狹義의 律詩로 近體詩 가운데 絶句와 구별되는 형식으로서의 律詩를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廣義의 律詩로 格律에 맞게 지어진 시라는 뜻의 格律詩, 곧 近體詩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15) 王力은 이를 "本句自救"와 "對句相救"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拗가 발생하는 위치, 혹은 현상에 따라 "甲種拗"와 "乙種拗", "丙種拗"로 나누고 다시 本句自救와 對句相救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6) 每聯의 앞 句를 出句, 뒤의 句를 對句라고 한다.
17) ≪新譯唐詩三百首≫, 173쪽.
18) ≪漢語詩律學≫, 100쪽.
19) 邱燮友는 이를 單拗라 칭하고 있는 반면 王力은 이러한 형식의 구법을 "平仄의 特殊形式"으로 부르면서 拗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만일 拗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특수한 拗라고 부르기를 건의할 수 있을 것이다."라 하였다. ≪新譯唐詩三百首≫ 173쪽과 ≪漢語詩律學≫ 107 - 108쪽 참조.
20) ≪漢語詩律學≫, 99 - 100쪽.
21) ≪漢語詩律學≫, 100쪽.
22) ≪漢語詩律學≫ 101쪽과 ≪新譯唐詩三百首≫ 172쪽 참조.
23) 仄韻을 쓴 孟浩然의 시 <秋登萬山寄張五>에서 對句의 '心隨雁飛滅(○○●○●)' 句와 '平沙渡頭歇(○○●○●)' 句에 대해 "拗律句"라는 해설을 붙이고 작품 아랫부분에서는 "平平仄平仄爲拗律句, 乃仄韻古詩下句之正調也."라 하였다. 또 平韻을 쓴 孟浩然의 시 <夏日南亭懷辛大>에서는 出句의 '荷風送香氣(○○●○●)'에 대해 "第五字仄, 拗律句."라는 해설을 붙이고 있다. ≪淸詩話≫·上 402쪽 - 403쪽.
24) ≪新譯唐詩三百首≫, 173쪽.
25) ≪漢語詩律學≫, 92쪽.
26) 이 두 수의 시 第五句와 第一句의 第一字에 있어 平仄을 따지지 않는 것은 孤仄을 심각한 병폐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27) ≪漢語詩律學≫, 108쪽.
28) 五言에 있어 第二字와 第四字, 七言에 있어 第二字와 第四字, 第六字의 平仄은 특히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이 위치(의 글자)를 節奏點이라 한다.
29) 邱燮友는 ≪新譯唐詩三百首≫(173쪽)에서 "前人들은 이러한 拗救에 대해서 또한 雙拗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두 종류가 서로 섞이는 것은 쉽게 구별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이것을 '孤平拗救'라 부른다."고 하였다.
30) ≪漢語詩律學≫, 94쪽.
31) ≪漢語詩律學≫, 99쪽.
32) 七言의 예는 앞서 살펴본 陸游의 <桐廬縣泛舟東歸> 참조.
33) ≪漢語詩律學≫, 110 - 111쪽.
34) ≪漢語詩律學≫, 95 - 96쪽.
35) 물론 平聲에도 上平聲과 下平聲의 구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上·下平聲을 엇섞어 쓰는 것이 上·去·入聲을 서로 엇섞어 쓰는 것보다 음의 和諧美를 더 해치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下三平을 금기시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36) 235. 杜甫의 <八陣圖> 등이 그러한 예이다.
37) ≪新譯唐詩三百首≫, 318쪽.
38) ≪漢語詩律學≫, 112쪽.
39) ≪漢語詩律學≫, 119쪽.
40) <鹿柴>의 원문과 平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空山不見人, ○○●●○ 但聞人語響. ●○○●● 返景入深林, ●●●○○ 復照靑苔上. ●●○○●
41) 모두 仄聲으로 押韻하고 있으며 문제가 된 句의 형식은 ○○●○●으로 같다.
42) 249. 賈島의 詩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의 第三句는 法을 어겼을 뿐인데도 이 句로 인해 이 시를 古絶로 파악하고 있다.
43) ≪中國詩學≫ <設計篇>(巨流圖書公社, 1979, 臺灣) 118 -121쪽.
44) 曹淑娟, <杜黃吳體詩析辨>(≪中國學術年刊≫, 第四期, 師大國文硏究所 畢業同學會, 民國七十一年 六月), 李鍾默의 ≪海東江西詩派硏究≫ 51쪽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