難得糊塗 - 어수룩한 척하기는 어렵다
6월3일 이문학회 수업은 그동안 매달려오던 '고씨화보'를 끝낸 날입니다.
출판에 앞서 '준비과정'이 남아있지만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갈 무렵 難得糊塗이라는 글을 얻었습니다.
글이 마음에 들어 자료를 모아봤습니다.
糊塗는 ‘담벽에 칠해진 하얀 회칠’을 말합니다.
진실을 회칠로 은폐하고 가린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호도란 총명한 것을 가려서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아래는 정판교의 글씨입니다.
難得糊塗 아래 씌여진 글입니다.
聰明難糊塗難(총명난호도난)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유총명이전입호도경난)
따라서 총명하면서 어리석은 체 하기는 더욱 어렵다
放一着退一步(방일착퇴일보)
한 걸음 앞서려 하지 말고 한 발 물러서서
當下心安非圖(당하심안비도)
마음을 낮추는 것이 어찌 슬기롭지 못 하다 하리요
後來福報也(후래복보야)
훗날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글의 유래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 글은 판교 정섭이 산둥지방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만난 호도노인(糊塗老人) 이라는
은거하고 있던 옛 고관의 비범함에 놀라 지은 글이다. 판교 정섭이 하루는 내주 지방의 거봉산을 찾았다.
육조시대에 세워진 정문공비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가다가 시간이 늦어 산속에 있는 茅屋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모옥의 주인은 유생의 티가 나는 노인으로 스스로 糊塗老人(어수룩한 늙은이)라고 소개하였다.
모옥에는 네모난 탁자만큼이나 큰 좋은 돌에 조각을 잘 새겨 넣은 벼루가 있었다.
판교 정섭은 좋은 벼루를 보고 크게 감탄하였다. 다음날 아침 어수룩한 노인은 판교 정섭에게 벼루에 새기기 좋게 글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판교 정섭은 즉석에서 ‘난득호도’라는 네 글자를 먼저 쓰고 이어 자신을 다음과 같은 글로 써 남겼다.
康熙秀才 (강희수재) 강희제 때 수재 합격
雍正擧人 (옹정거인)옹정제 때 거인 합격
乾隆進士 (건륭진사) 건륭제 때 진사 합격
당시의 과거제도는 3단계의 시험을 치렀는데, 향시鄕試(고향마을에서 치르는 1단계 시험)에 합격을 하면 수재라 불렀고,
각 성省에서 치르는 2단계 시험에 합격하면 거인, 마지막으로 황제 앞에서 치르는 3단계의 전시殿試에 합격을 하면 진사가 되었다. 정판교는 글재주가 매우 뛰어났으나, 과거시험에는 좀 늦어 늦은 나이에 산동山東의 현령縣令이 되었을 뿐이다.
벼루가 워낙 컸으므로 정판교는 자신의 글을 쓰고 남은 빈자리에 노인에게 발문跋文을 써줄 것을 부탁하였다.
노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得美石難(득미석난 ) 아름다운 돌은 얻기 어렵다
得頑石尤難 ( 득완석우난) 굳센 돌을 얻기도 또한 어렵다
由美石轉入頑石更難 ( 유미석전입완석갱난) 아름다운 돌이 굳센 돌로 바뀌기는 더더욱 어렵다
美於中頑於外 (미어중완어외 ) 아름다움은 속에 있고, 굳셈은 밖에 있으니
藏野人之廬 (장야인지려 ) 시골사람 오두막에 숨어 살뿐
不入富貴門也(불입부귀문야) 재산과 지위를 위해 드나들지 않는다
글을 지어 쓰기를 마친 다음 노인은 낙관을 썼다.
院試第一 원시에서 일등
鄕試第二 향시에서 이등
殿試第三 전시에서 삼등
노인이 쓴 대구를 읽고 판교 정섭은 깜짝 놀랐다.
그제야 비로소 이 모옥에 묻혀 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노인은 고관을 지내고 은퇴하여 숨어 살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판교 정섭은 다시 붓을 들어 앞에 쓴 <난득호도> 네 글자에 보태어 다음과 같은 對句를 썼다.
聰明難 糊塗難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수룩하기도 어렵다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총명한 사람이 어수룩하게 되기는 더 어렵다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한 생각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면 마음이 편안해 지리니
非圖後來福報也 도모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된 응보가 올 것이다
이후로 ‘난득호도’는 판교 정섭의 좌우명이 되었고 그는 이 글을 그의 특유의 글씨체로 써서 책상 머리에 붙여놓았다.
그러나 판교 정섭이 ‘난득호도’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느끼고 깨달은 것은 관직을 떠나 고향 양주로 돌아갈 때였다.
판교 정섭이 관직에 있는 동안 큰 가뭄이 들어 농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자 자기가 책임을 지리고 하고
즉각 관청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의 기근을 구하였다.
상부에 허가를 받기 위해 공문을 올리고 조정의 비준을 기다리다가는 백성들이 모두 굶어죽고 말 형편이었다.
한시가 급한 사정에 판교 정섭은 관청의 창고를 모두 열어 구재미를 나누어주니,
현성안팎의 길 위에는 벌떼와 같은 백성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이지 않았으나,
집집마다 모두 구재미를 받아 잠시나마 기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판교 정섭은 그때 백성의 어려움을 <逃荒行>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十日賣一兒 ( 십일매일아 ) 열흘만에 아이 하나 팔고
五日賣一婦 (오일매이부) 닷새만에 부인을 팔고
來日勝一身 (래일승일신 ) 내일은 제 몸만 남아
茫茫郞長路 (망망랑장로 )망망한 유랑길 오르네
그러나 이런 판교 정섭의 선행은 도리어 부패한 고관들과 돈 많은 부호들의 미움을 사는 빌미가 되었다.
그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 예순 한 살 때 일이다.
마침내 그가 근무하였던 현을 떠날 때 현의 모든 백성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울며 그를 전송하였다.
이때 세 필의 당나귀 가운데 한 필에는 자신이 타고, 또 한 필에는 길을 인도하는 書僮 한 사람을,
나머지 한 필에는 자신의 옷과 서화 그리고 거문고 하나를 실었다.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현령으로 지낸 판교 정섭의 삶이 얼마나 청빈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난득호도의 뜻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그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 파면을 당하고서야 비로서 삶의 예지를 처절하게 깨닫고,
스스로 총명함보다는 ‘糊塗’의 길을 택하였다.'
지혜로우나 어수룩한 척하고
기교가 뛰어나나 서툰 척하고
언변이 뛰어나나 어눌한 척하고
강하나 부드러운 척하고
곧으나 휘어진 척하고
전진하나 후퇴하는 척하는 難得糊塗 의 지혜에 마음을 모아봅니다.
2010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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