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고함(孤喊)] ‘성서’의 미국 vs‘논어’의 중국
중국의 미래가 인류 운명 좌우
논어·성서 융합이 미·중의 화해
나는 최근 원고지 1만 장에 이르는 3권짜리 집대성의 『논어한글역주』를 출간하였다. 왜 하필 『논어』인가? 21세기 벽두 오바마가 미 대통령으로서 희망의 사륜(史輪)을 굴리기 시작한 이 시점에 과연 『논어』라는 책이 인류문명의 패러다임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미 국무부 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최근 미 대통령에 취임하는 오바마에게 중요한 제안을 했다. 오바마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미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기후·에너지·대량살상무기·금융 등 글로벌한 위기의 극복을 위하여 미국의 리더십과 협조하려고 하는 유례없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 절호의 찬스를 활용하여 오바마는 ‘그랜드 스트래티지(grand strategy)’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거대한 전략의 핵이 미국과 중국의 관계라는 것이다.
2006년 미·중 정상회담에서 만난 부시 전 미국 대통령(左)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는 모습. [중앙포토] |
현재 미국의 매파들은 중국이 더 성장하기 전에 등뼈를 꺾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둘기파들은 그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질타한다. 중국을 적대적 관계로 소외시키면 결과적으로 한·중·일이 배타적인 경제연합기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의 건강한 비둘기파적 사유를 대변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과 중국이 연합하여 협조적으로 글로벌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만 인류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미국은 세계 인구의 5%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자원의 25%를 쓰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세계인구의 25%를 차지한다. 만약 중국 인민들이 미국인들이 쓰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남용한다면, 세계 인구 25%의 중국인들은 세계 자원의 125%를 쓰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수리상으로 보아도 불가능한 사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국의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도시의 최근 변화를 분석해 보면 결국 맨해튼의 뒤꽁무니를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떤 독자적 문명의 모델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서울도 지상 555m에 달하는 제2 롯데월드 건축을 강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가장 큰 비극적 요소는 국방안보상의 난센스를 운운하기 전에, 그 건물의 형태와 내용이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전혀 과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있다. 구멍가게 잡화상을 크게 키웠을 뿐이다. 호텔·사무실·상가·놀이터·메가박스를 뛰어넘는 영화관…, 결국 주위의 상권만 빨아먹고 공멸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대한민국의 시장은 너무도 작다.
유럽의 전통도시에 대조적으로 용적률을 전폐시킨 마천루 집약형의 맨해튼이라는 도시의 출현은 산업사회의 효율성을 상징하는 새로운 인류문명 패러다임의 과시였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구모델 산업사회 도시 형태는 더 이상 효율성을 과시하지 못한다. 미국은 이미 그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실리콘시대를 개척하고 있다. 서부의 실리콘 밸리에는 고층건물의 하이어라키적 구조가 없다. 휴렛패커드 회사만 해도 56개 동의 낮은 건물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 마천루 꼭대기 펜트하우스에 회장실이 있는 것과 달리 최고급 임원실이 어디 있는지도 잘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문명은 지금 새로운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몇 년 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입국하기 전 미얀마에서 그를 사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조국의 원대한 미래를 위하여 가장 힘썼던 일이 한·중·일·몽골·베트남·대만·싱가포르 7개국을 연합하는, 유럽연합(EU)과 비슷한 아시아경제공동체를 만드는 물밑작업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구상의 가장 큰 함정은 미국이라는 함수를 암암리 대적적으로 설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아시아 공동체가 성공하려면 미국의 충분한 협조와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구원(久遠)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미국은 점점 그러한 공동체 포용의 압박에 휘몰리게 될 것이다.
중국문명이 어떠한 미래의 진로를 과시할 것인가 라는 문제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것이다. 중국의 우유 사기꾼 한 명의 장난이 전 세계 인민을 울릴 수도 있다. 중국문명의 도덕성은 전 인류문명의 도덕성과 관련되어 있다. 나는 중국이 산업사회의 낡은 모델을 과시하기보다는 산업사회를 뛰어넘는 정보사회의, 보다 절제 있고 균형감각이 있는 새로운 모델을 과시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마치 유럽문명에서 미국문명으로 인류문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다면, 미국문명에서 중국문명으로의 전환은 그 유럽-미국 전환축에 상응하지만 전혀 새로운 차원의 요소를 과시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이 맨해튼의 뒷골목이 되고 만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 종자의 상상력의 빈곤이요, 전 인류 물질문명의 파탄이다.
나는 그 전환의 가능성을 『논어』 일서에서 발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의 사상적 핵은 퓨리터니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성서』를 도외시할 수가 없다. 미국과 중국의 21세기적 대결은 결국 『성서』와 『논어』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인류의 21세기는 과연 『성서』 중심 세계를 펼칠 것인가? 아니면 『논어』 중심 세계를 펼칠 것인가?
이러한 문제도 역시 ‘아이더 오아(either or)’라는 택일의 대결구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정해서 말해 보면 어떠할까? 『논어』가 중심이 되어 『성서』를 흡수하는 세계가 될 것인가? 『성서』가 중심이 되어 『논어』를 흡수하는 세계가 될 것인가? 물론 기독교인들은 전자의 대안을 불쾌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깨달아야 할 사실은 양자의 방향이 결국은 동일한 오메가 포인트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미 기독교는 중심부에서 힘을 잃었으며, 제3세계에서 새로운 활기를 모색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21세기 기독교신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초월적 기독론이나 종말론에 매달리고 있지도 않다. 기독교도 이제 신화적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힘을 잃는다.
기독교가 갱생하는 유일한 길은 유교적 상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논어』와 『성서』의 융합, 그것이 곧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나는 오늘 오바마호의 출범에 당하여 우리 지구의 푸른 하늘을 향해 포효한다.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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