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판 비해 엄청난 비용-시간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책판은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작한 제작물이어서 그 자체에 문화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류준필 인문한국(HK)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표문 ‘19세기∼20세기 초 책판 제작의 사회·문화적 의의’에서 “책판은 다량의 책을 인출(인쇄)하는 기능을 하지만 책판 존재 자체가 사회 문화적 권위와 자산의 기능을 했다”며 “이 때문에 역으로 책판의 소유와 보존 여부가 문집 간행의 목적이 될 수 있었고, 문중과 서원에서 장판각을 건립해 책판을 보존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성재선생문집의 경우 책판 경비 모금에 200여 문중이나 참여해 유교문화권의 긴밀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엿보게 한다.
국학진흥원이 수집한 책판의 70%는 이름 높은 선비들의 문집이었다. 2008년까지 수집한 482종, 5만1493장 중 문집이 346종, 3만9744장으로 가장 많았다. 나머지는 성리학과 예학에 관한 저서, 족보, 일기 등이었다. 지금까지 영남지역에서 문집의 발간이 많은 이유는 조상이나 선현의 글을 간행함으로써 문중의 명예를 선양하려는 결과로 해석해왔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신승운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장과 서정문 한국고전번역원 사업본부장(문학박사)은 발표문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문집류 목판의 성격과 가치’를 통해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미 목활자가 등장해 현저하게 비용을 낮출 수 있는데도 19세기와 20세기에도 영남지역에서는 문집류 책판 제작이 활발했던 것이다. 서 본부장은 “책을 찍고 나면 금방 해체되는 활자 방식과 달리 책판은 오랫동안 보존할 지식을 책으로 남길 때 사용했다”며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감에도 책판 방식을 유지한 것은 기록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책판 방식에는 많은 사람이 비용을 대고 내용에 관여함으로써 유교사회의 독특한 향촌문화를 형성하는 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조선시대 전반에 걸친 책판이 수집됨에 따라 기존 문헌만으로 확인이 되지 않던 판본의 정확한 구분, 판각기술과 책판 나무 재질의 변천 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 원장은 “책판은 기록을 중시한 조선의 유교문화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뿐 아니라 지식의 축적과 유통의 원형을 지닌 문화적 자산”이라고 말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