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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마지막 유묵, 海士 박물관에 걸린다

굴어당 2010. 8. 13. 13:30

민병기 당포함 추모회 이사장 기증

안중근 의사가 서거 이틀 전에 쓴 유묵(遺墨)이 해군에 기증된다. 1910년 3월 24일 뤼순(旅順) 옥중에서 쓴 서예 작품으로 '풀이 푸르게 돋은 언덕'이라는 뜻인 '청초당(靑草塘)'이다.

해군은 12일 "유묵의 소유자인 민병기 당포함 추모사업회 이사장이 이 유묵을 해군에 13일 기증하기로 했다"며 "장병과 국민의 호국의식 함양을 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초당'은 민 이사장의 부친으로 4·5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민장식(1999년 작고) 전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이 해방 직후 흥남에서 일본인에게서 구입한 것이다. 가로 66.3㎝, 세로 33.2㎝로, 봄에 풀이 푸르게 돋아나듯 우리나라의 독립도 곧 다가올 것이라는 안 의사의 염원을 담고 있다.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2년 8월 16일 보물 제569-15호로 지정됐다.

기증자 민 이사장은 "안 의사의 독립염원이 담긴 유묵을 많은 사람이 감상하면서 그 정신을 되새기면 의미가 크겠다고 생각돼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 이사장은 1965년 해군사관후보생 43기로 입대, 해사에서 3년간 기상학을 가르치고 중위로 예편했다.

 

 

 

1910년 3월 25일 정오 중국 뤼순감옥 3동 9호의 문이 열렸다. 안중근은 마지막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3월 25일 형(刑)을 집행하라고 요구했었다. 나와보니 뜻밖에 정근, 공근 두 아우가 면회를 와 있었다. 그는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뼈를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하며 "혹 시베리아에 가거들랑 내가 단지(斷指)동맹 때 자른 손가락을 돌려받으라"고 당부했다.

▶사형은 이튿날 집행됐다. 25일은 대한제국 순종황제 생일이기도 해서 안 의사 사형집행이 한국인을 자극할 수 있다고 계산한 일제가 하루 늦춘 것이었다. 하얼빈 의거 때 안 의사를 호송한 일본인 간수가 그에게 마지막 글씨를 부탁했다. 형장으로 떠나기 한 시간 전 그는 하얀 한복을 입고 써내려 갔다. "爲國獻身 軍人本分(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

▶뤼순감옥에 갇혀 있던 143일 동안 안 의사는 200점 넘는 유묵(遺墨)을 남겼다. 그의 기개와 인품에 감화된 일인 검사·간수·의사들이 앞다퉈 글씨를 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見利思義 見危授命(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그는 조국 광복을 다짐하며 손가락 하나를 자른 왼손바닥을 도장(手印)처럼 눌렀다.

▶구본진 법무연수원 교수는 최근 저서 '필적은 말한다'에서 "글씨는 뇌(腦)의 지문"이라고 했다. 글씨만 보고 항일투사인지 친일파인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항일투사 글씨는 정사각형으로 반듯하며 힘찬 것이 많다. 행 간격이 넓고 규칙적이다. 친일파 글씨체는 길고 유연하지만 행 간격이 좁고 불규칙하다.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는 겉으론 호기롭지만 내면에 남모르는 불안감이 서려있다고 했다. 안 의사 글씨는 웅건 장중해 큰 바위에 올라 굵은 발톱으로 굳건하게 서있는 수사자의 서릿발같은 기상을 보여준다.

▶안 의사의 글씨는 한 점에 4억~5억원을 호가한다. 추사, 한석봉 같은 어떤 명필의 글씨보다 높다. 그의 의로운 정신이 담긴 글씨를 한낱 돈으로 계산한다는 게 속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다산이나 율곡 역시 서예가는 아니지만 글씨가 높은 대우를 받는 걸 보면 사람들은 글씨에 담긴 인간도 보는 모양이다. 오늘은 안중근 의사 순국 99년이 되는 날, 그의 뼈는 아직 이국에 있지만 그의 글씨에 담긴 혼은 후세인의 가슴에 얼음처럼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