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파워' 중국의 內面을 읽는다]
[1] '군사大國'인가 '책임大國'인가… 세계전략의 두 시각
"경제·국제사회 공헌 통해 대국으로 변모" 中정부, 공식적으로는 '평화적 발전' 표방
"군사력 없인 영토분쟁 등 안보이익 없다" 현실주의 대외노선이 갈수록 힘얻어
1840년대 초 아편전쟁 이래 민족적 수난을 겪어온 중국은 21세기 들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판도를 좌우하는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을 한국의 '공장'이나 '수출시장'으로 바라볼 뿐, 안팎으로 격동하는 중국을 내면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크게 부족하다. 오랜 와신상담 끝에 다시 '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지식인들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려고 하고 있을까. 그들의 내면을 사로잡고 있는 주요 이슈들에 대한 논쟁을 집중조명하며 중국 사회를 움직이는 저류(底流)를 탐험한다.
최근 중국의 부상은 가히 놀랍다. 30년 전만 해도 빈곤과 저개발에 허덕이던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뜨고 있다. 미국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초대강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상에 발맞추어 중국은 화평발전(和平發展), 책임대국을 표방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연평도 포격 사태, 중국어선 충돌 사건, 일본 및 동남아 국가와의 영해 분쟁 등과 관련한 중국의 태도를 보면 이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도대체 중국의 속내, 진짜 세계전략은 무엇인가?
중국공산당은 아직도 화평발전, 화평굴기(평화롭게 일어서다)를 기본노선으로 견지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이나 다름없는 중국이 세계전략을 논의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못박고 있다. 13억 인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소득과 부, 지역 간 양극화 현상을 개선하는 동시에 부정부패 같은 개혁개방의 모순과 부조리를 척결하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덩샤오핑이 제시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라"는 주문을 금과옥조로 삼으면서 '대외적 평화, 대내적 조화'라는 틀 안에서 경제발전에 치중하겠다는 것이 현재 중국 정부의 공식 노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은 거세다. 중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학자인 옌쉐퉁(閻學通·59) 칭화대 교수는 '도광양회'를 "중국 특색의 위선적 고립정책"이라 규정하며 이제 중국은 '대국굴기(대국으로 일어서다)'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판 네오콘인 '네오콤(Neo-Com·네오콘과 Communism의 합성어)'으로 불리는 옌 교수는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볼 때 "군사력 강화 없는 화평굴기는 불가능하고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외교정책을 펴야만 중국의 국가이익이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옌 교수는 중국이 진정으로 강대해질 때 비로소 서방세계에서 중국위협론이 불식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력 증강이 핵심적 관건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중국 정부처럼 미국의 비위나 맞추며 중국위협론을 누그러뜨리는 데 급급한 나머지 중국의 최우선 과제인 타이완(臺灣), 댜오위다오(釣魚島) 등 영토 분쟁을 비롯한 안보 이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옌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합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양국의 핵 억지전략 때문에 군사적 충돌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한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거침없이 내비친다. 한국 정부의 과도한 친미(親美)정책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고 중국의 대(對)북한 정책은 한국에 대한 응징과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옌 교수는 전통적인 강경파, 특히 군부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자유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왕이저우(王逸舟·54)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가 대표적 인물이다. 왕 교수는 "현재 중국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국가가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며 "'내부가 비면 외부 세력이 침투한다'는 교훈에 의거, 중국은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발전을 통해 종합국력이 향상되면 주권 수호와 영토 안정성이라는 전통적 안보목표는 자연히 달성될 것이기 때문에 현단계에서 중국은 국제사회에 대한 공헌을 통해 책임대국으로 변모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 교수는 중국의 진정한 부상은 국제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제적 책임을 다할 때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국제기구의 규범·원칙·규칙·절차를 성실히 이행하고 개발원조, 인간안보, 기후변화 등 세계적 현안 해결에 적극 참여할 때 중국의 국익이 증진된다고 믿는다.
왕 교수에 따르면 '중국위협론'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해소하는 최선의 길은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국제 규범과 레짐 형성에 대한 실질적 기여에 있다. 특히 그는 "민족주의나 애국주의는 좋지만 이웃 국가들에 폐를 끼치는 극단적인 쇼비니즘은 배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은 주변국들에 대한 신중하고도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왕 교수는 그 사례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들면서 "고구려를 중국의 변경이나 일개 성(省)처럼 다룬다면 한국인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중국은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문명, 국가, 사회제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왕 교수의 이런 주장은 중국 외교부의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처럼 중국의 세계전략은 학자들의 입장과 정부 부처의 이익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국굴기' '군사대국'의 현실주의와 '화평굴기' '책임대국'의 자유주의 간 경쟁은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중국 외교의 최고 책임자인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은 12월 6일 발표한 '평화적 발전 노선을 견지하자'라는 글에서 현실주의 발상을 배격하고 자유주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분명히 겉으로는 자유주의에 따른 대외 온건노선이 주류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여론은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외 강경노선으로 기우는 것 같다. 배타적 국수주의의 확산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아마도 다이빙궈 국무위원 역시 이런 맥락에서 강경파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생각되지만 중국 지도부도 이런 흐름을 쉽게 바꾸지 못할 것이다. 2012년 중국 리더십의 교체 때까지 중국은 국내여론에 주목할 것이고, 그에 따라 대외정책도 강경해질 가능성이 크다. 대미(對美)정책이나 대한(對韓)정책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중국과 그를 지켜보는 인접국들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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